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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의 서재입니다.

말빨로 살리는 네크로맨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구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2.05 16:31
최근연재일 :
2023.04.10 08:2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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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63
추천수 :
770
글자수 :
159,042

작성
23.04.0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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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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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프리츠 상단

DUMMY

이곳은 프리츠의 집.


끼이이···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은, 허름한 차림의 사내가 문을 연다.


【까마귀 발걸음 level.5을 발동합니다.】


수상한 행색이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그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죽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그가 풀어낸 붕대 속으로 백골의 텅 빈 눈자위가 드러난다.

내가 묻는다.


“물건은?”


【판타스마고리아[랄프] 2단계가 종료됩니다.】


“흐흐흐···”


그가 꺼내 든 것은 복잡한 설계가 그려진 몇 장의 종이 뭉치다.

그의 성공을 치하하듯,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퀘스트: Step3 : 난이도 (중) 이상의 아이템 절도하기 3/3 를 달성했습니다.

▶ 보상: 스킬, 판타스마고리아 [랄프]가 3단계로 격상됩니다.


그리고, 주어지는 다음 퀘스트.


▶ 퀘스트: Step4 : 습득 난이도 (상) 이상의 아이템 4개 이상으로 구성된 보물지도(소형) 제작하기

▶ 보상: 스킬, 판타스마고리아 [랄프]가 4단계 + <보물 지도 제작자> 전직 관련 특전 스킬 1개


흥미로운 퀘스트다.

‘보물찾기’ 능력이 있는 랄프만이 할 수 있는 역할.

더군다나 판타스마고리아의 단계를 높여야 할 다른 영웅들의 행보와도 잘 어우러진다.


생전 랄프는 도달하지 못했던, ‘지도 제작자’라는 새로운 가능성.

예상했던 대로, 해골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전성기 시절 이상으로.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오르골의 설계도를 기쁘게 받아들며, 문손잡이를 거머쥐었다.


“발 닦고 들어와라.”


【스킬, 운수 좋은 날 level.2의 페널티가 돌아옵니다.】


얘, 오는 길에 똥 밟았다.


“잠까···!”


쾅!


이제 남은 과제는 다가올 재판에서 프리츠의 결백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합의 상인들과 면밀히 접촉할 필요가 있었다.


이타카의 법정에서는 배심원들의 지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니까.

더불어 이날은 프리츠와 그의 상단이 부활했음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날이 될 터였다.


프리츠 또한 다른 영웅들과 다를 것 없이, 나의 잃어버린 10년의 한 조각이다.

지금, 그 시간을 되찾을 때가 왔다.




***




이타카에서 작은 상회를 운영하는 베르켈은 어느 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만 해도 프리츠의 사기 행각을 떠올리자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제 찾아든 것은 분노가 아닌 의문이었다.


‘혹시 내가 뭔가 오해를 했던 건 아닐까? 프리츠 씨가 그럴 분은 아닌데.’


대금 결제일을 미루어주었던 일, 급하게 융자를 내어줬던 일, 밀란 왕국과 거래를 틔워주었던 일 등등.

좋은 기억이 새록새록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내일하신다던데···”


베르켈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몸을 일으켰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마지막 인사는 나눠야 도리지.”


하지만 프리츠의 집에 도착한 베르켈은 깜짝 놀랐다.

신의 장난이라도 되듯, 같은 이유로 프리츠를 찾은 이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으니까.

과거 이타카를 호령하던 프리츠 상단의 황금시대가 되살아 난 것만 같았다.

베르켈은 묘한 흥분과 함께 행렬에 따라붙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떤 운명이 우리를 한 자리로 모아낸 것일까, 베르켈은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긴 것은 말끔한 인상의 젊은 사내였다.

그는 프리츠의 소식을 들려주겠다며 상인들을 반원 모양으로 둘러앉혔고, 대뜸 입술을 부르르르르 경박스럽게 떨기 시작했다.

준비를 끝마친 그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것이 알고싶다의 울PD수첩입니다.”


사내는 정체 모를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는, 정돈된 어조로 사건의 전말을 되짚어나갔다.


“우리 취재진은 프리츠 씨의 뒤통수 때린 남자의 뒤통수를, 프리츠 씨의 발등을 찍은 도끼의 발등을, 브루투스 너마저의 브루투스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결정적인 제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설명 방식임에도, 상인들은 홀린 듯 그의 말에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다.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듬직한 어깨 두엇이 나타나 주취에 하소연하는 프리츠 씨를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성대모사 level.9로 음성변조를 재현합니다.】


“프리츠 영감, 기분이 좋은가 봐?”


그의 목에서 기이하게 왜곡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아하니, 프리츠를 괴롭힌 무뢰배들의 목소리인 듯했다.

하나둘, 사내의 공연에 반응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어허, 육시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놀라웠다.

모두가 연합 수사관이라도 된 듯한 쫄깃함에 어깨를 떨었고, 단 하나의 진실도 놓치지 않는 탐정의 눈으로 작은 단서들을 조립해나갔다.

그들은 세계에 흔하게 존재할, 그러면서도 유독 특별한 단 하나의 부도덕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침내 사내가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들어 올린 손가락에는 태엽이 달린 작은 나무상자가 들려있었다.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습니다.”


되찾은 정의에 일동은 환호했다.




***




그로부터 이틀 뒤.

프리츠의 재판이 시작됐다.


이타카는 상업의, 상업에 의한, 상업을 위한 도시다.

때문에 타국의 법정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이른바 ‘약식재판’이라는 이름 하에, 신속하게, 자유롭게, 신뢰감 있게라는 세 가지 기조를 내세웠다.

간단히 말해, 적당히 끝내고 돈 벌러 꺼지란 소리다.


발언권만 주어진다면 배심원 중 누구나 자유롭게 증거나 주장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이 그럴듯하다면 판사가 즉시 재판을 종결시켰다.

한마디로, 속전속결이 최대의 승부수였다.


슈미츠가 곧장 욕설부터 쏟아부었다.


“저놈! 프리츠 영감탱이와 저놈들이 설계도를 훔쳐 간 것이 틀림없어! 도둑질은 연합 형법이 규정하는 끔찍한 죄요! 손을 잘라야 해!”

“도둑질했다고 손 자르는 법은 이 나라에 없으니 조용히 하쇼.”


귀찮다는 듯 판사가 대꾸했다.


“그건 나중에 따로 고발하시든가 하시고, 오늘 고발 내용 위주로 이야기해요.”


슈미츠는 씩씩 숨을 진정시키더니, 프리츠의 범죄행위를 하나둘 지목해나갔다.


“우선, 베르켈 상회에 거래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건에 대해서요!”

“아, 그거 말인데-”


베르켈이 손을 들자, 판사가 발언권을 주었다.


“저희 쪽 서류가 조작돼 있었습니다. 무슨 악마에라도 씌인건지··· 당시에는 좀처럼 알아채질 못했었는데··· 저희가 돈을 떼먹힌 줄로만 알고 길길이 날뛰었죠. 부끄럽습니다만, 사실이 아니었음을 증언합니다. 조작된 장부도 증거로 제출해요. 누가 조작했는지는 심증만 있어요. 심증만.”


베르켈은 대놓고 슈미츠를 쳐다보았다.

슈미츠가 미칠 듯 성을 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분명, 네가 먼저···!”

“자자, 조용히 하시고.”


슈미츠는 베르켈의 변심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질 수 없다는 듯, 다른 죄목을 꺼내 들었다.


“다른 것도 있소! 빌렘 연합 중개소에 중개 수수료를 주기로 약정했으나 절반가량의 실적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여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연합이 표방하는 정직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죄요!”

“아 그거-”


이번에도 누군가 끼어들었다.


“프리츠 상단 쪽에서 보조 인력 파견하는 것으로 건수를 조정하기로 했었다고 부하직원이 전해왔습니다. 저희 쪽 보고 누락이었어요. 이것 때문에 프리츠 씨 쪽으로 피해가 간 일이 있었다면 저희 측에서 보상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인간들이 미쳤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슈미츠는 좌중을 돌아보았다.

애당초 프리츠를 고발하는 일에 동조했던 이들이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기소 절차를 밟은 참인데, 돌연 자폭들을 해대니 당황스럽게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다.

재신의 페널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황당할 수밖에.


그가 마지막 발악을 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는 투였다.


“모건 프리츠는 상당 기간 동안 연합으로 흘러 들어가야 할 세금 상당수를 체불했으며 장부 조작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윤을 착복했소. 여기 이 서류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자유 연합의 법에 의거해 처벌을 촉구하는 바요!”


이번에는 프리츠 본인이 직접 손을 들었다.


“제가 지시한 적 없는 일이외다. 누군가 부하들을 통해 제 명의로 된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그게 누군지는 한번 들어보시죠.”


그가 꺼내 든 것은 ‘자동 대화 오르골’이었다.

어제 상인들에게 틀어주었던.


태엽을 돌리자, 익숙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바로 슈미츠의 목소리였다.


치칙··· 칙···

-처음엔 당신을 차근차근 깎아내리는 것에서 시작했어.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그것이 프리츠 상단주의 지시라고 설명했지. 그것도 최대한 상단의 핵심 멤버들을 대상으로 말야. 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 하지만 세금이나 수익분배를 위한 별도 창구를 만들고 거기서 특정 대금들이 지불되도록 하면··· 짜잔! 돈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거야! 프리츠의 명령하에 말이지··· 콜록! 콜록!


저도 모르게 ‘언령’으로 말하던 슈미츠가 기침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프리츠가 덧붙였다.


“슈미츠는 저를 빙자해 상단에 무리한 사업들을 벌여놓고는, 이 오르골의 설계도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사업은 무너졌고, 저는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죠. 뒤늦게나마 슈미츠를 고발하려 했지만, 반대로 제가 세금을 탈루하고 투자금을 착복했다는 증거만 남아 있었습니다..”


턱.

프리츠가 수백 장에 달하는 종이뭉치를 책상에 올려두었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상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프리츠 상단과 거래하던 업체들이 한데 모여 당시의 자금 흐름을 역추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슈미츠 상단에 흘러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했지요.”


배심원들이 거들었다.


“프리츠 씨의 혐의는 사실이 아닙니다!”

“슈미츠의 조작입니다!”


슈미츠가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재판장은 땅땅 망치를 휘둘렀다.


“아, 귀찮게··· 이봐요, 아저씨. 이타카에서 무고가 얼마나 중죄인 줄 알아?”


슈미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재판장이 결론을 내렸다.


“약식재판, B-221 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해당 고발을 기각하며, 피고 측이 제출한 증거 자료는 연합 조사과에 넘겨 진위여부를 판단한다. 원고측은 해당 자료의 진위여부가 판단될 때까지 구류에 처하며, 이후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이타카의 법률이 정한 고발 절차에 따른다. 끝!”


고성과 탄식,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

슈미츠가 두 손이 붙들린 채 끌려나갔고, 프리츠는 자유로이 몸을 일으켰다.


그 누구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




무죄 사실이 입증되자, 그제보다도 많은 이들이 프리츠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프리츠가 좌중을 진정시켰다.


“여러분들과의 묵은 오해를 풀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렇게 기뻤던 적은··· 상단의 현판을 걸었던 30년 전 이래 처음이군요. 죽었다 되살아난 기분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한 가지 더 살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 몇 해 전, 무너졌던 프리츠 상단입니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재신의 저주가 있었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오해와 실수로 인해 프리츠가 어려움을 겪었으니.

하지만 프리츠는 그 숱한 채증을 내려놓았다.


“옛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같이 일합시다. 도움이 되고, 또 도움을 받는 프리츠 상단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환영합니다, 프리츠 상단주!”


상인들의 환호 속, 찬란한 부활을 알린 프리츠가 첫 번째 업무를 공유했다.


“여러분들이 도와줄 일이 있습니다. 찾아야 할 물건이 있거든요.”


되찾은 프리츠 상단을 통해, 회복은 쭉 이어질 것이다.

영웅들의 잊혀진 단서를 찾으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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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애쉬그로브의 기억 23.04.09 94 10 13쪽
26 포탈 +1 23.04.08 108 7 12쪽
25 이타카의 마법학교 +2 23.04.07 155 10 14쪽
24 보물 찾기 23.04.06 156 11 12쪽
» 프리츠 상단 23.04.05 170 11 12쪽
22 증거와 절도 23.04.04 201 12 11쪽
21 메모라이즈 23.04.03 222 12 13쪽
20 프리츠의 소식 23.04.02 242 14 12쪽
19 여신의 눈 23.04.01 264 18 13쪽
18 발렌티노 카니에스 +2 23.03.31 288 20 12쪽
17 이면계약 +1 23.03.30 288 20 13쪽
16 사망선고 23.03.29 320 26 14쪽
15 빌헬름의 무사수행 +2 23.03.28 375 24 13쪽
14 고대의 유지 오르비스 23.03.27 388 25 14쪽
13 하겐 숲지대 공성전 +2 23.03.26 427 31 13쪽
12 환경보호 +2 23.03.25 417 32 13쪽
11 시몬을 찾아서 23.03.24 434 32 14쪽
10 정령석 경매와 리센 백작가 +3 23.03.23 478 33 13쪽
9 유포리아 +1 23.03.22 532 28 12쪽
8 타락한 숲의 쌍둥이 소녀 +1 23.03.21 627 32 12쪽
7 까마귀 부부 +2 23.03.20 763 36 12쪽
6 판타스마고리아 +2 23.03.19 822 36 11쪽
5 그거라도 보러 가시겠습니까 +1 23.03.18 943 38 11쪽
4 아는 이름 +4 23.03.17 1,107 47 12쪽
3 가능성 감각 23.03.16 1,288 58 14쪽
2 울리히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4 23.03.16 1,591 70 13쪽
1 거짓말하는 동물 +8 23.03.16 2,102 7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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