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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엘프 정령사의 첫번째 휴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2.09.01 02:19
최근연재일 :
2023.03.25 21: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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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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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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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화 프롤로그

DUMMY

0. 프롤로그


각종 병장기와 말 그리고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군대가 움직임을 멈췄다.


“깃발의 사자문양으로 보아 하르트 왕국군인 거 같은데. 이 새벽에 이만한 군세가 당신을 호위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닐 테니 전쟁 중인 동맹국으로의 원정이시겠군요.”


최선두의 남자가 말에서 내려오자 몇몇 군인들이 막으려 했다.

허나 어깨 위로 올라오는 짧은 손짓 하나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봤을 때는 그자인 거 같은데.’


남자는 투구를 벗고 홀로 막아서고 있는 은색 장발의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하르트 왕국의 제1왕자 제온 하르트라고 합니다. 어떻게 엘프께서 인간들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잠시 숲을 통과해도 되겠습니까?”

“역시. 그보다 왕족의 핏줄이 무거운 머리까지 숙이다니.”

“머리야 뭐, 숙일 수도 있는 거죠. 그보다 숲을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별나시군요. 뭐, 조용히 지나가기만 한다면야.”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허락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제온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 군대를 움직였다.

군대는 가만히 선 채 자신들을 바라보는 엘프를 비켜 가며 숲으로 들어갔다.


“저 남자가 움직였으니 빠르게 끝나겠어.”


●●●


천천히 숲 안을 이동하던 중 늙은 군인 하나가 곁에 다가가 낮게 읊조렸다.


“왕자 전하. 어째서 고개를 숙이신 겁니까!”

“장군, 그렇게나 화내실 일입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과 이것이 같습니까?! 폐하께서 들으시면 또 뭐라고 하실지.”


장군은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냥 넘기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별난 구석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보여주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기가 별난 것은 인지하고 계시는군요.”


깊은 한숨이 장군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점은 그렇다 칩시다. 그럼 왜 말에서 내려가 가까이 다가가신 겁니까? 혹시라도 불순한 생각을 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세상에 몇 안 되는 마스터인 저에게 불순한 생각이라···.”

“그···, 뭐···. 그런 음침한 웃음으로 바라보지 마시고 제 실언은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이리 행동할 때마다 장군께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셔서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인상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는 장군이었다.


“뭐 실제로 불순한 생각을 했더라면 저나 엘프, 둘 중 하나가 다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또 저를 놀리실 생각이라면 이번에는.”

“마스터를 장난의 대상으로 삼는 우매한 자가 있을까요?”

“예? 그럼 그 말씀은···.”


장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제온.


“왕국으로 복귀할 때 이 숲에 한 번 더 들리죠?”


●●●


“뷘터, 오랜만이야.”


은색 장발의 엘프가 숲에서 걸어 나와 남자와 손뼉을 마주쳤다.


“제온! 옆에는 늘 같이 오던 수행원이네. 그보다 반년만인가? 손에 든 주머니는 뭐야?”


제온은 주머니를 펼쳐 내용물을 보여줬다.

뷘터는 주머니 안의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이거는 와인이라고 했었지. 이거는 고기로 만든 음식인 거 같은데.”

“비프스튜라는 거야.”

“스튜?”

“고기와 채소 그리고 각종 소스로 만든 수프라고 생각하면 편해.”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는 뷘터.


“맛이 없을 수가 없겠는데. 식기 전에 빨리 집으로 가자.”

“이능으로 다시 따뜻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 그리고 너는 빨리 좀 움직여라.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늦게 오면 네 몫은 없다?”

“예.”


수행원은 먼저 움직인 둘을 뒤따라 움직였다.

뷘터의 집에 도착한 그들은 모닥불에 스튜를 데우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꽤 늦었네?”

“핏줄이 핏줄이다 보니 업무량이 적당해야지.”

“왕족은 힘들겠어.”

“그보다 너는?”

“엘프의 장로인 만큼 나도 여러 일이 있었지.”

“그런가. 그보다 이 정도면 됐을 거 같다. 우리 요리장의 특제 소스가 들어간 거니까 얼른 맛부터 봐봐. 눈이 까뒤집어질 정도로 맛있을 거다.”


스튜가 가득 담긴 그릇과 함께 스푼을 주자 뷘터는 망설임 없이 큼지막한 고기와 함께 떠먹었다.


“퉤! 아, 뜨거워라. 이거 혀가 다 데인 거 같은데.”

“김 나오는 거 보면 모르겠냐. 그러게 천천히 좀 먹지. 음식에 발이 달려서 어디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입에 안 맞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제온은 스튜를 식히고 고기와 함께 떠먹었다.


“우리 요리장이 확실히 음식을 잘하기는 해. 와인이랑 같이 먹으면 진짜 죽여줄 거다.”


뷘터와 제온은 코르크를 따고 건배를 한 다음 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번 와인은 뭐야? 저번에 가져온 거랑 향이 다른데?”


와인병을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하는 뷘터.


“이건 왕실에만 들어오는 물건이라서 말이야. 원산지라도 가르쳐 줄까?”

“됐어. 어차피 너랑 만날 때만 먹는 건데. 숲으로 나갈 일도 없고 말이야.”

“알아둬야 할걸?”

“굳이?”

“그럼. 왜냐면 오늘이 너랑 만나는 마지막 날이니까?”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뷘터는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멈췄다.

제온은 스튜와 와인을 내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아바마마가 병세에 시달리고 계신 건 알고 있지?”

“워낙 유명한 얘기니까.”

“치료를 위해 저명한 의원이나 약사를 불렀는데도 모두 하지 못했어. 심지어 마지막으로 방문한 의원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생각보다 빨리 왕위를 잇게 됐다.”

“왕이 됐다고 못 온다는 거냐?”

“자유로운 자리는 아니니까.”


뷘터도 그릇과 와인을 내려놓고 제온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바라봤다.


“7년인가.”

“전쟁을 돕기 위해 동맹국으로 간지 오늘이 딱 7년째네.”

“인간이 기준이라면 오래도 알고 지냈네. 그럼 이제 네가 몇 살이지?”

“25.”

“인생의 3분의 1인가.”

“길게 살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네.”

“인간의 생이란 짧구나. 나는 아직 죽으려면 몇 세기나 더 살아야 하는데.”


자신이 내뱉은 말에 뷘터는 늘어뜨렸던 몸을 일으키며 놀란 눈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래서구나.”

“뭐가?”

“나를 데리고 가고 싶다던 얘기를 못 들은 걸로 해달라고 한 이유.”


어깨를 으쓱이는 제온.


“아무래도 인간과 엘프는 삶의 시간이 다르니까. 내가 죽어도 너는 내 핏줄들을 보면서 궁에서 홀로 지낼 텐데 어떻게 데려가냐.”

“상관없어.”

“상관없기는. 엘프의 장로씩이나 되는 놈이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니냐.”

“그딴 자리, 그냥 놔두고 떠나지 뭐.”


그 말에 제온이 낮게 읊조렸다.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리에 앉았으면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여. 그딴 무책임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뷘터는 친구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럼 나도 뭐 좀 물어보자. 너는 엘프의 장로인 내가 왜 이런 낡고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지는 알고 있냐? 이 은색 머리칼이 엘프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고?”


뷘터가 자리에 앉으며 모닥불로 고개를 돌리자 제온도 같은 곳을 바라봤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말이 거칠어졌다.”


뷘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자리에 있는 너로서는 내 말을 듣고 흥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는 않아도 돼. 정 뭣하면 건배나 하고.”


둘은 병을 부딪치고 와인을 들이켰다.

제온은 남아있는 술을 끝까지 들이켜고 뷘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진짜로 따라올 거냐.”

“당연하지.”

“미련이나 후회는 없고?”

“너도 아버지 얘기를 해줬으니까 내 얘기도 해줄게. 일단 장로 자리는 너랑 비슷해. 네가 왕의 핏줄인 것처럼 나도 하이 엘프라는 고위 엘프의 핏줄로 태어났어.”

“그럼 문제는 네가 말한 은색 머리칼 때문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뷘터.


“어떠한 서적에도 나와 있지 않은데 은색 머리칼은 엘프에게 저주의 상징이라고 불려. 그 덕에 우리 가족은 엘프의 사회에서 버림받고 마을에서 추방됐지.”

“그럼 어떻게 장로라는 자리에 앉은 거야?”

“유일한 마스터라서. 다른 장로들도 이능을 쓸 수는 있지만, 나와의 격차가 너무나도 심했어.”

“결국엔 네 힘이 필요했던 거네.”

“마스터의 힘이란 건 그만큼 매력적이니까.”


제온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셨다.


“그렇게 강력한 힘으로 장로에 앉았는데도 대우는 여전했고?”

“어. 그래도 이번에 새로운 하이 엘프가 태어난 덕분에 이곳을 떠날 수 있어.”

“마스터급은 되나 봐?”

“지금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보이긴 해서 말이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마스터는 재능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그러냐.”


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나 같아도 그런 상황이면 지금이 달콤한 기회이기는 하네. 그보다 정말로 후회는 없는 거지?”


진지한 친구의 태도에 그도 똑같은 태도로 답했다.


“물론.”

“미련은?”

“있을 리가.”

“내가 죽은 다음에는 홀로 왕국에서 살아가야 해.”

“그 정돈 각오했어. 그래도 남은 생동안 이곳에서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는 나아.”

“그럼 마지막으로 물을게.”


제온은 통나무에 앉아있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 옆에서 일해줘.”


뷘터는 자신에게 내민 손을 꽉 잡고 일어났다.


“어디까지고 같이 가줄게.”

“고맙다.”

“고맙긴요, 전하.”

“우리끼리 호칭은 무슨. 됐고 숲에서 나가기나 하자.”

“그래도 공석에서 실수할 수 있으니까 미리 버릇은 들여놔야지.”

“그런 건 인간사회랑 왕실 예절 같은 걸 배우고 나서 해도 상관없어.”


둘은 미래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숲에서 빠져나간 뒤 말을 타고 달렸다.


“하르트 왕국은 이종족에 관대한 국가였지?”


제온의 뒤에 탄 채 질문을 던지는 뷘터.


“관대할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지.”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겠지.”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차별하거나 배척하는 국가가 있는 건 분명하니까.”

“응급처치 도구는 있어?”

“수행원이 가지고 있긴 한데 왜?”


그가 뒤를 돌아보자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뷘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급히 말을 세운 제온은 수행원을 불렀다.


“뭘 가만히 있어! 빨리 붕대랑 이것저것 꺼내!”

“겨우 뾰족한 부분을 잘라냈을 뿐이야···. 그보다 더럽게 아프네.”

“사람 행세를 하려고 귀를 자르다니. 너도 참 별나다 별나!”

“이게 내 각오니까 앞으로 잘 좀 봐줘.”

“그래. 아주 우리나라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로 출세하게 해주마!”

“나중에 와인의 원산지도 꼭 가르쳐주고.”

“알겠으니까 일단 얌전히 치료부터 받아라! 손이나 좀 떼봐.”

“전하, 이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으니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 건 어떻습니까.”

“서둘러라.”


그들은 서둘러 말을 몰아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


●●●


“아이고 허리야. 나도 나이를 많이 먹기는 했어.”


은색 장발의 노인이 휘황찬란한 복도에서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긴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작가의말

독자분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미월입니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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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정보 22.12.10 40 0 12쪽
39 38화 불씨 22.12.03 38 0 12쪽
38 37화 조사(2) 22.11.26 40 0 12쪽
37 36화 조사 22.11.19 41 0 12쪽
36 35화 앙숙(3) 22.11.12 41 0 13쪽
35 34화 앙숙(2) 22.11.05 40 0 12쪽
34 33화 앙숙 22.10.29 49 0 12쪽
33 32화 전해야 할 말 22.10.22 57 0 13쪽
32 31화 입장 22.10.15 49 0 12쪽
31 30화 오베론(2) 22.10.08 58 0 13쪽
30 29화 오베론 22.10.01 55 1 13쪽
29 28화 요정 22.09.29 53 1 13쪽
28 27화 에레펠 도일 공작 영애(3) 22.09.28 53 1 12쪽
27 26화 에레펠 도일 공작 영애(2) 22.09.27 52 1 12쪽
26 25화 에레펠 도일 공작 영애 22.09.26 67 1 12쪽
25 24화 공작령으로 22.09.25 53 1 12쪽
24 23화 기다림 22.09.24 6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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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말조심(2) 22.09.22 47 1 12쪽
21 20화 말조심 22.09.21 59 1 12쪽
20 19화 다시 출발 22.09.20 6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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