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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명 님의 서재입니다.

하오문 역대급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석공명
작품등록일 :
2022.05.17 16:10
최근연재일 :
2022.05.20 18: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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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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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글자수 :
45,170

작성
22.05.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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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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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12쪽

6화 수전노

DUMMY

새액, 새액.


숨소리조차 거칠다.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비단금침(緋緞衾枕)에 누워 있는 육선회를 내려다보았다.


“······.”


의외로 그는 삐쩍 마른 꼬장꼬장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오십 대 중반으로 알고 있었는데 얼굴만 보면 육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육선회가 이렇게 생겼었군.’


회귀 전엔 서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았으니 딱히 마주칠 일도 없었다. 이때 죽기도 했었고.


“······.”


나는 슬쩍 천장을 쳐다보았다.


‘거참, 사람을 영 못 믿는 구만.’


숨어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물론 날 감시한다기보단 호위를 위해 은신해 있는 거겠지만.


‘다행이야, 늦지 않아서.’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더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육 장주, 내가 다시 살려줄 테니 두 번째 인생이라 치고 조금은 베풀며 사시오.”


의식이 없어서 듣진 못하겠지만. 아, 내가 할 말은 아닌가?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천령개(天靈蓋)를 잡았다. 은신해 있던 놈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안 죽인다, 안 죽여. 곧 죽을 노인네를 내가 굳이 죽이러 왔겠냐?’


“쩝.”


잡념을 지우고 눈을 감았다.


‘지금부턴 집중력 싸움이다.’


공진회륜공의 수많은 공능 중 하나.

상대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

마교의 흡성대법처럼 막 되는 건 아니고 일반인이나 의식을 잃고 있는 무림인에게는 통용된다.

또한 가장 중요한 내공이나 선천지기는 흡수할 수 없다.


‘공진회륜공의 수준이 더 올라가면 어찌될 지 모르겠지만.’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기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니 섣불리 들어오는 놈은 없겠지.’


내 손을 따라 공진회륜공의 기운이 육선회의 백회혈(百會穴)로 파고 들었다.


‘어라?’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백회혈이 거의 막혀 있었다.


‘쯧, 이러지 죽어가지.’


나는 서두르지 않고 혈도를 자극했다.


드드드드.


내 진기가 육선회의 혈맥에서 마구 진동을 일으켰다.

이내 찐득하고 기분 나쁜 기운이 떨어져 나와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잘 먹겠습니다.’


찐한 탁기가 내 단전으로 내려갔다. 이제 시작인데 그 양이 상당했다.


‘달달하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육선회도 살리면서 내 내공도 쌓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일거양득.


‘소장주에게 약속받은 것도 있으니 내가 좀 더 덕을 보는 건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백회혈을 뚫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벌써부터 느껴지는 구만. 대단한 독기(毒氣)야.’


새삼 육선회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독을 품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니.

공진회륜공은 독기조차 흡수할 수 있다. 그랬기에 자신만만하게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독기는 더욱 조심해야 하지.’


천천히 독기를 흡수해 내 몸으로 보냈다. 내 손이 검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


순식간에 한 시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얼추 독기는 거의 흡수한 거 같은데.’


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너무 오랫동안 집중을 해서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아직 쉴 수 없었다.


“휴우.”


한숨을 내쉰 나는 다시 공진회륜공을 움직였다.


‘이대로는 깨어난다고 해도 얼마 살지 못해.’


독을 장복한 덕분에 몸 상태가 매우 나빴다.

나는 벌모세수하듯 그의 전신의 탁기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한 번 손댄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게 나야.’


겸사겸사 내공도 더 쌓고.

후후후.


작업을 진행하며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 이 노인네 보소?’


혈도 곳곳에 쌓여 있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수전노라더니 제 몸은 더럽게 챙긴 모양이군.’


영약을 한두 개 먹은 게 아니었다.


‘몸이 아주 노다지광산이야!’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 기운들을 흡수했다.

영약의 기운이지만 오히려 혈도를 막아 건강을 해치고 있었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그렇게 두 시진의 시간이 흘렀다.


“하아.”


나는 그제야 그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전신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우라지게 힘드네.”


그대로 뻗어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흡수한 기운들을 다스려야 해.’


나는 지친 몸을 억지로 움직여 가부좌를 틀었다.


우우웅!


내 몸의 진동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독기 흡수 한 시진, 탁기와 약기운 흡수가 두 시진, 그리고 운공 한 시진.

도합 네 시진 만에 육선회의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문을 열자, 효자 육인혁이 아직도 있었다.


‘와,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내가 나올 때까지 절대로 들어오거나 문을 두드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냥 무작정 기다린 모양이다.

그가 기대 반, 불안 반의 표정으로 말했다.


“소협, 아버님은······?”

“이제 안정이 되어 잠이 들었소. 아마 내일 아침이면 털고 일어나실 거요.”


뭐, 이미 한 시진 전부터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아!”


감격한 얼굴의 육인혁이 침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잠이 든 육선회를 확인했다.


“저, 정말이구려! 혈색도 좋아 보이시고······ 정말 다시 건강을 되찾으셨어!”


니가 보면 뭘 아냐?

안색과 표정, 숨쉬는 것만 봐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긴 하다.

그는 내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소협, 정말 고맙소!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으리다!”

“약속한 걸 지켜주는 것으로 충분하오.”

“물론이오!”

“잠시 쉴 방을 내어 줄 수 있겠소? 내일 아침, 장주의 상태를 확인하고 떠나고 싶소만.”

“하하, 책임감도 있으시구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늦어 객청의 가장 좋은 방을 준비 시켜 놓았소.”


딱히 책임감 때문은 아니다. 나도 처음 해본 치료라 혹시나 잘못될까 걱정되어 그런 거지.

그리고 아직 육가장을 떠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치료 과정은 무난했는데. ······설마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 * *



짹짹.


새소리와 함께 따뜻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잠이 깼다.


“으음.”


나는 눈을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말이지 호사가 따로 없었다. 그 늦은 밤에도 따뜻한 목욕물로 씻을 수 있었고 내 몸에 딱 맞는 보들보들한 잠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침상은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쏟아질 정도로 편안하고 푹신했다.


‘이래서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내가 침상에서 나오자, 어떻게 알았는지 곧바로 시비가 달려와 세안할 물을 대령했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어, 그래.”

“아침 식사도 갖다 드릴까요?”

“좋지.”


당연하지. 내가 언제 육가장에서 아침을 얻어먹어 보겠어?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막 물러나려는 시비를 불렀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예.”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밤새 육 장주는 별일 없었어?”

“그건 저도 잘······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나간 시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소장주께서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장주께서는 새벽녘에 깨셔서 지금은 아침 식사 중이시랍니다.”

“다행이군.”


휴우, 혹시나 이상이 있으면 바로 튀려고 했는데 잘 회복된 모양이군.



아침은 간단하게 희반(稀飯, 죽)과 함채(咸菜, 절인 채소)가 나왔다.


‘뭐야? 부자도 먹는 건 비슷하네.’


잠깐 실망했던 나는 음식을 입에 대는 순간 내 생각이 완벽하게 틀렸음을 깨달았다.


‘뭐가 이렇게 맛있어?’


믿기 어렵게도 온갖 고기를 넣은 음식보다 맛있었다.

정신없이 먹어 치운 나는 빈 그릇을 보며 우울해졌다.


‘미안하다, 여진아. 이제 네가 한 음식은 못 먹겠다.’


아, 차라리 먹지 말걸.

잠시 후, 시비가 다시 들어왔다.


“식사는 마음에 드셨는지요?”


엄청나게 만족했지.


“꽤 훌륭하더군. 숙수가 누구야?”

“예, 특별히 대인의 식사는 장주님의 전담숙수이신 정 대가께서 하신 겁니다.”

“정 대가?”

“예, 몇 년 전에 황실에서 은퇴하신 분으로······.”


나는 손사래를 쳤다.


“됐다. 더 이상 안 알려줘도 돼.”


보나 마나 엄청 비싼 숙수겠지.


“그리고 아침 식사 후에 장주께서 대인을 뵈었으면 하십니다.”

“알겠다고 전해.”


뭐, 좋다. 어차피 곧 동업할 사이인데 안면을 트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잘 되었군. 어떻게 시간을 끌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 굳이 육가장에서 하루를 머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오늘 육가장에 도착할 예정인 ‘그’를 만나기 위해서다.



육가장의 접객실.


“······.”


육선회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노련한 상인답게 나를 파악하려고 유심히 살피는 거다.

나는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거참, 생명의 은인을 보는 눈빛치곤 좀 뭐하네.”


내 말에 육선회가 움찔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미안하네. 버릇이 되어서. 살려줘서 정말 고맙네.”

“어디 불편한 건 없소?”

“전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몸이 가볍다네. 허허, 정말 신통한 일이지.”


나는 확실하게 생색을 냈다.


“다 내 덕이오. 아마 앞으로 한 십 년은 너끈할 거요.”


육선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겨우 십 년······?”


와, 이 노인네 욕심 보소? 죽어가는 걸 살려 놨더니 뭐 겨우?

옆에 앉아 있던 육인혁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만류했다.


“아버님······.”

“응? 아, 내가 실언을 했군. 허허, 죽다 살아나서 그런가? 오히려 더 삶에 애착이 생기는군.”


‘와아.’


역시 욕심 많은 늙은이답다고 해야 하나.

응?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는 육선회의 눈, 조금 불안한데?


“실은 내가 자네를 보자고 한 건 감사의 인사를 직접 전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여기까지 말했을 때, 육인혁의 안색이 변했다.


“아버님!”

“가만 있어 봐라. 나를 살리는 대가로 몇 가지 요구를 했다고 하던데 맞는가?”


휴우,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건가.

내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렇소만.”

“젊은 친구가 실로 대단한 배포야. 이 늙은이를 살리는 대가로 그런 걸 요구하다니.”


아, 배알이 꼴려서 더는 못 들어주겠다.


“왜? 이제 살아나고 보니 나한테 줄 것이 아깝소?”


내 직설적인 말에 육선회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꼬, 꼭 그렇다기보다······ 물론 날 살려준 건 너무 고맙네. 하나, 곧 날 치료할 사람이 올 예정이었고······.”

“말은 바로 해야지, 이 노인네야! 어제 내가 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오늘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했어! 알긴 알아?”

“커흠! 젊은 친구가 말이 거칠 구만.”


철면피도 저런 철면피가 없다. 뒤에서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는다더니 이건 뭐.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육인혁을 쳐다보았다.


“······.”


그도 무안한지 감히 나와 눈을 마주 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뭐요?”

“자네가 요구한 걸 다 들어주지 않겠다는 게 아닐세. 본장에게도 부담스러운 것이니 조금만 깎아서······.”


더는 못 들어주겠다.


됐다.

다 때려치우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소. 하나도 필요 없으니 당신도 어제와 똑같은 상태로 만들어주지. 일어나 봐.”


놀란 육인혁이 재빨리 나섰다.


“소, 소협 진정을······!”


한바탕 소란이 일고 육인혁이 반강제로 육선회를 제 방으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내 흥분이 좀 가라앉았다.

육인혁이 거듭 사과했다.


“죄송하오, 소협. 내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리다.”

“됐소. 저 노인네의 소문을 내가 못 들은 것도 아니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소협. 약속한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지켜질 것이오.”

“흠, 당연히 그래야지.”


조금 불안했는데 역시 육인혁은 든든하다. 내 첫 번째 호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때, 시비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육인혁의 물음에 그녀가 답했다.


“예, 소장주. 신의(神醫)께서 도착하셨다는 전갈입니다.”

“······!”

드디어 왔구나, 내 두 번째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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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보상을 챙기다. +3 22.05.19 2,245 59 12쪽
7 7화 생사신의(生死神醫) +4 22.05.19 2,227 62 10쪽
» 6화 수전노 +2 22.05.18 2,213 58 12쪽
5 5화 육가장 +3 22.05.18 2,291 65 12쪽
4 4화 흑사방 +2 22.05.17 2,351 67 10쪽
3 3화 사부와 재회하다. +2 22.05.17 2,442 67 11쪽
2 2화 공진회륜공(共振灰輪功) +2 22.05.17 2,635 79 13쪽
1 1화 방무진, 회귀하다 +3 22.05.17 2,885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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