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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連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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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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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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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공허의 주인

DUMMY

2화



[신들의 전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의 컨셉은 신이다.

악신들이 대륙을 지배하려는 걸 선신들이 막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모시는 태양교는 대표적인 선(善) 성향을 뛰고 있는 교단이다. 세력도 매우 크다.

하나의 지역에만 뿌리내린 게 아니라 대륙 전역에 믿는 신자들이 곳곳에 퍼져 있다.


도시에 태양교의 신전이 세워진다고 하면 집값이 세 배 이상 뛰고, 아침 기도 시간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성당으로 몰린다. 5대 교단하면 무조건 들어갈 정도로 세가 넓은 게 바로 현재의 태양교다.


오죽하면 플레이어 사이에서 태양교를 적대하게 될 경우 캐릭터를 리셋하는 게 좋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런 교단에 성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면 공부, 전투면 전투. 특히 성기사는 전투에 치중된 성직자기 때문에 여러 시험을 거쳐 자신의 무력을 증명해야지 비로써 태양교의 성기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태양교의 성기사와 많이 싸워봤는데 확실히 강하다. 괜히 태양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사람이 내게 장비를 부탁하는 것일까.


“그러니까···어어. 이 검을 수리하라는 거죠?”

“그래. 검 위쪽에 금이 살짝 갔다. 문제 있나?”


나는 검을 살폈다.

매우 잘 만들어진 장비다.


검신은 열전도율이 높은 태양철을 사용했고, 손잡이 부분엔 위력을 강화시켜주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가공법에서도 기교가 드러났는데, 특히 검신에 세겨진 룬어는 이 검이 단순한 검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성물은 아니지만, 마법검이로군.’


이거 하나 사려면 내 1년치 연봉을 모조리 투자해도 부족하다. 한 3년 정도 빡세게 일하면 중고로 하나 장만할 수 있겠지.


한마디로 시골 손세차장에 억대 외제차가 들어온 것과 다름없다.


나는 정중히 고개 숙여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제 실력으로는 이 검을 수리하지 못합니다. 대장장이 간의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상태가 더욱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안 된다는 건가?”

“네.”


가능은 하다.

내 실력 자체는 장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불행이 터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일반 장검 하나 만드는 것도 불행으로 터져버리는데, 이걸 손댔다가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내 모가지는 이 자리에서 댕강이다.


성기사가 눈썹을 모았다. 딱 봐도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괜히 불똥 튀기 싫어 최대한 허리를 숙였다.


“흠. 이거 문제로군, 단장 이단을 처리하러 가야 하는데 검이 이래서야. 이봐.”

“예?”

“만약 이단과의 전투에서 검이 부러져 내가 진다면, 네가 책임질 수 있나?”

“아···니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수리를 거부하는군. 그렇다면 너는 이단이렸다?”


갑자기 왜 결론이 그리 나는 건데?!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성기사의 굵은 손이 내 목을 잡아 들었다.

내 체격이 결코 작은 편이 아닌데, 성기사 답게 무시무시한 힘이다.


커헉.

숨이 턱 막혔다.

미친놈이다. 실력이 안 된다고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 막무가내로 나가는 놈은 정말 흔치 않다.


나는 어떻게든 항변하려 입을 열었다.


“크윽. 제, 제 실력이 아,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여기 말고 이 위쪽에 한스네···이런. 젠장할.”


한스는 지금 대장간을 비웠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자리를 비운지 일주일이 넘었다. 듣기론 시내에 다녀온다는 것 같은데, 그 덕에 이 작은 시골에 대장장이는 나 뿐이었다.


낭패다.


성기사는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하기 싫다? 만약 여기서 거절한다면 나는 널 이단으로 죽일 것이다.”

“크윽.”


거절하면 진짜 이단으로 몰아 죽일 셈이다.

아무리 신을 믿는 놈들 중 또라이가 많다고 해도 이런 또라이는 진짜 상대하기 힘들다.


‘일단은 살고 보자.’


머리가 새하얘지는 와중에도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손, 손 좀.”


그제서야 성기사가 손을 풀어줬다.

바닥에 널부러진 나는 붉게 부어오른 목을 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기사는 알아서 기간을 통보했다.


“이틀 준다. 그 안에 수리를 끝내도록. 돈은 끝나고 주지.”

“쿨럭. 쿨럭. 알겠습니다.”


성기사는 삐걱거리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그가 대장간을 완전히 빠져나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의뢰인에게 죽을 뻔한 건 진짜 오랜만이야.”


그런 경험 대부분은 내 실수 때문에 벌어진 거니 그냥 넘어가는데,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기분이 참 뭐 같았다.


나는 속으로 성기사 할애비까지 씹으며 분을 풀었다.


“그래. 여기선 약한 게 죄지.”


참 잔혹하고도 야만적인 세상이다.


신을 믿는 성기사가 저래도 되는지 몰라.


“그냥 튈까?”


그냥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저 검을 두드려 봤자 부서지기만 하지,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성기사의 검을 부수자니 그 후폭풍이 두렵다.


보아하니 근처에 나타난 몬스터를 처리하려 하는 것 같던데, 내가 장비를 부순 덕분에 맡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


이건 그냥 죽는 걸 떠나서 최악의 경우 이단 심문관에게 끌려갈 수도 있다.


이단 심문관은 악마 숭배자들 조차도 두려워할 만큼 악명이 높은 집단이다. 중세 시대 마녀 사냥은 우습게 여기는 수준의 고문에 힐을 곁들여 고문과 재생을 반복한다.


죽여달라고 해도 죽이지 않으며, 결국에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죄수는 고통받는다. 그들이 원하는 답을 들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단으로 몰려 사형이다.


안 된다.


“하지만···과연 저 성기사가 나 하나 추적하지 못할까?”


성기사는 여러 훈련을 받는다. 그중에는 기본적으로 추적술도 있다. 특히 해가 떠 있는 정오에 태양교 성기사의 능력은 더욱 강화된다.


내가 마나라도 쓸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안타깝게도 일반인이다. 아무리 대장장이로 살며 신체 스펙이 높아졌다 해도 성기사에겐 안 된다.


의자에 잡혀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이 상상됐다.


“그럴 수 없지. 어차피 걸릴거, 그나마 확률이 있는 선택이라도 하자.”


나는 망치를 들었다.


무조건 성공한다.


검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아봤다.

인간의 오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좋아. 시작하자.”


긴장됐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억지로 참았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안 된다.

완벽하게 만들어도 운이 안 좋으면 터진다.


검의 문제점은 위쪽 부분에 간 금이다. 아주 미세했지만, 눈에 보일 만큼 금이 생겼다는 건 언제든 부서질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뜻이다.


돈만 많았다면 용접이나 다른 방법을 썼을 텐데, 여기에 그런 장비는 없었다.


오직 용광로와 망치, 모루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광로에 넣어 금 간 부분을 녹이고 망치로 두드려 재결합시키는 방법이다.


난도가 매우 높아 끝날 때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집중하고 망치를 두드렸다.


꽝! 꽝! 꽝!

소리가 참 불길했다.

잠시 집중이 흐트러질 뻔 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단조 과정을 거쳤다.


온몸에 힘을 준 상태로 긴장을 유지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슬슬 끝이 보였다.


빨갛게 달궈진 검을 기름에 넣어 시켰다.

충분히 냉각시킨 후 꺼냈다.


스르르릉.

일단 깨지진 않았다.

나는 햇볕에 검을 세워 비췄다.

일직선으로 올곧아야 하는 검이 살짝 휘었다.


“스읍. 마법검이라 약간 휘었네.”


마법검 단조를 보조할 장비가 이곳에 없어서 생긴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망치질 몇 번이면 충분히 돌릴 수 있다. 한마디로 성공했다는 뜻이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망치질을 이어 나갔다.


꽝! 꽝! 꽝!

그때였다.


삐그그그. 컹.

간신히 매달려 있던 문이 떨어졌다.

갑작스런 소리에 시야가 돌아갔고, 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혈압이 오르며 힘이 빠졌다.

그 탓에 내려치던 망치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으악, 망치에서 손이!”


쨍그랑!

타격 지점 옆 부분에 맞은 검이 곧바로 부서졌다.

검이 산산조각났다.


“···.”


반으로 부서진 것도 아니다. 그냥 유리 접시 깨진 것처럼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아니···세상이 억까하네.”


지금 작업은 이미 냉각까지 마친 상황이다. 결코 망치로 검을 깰 수 없다.


그걸 증명하듯 허공에 하얀 창이 떠올랐다.


[부족한 행운으로 인해 장비 수리에 실패합니다.]


“미치겠네. 소리가 들린 건 아니겠지?”


문 앞으로 다가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성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 튀자.”


어차피 검이 깨졌다.

잡히면 사형이다.

튀는 게 상책이다.


“뭣하면 장비 재료 구하러 간다고 하면 되겠지.”


깨진 검 조각들을 모아 서랍에 숨기곤 지갑을 챙겼다. 안에 든 1골드. 내가 가진 전재산이었다.

대장간을 버리고 가는 게 아쉽지만, 목숨값 정도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필요한 짐을 챙기고 있는데, 눈앞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공허의 주인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응? 뭐가 관심을 보여?”

[뭐긴 뭐야? 내가 관심을 보였다는 거지.]


아름답고도 청아한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박혔다. 동시에 시야가 어둠으로 가득 찼다.

주변을 둘러보니 생전 처음 와보는 공간이었다.

마치 검은 안개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별로 놀라지 않네? 보통 첫 계약자들은 이곳을 보는 순간 까무러치는데 말이야.]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놀라지 않았다.


메시지가 보인 순간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미친, 여기를 실제로 와볼 줄이야.’


신들의 전쟁. 그곳에서 신과 대면하는 첫 번째 연출이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휴대폰 2D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나저나 너 대단하다. 내가 옛날부터 널 지켜봤거든? 그런데 손을 대는 것마다 부서지네? 특히 소드 마스터의 검을 깼을 땐 얼마나 웃었던지. 캬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또 웃기네.]


경박하게 웃는다.

하지만 비웃을 수 없었다.


지금 웃고 있는 건 인간 따위가 항거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저를 이곳에 부르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신이시여.”

[크흠. 흠. 그렇지. 내 이름을 말 안 했네. 안녕. 나는 공허의 주인이라고 해. 반가워.]

“···공허의 주인 님이시군요.”

[들어봤어?]

“들어 보지 않았을 리가요. 죽음의 사도라는 분의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죽음의 사도.

게임 속에서도 매우 악명 높은 악신 숭배자다. 한마디로 이 여신 또한 악신이라는 것이다.


검은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그 사이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다가왔다.


어깨까지 기른 흑단발에 눈은 보라색 수정처럼 빛났다. 눈 아래에 있는 매혹점과 관능적인 몸매는 뭇 남성이라면 절로 눈이 갈 만한 외형이었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이를 꽉 깨물고, 볼을 짓씹으며 허리를 숙였다.


[흠. 역시 재밌네. 내가 선택한 사람다워.]

“···”

[길게 말하지 않을게. 나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 그러니까 아이야. 나와 계약하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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