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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인 러브 위드 문피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뭇찌
작품등록일 :
2019.04.29 13:37
최근연재일 :
2019.05.01 15:20
연재수 :
4 회
조회수 :
780
추천수 :
14
글자수 :
14,994

작성
19.04.30 17:25
조회
103
추천
3
글자
11쪽

구하지 못한 세계

DUMMY

여동생의 말에 나는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선 예쁜 여자애가 커다란 눈으로 토끼 눈을 뜨며 놀라고 있었다.

그 여자애가 나였다.


“아아악!”


목에서도 앳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자세히 보면 예쁜 남자애 같기도 했다. 원래 내 얼굴에 그녀의 얼굴이 조금 섞인 느낌이었다.

몸은 그래도 멀쩡하니 괜찮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효력은 대상의 이해도에 비례한다.’

그럼 염제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내가 점점 그녀처럼 된다는 건데, 그래도 뭐 생각해보니 싸울 때만 변신하는 거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헌터 랭킹 1위인 구세주로 변신해도 되고.

나중에 주인공들을 알게 되게 되면 주인공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지금 변신한 정도를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에겐 생각보다 좋은 스킬은 아니었겠지만, 소설 내용을 알고 있는 내게는 딱 맞았다. 일단 구세주로도 변신해봐야겠다.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의외의 결과였다.

구세주가 사실 최종 보스라는 건 그의 동료들과 그의 심복이자 회귀자인 사냥개와 제외하면 나만 알고 있을 텐데, 그런 내가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하기야 한세준은 소설 본편에서도 세계를 지배하려고만 하지 그 배경이나 동기를 전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반대로 염제는 능력을 언제 얻었는지까지 내가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긴 했다. 나는 아직 그에 대해서 잘 몰랐다.

사실 몰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그냥 죽이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가 죽일 필요도 없다.

그건 회귀자이자 ‘슬레이 더 히어로’의 주인공인 사냥개의 역할이다.

변신을 해제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안 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헌터 중 가장 강한 이 몸으로 싸워야 하는데, 이 몸에 적응할 생각을 해야지 이 몸을 놔두고 원래 몸으로 돌아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뭐야. 너. 염제 되고 싶다고 맨날 그러더니 진짜 염제 닮아졌네?”


여동생이 애매한 말투로 말했다.

맨날 나를 각성으로 놀리다가 진짜 내가 각성을 하니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내가 된다고 했지?”


반면에 내 말투에는 자신감이 막 묻어 나왔다.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두고 봐, 하는 식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실현한 거니 기분이 좋았다.


“그럼 차라리 구세주가 되고 싶다고 하든지. 그렇게 여자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이윽고 다시 나를 공격할 거리를 찾아냈는지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이 못된 여동생의 입은 돈으로 막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나한테 앞으로 그렇게 말하면 용돈 안 준다.”


그러자 여동생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용돈은 무슨 용돈! 염제 굿즈 사느라 맨날 돈 다 쓰는 사람이.”


“내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생각해봐.”


여동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금 말은 그렇게 했어도, 순간 헌터가 되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헌터가 되는 건 로또에 맞는 거와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다.

여동생도 당연히 한 번 쯤은 헌터가 돼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사는 꿈을 꿨을 것이다.

그런데 당장 나한테 밉보이면 용돈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오빠.”


여동생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처음으로 보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드디어 하얀이가 착한 여동생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제 내가 하얀이에게 사랑을 더 주면 오빠의 사랑 없이는 못 사는 오빠 사랑 여동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실제로 내 여동생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피가 이어진 친여동생은 맞으니 앞으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조절해야겠다.

잘못하다 하얀이가 내 첫키스를 노린다거나 잠자리에 들어오면 곤란했다.


“응, 하얀아. 물.”


나의 말에 여동생은 무슨 의미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얀아, 물.”


“물이 뭐야?”


아무래도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내 여동생 하얀이는 지금까지 오빠에게 라면 하나 끓여주지 않고, 물 한 번 따라주지 않던 불량 여동생이었다.

오빠에게 물을 따라준다는 개념 자체가 하얀이의 뇌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 가져다줘.”


순간, 하얀이의 표정이 귀신 들린 듯이 변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는 식의 억울한 얼굴이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고 냉장고로 쫄레쫄레 물을 가지러 갔다. 돈에 굴복한 것이다.


“여기.”


그리고 다시 돌아와 내게 물 한 잔을 건넸다.


“응.”


나는 여동생이 가져온 물을 마셨다.


“...!”


하지만 나는 입속에 들어오는 물의 맛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 침 넣었지?”


내가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겠지만, 전신의 감각이 예민해진 지금은 느낄 수 있었다.

하얀이는 아직 불량 여동생이었다.

솔직히 이건 갑자기 물을 달라고 시킨 내 잘못도 있었다. 너무 일렀다.


“응? 안 넣었는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는 하얀이의 눈동자는 너무나도 많이 흔들렸다.

역시 백화점에 가야 하나.

판타지 소설에서 백화점은 주인공이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공간이다.

무슨 꼭 국어 지문 같은 설명이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비슷한 공간으로는 동창회가 있다.

어쨌든 각성을 했으니 각성자 등록을 하러 가야겠다.


“네, 이하윤 씨. 그 성별이.”


담당 공무원이 내 얼굴과 내 청소년증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여성분이시죠?”



“남자예요.”


“아, 얼굴이 무척 예쁘시네요! 각성을 하신 분들은 원래 피부 노화가 사라지고 쌍꺼풀과 애교살이 생기지만 하윤 씨처럼 예뻐진 분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좋아하기도 애매했다. 나는 그냥 미소 지어보였다.


“그래서 능력은 어떤 능력이시죠?”


“염제랑 똑같은 화염 능력이에요.”


그러자 공무원이 웃었다.


“염제랑 같기는 힘들죠. 화염 능력이라고 다 염제는 아니니까요. 염제의 능력은 단순히 화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화염을 흡수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니까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녀의 말이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자면 이레귤러다.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헌터.

염제가 초반 악역이라고는 하지만 원래 소설 속에선 랭킹 1위다.

가지고 있는 능력도 평범한 화염 능력자들과는 달랐다.

무슨 중학생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 보고 이레귤러라고 하는 건 부끄럽긴 하지만, 세상이 이 지경이니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이 미친 세계에선 한국인의 별명이 마왕에 냉혈염제였다.

세계에 괴물이 나타나더니 사람들도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네, 그럼 이제 마력 측정을 해보죠.”


나는 공무원의 말을 따라 측정기 앞에 섰다. 소설 속에선 보통 묘사가 잘되지 않아서 어떻게 생긴지 몰랐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이렇게 생겼구나 싶었다. 의외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네, F급이시네요.”


당연하다는 듯이 F급이었다. 원래 내 스킬처럼 성장형은 이런 취급이다.


“쟤 F급이라는데?”


“염제랑 같은 능력이라더니 F급이 뭐야. 중2병이네.”


엑스트라들이 비아냥댔다.

원래 헌터물 엑스트라들이 이러는 건 알고 있지만, 한국인을 냉혈염제로 부르는 녀석들에게 중2병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화가 났다.

굳이 화를 참을 필요도 없었다.


“다 들리거든요. 제가 나중에 S급이 될지 F급으로 끝날지 한 번 내기해보죠.”


내가 말했다.

소설 엑스트라들은 바보들이라 뭔가 주인공이랑 내기를 하면 무조건 걸려든다.

차라리 욕을 먹은 게 운이 좋았다. 이렇게 내기를 통해 돈을 벌면 이득이니까.

욕값으로 1억은 받아야겠다.


“내기는 무슨 내기야. 아가씨, 화났어?”


이제 보니 근육질에 거구의 사내였다. 전형적인 엑스트라 체형이다.

진짜 강한 놈은 엄청 예쁘거나 엄청 잘생겼거나 둘 중 하나라 저런 놈들은 그냥 얼굴만 봐도 약하다.

우리가 싸우기 시작하자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남자거든요. 그럼 1억 내기하죠. 전화번호 주세요.”


“참나. 이 아가씨가 말 한마디를 안 지려고 성별까지 속이네. 그래, 뭐 1억 정도야 내기 못할 것도 없지.”


괜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남자라고는 믿기 어려운 얼굴이지만 남자 얼굴이라고 보면 충분히 남자 얼굴인데.


“그럼 저도 내기 참가할게요.”


주변에 있던 얄팍한 사내가 헤실헤실 웃으며 손을 들었다.


“저기요, 각성자분들. 공공기관에서 내기하시면 안 되거든요.”


공무원이 당황해서 말했다. 각성자들이라 이렇게 대놓고 법을 무시해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제가 전화 드릴게요. 번호 등록하세요.”


나는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등록했어.”

그리고 관리국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대박! 예쁜 애 번호 땄네요. 그리고 내기에서 이기면 1억을 담보로 뭐 이것저것 시킬 수 있겠는데요.”


“흠. 고등학생인가. 이거 참. 한 번 물꼬가 트이니 계속 운이 따라주는구만.”


“솔직히 중학생처럼 보이는데, 이거 잘못하면 범죄 아닙니까?”


“괜찮아. 각성자들끼리는! 몸보신 좀 하는 거지.”


남자들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억이 아니라 10억을 뽑아낼 걸 그랬다. 10억을 뜯어내는 건 너무한 것 같아 봐준 건데, 사람이 너무 착한 것도 탈이었다.

나는 잡생각을 거두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오, 공주님이 타셨네요.”


아저씨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공주님이냐고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설희에 흡혈희라고 불리는 헌터들도 있으니까 요즘은 그렇게 이상한 호칭도 아니었다.

나는 내 주소만 이야기 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집은 수영장이 딸린 거대한 저택.

그럼 여자들과 같이 수영도 할 수 있고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예쁜 메이드도 고용하고, 운전 기사도 고용해서 아주 편안한 삶을 즐기는 거다.

어차피 세계는 주인공이 구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튼 라디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오늘 촉망받던 신예 헌터 주공자 씨가 탑에 오르던 중에 사망했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을까?

요즘 소설들의 주인공은 대부분 회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기회’가 있다. 다음 ‘세계’가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구하지 못한 세계라면?

그렇다면 지금 이 세계에는 주인공이 없다.

이 세계에는 악역밖에 남지 않았다.

그걸 깨닫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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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가마 공략 +2 19.05.01 120 3 8쪽
» 구하지 못한 세계 +1 19.04.30 104 3 11쪽
2 각성은 이렇게 하는 거다 +3 19.04.29 228 3 11쪽
1 소설 속 엑스트라 +2 19.04.29 329 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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