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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h 님의 집필실 입니다.

흑야괴요담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괴인h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6
최근연재일 :
2020.06.01 16: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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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82
추천수 :
326
글자수 :
117,558

작성
20.05.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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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8. 중요한 이야기를 듣다.

DUMMY

원래 정곡을 찔리거나, 대놓고 지적당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화가 나게 생겨 먹었다.

사실 그건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림인이라면 이 순간, 날 우습게 보는 거냐고 화를 내거나, 손을 쓰는 것이 평범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어 주었다.

‘흔한 격장지계지. 이 정도에 휘말리면 오히려 얘기가 안 돼.’

내가 돈이 없는 건 하오문도 잘 안다.

그래서 요곤과 내가 거래할 때도 난 돈으로 하오문과 거래를 하지 않았었다.

애초에 하오문의 정보를 돈으로 살 정도로 돈이 남아돌던 적은 내 생에 아직 한 번도 없었고.

그걸 알면서도 대놓고 저러는 건, 거래를 앞두고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밑밥을 까는 수작이었다.

자존심을 슬그머니 자극하면, 즉시 파르르르 반응을 보이는 남자의... 무인의 습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고도의 술책!

‘그걸 아는데 내가 호응해줄 거 같냐.’

잘 아네, 나 개털인거 흐흐... 하는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짓고 있자, 한정연의 얼굴이 우거지상으로 일그러졌다.

“의뢰하신 세 가지 의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보수도 충분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부족하지만 저도 한 문파의 간부로서,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문도들을 위험에 동원할 수는 없습니다.”

“호오...”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 몸값을 올리고자 하는 하오문의 술수에 홀라당 넘어가게 되니 반응을 보여선 안 됐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초조해진 한정연이 급히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첫 번째 의뢰는 얼핏 보기엔 그냥 사람을 풀어 조사를 하면 되는 간단한 의뢰로 보이지만... 그런 것이라면 굳이 흑야 대협께서 본문을 찾지는 않으시겠지요. 장이란 사내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를 조사한다는 것이 그가 왜 죽었는지 와도 연관이 되는 이야기라 생각하는 건 저의 억측은 아닐 것입니다.”

“......!”

나는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을 내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하오문이 할 일이다. 그 과정이 어떤 난관이 있을지, 무슨 애로가 있는지는 의뢰자가 알 바가 아니지. 그렇지 않느냐?”

한정연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당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합당한 보수가 필요한 것이지요. 대협. ‘제가’ 그 의뢰를 해결하면 어떤 보수를 주시겠습니까?”

‘이것 봐라?’

본문에 어떤 보수를 줄 것이냐가 아니라 ‘제’게 어떤 보수를 줄 것이냐?

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자신을 지목해서 의외를 떠맡기자, 보수도 하오문이 아닌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받아치는 건가?’

논리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보자, 그녀가 하오문주인 요곤의 제자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요곤에게 들은 것이 있는 모양이군.’

돈을 주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는 내가 어떻게 하오문을 부려먹었을까?

나는 과연 무엇을 보수로 주었을까?

그건 바로 무공에 대한 조언이었다.

내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천하십대고수가 무공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기연이나 마찬가지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라도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하물며 무공에 손색이 있어 언제나 거기에 목말라하는 하오문에겐 그것이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고 강력한 보상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아가씨가 자신을 언급하면서 보수를 어떻게 할 거냐고 하는 소리는...’

의뢰를 수행하면 그 보수로 자신의 무공을 좀 봐달라 내지는 조언을 해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럴 법도 했다.

한정연의 무공은 일류의 극에 달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말하자면 절정의 벽에 닿아, 그 벽을 넘기 위해 씨름하는 그런 상태란 얘기다.

벽을 넘어서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평생 동안 벽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초절정이나 절대경으로 넘어가는 벽이 아니고, 절정의 벽 정도에서 평생을 그걸 못 넘는 일은 사실 없다고 봐도 되지만, 그렇다고 그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특히 가장 문제인 것은 벽에 막힌 상황이 길어지면서 느끼는 압박감과 초조함이다.

그 압박감과 초조함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러다 주화입마 같은 최악의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한정연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심정으로 이런 뻔히 보이는 수작을 벌이고 있는 것이리라.

‘내 조언을 받아, 절정의 벽을 넘고 싶으시다?’

사실 의뢰의 보수로 조언을 해준다고 해서, 그녀가 절정의 벽을 넘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손해가 아닌 것은 설령 벽을 넘지 못해도, 그 조언이 나중에라도 벽을 넘을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벽을 넘어 절정에 들면, 그녀는 다음 대의 하오문주에도 도전할 수 있을 테지.’

과연 그녀가 거기까지 바라보고 내게 이런 수작을 부리는 걸까?

뭐 좋다.

어차피 그런 조언 한두 마디 해주거나, 무공을 조금 봐주는 건 내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난 그녀가 뭐라고 더 말을 늘어놓으려는 것을 단칼에 잘랐다.

“그만! 네가 무얼 원하는지는 알겠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내가 의뢰한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해라. 그것이 네가 원하는 보수를 얻을 유일한 방법이다.”

“......!”

밤이 길면 꿈이 잡다하니 많은 법이다.

이쯤에서 더 여지를 주지 않고, 나와야 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거라 믿는다. 의뢰한 정보를 다 알아내면 내게 소식을 전하도록. 그리고...”

나는 순간적으로 흉흉한 눈빛을 드러내며 흐흐흐 웃어주었다.

“좀 전에 보니, 밖에 여기 일을 거두는 꼬마 동자가 한 명 있더군. 그 아이를 당분간 잔심부름 할 겸 데려가려 한다. 물론 허락해주겠지?”

“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인 듯, 한정연의 표정에 당황이 어렸다.

“소진이를 말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 아이를 왜...”

“내가 일일이 모든 일을 챙기거나, 이곳에 오기는 좀 그렇지. 밑에서 잔심부름을 보면서 당분간 이곳과 연락통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 아니 그런 거라면, 다른 문도들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

사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단순히 이런저런 번거로운 일을 대신 하라 시키거나, 하오문 지부와의 연락책 역할을 겸하게 할 거라면 더 나이를 먹고 더 경험 있는 이들을 데려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소진이라고 말한 저 아이는 아직 어리고, 하오문도로서의 경험도 수완도 부족할 테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고성화와 비슷한 또래의 꼬마가 내 시야에 딱 들어왔는데 그냥 보낼 순 없는 노릇이지!’

사실 하오문의 꼬마 문도와 고성화는 서로 어울리며 친구가 되기엔 좀 어울리지 않는 부류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나는 그 소진이란 아이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고성화란 아이의 마음가짐을 뜯어고치려면 약간의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비슷비슷한 부류의 아이들과 어울려서는 효과가 없지.’

인근 유력가나 무가의 자제, 혹은 상단 내 고위직들의 자제... 이런 이들과 어울리는 것으로는 고성화가 주눅이 들고 기가 죽어 있는 걸 해결하기 어렵다.

‘어쩌면 더 심해질 수도...’

하지만 하오문의 꼬마 문도는 다르다.

하오문의 꼬마 문도들은 나이는 어려도 철이 일찍 들기 마련이고, 대부분 영악하고 눈치가 빠르다.

그런 게 지금의 고성화에게는 필요했다.

“그건...”

한정연은 당황한 눈치였지만, 결국은 내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의뢰를 하는 나 이상으로, 그녀도 이 일을 갈망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만일 거절하면 내가 의뢰를 취소하고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녀는 결국 내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결국엔 아쉬운 쪽이 매달리게 되어 있기 마련이지.’

지금의 한정연처럼, 그리고... 나처럼 말이다.

‘망할...!’

그놈의 문파 개업 자금에 코가 꿰어서 내가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내심 한숨을 내쉬며, 어서 빨리 고성화의 일을 해결한 다음 고범도에게 보상을 챙겨, 빨리 여길 떠야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 * *


소진이란 아이는 생각보다 싹싹한 아이였다.

다람쥐처럼 조그마한 녀석이 쪼르르 따라오는 게 묘하게 귀엽기도 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난 아이를 안아 들었다.

걸어서 돌아가기엔 시간이 걸리니 보신경을 펼쳐 빨리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 어딜 만져욧!”

“......?”

순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 뇌가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뭔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가 들은 거 같은데?

“숙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실망이예욧!”

“.., 숙녀? 누가?”

그러니까 너... 지금 자신이 여자 아이라고 주장하는 거지?

‘아니 콩알만 한 녀석이 무슨 지 몸에 손대고 어쩌고 하는 거냐.’

누가 들으면 좋지 못한 상상을 할 위험천만한 소리였다.

그냥 안아 들고 보신경을 펼치려던 건데 이게 왠 개소리란 말인가!

“허튼 소리 말아라. 어서 돌아가려고 보신경을 펼쳐서 가려고 했을 뿐이다.”

... 아니 근데 내가 왜 이런 해명을 하고 있지?

무엇보다도 기가 막힌 건, 어딜 봐도 조그만 사내 아이란 거였다.

사실 저 나잇대 아이들은 머리가 길지 않으면 남자 아이랑 여자 아이랑 외관상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남자 아이도 머리를 길게 기르면 저 나잇대는 여자 아이처럼 보이는 나잇대고...

더구나 하오문 지부에서 일할 때 모습은 점집에서 일하는 꼬마 동자의 모습이라 고성화 또래의 남자 아이 그 자체였다.

‘여자 아이라. 그건 몰랐군. 근데 뭐 어쩌라고.’

겸사겸사 고성화랑 친구 시키려고 한 건데, 뭐 여자 아이라고 친구 못 될 것도 없으니 아무 문제 없었다.

“허어... 아직 어린 녀석이 벌써 발라당 까져 가지고...”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아직 열 살도 안 되었을 녀석이 벌써부터 저러니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하긴 하오문의 꼬마 문도 아닌가!

하오문은 강호의 밑바닥 진창에서 뒹구는 문파, 그 소속인 문도로서 아직 어린 아이라고 해도 발라당 까진 것이 당연했다.

‘뭐 약간 조숙하다고 해서 그게 문제는 아니지.’

그런데 그거 다 이해해도 왜 하필 여기서 저딴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그 사고 과정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네가 여자 아인 건 몰랐구나. 근데 그렇다고 해도 왜 그런 잡소리를 했느냐?”

“이래뵈도 다 컸거든요! 저도 이제 엄연한 ‘소저’랍니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소진의 표정은 마치 예쁜 건 알아가지고!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간 뒷목을 잡았다.

“에라이!”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진의 머리를 한대 콩 하고 쥐어박았다.


작가의말

아이고 비축분도 없고... 쉽지 않네요. 쉽지 않아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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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조사를 시작하다.(2) +1 20.05.16 92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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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돈은 귀신도 부린다.(4) +3 20.05.13 1,104 16 11쪽
4 2. 돈은 귀신도 부린다.(3) +3 20.05.12 1,210 17 11쪽
3 2. 돈은 뒤신도 부린다.(2) +3 20.05.11 1,378 16 11쪽
2 2. 돈은 귀신도 부린다. +5 20.05.11 1,788 23 11쪽
1 1. 서장 +6 20.05.11 1,970 2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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