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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봉미
작품등록일 :
2024.03.10 12:07
최근연재일 :
2024.07.22 05:34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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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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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810

작성
24.03.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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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깨어진 틈

DUMMY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오자, 벽력일무문의 식구들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 분주해졌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끼니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식사 때 사이좋게 모여 하하 호호 밥을 먹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삭막하군. 삭막해. 이건 숫제 같은 문파가 아니라 뉘집 개가 밥을 먹는구나 하는 느낌인데.’


홍령이 용운휘의 상세가 괜찮다 여기고 데려온 상황이긴 했지만, 용운휘로선 썩 내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 두 패로 짝 갈라져 얼굴도 마주 하지 않고 밥을 먹는다니....


‘밥 먹는 시간은 좀 편하게 먹어야 할 게 아닌가. 이래서야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쯧.’


용운휘가 앞에 있는 홍령의 등 너머에 있는 것들은 그저 밥에 꼬인 벌레다 라고 자신을 속이려고 마음먹은 순간, 누군가가 찾아왔다.


“여어, 사제.”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용운휘 주변에 있는 이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니까....너 누군데...’


용운휘가 이마를 잡고 입을 뻐금뻐금 움직였다.


“이런이런. 그러고 보니 이 사형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군. 그래도 그렇지. 사저나 사고께서 말씀해주진 않던가?”


‘내가 안 물었거든. 난 싫어하는 놈의 이름 따윌 알아서 뭐 한다고. 적당히 북실북실 수염이라고 써 붙이면 기억하기도 편하겠네.’


“쯧”


능글맞은 백노경의 태도에 홍령이 혀를 찼다. 어지간히도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사형의 이름은 백노경이라고 하네. 이제는 잊어먹지 말라고 사제.”


“아 예.”

‘밥은 좀 편하게 먹으려고 애써 눈가에서 지워냈더니....이건 왜 또 찾아오는 거야?’


“그래. 사제가 아픈 걸 무사히 털어냈다고 들었네. 참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어어. 그래그래. 음식이 오는군. 들게 들어. 사저와 사고께서도 드시죠.”


홍령은 여전히 살짝 인상을 찡그린 채로 제자가 들고 오는 그릇을 받아들었다.


“노경아.”


“예. 사저.”


“밥 먹는 시간만큼은 서로가 편히 먹자고 암묵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더냐?”


악령화의 말에 백노경이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긁었다.


“그랬던가요? 소제(小弟)가 불민해서 미처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소제(小弟)....소제라....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니 참 어색하구나.”


“......하하. 그렇습니까?”


악령화가 씨익 웃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있던 악령화가 냉소를 짓자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허나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백노경의 눈에는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그로서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느낌이 들기에 그저 그녀의 입에서 이어 흘러나올 말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고말고. 나보다도 나이 많은 자신이 둘째인 것을 결코 인정치 않는 너가 아니더냐. 본문의 법도보다도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판단이 우선인 너이기에 이렇듯 밥 먹는 시간에 이쪽까지 온 것이 아니냐. 그런 네가 소제라는 말을 담다니....후훗.”


“......”


흔들.


건장한 백노경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미동이었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그가 폭발하기 전의 징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분노를 토해내지 않았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순간 격앙되었던 감정을 한숨에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숨이 꽤나 길게 이어졌다.


“그만합시다. 이런 감정적 소모를 위해 온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표정과 목소리 모두 착 가라앉은 것이 그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백노경이 왔던 목적을 단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악령화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지금 윗사람의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나려 드느냐.”


“그만하자고 했소. 아무리 내가 묵계를 어겼다고 하나, 찾아온 것만으로 이럴 수 있는 것이오?”


“그 말 한 마디로 네 마음을 훤히 드러내는구나. 노경아.”


“......무슨-”


“네가 나는 물론이고 사고를 어른으로 여겼다면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랬더라면 윗사람의 말이 설사 틀렸더라도 수긍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느냐. 아니더냐?”


“........”


꾸우우욱.


백노경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금세 피라도 떨어질 듯한 압력이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후우우..”


“강호행이 그나마 너를 사람구실하게 만들었구나. 만약 여기서 예전처럼 발작했다면 그 손을 잘라놓았을 것을.”


“하....하하하하.”


사람이 너무 분노하면 웃음이 튀어 나올 때도 있는 것일까? 백노경이 갑자기 웃었다. 어딘가 메마른 웃음소리였다. 계속 될 것만 같았던 그의 웃음소리가 갑작스레 멈추고 그의 입이 열렸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하는구려. 사저. 그럼 이번에는 이 못난 사제가 사저의 마음을 살펴보도록 하겠소.”


“네가?”


악령화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내가 사제를 건드렸기 때문이 아니오?”


“그래서?”


그것은 악령화 스스로도 내심 인정하는 바였다. 적당히 인사만 하고 떠났으면 그녀가 이리 나섰을 일도 없다고 내심 생각했다.


“사저를 보면 꼭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돌보는 것 같소. 헌데.....그런 싸고 돎이 저 아이를 망친다고는 생각지 않소? 아니. 저 아이뿐만이 아니지, 문파가 왜 이렇게 갈라졌겠소?”


“.......계속 지껄여 보거라.”


그녀의 손에도 조금 전의 백노경처럼 힘이 들어갔다. 물론 힘을 강하게 넣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말, 그 언사로 인해 그녀의 심정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사부는 물론 사저까지 언제고 우리들을 살피기는 했소? 그러니 서하검기(西河劍技)를 익히는 이들에게는 사저는 물론 사부까지 너무 편애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겠소.”


“......네가..감히...”


홍령은 흥분으로 떨며 말했다. 죽은 제 스승까지 거론하여 흉을 본다니. 그녀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허나 흥분이 극에 달한 홍령과 달리 악령화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사고께서는 모르겠지만 서하검기를 익히는 자들의 생각은 모두 그러할 것이오.”


“....웃기는 일이군.”


악령화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뭐라 했소. 사저.”


“웃기는 일이라고 했거늘. 귀가 먹었느냐.”


“.......그 말....책임질 수 있겠소?”


“하. 방금 전에 한 실수를 또 하는구나. 책임? 네가 감히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말이냐?”


“......”


악령화의 매서운 호통에 백노경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네가 스승님에게 받은 것이 아예 없는 것이더냐? 돌림병에 가족을 잃은 네가 지금도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 게 스승님의 은혜가 아니라고 말할 셈이냐?”


“......그건 평생 잊은 적이 없소.”


“그런데도 그 따위 말을 해? 스승님이 너희들에게 검기혼탈무를 익히지 말라고 하셨느냐? 그도 아니면 서하검기를 익힐 때 만류를 하셨더냐? 모두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단지 스승님께서는 검기혼탈무의 난해함 때문에 자신이 아는 바를 전하기 위해 힘쓰셨을 뿐. 게다가 뚜렷하게 형과 식이 뚜렷이 드러나는 서하검기를 익힌 너희들임에도 제대로 익히는가 싶어 계속 찾아갔던 것은 무어라 설명할 셈이냐.”


“.......”


백노경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입을 옴짝달싹 할 뿐이었다.


백노경을 필두로 한 이들의 불만은 겉으로 보면 차별에 대한 불만이기는 했으나, 결국 속을 들여다보면 질투였다. 자신이 포기한 것,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좌절감, 혹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더 낫다는 작은 우월감. 이 모든 것들이 점차 쌓여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 속사정을 전혀 알지 못 하는 용운휘로선 이런 개판이 따로 없다고 생각될 뿐이었지만.


‘집안 한번 잘 돌아가는군. 콩가루 집안도 이것보다는 낫지.’


용운휘가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백노경이 말을 이었다.


“사저. 이제 와서 그런 말로 돌아가기엔 서로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용케 사저라고 부르는구나.”


어디선가 시작된 균열이 마침내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용운휘였다.


“저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백치가 나설 곳이 아니다.”


용운휘의 끼어듦에 백노경이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거칠게 말했다.


“네 놈!!”


막 분노를 터트리려는 악령화와는 대조적으로 용운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이 돌아가셨다면, 사저가 다음 대를 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도 아니라면 사고께서. 왜 이렇게 두 무리로 나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말이죠.”


“.......”


“운휘야.”


홍령이 대답하고자 입을 열었다.


“네”


“일반적인 문파였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허나 본문을 계승하기 위해선 자격이 필요하단다.”


“자격?”


홍령의 입에 식당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본문의 신물을 취하고 나서야 응당, 본문의 문주가 될 자격이 생긴단다.”


“아....그럼 사형, 사저, 사고 중 누군가가 신물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냥 취할 수 있었다면 신물로 불리지 않았겠지.”


백노경의 입에서 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허나 사저도 결국은 신물의 인정을 받지 못 한 것도 사실. 그러니 마치 대를 이은 것처럼 굴 자격이 없는 것 아니겠소?”


백노경이 이때라는 듯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설파하고자 했다.


“......내가 언제 문주로서 너를 징치하고자 했더냐? 사저로서 못난 사제의 실력 좀 보고자 함이지.”


악령화의 협박이었다. 몇 번이고 그녀에게 도전했다 패배한 백노경이기에 저절로 등 뒤에 땀이 흘렀다.


“좋-”


백노경의 대답이 흘러나오려는 찰나, 용운휘가 그것을 끊어버리는 듯이 입을 열었다.


“허면 서하검기와 검기혼탈무의 비무를 하는 게 어떨까요?”


“비무?”


용운휘 주변에 있던 셋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흘러나왔다.


“비무라니....설마하니 사저와 나. 이렇게 비무를 하자는 말이냐?”


백노경은 애초에 그럴 마음이었지만 내심 어이가 없었다. 기억을 잃고 주제도 모르고 나선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내심 눈앞에서 겪어보니 분노가 차올랐다.


“아뇨.”


“뭐? 그러면 설마...”


“네. 유파 대 유파 로 싸워야 서로가 납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운휘야.”


악령화가 자신의 막내 사제를 말리려고 불렀으나, 먼저 행동으로 나선 것은 백노경이었다.


“그 말, 진심이냐? 설마하니 승부방식은?”


백노경이 용운휘의 어깨를 붙잡고 채근하듯이 물었다.


“연승식으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한 사람이 패할 때까지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하하.”


백노경이라고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 했을까? 단지 여태까지 그것을 입에 담지 않은 이유는 검기혼탈무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랄까. 설마하니 그 방법을 저쪽에서 거론해올 줄은 몰랐기에 백노경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고, 사저 들으시지 않았습니까? 사제라고 언제나 품속에 있을 수만은 없지요. 어떻습니까. 받아들이시겠지요?”


“.......”


둘의 모습은 백노경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가장 길길이 날뛸 거라고 생각했던 홍령은 담담히 서 있을 뿐이었고 악령화는... 그저 용운휘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할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깊은 침묵은 곧 깨어졌다.


“좋다.”


결국 벌어졌던 문파의 틈이 마침내 둑처럼 터진 것이다. 용운휘의 제안과 그것을 받아들인 악령화의 대답으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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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7) +3 24.04.02 1,386 22 11쪽
19 19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6) +3 24.04.01 1,420 24 11쪽
18 18화 강대한 사라자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5) +3 24.03.31 1,495 21 12쪽
17 17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4) +3 24.03.30 1,559 23 11쪽
16 16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3) +3 24.03.27 1,602 22 12쪽
15 15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2) +3 24.03.26 1,835 26 14쪽
14 14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1) +3 24.03.25 2,005 31 11쪽
13 13화 회주 하후악 +3 24.03.24 2,033 36 12쪽
12 12화 순청지기(純淸之氣) +3 24.03.23 2,090 40 11쪽
11 11화 위기 +5 24.03.21 2,047 36 14쪽
10 10화 습격 +3 24.03.20 2,171 40 12쪽
9 9화 운명 +4 24.03.18 2,310 41 12쪽
8 8화 비무 (3) +3 24.03.17 2,265 39 12쪽
7 7화 비무 (2) +5 24.03.17 2,285 36 12쪽
6 6화 비무 (1) +8 24.03.15 2,441 37 13쪽
» 5화 깨어진 틈 +6 24.03.13 2,665 40 12쪽
4 4화 무아시경 +5 24.03.12 2,936 37 11쪽
3 3화 파벌싸움 +6 24.03.11 3,279 36 12쪽
2 2화 새로운 육체 +6 24.03.10 3,926 42 11쪽
1 1화 그저 다른 풍경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10 24.03.10 4,815 5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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