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엘프 정령사의 첫번째 휴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2.09.01 02:19
최근연재일 :
2023.03.25 21:00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812
추천수 :
38
글자수 :
299,119

작성
22.09.12 20:00
조회
67
추천
1
글자
11쪽

11화 꽃내음(2)

DUMMY

11. 꽃내음(2)


“죽어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지 못한 멜티의 소견에 침착함을 고수해오던 뷘터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아, 너무 이상하게 얘기했군. 정확히는 수명이 거의 다 됐다는 얘기지.”


방은 아르망의 고른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렇담.”


잠깐이지만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담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나?”

“나도 정확하게는 말해줄 수는 없다. 그래도 대략 150년에서 200년 정도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아직 많이 남았긴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촉촉한 눈가로 그를 바라보는 티라.


“그래도 수명을 늘릴 방법은 있다.”

“진짜?”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멜티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창밖, 그 너머의 어느 곳으로 향했다.

나머지 둘의 고개도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봤다.


“너의 수명은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한 하이엘프 치고는 너무나도 짧다.”


늑대의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화를 이어갔다.


“확실히 마을의 다른 이들과 비교해봐도 그렇기는 해. 심지어 최근 150년간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됐으니 말이야.”

“그럼 그 가운데서 너와 마을에서 생활하는 엘프와의 차이를 알 수 있겠나?”


그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가설을 입 밖으로 꺼냈다.


“어머니인가···.”


고개를 끄덕인 물의 정령왕.


“너는 지금 세계수의 비호 밖에서 생활한 지 너무나도 오래됐다. 일반적인 엘프였다면 자연의 기운을 다 잃고 진즉에 명을 끝냈겠지만, 너라서 아직도 생을 이어가고 있는 거겠지.”

“어떻게 할 거야?”


티라의 질문에 잠자코 생각만 하고 있던 뷘터가 입을 열었다.


“이 일 말고 다른 일로 어머니께 돌아갈지 고민 중이긴 했지만···. 뭐, 아직 마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가면서 생각해보자고.”

“그것보다는 별로 지금 생에 큰 미련이 없는 거지? 앞으로 길어봤자 200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야.”


노인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우리는 네가 더 살기를 바란다만 너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여행하며 생각을 해야 할 게 더 늘어났네. 그보다 둘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뭐야?”

“실키를 데리고 와줬으면 해.”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멜티.


“그런 거라면 너가 부르면 되지 않나? 네 말이라면 바로 날아올 텐데?”

“지금은 안 들어줄 거야. 단단히 삐져있거든.”

“또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보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동이 트기 전까진 돌아오도록 하지. 티라.”


두더지는 머리에서 내려와 무릎에 올라선 뒤 한쪽 앞발을 들어 올렸다.


“그럼 다녀올게.”


인사를 끝으로 정령계로 돌아가는 두 정령왕이었다.


●●●


“준비는 다 됐느냐.”

“예, 로멜 자작님.”


검은색과 흰색의 깔끔한 옷을 입은 아르망이 오른손을 가슴 중앙에 올리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벌써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는데.”

“너는 조금 격식을 차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멜티. 아직 숙소잖아?”

“이럴 때는 ‘그러지’라고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로멜 자작님.”

“티라, 너까지 이러기야?”


그는 머리 위 두더지의 뒷덜미를 붙들고 눈을 마주쳤다.


“다들 그러길래 맞장구를 한 번 쳐본 거야.”

“어련하시겠어요.”


뷘터는 다시 머리 위에 올려두고 제자를 바라봤다.


“가자, 파람.”

“예. 여기 지팡이를.”


지팡이를 받아 든 그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역시 마차가 편하기는 해.”


그리고 대기시켜놨던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등을 기대며 긴장을 푸는 두 사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 이유가 가장 편하기는 하지. 그보다 실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뾰로통한 표정과 함께 곁에 앉아있는 바람의 정령을 바라봤다.

입을 삐쭉 내민 그녀의 모습에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번 작전에서 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 그만 화를 풀어줘.”

“하는 걸 봐서.”


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아르망만 혼자 놔두지 마.’

‘그건 걱정하지 마. 엘리스인걸.’

‘티라도 부탁할게.’


머리 위의 두더지는 가슴팍으로 앞발을 가져갔다.


‘알티는 내가 꼭 지킬게.’

‘그것도 한계가 있잖아?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는 저 아이한테 맡겨야지.’


품에서 고이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넨 뷘터.


“뭔가요?”


그가 펼치려 하자 속으로 막으며 질문에 답했다.


“나중에 네가 혼자 있을 때 확인해 보거라. 그전까지는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 된다.”

“네.”

“그리고 실키랑 티라가 너와 같이 움직일 거다. 둘 다 네가 말해주는 건 다 들어줄 거야.”

“저택에서 일이 다 끝나면 이 여행의 목적이 뭔지 말씀해주세요.”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알겠다. 일이 끝나면 다 말해주마.”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내며 창밖을 바라봤다.


“거의 다 도착했구나. 마지막으로 물어볼 거는 없느냐? 뭐, 너 혼자 있게 되면 둘이 다 설명을 해줄 거지만 말이다.”

“그러면 없어요.”


스승은 제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원래라면 내가 다 해야 할 일인데 너를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아르망은 헝클어진 머리를 깔끔히 정리했다.


“어차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제가 그 일을 할 수도 있는걸요. 그리고 제 옆에는 정령왕이 둘이나 있잖아요?”

“지금 말을 안 해줘서 미안하다만 정령들은 정령사들과 떨어질 수 있는 한계점이 있단다.”

“그럼···.”

“어느 순간부터는 네 힘으로 해야 한다.”


그는 애써 제자의 눈길을 피했다.


“자작님, 영주성에 도착했습니다.”

“알겠네. 그럼 파람 내리자꾸나.”

“···알겠습니다.”


아르망은 먼저 문을 열고 내려간 뒤 뷘터를 부축했다.


“자네는 이만 돌아가 봐도 좋네.”


마부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 뒤 마차를 끌어 영주성과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일행은 성의 경비병과 얘기를 나눠 누군가가 마중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보다 이렇게 무작정 찾아와도 되는 걸까요.”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아르망.

뷘터도 똑같은 행동을 하며 얘기를 꺼냈다.


“무작정 찾아와야 뭔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거란다. 그리고 로멜이라는 성이 좋은 미끼이기도 하거든. 저길 봐라.”


고갯짓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문을 여는 시녀가 눈에 들어왔다.


“가자꾸나.”

“예, 자작님.”

“백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바로 접객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앞장서는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접객실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성이 꽤 넓은 편이라 5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럼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제가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답하겠습니다.”

“입구에서부터 꽃을 받긴 했는데 붉은색의 꽃 말고 다른 것은 없나?”

“아무래도 영주님의 취향이신지라.”

“알겠네. 뭐 꽃이 이상하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 다른 색의 꽃도 보고 싶어서 말일세.”

“무슨 말씀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시녀는 문 앞에 멈춘 뒤 가볍게 두드렸다.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와도 된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 산토의 영주, 디토 나르코틱스라고 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새하얀 양복에 새빨간 넥타이를 맨 백금발의 남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저야말로 백작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티얄 로멜 자작이라고 합니다.”


서로의 소개와 함께 가볍게 악수를 하는 두 귀족.


“죄송합니다. 이 영지에 온 날 인사를 드리러 왔어야 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긴 여행길에 몸이 많이 지쳤었습니다.”

“나이도 나이이니 몸부터 신경 써야죠. 그보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러니 앉을까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파람, 부축해다오.”


아르망의 손을 빌린 뷘터는 디토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보다 정통의 무가인 로멜가가 이 도시에는 어쩐 일로 온 겁니까?”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 주변인들이 휴가를 좀 갔다 오는 게 어떠냐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휴양지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산토지 않습니까? 그런 연유로 오게 됐습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보다 목이 타실 텐데 차라도 한 잔 드시죠. 얘들아.”


그의 부름에 시녀들이 방으로 들어와 각종 다과와 함께 차를 내왔다.


“이것 참···.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뷘터는 차를 입으로 가져가기 전 향부터 맡았다.


“처음 맡아보는 향인데 어떤 찻잎을 사용하신 겁니까?”

“산토를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설마 붉은색의 꽃입니까?”

“예.”

“향이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심지어 맛도 훌륭하군요. 혹시 산토에서만 이 좋은 것을 혼자서 마시고 계신 거 아닙니까?”


디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부임하고 나서부터는 업무에 전념하느라 무도회에 나갈 일이 없더군요.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만···.”

“유통이 문제인가요···.”

“예.”


둘은 차를 즐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제도의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아주 좋은 차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도 전해주고는 싶지만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번거로워서 문제죠.”

“예. 저희 로멜가가 오래되긴 했어도 일개 자작일 뿐이라서 힘이 없으니 원.”

“하지만 인맥은 많으시죠.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머쓱한 웃음을 짓는 뷘터.


“인맥이 많기는 하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에게 힘을 빌려줄 자가 있을까 합니다.”

“일단 자작의 눈앞에 있기는 합니다.”

“허허···.”


그는 자신의 볼을 가볍게 긁었다.


“제가 알기론 명성이 높은 로멜가 일지라도 무언가를 할 자본이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고 들어서 말이죠.”

“그야 뭐 그렇긴 합니다만···.”


말을 늘어뜨리며 뒤에서 침묵을 지킨 채 서 있는 아르망을 흘겨봤다.

시선에 들어오는 눈치를 보는 모습에 차를 홀짝이던 디토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작도 자작이지만 종자도 많이 지쳤을 수도 있는데 성의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너무 신세를 지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신세랄 것도 없습니다. 좋은 얘기가 오가는 거면 만족하니까요.”

“그렇다면···. 파람, 난 백작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휴게실에서 좀 쉬다 오거라.”

“알겠습니다.”

“너는 로멜가의 종자를 휴게실까지 안내해주거라.”

“네. 저를 따라오시죠.”


둘은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접객실을 나섰다.


“이런 갑갑한 방보다 밖으로 나가 정원에서 얘기를 나누죠. 보자마자 감탄을 하실 겁니다.”

“백작님께서 그렇게 자신하시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엘프 정령사의 첫번째 휴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엘프 정령사의 첫번째 휴가는 조기 완결 하겠습니다. 23.04.01 26 0 -
공지 1화 휴가준비의 마지막 두 마디가 수정되었습니다. 23.02.23 19 0 -
공지 연재 주기와 관련해 말씀을 드립니다. 22.09.29 49 0 -
공지 연재 시간은 9/17 부터 20시에서 21시로 변경됩니다. 22.09.16 34 0 -
공지 안녕하세요. 이미월입니다. 22.09.01 64 0 -
55 54화 괴물 23.03.25 22 0 12쪽
54 53화 피안 23.03.18 13 0 12쪽
53 52화 주둔군 23.03.11 15 0 12쪽
52 51화 뜻밖의 동행 23.03.04 17 0 12쪽
51 50화 의뢰 23.02.25 20 0 12쪽
50 49화 진실(2) 23.02.18 21 0 12쪽
49 48화 진실 23.02.11 24 0 12쪽
48 47화 투쟁(4) 23.02.04 23 0 12쪽
47 46화 투쟁(3) 23.01.28 22 0 11쪽
46 45화 투쟁(2) 23.01.21 20 0 12쪽
45 44화 투쟁 23.01.14 25 0 12쪽
44 43화 개전 23.01.07 37 0 13쪽
43 42화 에브라(3) 22.12.31 37 0 12쪽
42 41화 에브라(2) 22.12.24 35 0 13쪽
41 40화 에브라 22.12.17 41 0 12쪽
40 39화 정보 22.12.10 40 0 12쪽
39 38화 불씨 22.12.03 38 0 12쪽
38 37화 조사(2) 22.11.26 40 0 12쪽
37 36화 조사 22.11.19 41 0 12쪽
36 35화 앙숙(3) 22.11.12 41 0 13쪽
35 34화 앙숙(2) 22.11.05 40 0 12쪽
34 33화 앙숙 22.10.29 49 0 12쪽
33 32화 전해야 할 말 22.10.22 57 0 13쪽
32 31화 입장 22.10.15 49 0 12쪽
31 30화 오베론(2) 22.10.08 58 0 13쪽
30 29화 오베론 22.10.01 55 1 13쪽
29 28화 요정 22.09.29 53 1 13쪽
28 27화 에레펠 도일 공작 영애(3) 22.09.28 53 1 12쪽
27 26화 에레펠 도일 공작 영애(2) 22.09.27 52 1 12쪽
26 25화 에레펠 도일 공작 영애 22.09.26 67 1 12쪽
25 24화 공작령으로 22.09.25 53 1 12쪽
24 23화 기다림 22.09.24 62 1 12쪽
23 22화 말조심(3) 22.09.23 54 1 12쪽
22 21화 말조심(2) 22.09.22 47 1 12쪽
21 20화 말조심 22.09.21 59 1 12쪽
20 19화 다시 출발 22.09.20 61 1 12쪽
19 18화 목적 22.09.19 62 1 13쪽
18 17화 휴식 22.09.18 70 1 13쪽
17 16화 칠색빛 현자 22.09.17 70 1 13쪽
16 15화 서로의 역할(4) 22.09.16 67 1 13쪽
15 14화 서로의 역할(3) 22.09.15 62 1 12쪽
14 13화 서로의 역할(2) 22.09.14 62 1 12쪽
13 12화 서로의 역할 22.09.13 63 1 12쪽
» 11화 꽃내음(2) 22.09.12 68 1 11쪽
11 10화 꽃내음 22.09.11 8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