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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명 님의 서재입니다.

하오문 역대급 고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석공명
작품등록일 :
2022.05.17 16:10
최근연재일 :
2022.05.20 18:0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0,768
추천수 :
1,927
글자수 :
45,170

작성
22.05.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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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글자
13쪽

2화 공진회륜공(共振灰輪功)

DUMMY

내 눈이 절로 커졌다.


“넌 분명 죽었······”


상의를 탈의한 채,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만호를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내 몸을 둘러보았다. 나 역시 상의를 입지 않고 있었는데 양팔도 멀쩡하고 다리도 아프지 않았다.

단지 어딜 제대로 맞았는지 골이 띵할 뿐이었다.


‘그럼······.’


여기가 어딘지 기억이 났다.


“지하투기장(地下鬪技場)?”


팔각의 철창 안에서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싸우는 곳이 바로 지하투기장이다.

원칙적으로 무공을 익힌 무인을 참가할 수 없으며 무기도 쓸 수 없다.

오로지 육체 능력으로만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


‘내가 약관이 될 때까지 활약했던 곳이지.’


눈앞의 만호 역시 여기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었다.


‘나 이전에 일인자가 바로 녀석이었어.’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다시 놈과 내가 이 팔각철창 안에 있는 걸까?

짐작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건가?’


믿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때, 만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들었으면 어서 일어나라. 나는 쓰러진 상대를 공격하진 않는다.”


나는 피식 웃었다.


“새끼,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머리가 띵하며 어지러웠지만,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다잡았다.


“아우, 제대로 한 방 맞은 모양이네.”

“······.”

만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곧바로 달려들려고 했다.


“잠깐!”


멈칫한 녀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나와 몇 번째 대결이지?”

“몇 번째?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대답이나 해줘.”


만호가 얼굴을 굳혔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응?”

“네가 온갖 비열한 수로 여기까지 올라 온 걸 모를 줄 아느냐?”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어설펐던 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를 쓰러뜨렸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너무하긴 했군.’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 절대 질 수 없었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만호야, 생각 좀 해봐. 그거 대답한다고 내가 무슨 수작을 부리겠냐? 얼른 대답이나 해!”

“······좋다. 한 방 제대로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니 말해주지. 처음이다. 너와 내가 맞상대하는 건.”


내 입꼬리가 꿈틀했다.


‘그렇단 말이지.’


무공을 모르는 만호였지만 타고난 신력과 체격은 그야말로 사기였다.

당시 녀석은 지하투기장의 절대자였다. ‘무패(無敗)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바로 만호였다.


나 역시 그의 제물이 되었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열 번인가 스무 번인가 도전 끝에 겨우 이겼었지.’


그때, 나의 끈기와 독기에 탄복한 만호가 스스로 내 밑으로 들어왔지.


‘뭐, 좋아. 하지만 그 역사를 반복할 이유는 없지.’


이미 몸 상태는 파악했다. 나는 그 시절, 무공을 전혀 모르는 열여덟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경험은 그대로지.’


당시 만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집요하게 약점을 공략한 덕분이었다.


‘반쯤은 운이었지.’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만호야, 들어와라.”


녀석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나보다 두 살인가 많았지?


“······다신 일어나지 못하게 해주지.”


발끈한 녀석이 황소처럼 돌진했다.


쿵쿵쿵쿵!


큰 덩치에 속도 또한 느리지 않았다. 엄청난 위압감에 예전엔 거의 대응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달라.’


거리를 좁힌 만호가 양손을 활짝 펴더니 그대로 나를 안으려 했다.


‘저기에 걸리면 갈비뼈 몇 대는 그냥 나가지.’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보법을 밟았다.


스스슷!


비연보(飛燕步)라는 것으로 간단하면서도 묘리(妙理)가 뛰어난 보법이었다.


‘아직 몸에 익진 않았지만, 터득한 지는 오래되었지.’


예전과 다른 몸이라 익숙하진 않았지만 비슷하게 흉내만 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부우웅!


만호의 팔뚝이 아슬아슬하게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와우, 아찔하구만.’


어느새 내 신형은 만호의 후위를 잡았다.


'후후후, 아직 무공을 모르는 네 녀석이 따라잡긴 힘든 속도·····.'

“······!”


나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만호의 시선이 나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 봐라?'


놈의 무재가 범상치 않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비연보를 놓치지 않을 정도라니?!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녀석이 몸을 틀며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아쉽겠구나, 만호. 좀 아플 거다.’


내 주먹이 녀석의 명문혈(命門穴)를 강타했다.


퍼억!


“큭!”


급소를 제대로 맞은 만호가 순간적으로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쿵!


“이걸로 끝이다, 만호.”

“······!”


내 주먹이 놈의 턱을 올려 쳤다.


쾅!


‘아무리 덩치가 커도 턱을 제대로 맞으면 못 버티지.’


“끄으······.”


의식이 날아간 만호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쿠웅!


“······!”


장내가 한순간 고요해졌다. 밖에서 보고 있던 관객들은 멍한 표정으로 나와 만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긴 거 아닌가?”


내 목소리에 정신이 든 사회자가 소리쳤다.


“스, 승자는 독사!”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이럴 수가! 금강역사가 지다니!”

“독사 최고다!”


나는 환호성에 답하듯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이런 함성.’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럼 지금 내 나이가 열여덟이란 말인데······. 대략 이십오 년 전인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이거······ 너무 좋은데?’



* * *



나는 화전민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마적 떼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후, 수 년 간 둘이서 천하를 떠돌았다.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겨우 안착한 곳이 바로 이곳, 호남성 장사(長沙)였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지하투기장을 알게 되어 출전자로 돈을 벌었고 손재주가 좋았던 여동생은 노리개를 만드는 공방에 들어갔다.


‘덕분에 이런 후미진 곳에 작은 집을 구할 수 있었지.’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집을 찾아냈다.

방 두 칸에 작은 마당이 있는 초가집이다.


아직은 내 동생이 살아 있을 시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진.’


결국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 불쌍한 내······.


“어디서 뒹굴다가 이제야 기어들어 와!”


날카로운 목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갑다.


덜컥.


닫혀있던 방의 문의 열리며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인 여진······.’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진아.”


동생은 이때, 고작 열여섯이었지만 뛰어난 미모로 이미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다.


‘여전히 예쁘구나.’

“야, 또 어디 기녀한테 돈 퍼주고 왔냐?”


흐를 뻔했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저 말버릇만 아니면 이미 여러 곳에서 혼사가 들어왔겠지.’


그래도 이십 년 만에 보는 내 동생이다.


“‘야’라니. 여진아, 일하고 들어온 오라비한테 말이 너무······”

“지랄. 갑자기 웬 착한 오라버니 흉내야? 술 먹었냐?”

“······.”


그리웠던 얼굴이 보기 싫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니미, 뭘 바란 거야.’


“내가 허튼 데 돈 쓰고 오지 말랬······”


나는 오늘 대전비가 고스란히 담긴 주머니를 던졌다.


휘익!


갑작스러웠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니를 받아냈다.


터억!


싸늘했던 방여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묵직하니 어디 가서 쓰진 않았나 보군.”

“그래,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다. 만족하냐?”

“······들어가 있어. 저녁 줄 테니까.”

“오냐.”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내 방문을 열었다. 막 들어가려는데 귓가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했어.”


무심한 말투이었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가슴 한편이 훈훈해졌다.


‘짜식, 좀만 더 나긋나긋하게 말해주면 좋을 것을.’


하지만 이게 최선임을 나도 알고 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때쯤엔 더 사나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전비를 두둑히 받아와서 그러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선 방 안에는 이부자리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참, 삭막하게 살았구나.”


나는 방 한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저 녀석의 음식 준비는 한 시진 쯤 걸리니까······”


다 좋은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 탈이다.

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동안······ 내공을 만들어 볼까?”


육체는 충분히 단련되어 있었다. 온갖 왈패의 위협 속에서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하투기장에서도 연전연승할 수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 가장 필요한 건 내공이지.’


회귀 전엔 서른이 넘어서야 단전을 만들었다. 너무 늦은 나이의 무공 입문이었다.


‘몇 가지 영약을 복용했음에도 성취가 낮았지.’


그럼에도 사십 대에 절정고수가 되었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도 빠른 나이는 아니야.’


명문정파의 기재들이 오, 육 세에 내공을 익히기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많이 늦은 상태였다.


‘하지만 내겐 공진회륜공(共振灰輪功)이 있지.’


회귀 전에 하오문주로 생활하다 우연히 습득한 절세신공이다.

그 연원을 알기 어려울 정도 오래된 책자에서 얻은 것인데 아쉽게도 신공 부분만이 남아 있었다.


뒷부분은 공진회륜공으로 쓸 수 있는 무공이 기록되어 있는 듯했지만 유실되어 있었다.


‘뒷부분만 있었어도······.’


공진회륜공으로 보아 다른 무공도 대단한 수준일 것이 분명했는데 아쉬웠다.


‘그랬다면 굳이 천무검서에 목을 메지 않았을 것을.’


하지만 회귀한 지금, 상관없었다.


‘어차피 천무검서도 내가 바로 회수할 테니까.’


기억 속에 천무검서의 위치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번엔 혼자 가야 해.’


천무검서를 습득하는 일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무공이 필요했다.


‘시작하자.’


천천히 공진회륜공의 구결을 읊었다. 회귀 전 마르고 닳도록 읽어서 이미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익히진 못하지만 무공상승에 도움이 될까해서 연구했던 건데 이렇게 의외의 도움이 되네.’


우우우웅!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이 가늘게 떨리며 주변으로 파동이 퍼져나갔다.

공진회륜공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출발 좋고!’


이내 그의 혈맥을 막고 있던 탁기(濁氣)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진회륜공의 최대장점, 탁기조차 내공으로 만들 수 있다.’


효율만 따지면 어렸을 때 익히는 것보다 어느 정도 탁기가 쌓인 후에 하는 것이 더 좋을 정도였다.


‘전생에선 익히지도 못했지만······’


이미 잡스러운 여러 내공을 익힌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익히지 않은 지금이 최적기란 말이지.’


쿠쿠구구!


그의 몸이 더욱 격렬하게 떨렸다. 진동이 전해져 집 전체가 떨릴 정도였다.

이상함을 느낀 여진이 들어올 법도 하건만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요리에 집중하면 주변을 보지 못하니까.’


전신에서 모인 탁기가 차곡차곡 단전에 쌓였다. 그 속도는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내공의 수발만큼은 절대고수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늦은 무공 입문 덕에 혈맥이 굳어 있어 섬세한 운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몸이 천천히 허공을 떠올랐다. 부공삼매(浮空三昧)였다.

그 와중에도 내 몸에서 일어나 파동이 퍼져나가 집 전체의 떨림은 계속되었다.

드드드드!


후두둑, 후두둑.


천장에서 흙 부스러기가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뿌드득! 뿌드득!


몸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육체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 결과를 생각하면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번쩍!


눈을 뜨자, 신기하게도 잿빛 신광이 번뜩였다.


‘됐어!’


어느새 진동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공진회륜공의 일단공(一段功)을 이뤘다!’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성취에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 속도라면······ 거기에 천무검서까지 익히다면 천하제일고수도 꿈은 아냐.'


기다려라, 천하무림이여.

나 방무진이 곧 먹어치워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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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금강역사(1) +5 22.05.20 2,206 56 11쪽
8 8화 보상을 챙기다. +3 22.05.19 2,245 59 12쪽
7 7화 생사신의(生死神醫) +4 22.05.19 2,227 62 10쪽
6 6화 수전노 +2 22.05.18 2,212 58 12쪽
5 5화 육가장 +3 22.05.18 2,291 65 12쪽
4 4화 흑사방 +2 22.05.17 2,351 67 10쪽
3 3화 사부와 재회하다. +2 22.05.17 2,441 67 11쪽
» 2화 공진회륜공(共振灰輪功) +2 22.05.17 2,635 79 13쪽
1 1화 방무진, 회귀하다 +3 22.05.17 2,885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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