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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의 서재입니다.

말빨로 살리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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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2.05 16:31
최근연재일 :
2023.04.10 08:2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4,962
추천수 :
770
글자수 :
159,042

작성
23.03.21 21:20
조회
626
추천
32
글자
12쪽

타락한 숲의 쌍둥이 소녀

DUMMY

북부의 황야지대를 지나, 우리가 향한 곳은 타락한 숲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한때 녹읍이 창창했지만, 마왕의 출현과 마수들의 범람으로 인해 악취를 풍기는 장소로 거듭났다는 것이 이 숲의 설정이었다.


지난 10년 사이, 타락한 숲을 비롯한 북부 전체가 대륙 중상부 지역을 집어삼켰다.


원인이야 뻔하다.

용사의 부재와 영웅들의 죽음.

억눌리지 못한 마(魔)가 세계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제국 황제를 잠식한 마왕은 지금 뭘 하고 있나?

달리 말하면, 지난 10년 동안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뭘 하고 앉았나?

게임에 들어온 이래, 멈추지 않고 던져온 질문이었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용사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로토스 전기> 역시 게임인 탓에, 용사가 움직여야 마왕 또한 특정 페이즈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시스템적인 문제이기 전에, 이야기가 갖는 근본적인 '대화적 구조'다.

용사가 말해야 마왕이 답한다.

독백만으로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것이다.


용사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황제는 아직 마수 군단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규모 희생제의를 통해 마계의 하수인을 강림시킨 적도 없으며, 제국의 주요 NPC들을 세뇌하여 오염시키지도 않았다.

약에 취한 사람처럼 멍하니, 폭압적인 군주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황은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지난 10년, 제국의 힘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영웅 세력의 근거지가 되어야 했을 대륙 중북부 지역은 마수들이 들끓는, 하나의 작은 마계와 다름없게 변모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를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크와아아아아와!


5미터 크기의 앙증맞은 거대 오우거가 우리를 향해 침을 튀긴다.

자신을 봐달라는 듯,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오르기도 한다.

녀석의 애교에 심장이 저릿저릿하지만, 이깟 애정 공세에 당할 내가 아니다.


나는 녀석의 정보창을 띄웠다.


---

이름: 헤비 오우거

레벨: [43]

난이도: 중


북부의 대기로 인해 갑피가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변종 오우거입니다. 두꺼우면서도 질긴 가죽을 자랑하며, 일반적인 오우거에 비해 1.5배 이상 높은 몸무게를 지녔음에도 높은 탄성을 지닌 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 '타락한 숲'에 서식하는 필드 보스입니다.

---


"이걸 아직도 안 잡았다고?"


아무리 보스라지만, 중급치고는 거저 잡을 수 있는 녀석인데.

영웅들 모두 10년간 제 앞가림하기 바빴던 모양이었다.


나는 루시아와 랄프의 상태창을 열었다.

판타스마고리아를 쓰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아야 할 테니까.


---

이름: 루시아 폰 에리카 모호이너지 [열화]

칭호: 비통하게 죽은 소드마스터

등급: 소드 엑스퍼트


보유 스킬:

소드마스터리 level.9 (-4)

오러 블레이드 level.8 (-4)

제식검술 level.7 (-4)

발검술 level.6 (-4)

일섬 level.7 (-4)

회전베기 level.6 (-4)

유령검 level.5 (-4)


(···중략···)


월광검법 level. 2 (-4) [사용불가]

유령무희 level. 3 (-4) [사용불가]

곡예전투 level. 3 (-4) [사용불가]


(···후략)


※ 판타스마고리아 1단계 적용 가능

---




---

이름: 랄프 피셔 [열화]

칭호: 안타깝게 죽은 좀도둑

등급: 도둑 (중급)


보유스킬:

은근슬쩍 level.6 (-4)

스리슬쩍 level.5 (-4)

까마귀 발걸음 level.5 (-4)

기초 탐색 level.5 (-4)

기초 물품 감정 level.5 (-4)

비열한 기습 level.5 (-4)


(···중략···)


보물찾기 level. 3 (-4) [사용불가]

운수 좋은 날 level. 2 (-4) [사용불가]


(···후략)


※ 판타스마고리아 2단계 적용 가능

---


두 분의 포트폴리오가 참으로 대조적이다.

다만 열화로 인해 숙련도가 대폭 저하되어 몇몇 스킬의 사용이 불가해졌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생전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판타스마고리아를 발동해야 했다.


-쿠와아아아악!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오우거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녀석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


피잉!

앞으로 나선 루시아가 검을 휘둘러 녀석의 궤도를 비틀었다.


쿠웅!

녀석이 몸을 휘청였다.

루시아에게 어그로가 끌렸고, 그녀는 오우거의 우악스런 손길을 종잇장 차이로 피하여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무리하면 잡을 수 있겠지만, 루시아의 전성기를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판타스마고리아[루시아] 1단계를 상연합니다.】

【지속시간: 1분】

···

【00:59】

【00:51】

【00:45】

···

 

빠르게 줄어드는 시간.

회피에 전념하던 루시아가 돌연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우우웅···

내게 받은 제국식 예장검이 파르르 울린다.

그 속에 날카롭게 잘린 반월이 담긴 것만 같다.

그녀의 작은 입이 열렸다.


"월광검법, 반사광(反射光)."


오우거가 내지른 태산같은 주먹이 실처럼 얇은 검에 맞닿는다.

하지만.


"···?"


거울에 닿은 것마냥, 픽하고 굴절된 주먹이 엉뚱한 방향으로 떨어진다.


이어지는 쾅 소리.

중심을 잃은 녀석이 자욱한 먼지와 함께 쓰러진다.

하지만 금세 몸을 세워 씩씩 벌게진 코를 드리웠다.


그런 녀석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해골 기사의 하늘빛 머리카락이 유령처럼 흔들린다.

움직이는 회전거울처럼, 루시아의 모습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녀석의 두 다리에 무수한 검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유령무희level.3를 발동합니다.】

【곡예전투level.3이 적용됩니다.】


파사사사삭!

과연 판타스마고리아의 효과는 탁월했다.

이에 질세라, 나는 든든한 조력자를 호출했다.


"가라, 랄프!"

"이얏-!"


랄프가 팔다리를 기이하게 우그러뜨리며 네발짐승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놀랍게도 두 발로 뛰는 것보다 빠른 속도다.


【판타스마고리아[랄프] 2단계를 상연합니다.】

【지속시간: 5분】


나는 랄프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은글슬쩍으로 녀석의 심장을 훔치고, 스리슬쩍으로 녀석의 쌍방울을 가져와라!"

"아, 그걸 어떻게 훔쳐요!"


역시 이렇게는 활용이 안 되는 건가.

역정을 낸 랄프였지만, 그 역시도 보란 듯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랄프가 삑사리를 내며 외쳤다.


"비열한 기습-!"


자랑스럽게 스킬을 외치며 오우거의 질긴 발목을 물어뜯는 녀석.

진짜 너무 멋이 없었다.


루시아가 마술사처럼 달빛을 비추며 슈슈슉 검격을 휘둘렀고, 랄프가 길에 채이는 똥개처럼 미친듯이 오우거의 앞발을 핥아댔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다중 판타스마고리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외쳤지만, 발동되지 않았다.


쿠구구구···

마침내 오우거가 두 팔을 늘어뜨리며 쓰러졌다.

목에는 루시아의 검이 하늘을 향해 관통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자로 잰 듯한 타이밍.


【판타스마고리아[루시아]가 종료됩니다.】

▶ 퀘스트: Step2 : 난이도 (중) 이상의 보스몬스터 처치하기 (1/3)


루시아의 퀘스트 카운트가 올라갔지만, 랄프에겐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아무것도 훔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짜식 열심히 좀 할 것이지.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단순히 동시에 발동한다고 해서 '다중 판타스마고리아'가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예상컨대 원인은 알림창이 언급했던 '상호성'의 부족.

랄프와 소피가 살아생전 부부였던 것과는 달리, 루시아와 랄프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쉽다.

아무렴 블루테일이 쓸 수도 없는 스킬을 제공했을까?


상호성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예컨대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 축구팀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조건 말이다.


어차피 한 마리로는 기별이 차지 않는다.

루시아도 두 마리를 추가로 잡아야 하고, 랄프도 카운트를 쌓기 위해선 제대로 '훔칠만한 것'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방치된 덕분에, 북부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보스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딱 좋은 녀석이 떠올랐다.




***




판타스마고리아의 24시간짜리 쿨타임을 채우며, 우리는 하루를 노숙하며 보냈다.


안전지대로 이동했고, 루시아와 랄프가 밤 사이 불침번을 섰다.

해골은 어차피 잠을 못 잔다.

능력에 따라 역할을 배분한, 아주 공명정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날이 밝아 더욱 깊숙이 이동하려던 찰나, 말들이 개거품을 물며 입장을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말들을 남쪽으로 풀어주곤 숲을 향해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랄프는 유모차의 도움 없이 네 발 걷기를 시작했고, 남은 짐은 모두 루시아가 짊어졌다.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근력이 아닐 수 없었다.

짝짝.


걸으면 걸을수록 주변의 잎사귀가 거무죽죽하게 시들어갔다.

기분 나쁜 회색 안개가 앙상한 나무 사이사이를 타고 다녔고, 분명 춥지 않을 텐데도 묘한 서늘한 기운이 양팔을 타고 올랐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악령의 등장이었다.


-너희 죽을 거야. 분명 죽을 거야. 죽어.


두개골 안쪽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


-죽는다. 죽어. 아, 죽는다.


랄프가 앙상한 팔뚝을 슬슬 긁으며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 이런 데를 꼭 들어가야 합니까? 안 가면 안 돼요?"

"시끄럽다, 네 발 도둑."

"거 되게 매정하네."


랄프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럴 입이 없으면서도.


루시아가 일갈했지만, 두려운 것이 정상이다.

악령들의 발화는 원혼들의 근간인 언어적 의식 구조 자체를 위협하니까.

울리히의 심신안정 스킬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기로 저건 악령이 아니다. 아마도···


그때였다.


"응? 꼬마야. 너 거기서 뭐하니?"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구나. 이리 오거라."


루시아와 랄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과연 검은 후드를 쓴 예닐곱 된 소녀가 멀찌감치 서 있었다.

소녀는 잠시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다가, 조금씩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옳지, 이리로···"


랄프가 손을 내밀 찰나.

내가 외쳤다.


"간장공장공장장은강공장장이고된장공장공장장은공강장장이다!"

"···?"

"??"


랄프와 루시아가 나를 돌아봤다.

아나운서 뺨치는 발음으로 대뇌를 싱코페이션 리듬으로 때렸으니 단박에 정신이 들었을 터.


【낯설기하기 level.9가 ‘랄프’의 상태이상(유혹)을 해제합니다.】

【낯설기하기 level.9가 '루시아'의 상태이상(유혹)을 해제합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타악!

한쪽 팔을 걷어붙인 소녀가 랄프를 향해 힘껏 도약하더니, 주먹을 내질렀다.

어린아이 답지 않은, 묵직한 움직임이었다.


콰앙!


"어씨구절씨구!"


달그라락!

얼굴을 후려맞은 랄프가 골다공증에 걸린 노인네처럼 애처롭게 쓰러졌다.

와르르르 무너지는 녀석의 뼈를 보고 있자니 전생에 즐겨가던 볼링까페가 떠올랐다.


휙!

일순 모습을 감춘 녀석이 이번에는 루시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루시아도 당황했는지, 양손으로 검을 받쳐 들어 겨우겨우 소녀의 공격을 막아 세웠다.

오우거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당연하다.

이 녀석은 중상급 보스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녀석이니까.


"울리히 님···! 스킬을!"


여유가 없었는지, 루시아가 다급하게 판타스마고리아를 요청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의 이름은 쌍둥이 소녀.

단순히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다.

원래라면 정령사 시몬과 라파헬을 끼고 잡는 게 정석적인 공략 방법이지만, 나는 루시아와 랄프로 그 역할을 대체할 생각이다.


나는 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판타스마고리아."


스킬을 적용할 것은 루시아가 아닌 랄프.


-츠츠츠···


랄프가 무너진 뼈마디를 빠르게 수복해나가기 시작한다.


다음 명령을 하달했다.

열화로 잠겨있던, 랄프의 스킬을 사용하도록.


"'보물찾기'를 사용해라. 아이템 이름은 '삼원(三原)의 목걸이'."


랄프의 텅 빈 눈자위에 황금색 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8 infro
    작성일
    23.04.02 00:51
    No. 1

    주인공이 진짜 대문호가 맞긴 맞구나 나름 영웅이라는 소드마스터도 고작 소드마스터리 9렙 하나 가지고 있는데 9,8렙이 몇개야 ㄷㄷ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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