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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세상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 경찰의 수사기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감자세상
작품등록일 :
2023.09.02 19:23
최근연재일 :
2023.09.29 20:1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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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
추천수 :
18
글자수 :
143,962

작성
23.09.0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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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이게 나라고?

DUMMY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머릿속을 울리는 듯 흔들어 댔고,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염태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세상은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듯 보였다.

그의 눈에 세상은 마치 안개가 짙게 낀 듯 뿌옇게 보였을 뿐이다.


“어? 어? 눈 떴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소리는 제대로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칼을 그렇게 맞았는데도 지독하게 목숨을 유지한 건가 싶었다.


“어? 진짜네! 의사! 의사! 의사 불러!”

“의사! 의사! 여기! 여기!”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소리는 선명히 들렸지만, 아직 시야는 뿌옇기만 했다.

이윽고 누군가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으로 강한 빛이 쏘아져 들어왔다.

확실히 빛이라는 것이 느껴져 염태인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반응이 있네요. 강한 반응은 아니지만 좋은 신호입니다. 지금 내 말 들립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살짝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아직은 몸의 어딘가를 움직이는 것이 너무 힘겨웠다.


“몸 움직이는 게 힘들면 눈을 깜빡여봐요. 맞으면 한 번, 틀리면 두 번. 들려요?”


염태인은 한 번 깜빡였다. 귀는 잘 들리니까.


“보이는 건 어때요? 잘 보여요?”


염태인은 두 번 깜빡였다.


“아직 잘 안 보이는군요. 그래도 반응이 있는 것은 곧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당장은 아니어도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하!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동료들과 황 반장의 목소리다.


“너라도 깨어나서 다행이다.”


반장이 말했다.

너라도? 그럼 장우혁은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걸까?

죽었다고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혼수상태인 모양이다.

만약 장우혁이 죽었다면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했을 테니 말이다.


염태인이 깨어난 첫날은 이내 다시 잠이 들면서 지나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뿌옇던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희미한 형체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염태인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정성스러운 보호를 받고, 동료와 반장의 응원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되었다.


***


“이게 보입니까?”


의사가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좌우로 움직였다.

염태인은 아직 거동은 불편했지만, 어느 정도 물체를 알아보고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선명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 회복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장 형사님의 회복을 동료분들이 무척 좋아할 겁니다.”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네?”


염태인은 순간 되물었다. 장 형사? 염 형사인데.


“뭐 궁금한 거 있나요?”

“아, 아닙니다.”


염태인은 질문을 하려다 말았다.

장우혁과 같이 병원에 들어왔다. 둘 다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자신이 깨어났다.

의사는 충분히 헷갈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따라 동료 경찰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중요한 사건이 있는지 모두 거기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의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오늘이 내가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라고 했다.

깨어난 것은 3일 전이니까 나는 4일이나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광천은 어떻게 됐을까?

염태인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끄집어 내려 했다. 광천이 마지막에 남긴 말을 기억해 내려고.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없었다. 하필 그 전에 의식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아쉬웠다. 광천은 진짜 범인이 아니다. 범인이 시킨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범인을 잡아야 한다.

서인범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광천이 나타났다. 이것이야말로 서인범이 연관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까.

물론 광천도 잡아야 하지만.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것도 괜찮습니다. 대신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의사는 슬슬 움직여 보라고 권하고 돌아갔다.

이제 염태인은 혼자가 되었다.

커다란 1인실에 혼자 남겨진 것이 의외로 쓸쓸했다.

북적거리는 경찰서가 늘 시끄럽고 싫었었는데 오늘따라 혼자 있는 게 싫었다.

이곳이 조금은 시끄러우면 어떨까 하는 이상한 바람이 떠올랐다.


시계는 오후 3시.

저녁 식사 전까지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름 체력 회복을 위해 스스로 재활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염태인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아직 완벽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걸을 수는 있다.


침대에서 발을 내리고 땅을 디뎠다. 슬리퍼를 찾아 신고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이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염태인은 손을 뻗어 침대를 짚었다. 하지만 도로 침대에 앉지는 않았다. 그대로 선 채 버텼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심호흡을 길게 했다. 땀이 흘러내렸다.

움직인다는 게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인 줄은 처음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염태인은 천천히 발을 떼었다.

정식으로 걷는 것은 힘들었다. 발 자체를 들기도 힘들었다. 발이 이렇게 무거웠던가 싶다.

대신 조금씩 끄는 것은 가능했다.


염태인은 침대 대신 링거가 걸려있는 지지대를 붙잡았다.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링거 지지대를 지팡이 삼아 붙잡고 천천히 이동했다.


1인실이 너무 크다. 한참을 갔지만 정작 목표로 삼은 곳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포기해야 하나? 반쯤 왔는데? 포기한다고 해도 반을 돌아가야 한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어머! 혼자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간호사가 놀라며 다가와 팔을 잡아 부축해 주었다.

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목표로 했던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에 가는 것을.

염태인은 손을 들어 올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다행히 간호사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아! 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드디어 화장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는 턱이 없어 들어가고 나오기는 편했다.

화장실 문이 닫혔다. 염태인은 세면대를 양손으로 짚고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땀이 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드디어 화장실에 왔다. 세수라도 할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틀었다.

그리고 화장실의 거울을 봤다.


뭐지?

염태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뭘까?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지금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장우혁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왜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장우혁인지 염태인은 이해되지 않았다.


“으어어어어----”


염태인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순간 화장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넘어지셨어요?”


간호사의 눈에 환자는 거울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척 위태로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양손을 떼고 두 발로만 선 채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니까.


간호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자는 얼굴을 다치지 않았다. 다친 곳은 복부, 옆구리 등이다.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는데 어째서 얼굴을 보면서 소리를 지른 걸까?


“다시 침대로 가요.”


간호사는 소리 지르는 염태인을 다독여 침대에 눕혔다.

소리 지르던 염태인은 그제야 조금 진정을 한 듯 보였다.

그리고 손으로 거울을 달라고 했다.


“거울이요?”


염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망설였다. 충격을 받은 환자들이 가끔 거울로 자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드리진 못해요. 대신 보여드리긴 할게요.”


나름 절충안을 말하고 간호사가 밖으로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염태인은 자신의 손을, 그리고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몸도 어딘지 달랐다.

근육이 평소보다 더 많았다. 원래 자신은 이렇지 않았다.

장우혁은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늘 몸이 탄탄했다. 지금 염태인의 몸은 바로 탄탄한 몸이었다.


[이제 깨달았냐?]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염태인이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병실 안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


[정신 차려. 똑똑한 놈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멍청해?]


장우혁의 목소리다. 머릿속에 그대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장우혁이다.


“으어어어 어어어.”


하지만 염태인은 아직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생각만 해. 생각만. 그래도 돼.]

‘생각?’

[그래. 거봐 되잖아.]


맙소사. 염태인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신은 장우혁과 대화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정신 분열의 하나인가 생각해봤다. 자신이 사고로 큰 충격을 받아 자아가 분열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천천히 진행되는 전조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어어에 이어이?”

[생각으로 하라니까. 알아듣는다고. 병신같이 말하지 말라고.]


장우혁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어떻게 된 거냐고.’


염태인이 물었다.


[나도 몰라.]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허무했다.


‘몰라?’

[그래. 몰라. 나도 깨어보니까 이 상태였어. 문제는 내 몸을 내가 지금 통제할 수 없다는 거야.]


생각해 보니 이상하긴 했다.

이 몸은 분명히 장우혁이다. 그런데 정작 염태인이 장우혁의 안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장우혁은 먼저 깨어났음에도 몸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너······ 빨리 내 몸을 나한테 넘겨.]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장우혁의 말에 염태인이 물었다.


[너 몰라?]

‘난 깨어난 지 얼마 안 됐어. 네 몸에 있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라고. 이 몸이 나라는 게 얼마나 충격인지 모를 거다.’

[무슨 소리야? 내 몸이 어때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맨한테.]

‘뇌까지 근육이라서 문제지.’

[이 새끼가······]


장우혁이 화를 냈다. 하지만 화만 낼 뿐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후- 어쨌든 방법을 찾아야 해.]

‘맞아. 그리고 범인도 잡고.’

[잡아야지.]


둘은 의외로 의기투합했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염태인은 졸음이 몰려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야! 이제 대화를 좀 해볼 만한데 왜 이래?]

‘안돼. 나 졸려. 너무 무리해서 움직였나 봐. 젠장. 몸을 차지한다는 게 이런 문제가 있었어.’


염태인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손거울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잠에 빠진 염태인을 보고는 이불을 덮어준 후 조용히 나갔다.


장우혁은 안타까웠다.

이제야 대화를 할 만했는데 이렇게 빨리 정신력이 소진되어 버리다니.

게다가 몸을 어떻게 되찾는지도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빨리 몸을 찾아 범인도 잡고, 원래의 장우혁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였다.


[젠장. 상황 엿 같네.]


***


잠에서 깨어난 염태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형사 동료들과 황 반장을 봤다.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염태인은 몸을 움직여 봤다. 잠들기 전보다는 확실히 몸을 움직이는 데 좀 더 수월했다.

염태인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아직 말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일어났냐?]


먼저 장우혁이 말을 걸었다.


‘그래. 그런데 왜 다들 표정이 어두워?’

[광천을 놓쳤단다.]

‘아.’


그러면 우울할 만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광천을 직접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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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괴가 아니다 23.09.11 6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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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복귀합니다 23.09.07 71 1 11쪽
» 이게 나라고? 23.09.06 68 0 12쪽
4 함정 23.09.05 75 1 12쪽
3 교차살인 23.09.04 84 1 13쪽
2 누가 맘대로 사건 종결이래? 23.09.04 93 2 12쪽
1 시작을 여는 사건 23.09.04 148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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