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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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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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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09.2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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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7쪽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5)

DUMMY

“자, 제 기억이 맞다면, 현재 브린타이나군과 3군단의 대치상황은 대충 이래요.”


혀끝에 담긴 불확실성이나 겸손한 태도와는 달리, 벤이 새롭게 그려낸 전술지도는 한번 훔쳐본 결과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 정교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보고 온 거야?”


갑작스러운 소집에 달려와 벤의 창작물을 지켜본 고도의 감상. 벤은 대답하기 전, 거대한 탁자 위에서 내려오기 위해 그녀로부터 목발을 건네받아야 했다.


“브린타이나 지통실에서.”


“.......뭐어?”


“워낙 눈치가 빠른 인간을 상대하느라 열 올리는 척을 좀 해야 했지.”


“.......이걸 잘도 모두 기억해왔네.”


이쪽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지형지도와 대조해보아도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없다. 거기에 대치하고 있는 전선의 상황, 왕국군의 배치현황과 규모, 병종, 보급선의 구성까지. 또한, 브린타이나가 ‘정보원’으로부터 제공받은 3군단의 전시편제와 병력현황도 거대한 그림에 모두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공백에 빼곡히 적혀있는 주석은 지도에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벤이 직접 계산한 적군의 예상 이동 경로와 예상 타격지점, 즉, 그가 스스로 구상해본 3군단의 작전계획이었다.

선임전투마법사라고는 하나 정규군사교육이라곤 훈련소에서 받은 것이 전부인 고도는 이 방대한 정보에 감탄만 품을 뿐이었지만, 토우칸의 눈은 그렇지 않은 모양.


“이, 이...건....... 조,조금 이상...하군요.”


“아, 토우칸, 역시 알아보겠어요?”


벤은 두개골을 까딱이며 딴청을 피우고 앉아있는 오캄푸스의 로브 소매에 팔 전체에 얼룩진 잉크를 몰래 닦아내며 웃는다.


“예, 예에. 브린...타이나와 3구...군단 모두 보란 듯이 취약점...을 전,전선에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제대로 파고들면 고착된 전선을 붕괴시킬 수 있는 고지와 요충지를 서로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있죠. 마치 상대방이 먼저 본격적으로 움직여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가 전투에 참전하기 전부터 계속 유지되고 있었어요. 브린타이나는 3군단의 모든 상황을 낱낱이 알고 있고, 3군단은 브린타이나군에 비해 전투력이 월등합니다. 서로 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 패를 놓칠까 봐 먼저 움직이길 꺼리고 있는 거예요.”


“그 와중에 우리가 난입한 거네.”


카니아의 짧은 정리에 벤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의 등장은 브린타이나가 미소를 짓고 3군단이 경계를 하게 만들었어요. 처음에 제가 이런 상황을 읽지 못하고 무작정 확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3군단을 도발했잖아요. 이에 브린타이나는 우리를 기점으로 3군단이 먼저 움직여주길 기대했고, 반대로 3군단은 함정을 파서 우리의 힘과 의도를 재보려고 한 거죠. 우린 그 사이에 껴서 놀아난 거고.”


푸짐하게 넉살좋은 토우칸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 연신 자신의 목을 쓰다듬고 있는 카니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카니아는 전술지도를 향해 손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연다.


“ ‘미소’는 아직도 우리가 먼저 놈들을 끌어내 주길 바라고 있는 거야?”


“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죠. 아마 저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이번 전투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무겁고 치명적입니다. 우리야 표면적으로는 이번 참전을 통해 동맹의 기틀을 굳게 다진다는 정도의 대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브린타이나랑 3군단은 달라요.”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벤은 손가락으로 지도 위의 두 장소를 차례대로 가리킨다.

“브린타이나의 경우에는 여전히 내전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죠. 반란에 가담했던 지방귀족이나 군벌들에게 관대하다 싶을 정도의 처분을 내려서 일단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아직 선대 검성인 블라르 트리스탄테가 3군단장 카이우스 드레브냑과 맺은 밀약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자가 많아요. 이 상태에서 3군단과 화평을 맺으려고 했다가는 역풍을 거세게 맞을 테니, 제대로 블라르의 잔재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카이우스의 경우에는, 블라르와의 밀약을 통해 브린타이나 내부에 영향력을 키우려고 했던 시도가 실패한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불편했던 제국중앙군부와의 관계가 더욱 틀어져 버렸죠. 지금 공석으로 남아있는 좌검성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독단적으로라도 성과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에요. 즉, 브린타이나도 3군단도 이번 전투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라고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문제에요.”


“그럼 우리가 ‘미소’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까?”


잠자코 있던 오캄푸스가 푸른 안광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곧, 잉크로 얼룩진 자신의 소매를 보고 두개골을 갸웃하며 턱뼈를 매만져야 했다.


“네. 하지만 전황을 빠르게 전개시켜야 한다는 제 기존 입장엔 변함이 없어요. 브린타이나와 제국군 모두를 움직이게 만드는 게 바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벤의 단호한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그의 입술로 모여든다. 그 모두를 대표하여 질문을 던진 것은 고도의 몫이었다.


“어떻게?”


“간단해.”

보기 드물면서도, 누군가에겐 익숙한 벤의 얇은 미소. 고도는 그 미소를 보고 ‘또냐’라며 작은 한숨을 내뱉는다.

“최선을 다해 쳐발리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벤은 참 지독한 것 같습니다.”


해가 떴음에도 아직 모습을 감추지 못한 새벽이슬이 소매를 적시고 있는 아침. 이제는 느껴지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오캄푸스는 크게 턱을 벌려 선선한 공기를 받아들인다. 그와 똑같은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고도는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마스터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뇨, 흉을 보려는 게 아니에요. 자신의 고집과 생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갈지 알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지휘관이 카나반에는 필요했습니다. 저에게 아직 살이 붙어있던 시절에 만약 저런 사람이 정계에 있었다면, 지금 세상은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여전히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동시에 뭔가....... 조금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전투용 로브를 고쳐 입으며, 고도가 오캄푸스의 안광을 향해 바닷빛 눈동자를 빛낸다.


“이질감?”


“우리 왕님도 그렇고 벤도 그렇고, 이제 이십대 중반의 어린 영혼들입니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시간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에서 고물을 주워다 팔면서 보냈어요. 그런데 지금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보세요. 난세에 제대로 물들기도 전에 그 급류에 휩쓸리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십 년 동안이나 이 판세에서 힘을 키워온 존재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훌륭하게 말이에요.”


“뭐어, 로빈도 그렇고 벤도 그렇고 혼자서 싸우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도 옳습니다만, 벤을 지켜보고 있으면 뭔가-”


“아, 적이다.”


평화롭던 숲의 나뭇잎들이 먹색의 물결로 인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캄푸스와 고도가 서있는 자리, 5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전진기지였던 바로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제국군이 몰려온 것이다.


“역시 3군단. 대응이 빠르군요.”


“마스터,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아, 그렇죠.”

눈동자를 대신하고 있는 푸른 안광이 더욱 크게 빛을 발한다. 동시에, 뼈밖에 없던 손가락 위로 붉은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한다.

“침묵을 사랑하는 아가씨, 교란을 부탁해요.”


빠르게 성벽을 넘어 뛰어내리는 그림자. 그러나 오캄푸스의 말에 반응한 것은 고도가 아니었다.


“이리스! 조심해야 돼!”


마치 딸아이를 전장에 내보내는 심정으로 소녀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치는 고도. 그에 이리스는 해맑은 얼굴로 붕붕 손을 흔들더니, 그대로 숲의 품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영력이 느껴지지 않는 소녀에게 숲은 그야말로 마음껏 활개 칠 수 있는 놀이터나 다름없다. 물론, 쓰러지는 건 흙더미가 아니라 제국의 병사들이겠지만.


“자, 그럼 지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볼까요?”


만약 그의 얼굴에 근육이 남아있었다면 분명을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고도는 확신한다. 숲의 하늘에서 폭발하며 수많은 파편을 내리쏟는 오캄푸스의 마력과 함께,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긴다.


급조된 기지와 급조된 성벽. 그 규모는 간신히 목책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에 비해 몰려오는 제국군의 기세는 싸늘하면서도 치명적으로, 30분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벤은 이런 3군단의 규모와 움직임, 그리고 속도를 모두 예상하고서 이들을 이곳에 배치한 것이었다. 방어와 사수가 목적인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크악!”


메마른 비명과 함께 또 한 명의 병사가 목이 부러진 채 나뭇가지 위에 내걸린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과 언덕 위에서 날아드는 총탄들은 전투마법사들이 전력으로 보호막을 전개한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병사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이유를, 선봉의 지휘를 맡은 안톤 드레브냑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기사들은 앞으로! 적의 매복이다! 전진속도를 늦추지 말고 전진한다!”

죽어 나가는 것은 일반 병사들뿐이었지만, 보이지도 영력이 느껴지지도 않는 미지의 적은 효과적으로 선진의 발을 더디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안톤은 이 정도로 망설일 지휘관이 아니었다.

“방패를 세워라! 대열을 흩트리지 마라! 적은 소수다!”


3군단의 병사들은 단단했다. 안톤의 명령에 따라 마치 한 몸처럼 덩어리가 되어 숲을 헤치며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리스의 견제도 그에 따라 힘을 잃고 있었다. 바로 옆의 동료가 목이 부러져 나뒹굴어도 병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들은 빠르게 숲의 그림자를 벗어나 기지로 이어지는 비탈길로 접어든다. 그들의 앞에 놓인 것은, 낮은 성벽과 그 위로 통상적인 반격을 해오는 카나반의 병사들.





“우리 차례네요.”

접근하는 검은 물결을 확인하자마자 오캄푸스가 고도를 돌아본다. 그에 고도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리고서 고개를 끄덕일 뿐.

“성문을 여세요!”





“놈들이 요격합니다!”


“뭣?”

안톤이 미간을 찡그리며 앞을 바라본다. 부관의 말대로, 전진기지의 문이 활짝 열리자마자 카나반군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이 열세인 군세다. 그런데 수성은커녕 요격을 나온다?

안톤의 고민은 짧았다.

“망설이지 마라! 이대로 밀고 들어간다!”


밀고 올라가는 제국군과,

쏟아져 내려오는 카나반군.


빠르게 간격이 좁혀지고,

두 군세가 충돌하는 순간,


“!”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력의 폭풍이 언덕길에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제국군 전투마법사들의 필사적인 마력장벽을 통해 그 직접적인 영향을 피해낼 수 있었지만, 외곽의 초원과 나무들은 그대로 화염폭풍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안톤의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악의의 마력, 알마네그로의 창. 안톤은 재빨리 영력이 실린 검을 휘둘러 치명적인 악의를 쳐낼 수 있었다.


“훌륭한 감각입니다. 과연 드레브냑의 이름답네요.”


“........”

충돌과 함께 곳곳에서 시작된 교전과 비명. 그러나 이런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긋한 목소리를 향해 안톤이 고개를 돌린다. 그 직후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혹감이었다.

“망자.......?”


“왜, 놀라셨습니까?”


뼈끼리 부딪치는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오캄푸스의 손이 춤을 추듯 흐느적거린다. 그 직후 안톤의 발아래에서 솟아오르는 화염과 맹독의 구름. 하지만 안톤은 오히려 망자를 향해 도약하여 그 공격을 피해낸다.


“저번 교전에서 우리 기병대를 묶어둔 마법사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바로 당신인가?”


안톤의 검은 오캄푸스의 소매를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뼈밖에 없는 데다가 경량화마법까지 걸어둔 탓에 오캄푸스의 움직임은 기사 못지않게 날렵해져 있었다.


“그게 바로 접니다, 하핫!”


“하지만 현명하지는 못하군. 당신 정도 화력을 지닌 마법사가 후방이 아닌 전방에서, 그것도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정면대결을 시도하는 건가? 마법사가 기사를 상대로 결투를 벌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시도인지 잘 알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니까요!”


“그럼 뭐지?”


“하핫! 저는......., 저는......., 음.......,”

동작마저 멈춘 긴 침묵. 그 끝에서, 오캄푸스는 바로 뒤에 있는 고도를 향해 두개골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 고도. 저는 지금 뭐죠?”


“시끄러워요. 저도 몰라요, 마스터.”


주문 영창을 마친 고도의 손끝에서 붉은 반액체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눈동자는 바닷빛의 총명함 대신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국군의 장교였기에, 안톤은 그 정체를 빠르게 간파해낸다.


“고위혈마법이다! 전투마법사들 전방으로!”


하지만 그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고도의 마력들은 뿌리처럼 언덕의 바닥에 번지며 퍼져나가 제국병사들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그녀의 혈마력은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몸에 남아있는 의지에까지 침식해 들어간다.


“끄아악!”


동시에 울려 퍼지는 비명들. 3군단의 병사들은 당황한다. 방금 전까지 함께 싸우고 있던 동료들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생명이 아닌 생명. 고도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싱싱한 망자를 이용하는 거대한 인형극이었다.


“내 병사들을 능멸할 셈이냐!”


안톤의 목소리와 검엔 무게가 깃들어 있었다. 분노와 영력이 함께 스며있는 검이 고도를 향해 도약했지만, 역시나 그의 발을 붙든 것은 망자의 웃음소리였다.


“당신들이 아르바티앙에서 저지른 짓은 까먹으셨나 보네요?”


“우리 3군단의 명예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같은 취급 마라!”


“그러시겠지.”


이번엔 네 개의 창이 연속으로 안톤의 사고를 꿰뚫는다. 그러나 그는 허무하게 붙들렸던 저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체를 향한 두 개의 창은 도약으로 피해내고, 정면을 향해 오는 나머지 두 개의 창은 영력의 전개만으로 빗겨낸다. 예상치 못한 속도와 접근에 오캄푸스가 화염기둥을 소환해보지만, 안톤의 검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


화염이 걷히면, 저 망자의 두개골을 꿰뚫고 있는 자신의 검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안톤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의 장벽 너머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각난 두개골이 아니었다. 그 어떤 목소리나 기척도 없이, 조용히 검을 막아서고 있는 소녀의 눈동자. 마치 불타는 화염과 시퍼런 얼음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듯한 소녀의 시선에 안톤은 잠시 의식을 빼앗겼고, 소녀는 그사이 맨손으로 자신의 어깨에 박힌 검을 빼내어 물러선다.


“퇴각합니다!”


안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오캄푸스의 목소리가 전장을 따라 흐른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좌우로 갈라져 언덕의 후방을 향해 물러서는 카나반의 병사들. 안톤은 그 파도에 섞여 빠져나가는 망자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망자의 등짝을 냅다 갈기고 있는 혈마법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호흡을 정돈하고 안톤에게 다가오는 부관. 그에 안톤은 크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명령을 내린다.


“기지를 점령하고 부대를 전진배치 한다. 놈들의 후퇴에서 너무 진한 의도가 느껴져. 필시 우릴 끌어들이려는 수작이겠지. 장군님께 전문을 보내라. 이대로 방어를 강화하고 명령을 기다-”


“대위님! 서쪽의 로프스키 대위에게서 전문입니다! 전진기지가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뭣?”


안톤이 마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두 명의 통신병이 재차 그의 앞으로 다가선다.


“동쪽의 야쉰 대위에게서 보고! 적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기지가 점령당할 위기입니다!”


“척후대로부터 보고! 연대급의 적군이 서쪽의 전선을 우회하여 접근 중!”










이제야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태양.

그리고 그 태양빛 아래 모든 숲의 정경을 눈 아래 담을 수 있는 고지 위에서, ‘변수의 검성’이 짧은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짓는다.



“자, 어디 다시 한 번 미끼를 물어보시지.”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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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8) +8 16.10.08 475 12 18쪽
250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7) +12 16.10.03 548 14 16쪽
249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6) +5 16.09.28 470 15 16쪽
»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5) +10 16.09.23 431 13 17쪽
247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4) +8 16.09.18 507 15 19쪽
246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3) +10 16.09.13 511 13 18쪽
245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2) +10 16.09.08 458 14 13쪽
244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 +7 16.09.03 511 1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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