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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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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0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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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1)

DUMMY

“지키고 있는 기사만 셋이었고 병사는 스무 명이 넘었다! 다 죽어가는 죄수 하나 감당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


노인의 시퍼런 일갈에 장교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노인이 이처럼 화를 내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회의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는 이런 노인의 분노를 납득할 수 있었다. 노인의 이름이 마누앙 니바르토이며, 간밤에 모습을 감춘 죄수 또한 니바르토의 이름을 가졌던 자였으니까.


“총리님, 진정하십시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자가 홀로, 그것도 비무장인 상태로 감옥을 탈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이는 분명 외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시금 마누앙의 마른 입술이 벌어지기 직전, 란다 가슈펠라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문책을 받고 있는 당직사관이 그와 마찬가지로 금빛 머리칼에 새빨간 눈동자를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 마즈다성의 내성만 하더라도 일만이 넘는 병력이 주둔 중입니다. 쥬넨 경 혼자서 탈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오로메 또한 란다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선다. 그러나 돌아서는 마누앙의 먹색 눈동자는 더욱 일그러져있었다.


“그에게 경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마시오! 추악한 배신자에다 반역죄인일 뿐!”


“.......실례했군요.”


오로메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마누앙은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아직 떨리는 눈썹 가에 스민 분노는 말끔히 씻어내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총리의 목소리는 한층 차분해져 있었다.


“3군단과 브린타이나의 전투가 마무리되자마자 해당 정보를 제공했던 죄수가 탈출. 이는 분명 우연이 아닙니다. 투항 자체가 처음부터 계획되어있었다는 뜻이겠지요. 누구의, 무슨 의도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죄인이 두 번이나 조국을 배신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죄인이라는 단어는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겠다는 마누앙의 의지였을까. 그의 고갯짓으로 허락을 받은 당직사관은 마침내 사색이 된 얼굴로 회의실에서 물러날 수 있었고, 총리의 시선은 상석에 앉아있는 로빈을 향한다.

“폐하, 수색 범위를 확대하고 국경의 감시를 강화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다만 많은 병사들을 국경으로 배치하면 군사도발로 간주될 수가 있으니, 근위대장이 직접 인원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하세요. 엘리자베스가 도움이 될 겁니다.”


“예.”


짤막하게 예를 취한 뒤 드렌턴은 곧바로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번잡함이 사라지자, 마누앙은 완벽하게 평상시의 표정과 어조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그에 앞서, 이번 이스누시아 원정군 총사령관이자 국왕대리기사, 나이트 마제스티를 모시겠습니다.”


왕당파에게선 박수, 귀족파에게선 싸늘한 시선, 그리고 시민당에게선 뒤섞인 반응을 받으며 지나가 회의실의 중앙으로 사뿐한 걸음을 옮긴다. 무장은 없었지만, 남색제복과 함께 깔끔히 금빛 머리를 묶어 올린 그 모습은 왕비라기보다는 한 명의 군인에 더욱 가까웠다. 자리에 서며 로빈과 눈이 마주친 그녀였지만, 얇은 미소만이 그 둘 사이를 오고갈 뿐이었다.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먼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낸 것은 란다였다.

“모두 원정보고서를 보셨겠지만, 이번 이스누시아 원정은 주목표였던 철광석확보에 실패하였습니다. 아니, 실패를 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이스누시아에 철광석은 남아있지않은 상태였지요. 사전에 상세히 파악할 수 없는 정보였으니,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허나, 어째서 여왕께선 이 정보를 알게 되셨음에도 원정을 지속하셨던 겁니까?”


그의 질문에 귀족당의 의원들은 물론이고 아델을 포함한 시민당의 의원들까지도 고래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한다.


“보고서에도 명시된 내용입니다만, 주목표에 상응하는 가치와 위협을 동시에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대답하는 지나의 목소리는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밝았다.


“그 가치라는 것이 ‘덜린’이라는 종족의 해방, 위협이라는 것이 어윈 아이언하트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지요?”


“어윈 아이언하트는 과거 제국의 군단장심사를 받았을 정도로 명망이 높은 존재입니다. 비록 제국중앙군부와의 마찰로 인해 변방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이스누시아로 발령이 난 상태였지만, 그 정도 되는 장군을 계속해서 방치했다가는 언젠가 마즈다힐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제는 이곳이 우리 카나반공화국방위의 중요거점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스누시아와 어윈 아이언하트는 반드시 평정해야 할 세력이죠.”


“의회에서 이번 원정을 승인해준 것은 이스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아닌 전략적, 경제적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이 중심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음에도 의회에 통보조차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원정을 지속하셨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란다 경도 참전하신 경험이 있으시니 잘 아실 텐데요? 전황은 유동적입니다. 선조치 후보고가 되어야지, 어떻게 그걸 일일이 다 허락을 받으면서 움직이겠습니까? 잠깐 멈칫하거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 끝나버리는 게 전투이며, 그 전투 하나로 양상이 뒤바뀌는 게 전쟁입니다.”


정규군 경험이 취약한 란다를 뒤흔들기 위한 지나의 미소였지만, 란다의 붉은 눈동자는 쉽게 흐트러질 생각이 없었다.


“전력은 아군이 압도적이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후퇴 시에 추격과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셨습니까?”


“상대가 어윈 아이언하트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좌천된 적의 장군을 상당히 고평가하시는군요.”


“기사는 기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이제 ‘적의 장군’이 아닙니다.”


오고가는 목소리가 과열되기 직전, 란다가 자리에 앉으며 한발 물러선다. 그런 그를 대신하여 손을 들고 나선 것은 시민당의 대표, 아델이었다. 어두운 정장에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이었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는 찬란함은 직위와는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앞서 란다 경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철광석의 채굴권과 병기제조, 유통권을 약속받았던 상회에서의 반발이 거셉니다. 약속된 바를 믿었기에 이번 원정에 보급품을 지원하거나 사병을 내어준 자들도 있고, 이미 마즈다힐에 유통망을 신설하여 준비를 마친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한 보상안은 있는 겁니까?”


“고갈이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아직 이스누시아 지역에 모든 철광석이 고갈된 것은 아닙니다. 이는 덜린족으로부터 확답을 받았고, 여기에 어윈 아이언하트가 제국군부와의 협의 없이 별도로 제작, 보관 중엔 연철병기들도 있으니, 어느 정도 보상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존 예상에 비교하면 어느 정도입니까? 제작, 유통할 수 있는 병기의 수준이?”


“1할입니다.”


“.......1할.”


아델은 물론이고, 곁에 있던 시민당의원들이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하지만 지나는 이들의 한숨이 불만으로 진화되는 것까지 용납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완벽한 보상이 되지 못함은 알고 있어요. 이에 대해선 덜린족과 협상하고 있는 바가 있으니, 의원님들께선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지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족파 니바르토 가문의 대표이자 마누앙의 사촌여동생이기도 한 폴론 니바르토가 손을 든다.


“아까 이스누시아산 철광석 확보에 상응하는 가치로 덜린족을 언급하셨는데,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요?”


“네.”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시죠.”


“기밀입니다.”


술렁이는 회의실. 지나와 로빈의 표정만이 여유를 유지하고 있다.


“기밀이라니? 군사기밀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원정의 본래 목표에 준하는 가치를 지녔다고 말씀하시면서 밝힐 수는 없다니, 누가 이걸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숨을 고르고 있던 란다가 거칠게 공격을 재개한다. 그러나 지나는 굳건했다.


“비취인가 여부로 따질 단순한 군사기밀이 아닙니다. 아직은 계획단계이므로, 폐하와 검성, 그리고 각 당대표님들과의 협의를 마치는 대로 의회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협의할 대상이 아닙니다.”


마치 영력이라도 실린 듯한 지나의 목소리. 그 알 수 없는 위압감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려던 란다도 화살의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헌데 그 중요한 기밀의 중심에 있는 덜린족은 왜 함께 복귀하지 않은 겁니까? 게다가, 어째서 투항한 적을 무장해제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그것도 지휘권까지 돌려주고 이스누시아에 남기고 온 것입니까? 단순한 아량이라기엔 너무 무모하지 않습니까?”


아델도 손을 들어 란다의 의견을 거들고 나선다.


“저도 란다 경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아무리 어윈 아이언하트가 제국중앙군부와 마찰이 있었다고는 해도 군단장의 직위에 근접했던 인간이잖습니까? 만약 그가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단으로써 배신을 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 아닌가요?”


“아, 그건 걱정 마요. 지휘권은 어윈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줬으니까.”


천진난만한 지나의 대답. 란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그러니까 더더욱 문제 아닙니까! 잘 알려지지도 않은, 한낱 부관이었던 자에게 지휘권을 양도하다니요! 어윈은 이를 굴욕으로 생각하고 더더욱 반기를 들려고 할 겁니다!”


“네, 뭐, 그럴지도 모르죠.”


“무슨-”



“급보입니다!”

회의실의 거대한 문이 벌컥 입을 벌림과 동시에 통신병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을 휘감는다. 공화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의 시선은 한꺼번에 받았지만, 병사는 땀을 훔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이스누시아의 북동쪽으로 제국군이 접근 중! 그 숫자는 대략 일만!”


“제국군이?”


크게 술렁이는 회의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로빈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이스누시아에서 추가적인 보고는 없나?”


“적이 접근 중이라는 전문 이후엔 반응이 없습니다! 교란은 아닐 거라 판단됩니다만, 정확한 상황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우려했던 상황이 바로 이런 겁니다, 나이트 마제스티!”


사심은 곁들이지 않은, 순수한 비난의 목소리가 란다에게서 튀어나온다. 그에 지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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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래도 되는 거냐?”


“대령님의 선택이십니다. 아니면, 확신이 부족하신 겁니까?”


“흥, 그럴 리가! 이 굴욕을 갚아줄 수만 있다면 나머지 한쪽 눈이라도 내어줄 수 있어!”


욕지거릴 씹으며 안대가 대신 뒤덮고 있는 자신의 오른쪽 눈을 팡팡 두드리는 어윈. 하지만 줄리아는 별다른 반응 없이 가만히 망루 밖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입이 열린 것은, 성 앞을 물들이던 먹색의 물결이 멈춰선 직후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내 이름이 오명으로 얼룩질지언정 후회는 없어. 굴욕은 또다른 굴욕을 설욕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걸음, 난간으로 다가서는 줄리아. 덜린족의 도움을 받아 재건한 성벽이었지만, 여전히 초라한 본질만큼은 속일 수가 없는 성벽이었다. 그런 성벽 밖으로 군집한 일만 제국정예병의 위용은, 가장 최근에 맞이했던 군세에 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기세. 짧은 한숨을 삼킨 뒤, 줄리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른다.


“성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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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보리스는 벤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와 그다지 분위기가 바뀌지 않은 채였다. 여전히 많은 성문, 여전히 시끄럽고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질척한 거리. 유일하게 바뀐 것이라곤, 시장이자 사령관의 자리에 그라우치가 아닌 자히르가 앉아있었다는 점.


“볼 것도 놀 것도 없지만 편히 쉬다 가시지요, 검성님.”


도시의 성문을 지나치며 자히르가 벤을 향해 히죽 웃는다. 여전히 매력적인 미중년의 미소였지만, 그의 혀에 담긴 경칭은 노골적인 비꼼의 의도를 담고 있었다. 물론 벤이 이를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이 농담에 호응해줄 체력도, 정신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뜨끈한 물로 몸을 씻고 새하얀 침대 위에 파묻히는 것. 이 두 가지만이 그의 이성을 이끌고 있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북부사령관. 괜히 예정에도 없던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함께 피를 뒤집어쓴 전우 아닙니까. 게다가 이런 몰골로 본국에 귀환했다가는 패전이라도 한 줄 착각할 겁니다.”


벤은 자히르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통합군의 상태는 처참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모든 차량과 말이 중상자들의 수송을 위해 차출되었기에 병사들은 붕대와 목발에 의지하여 행군을 이어와야 했다. 재정비를 하고 가도 괜찮다는 크리스와 디미르의 만류에도 벤이 빠른 복귀를 강행한 탓이었다.


“패전이나 다름없죠, 뭐. 자히르 경, 당신이 부름에 응해주지 않았다면 이거보다 심하게 박살 났을걸요.”


“뭐, 그러기 위한 북부군아니겠습니까.”

다른 이가 들었다면 단순한 겸손의 말이었을 터. 그러나 벤은 말을 멈추고 자히르의 미소를 바라본다. 자히르 또한, 어째서 검성의 먹색 눈동자가 진지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브린타이나와의 동맹과, 팔루뎀의 양도, 그리고 북부군의 중심이었던 그라우치 장군의 실각. 게다가 통합군이라는 새로운 중앙군의 재편성까지. 이 모든 과정 중에서도 존재의미가 흐려진 북부군을 유지시킨 것은, 언젠가 지금처럼 의회의 뜻과는 별개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대가 우려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그라우치 장군의 후임으로 부임한 ‘자히르 드라흐마’가 과연 ‘검성’의 뜻대로 움직여줄 인물인가-하는 의문. 그걸 확인하기 위해 가장 절박한 시기에 맞춰 저에게 손을 내민 거 아닙니까?”


“.......”


이 이상 말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부대의 진입이 더뎌진다. 벤은 결국 다시 말을 몰아 성내로 진입했지만, 그의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표정과 눈동자는 여전히 자히르의 미소를 향해 있었다.


“폐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히르 드라흐마는 로빈슨 미트라블루스라는 ‘남자’의 적일지는 몰라도 ‘카나반공화국’의 적은 아닙니다.”


“그걸 증명하려고 제 부름에 응하신 건가요?”


“물론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당신을 죽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판단의 근거는요?”


“글쎄요.”


역시 이 남자는 군인이라기보다는 귀공자라는 느낌이 더욱 강한 사람이다. 벤은 특별히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북부군이라는 존재는 분명 객관적으로 볼 때는 애매합니다. 그 본래의 역할, 존재의의 모두가 빈약해졌죠. 하지만 그렇기에 북부군만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지는 겁니다. 아군도 신경 쓰지 못하는 존재를 어떻게 적군이 신경을 쓰겠어요? 저는 북부군 전체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예비대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어요.”


“예비군은 지금도 아르다르에 있지 않습니까.”


“아뇨, 그런 예비군 말고....... 뭐랄까, 전투가 아닌 전쟁의 변수가 필요한 겁니다.”


“변수라, 그 입으로 직접 들으니 신선한 단어로군요. 즉, 간단하게 검성님의 비공식직속군대가 되어달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까진.......”

반사적으로 손을 내저은 벤이었지만, 곧바로 그만둔다. 눈앞의 남자는 격식 따위로 속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님을 알았으니까.

“.......뭐, 그런 셈이죠.”


“제가 거부한다면?”


“거부하실 건가요?”


벤의 즉각적인 되물음에 자히르는 호쾌하게 웃는다. 마지막까지 둘 사이에서 흐르던 미묘한 긴장감과 눈치싸움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장군!”


벤과 자히르가 도심으로 접어들자, 한 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예를 취하며 다가온다.


“뭔가?”


“본국에서 왔습니다.”


병사가 내민 것은 하얀 봉투. 비문용 봉인도 걸려있지 않은, 단순한 전문용 인장이었다. 자히르는 짤막하게 벤과 눈을 마주친 후, 망설임 없이 인장을 뜯어 종이를 펼쳐 들었다.


“.......왕립주교회에서 온 요청서입니다. 당신의 신병을 확보하고, 아르다르로 출석시키라는군요.”


“왕립교회요?”

벤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진다.

“하긴 요새 조용하다 싶었다. 그 늙은이들은 위대한 세뮈엘님의 말씀을 잣대로 종교재판을 여는 거밖엔 존재감을 드러낼 방법이 없는 건가?”


지겹다는 듯이 진저리를 치며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는 벤.

그러나

전문을 마지막까지 읽은 자히르의 표정엔 미소가 사라져있었다.


“검성, 종교재판이 아닙니다.”


“예? 그럼 뭔데요?”


벤에게 전문을 건네는 자히르. 그리고 벤이 정갈한 글자들을 탐독하기도 전에,

자히르는 짤막하지만 확실하게

그 내용을 요약하여준다.




“당신은 전쟁범죄로 고발당했습니다.”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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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0) +10 16.10.18 421 13 19쪽
252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9) +10 16.10.13 480 15 17쪽
251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8) +8 16.10.08 475 12 18쪽
250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7) +12 16.10.03 548 14 16쪽
249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6) +5 16.09.28 470 15 16쪽
248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5) +10 16.09.23 430 13 17쪽
247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4) +8 16.09.18 507 15 19쪽
246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3) +10 16.09.13 511 13 18쪽
245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2) +10 16.09.08 458 14 13쪽
244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 +7 16.09.03 511 1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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