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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명 님의 서재입니다.

하오문 역대급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석공명
작품등록일 :
2022.05.17 16:10
최근연재일 :
2022.05.20 18:0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0,739
추천수 :
1,927
글자수 :
45,170

작성
22.05.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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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3화 사부와 재회하다.

DUMMY

‘두고 봐라.’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열리며 방여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


나와 눈이 마주친 여진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하냐?”

“······응?”

“혼자 주먹을 치켜 들고 뭐해? 또 누굴 패려고 연습이라도 해?”


나는 머쓱한 얼굴로 슬그머니 주먹을 내렸다.


“아, 아무것도 아냐.”

“······밥이나 먹어.”

“그래.”


밖으로 나오니 이미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분명 아직 해가 있을 때 들어온 거 같은데······.”


여진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그냥 그렇다고.”


여진이 아무리 쏘아붙여도 웃으며 받아 줄 수 있다.


‘벌써 일단공이라, 크크큭.’


몸에 쌓인 탁기와 회귀 전의 경험으로 고작 한 시진 만에 공진회륜공을 성취해냈다.

공진회륜공은 모두 일곱 개의 단계가 있다.


비급에 의하면 칠단공의 경지에 도달하면 환골탈태와 더불어 절대의 경지인 ‘무신경(武神境)’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믿기 어려웠지만 일단공을 성취하고 보니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공이지만 일류고수급의 내공 정도는 된다.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신공이구나!’


이렇게 된 이상, 공진회륜공의 비급도 좀 더 일찍 찾아야겠다.


‘시기를 앞당긴다면······ 어쩌면 뒷부분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누구도 그 비급의 가치를 모르니 아직 ‘그곳’에 있겠지.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먹어.”

“그래.”


마당의 평상 위에는 작은 식탁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응?”


놀랍게도 무려 반찬이 두 가지(!)였다.


“웬일이야? 헉, 설마 이건 고기?”


모처럼 여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가 오늘 돈을 좀 벌어서.”


내 기억으로는 공방의 월봉이 나오는 날은 아직 멀었다.


“어떻게 벌었어?”

“그런 게 있어.”

“그게 뭔데?”


내가 계속해서 캐묻자 녀석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그냥 닥치고 처먹어! 주면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뭔 말이 많아?”

“······미안.”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젓가락을 들었다.


‘이런 기분도 오랜만이군.’


한때, 여진의 막말도 그리운 적이 있었는데 막상 진짜로 들으니 기분이 별로다.

아마 나를 아는 다른 놈들이 보았다면 믿지 못했을 거다.

감히 천하의 독사 앞에서 막말을 퍼붓고 입을 다물게 하는 사람이 이렇게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란 걸.


“안 먹어?”


내가 젓가락을 들고 가만히 있자, 다시 여진이 눈을 부라렸다.


“아니, 그럴 리가.”


나는 얼른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었다.


‘싸늘하다.’


고기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마 제일 처음에 한 것이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차갑긴 했지만, 간이랑 익힘 정도가 딱이었다.


“맛있네.”


여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그럼.”


내가 웃으며 말하자, 녀석이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쳐 웃냐? 내 요리가 웃겨?”

“아, 아니.”


여진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아까부터 수상해. 평소랑 뭔가 달라.”

“······.”

“너, 혹시 사고 쳤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여진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제 평소 같은 표정이군.”

"그게 무슨······!”


쿠웅.

순간,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랬구나. 이때의 나는 항상 얼굴이 어두웠구나.’


어쩔 수 없었다. 동생을 지키고 이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해야 했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내 눈빛이 아련하게 변했다.


‘그럼 여진이 저렇게 된 것도······’


“좋은 말 할 때, 얼른 처먹어라.”

“응,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저건 타고난 거야.’


나는 후딱 밥그릇을 비웠다. 맛있게 잘 먹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이상하네, 여진이가 대체 어디서 돈을 번 거지?’



저녁 식사 정리가 끝난 후, 나는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당 한쪽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주머니를 본 것이다.


‘저 주머니는······.’


대충 짜서 듬성듬성한 주머니는 지하투기장에서 쓰이는 것이다.


‘그것도 배당금을 받는······ 아!’


요 깜찍한 녀석!

지하투기장에서 돈을 번 것이다.


‘틀림없어! 나한테 돈을 걸어서 딴 거야!’


예전엔 여진이 지하투기장에 온 줄도 몰랐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짜증을 부렸었나?’


그때는 내가 패해서 녀석이 돈을 잃었을 터.


‘쌈짓돈이 모두 털렸을 테니 당연히 진 내가 원망스러웠겠지.’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배당이 꽤 커서 제법 벌었을 텐데 고작 고기 한 덩이냐?’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괜히 여진을 자극할 수 있기에 참았다. 하지만 한마디는 해야 했다.


“여진!”

“······왜?”


방 안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오라버니가 부르는데 문도 안 열어?’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잘 들어. 다시는 지하투기장에 가지 마. 알았지?”

“······!”


내가 눈치챌 줄은 몰라 당황했는지 바로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해? 다신 가지 마. 거긴 험한 놈들이 많아서 위험해.”

“지는 맨날 가면서······.”

“이제 나도 가지 않을 거야.”


드디어 여진의 방문이 열렸다. 예상치 못한 말이라 놀랐으리라.


“뭐? 정말이야?”

“그래.”


녀석의 눈빛이 여러 차례 변했다.


“그건 좋은데······ 대책은 있는 거야?”

“그럼.”

“뭔데?”

“그건······”


내가 뭐라 하려는데 뒤쪽에서 누군가의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정말인가?”


고개를 돌리니 낡은 마의를 입은 중노인이 서 있었다.


“······!”


나는 대번에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사부!’


내 평생의 은인이자 내가 하오문의 문주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한 사람.

내가 몸이 굳어 서 있는 때, 사부를 발견한 여진이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세요, 종 어르신.”

“허허허, 오랜만이구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분의 성함은 종서문이다. 나도 제자가 되고 나서야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부를 ‘종 노인’이라 부른다.


사부는 뒷골목에선 제법 유명하다.

하는 일 없이 떠도는 부랑아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 중개인이 바로 사부의 직업이다.


높은 정확도로 알맞은 일자리에 사람을 배정해줘 장기 고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덕분에 사부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지.’


사부의 진정한 신분은 하오문 장사지부의 지부장이다.

정보를 통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미리 알고 있기에 적당한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부······.’


거지꼴로 장사에 왔을 때, 우리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바로 사부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며칠간 먹을 것을 구해줬고 돈을 벌 수 있게 일자리를 알아봐 줬다.


그뿐인가.

정착 초기에 왈패와 시비가 붙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몸을 날려 나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사부였다.

사부는 충분히 무공으로 왈패들을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뒷일까지 생각해 그러지 않고 사정하며 그들을 달랬다.


덕분에 구타를 당하기도 했지만, 왈패들도 나름 유명한 사부를 껄끄러워해 심하게 손을 쓰진 않았다.

그 후로도 주기적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여 잘 지내는지 살펴준 따뜻한 사람이다.


‘결국, 못난 나를 위해 본인을 희생하셨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르오, 사부.’


아직은 사제지간이 아니다. 나는 격동에 찬 심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네요.”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반가운 소릴 들었다. 노부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아, 지하투기장 말이오?”


내가 지하투기장에 참가한다고 했을 때, 가장 안타까워하며 말렸던 사람이 바로 사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부가 처음으로 내게 화를 내며 한 말을.



“네 싸움 실력은 잘 안다! 하나, 거긴 아니야! 그곳은 사람 목숨을 갉아먹는 곳이다. 거기 나오는 놈들 중 서른은커녕, 스물다섯이 넘는 놈도 찾기 힘든 이유를 정녕 모르느냐?”



물론 잘 안다.

출전자는 모두 무공을 모르는 이들,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도 전혀 타격 없이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대결에 하루가 멀다고 나서다 보면 차츰 몸이 망가지는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물에 불과한 만호가 일인자였던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래, 참말로 다신 가지 않겠다는 거냐?”


나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허허허,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이런 분이 생불(生佛)이지.’


소림의 땡중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아, 머리숱이 없으신 걸 보니 정말 중이셨나?’


엉뚱한 생각을 뒤로 하고.

처음부터 다짐했던 것이지만 새삼 각오를 다진다.


‘이번엔 천수(天壽)를 누리게 해주겠소, 사부.’


당장 무릎을 꿇고 사부로 모시겠다고 하고 싶지만 참았다.


‘아직은 아니오, 사부. 내가, 내가 무인으로 우뚝 선 후에······ 그때 다시 제자로 받아달라 할 거요.’


사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정말 다행인데······ 먹고살 대안은 있는 게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요, 또 객잔의 점소이로 취직이라도 시켜주게요?”

“험험! ······그건 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장사에 정착한 초기, 사부의 소개로 점소이를 잠시 한 적이 있었다.


‘진상손님을 신나게 두들겨 팼었지.’


그 일로 쫓겨나긴 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걱정하지 마시오, 종 노인. 다 생각해둔 바가 있소.”

“그렇다면 다행이고. 혹시나 여의찮으면 언제든지 날 찾아오너라.”

“알겠소.”


그렇게 사부가 떠나갔다.


‘이 시기에 사부를 만났었나?’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엔 만호에게 호되게 당하고 쓰러져 이튿날에야 집에 돌아갔었다.


‘아마 그때도 찾아왔겠지.’


내가 집에 없었으니 허탕을 치셨으리라.


‘분명 만호랑 붙었다는 소릴 듣고 걱정이 되서 온 거야.’


사부의 그 마음, 반드시 보답해주겠소.

사부가 멀어지자, 여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말해봐.”

“응?”

“대책. 지하투기장 안 가는 건 나도 환영인데 오라버니가 싸움질 말곤 잘하는 게 없잖아.”


나도 모르게 발끈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잘 하는게 왜 없어!”

“그럼 말해봐.”

“······.”


생각해보니 없네. 네 말이 맞다, 동생아.

하지만 쉽게 인정할 순 없지.


“하나 있다.”

“뭔데?”

“사람 살리는 거.”


여진이 인상을 쓴다.


“뭐? 사람 패는 거 아니고?”

“말을 해도 꼭······ 살리는 거 맞아.”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나 몰래 의술이라도 배운 거야?”

“그건 아니지만, 하여튼 그런 게 있어.”

“······?”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걸로 돈을 벌 거다. 기대해도 좋아.”

“니미, 기대는 무슨.”


······제발 동생아, 말 좀 예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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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보상을 챙기다. +3 22.05.19 2,242 59 12쪽
7 7화 생사신의(生死神醫) +4 22.05.19 2,224 6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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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육가장 +3 22.05.18 2,289 65 12쪽
4 4화 흑사방 +2 22.05.17 2,350 67 10쪽
» 3화 사부와 재회하다. +2 22.05.17 2,437 67 11쪽
2 2화 공진회륜공(共振灰輪功) +2 22.05.17 2,629 79 13쪽
1 1화 방무진, 회귀하다 +3 22.05.17 2,884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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