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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전설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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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7 18:35
최근연재일 :
2023.10.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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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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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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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눈도장 (2)

DUMMY

숙소는 한밭야구장 근처의 맨션이었다.

집을 못 구한 용병이나 젊은 선수를 위해 구단에서 준비한 곳이었다.

본래 2인 1실이었지만 시범 경기에는 많은 선수가 올라와 방이 부족했다. 그들은 간이침대를 가져와 셋이 한 방을 사용했다.


1군이라고 특훈을 쉴 수 없었다.

모두가 잠든 자정 무렵, 민재는 람파스를 호출해 중간계로 올라갔다.


복싱의 스텝은 사다리를 이용한 훈련만 11가지인 터.

반사신경과 근력, 체력 훈련까지 끝내고 나면 녹초가 돼 쓰러졌다.


‘복서는 감량까지 하면서 이걸 다 한다고? 기술 훈련은 하나도 안 한 게 이 정도라니. 복싱을 안 해서 다행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테니스와 골프도 비슷했다.

어떤 분야든 정점에 오르기 위해선 재능에 상상을 불허하는 노력이 동반돼야 했다.


다음날 10시.

배팅 장비를 챙겨 들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새벽에 하는 타격 훈련은 1군이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두 번째 방문이었다.


뜻밖의 얼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재야, 반갑다. 거봐. 내가 뭐랬어? 1군에서 보자고 했지?”


장수찬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잘됐다. 1군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낯익은 얼굴을 보자 어색했던 게 풀렸다.

게다가 장수찬은 1군의 베테랑답게 발이 넓었다.


“민재는 1군이 처음이지? 인사해. 이쪽은······.”


그가 다른 선배들과 훈련 보조요원들을 차례로 소개해 줬다.


‘쟤가 누구였더라?’


악마가 기억을 제한한 상태였다.

몇몇 낯익은 선수가 있었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강민재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인답게 씩씩하게 인사.

어차피 지금은 1군에 처음 올라온 2군 선수였다.

다만 한꺼번에 인사하는 통에 누가 누군지 정신이 없었다.


“굿 모닝. 다들 일찍 나왔네.”


잠시 후 감독과 코치, 고참 선수도 하나둘 나타났다.


감독의 전체 미팅.

코치의 주도하에 투, 타 조별 미팅.

단체 워밍업 후 비주전급 선수들 위주의 간단한 훈련.


아침 일정은 2군에 있을 때와 비슷했다.

오더 발표, 게임 플랜 미팅 등은 점심식사 후에 있을 예정이었다.

물론 선발 투수는 전날 예고됐고 포수, 배터리 코치와 별도로 미팅을 가졌다.


“민재야, 준비됐지?”


감독은 민재를 홈 플레이트로 불렀다.


“정말 아침부터 하려나 보네?”

“장 선배가 저 친구한테 타이밍을 잡혔다며?”

“신고선수가 베테랑 투수를 압박하다니. 대단한데?”


다른 선수들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몰려왔다.


“신고선수라고 만만하게 보지 마. 센스도 센스지만, 발전 속도가 비상식적으로 빠르니까.”


장수찬도 쓴웃음을 머금고 선수들 사이에 끼었다.


그사이 준비가 끝났다.

민재는 배트를 들고 배팅 장갑을 여미며 타석에 들어섰다.

코치가 공을 던져주는 라이브 배팅이 아니었다. 투수를 상대로 한 진짜 대결이었다.


“감독님한테 말씀 들었어. 타격 폼이 예쁘다고 칭찬이 자자하시던데?”


수염이 덥수룩한 우완 투수가 웃으며 마운드에 올라왔다.


2015년 1차 지명 이민한이었다.

주 무기는 150km를 넘는 포심 패스트볼. 제구는 좀 불안했지만,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팀의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었다.


“파트너가 이민한이라고?”

“감독님도 진심인가 본데?”

“다치면 어쩌려는 거지?”


다른 선수들은 깜짝 놀라 웅성거렸다.


시범경기 때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했다.

하물며 상대는 어젯밤에 2군에서 올라온 풋내기 신고선수였다.

이민한 같은 주축 투수가 아침부터 훈련 파트너로 마운드에 오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잘됐다. 내 실력이 1군에서 얼마나 통할지 확인해 볼 절호의 기회다.’


민재는 헬멧을 벗어 꾸벅 인사하며 눈을 빛냈다.


***


불펜 포수가 앉은 뒤.

이민한은 연습구를 던지며 몸을 풀었다.


‘템포가 빠르네. 하지만 장수찬처럼 까다롭진 않다.’


타석에서 한 걸음 물러나 빈 스윙으로 타이밍을 쟀다.


상대는 힘을 앞세운 우완 정통파.

2군에서 상대한 투수와는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달랐다.

어깨가 안 풀렸는데도 140km가 넘는 포심 패스트볼이 하얀 실선으로 날아왔다.


‘할 수 있다!’


실밥의 회전이 보였다.

테니스와 복싱으로 동체시력을 단련한 보람이 있었다.


상대가 연습 피칭을 마친 뒤.

민재는 크게 심호흡하며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민한아, 아까 알려준 대로만 해.”


감독이 손나발을 만들고 외쳤다.


‘알려준 대로? 내 공략법 같은 건가?’


민재는 투수를 노려보며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이민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투구폼이 와일드했다.

145km쯤 되는 포심 패스트볼이 정중앙으로 날아왔다.


‘간다!’


앞발을 살짝 들었다가 디뎌 타이밍을 잡았다.

머리는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인 앤 아웃으로 허리를 돌렸다.


과연 공이 묵직했다.

임팩트 순간 손아귀가 은은하게 저렸다.


‘벽! 벽!’


가상의 벽을 만들어 버티며 팔로우 스윙했다.


따악, 제대로 맞았다.

타구는 외야 우중간으로 빨랫줄처럼 날아갔다.


“와, 기본이 확실한데?”

“실전이었으면 최소 2루타였어.”

“타구의 질도 좋아. 라인 드라이브라 수비가 까다로울 거야.”


설마 하던 선수들은 눈을 크게 뜨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이고, 후배님. 좀 살살하세요.”


이민한도 포수에게 공을 받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민재는 감독을 슬쩍 돌아봤다.

감독은 검지를 치켜세우고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무슨 생각이지?’


괜히 불안해하며 다음을 준비했다.


2구는 낮은 포심 패스트볼.

여느 선수라면 까다로운 코스였지만, 골프 스윙을 익힌 민재에겐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콰앙, 공이 터질 듯한 타격음.

투수를 포함한 모두는 외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구는 중견수 쪽으로 빠르게 날아가 펜스 상단을 때렸다.


“아깝다. 발사각도가 조금만 높았어도 넘어가는 거였는데.”

“보기보다 힘이 좋아. 특히 저 하체. 미사일 발사대처럼 단단하잖아?”


감탄사가 더 커졌다.

이민한이 봐준 게 아니었다.

민재의 타격이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3구와 4구.

민재는 높은 쪽, 바깥쪽을 가리지 않고 타구를 외야 깊숙이 날렸다.


“역시 그냥은 못 당하겠는데요?”


이민한은 쓰게 웃으며 감독을 돌아봤다.


“슬슬 진짜를 보여 줘.”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이민한의 표정이 달라졌다.

공의 실밥을 잡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이어서 크게 와인드업.


‘어?’


민재는 타이밍에 맞춰 허리를 돌리다가 당황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오프 스피드도 일품이었지만 낙폭이 컸다.

공의 궤적이 뻔히 보이는데도 배트가 말을 안 들었다.


“큭.”


결국 크게 헛치고 중심을 잃었다.


“어때? 내 108번뇌 커브가. 이걸 칠까 말까, 타자가 많이 고민한다고 해서 이름이 108번뇌지. 크크크.”


이민한은 공을 돌려받으며 히죽 웃었다.


다음 공은 몸쪽을 파고드는 슬라이더.

타이밍을 늦게 잡았지만 공의 아랫부분을 겨우 맞췄다.

3루 쪽으로 높게 뜨는 타구. 실전이었다면 파울 플라이였다.


“쟤 갑자기 왜 저러지?”

“민한이 커브는 아직 실전에서 못 쓰는 건데.”


선수들은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보며 웅성거렸다.


완성도가 높은 포심 패스트볼은 뻥뻥 친다.

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변화구에는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실력을 종잡을 수 없었다.


‘내 밑천이 드러났네.’


민재는 한숨을 내쉬며 감독을 바라봤다.


“지금 네 타격은 장, 단점이 극명해. 힘 대결이라면 너도 수준급이야. 파워만 키우면 당장에라도 1군에서 통할 거야. 선구안도 좋고. 하지만 야구는 힘이 전부가 아니거든. 배트가 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유인구로 배트를 끌어내는 스타일에겐 어김없이 당할 거야.”

“······.”

“숙제를 하나 주지. 1군 선배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노하우와 연습을 배워. 목표는 배트 컨트롤 향상. 그것만 성공하면 타자로서 몇 단계는 스텝 업 할 거야.”


감독은 스텝 업을 강조하며 씨익 웃었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는 민재.

스텝 업은 그도 바라고 있던 바였다.


***


수원 위즈와의 시범경기 2차전.

이글스는 선수를 고루 기용하며 위즈를 5 대 3으로 잡아냈다.

장수찬이 3과 2/3이닝 동안 3실점 하며 흔들렸지만 승리투수가 됐다.


금요일은 휴식일.

토요일부터 서울 히어로즈와 홈경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좋았어. 올해는 우리도 가을 야구 한 번 해보자!”

“누가 우리더러 꼴찌 1순위라고 했더냐?”


시범경기라도 3승 1패로 순항이었다.

팀 분위기가 밝고, 선수와 코치 모두 의욕이 넘쳤다.

팬 커뮤니티에도 희망에 찬 글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그날 밤, 민재는 람파스를 호출해 천계에 올라갔다.

오전에 있었던 일이 그새 천계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낮에 이민한하고 대결했다면서? 변화구 대응은 못 했지만, 포심 대응은 다들 인정했다던데?]


중간계에 올라가자마자 람파스가 킥킥거리며 물었다.


“대결은 무슨. 이게 야구 만화야?”


민재는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 욕심이 없는 선수는 프로의 자격이 없다.


창원 다이노스의 간판이자 최다안타 2위에 빛나는 리빙 레전드, 손아섭이 한 말이었다.


1군 필승조의 강속구를 공략한 건 잊었다.

실전에서 써먹지 못하는 변화구에 당한 것만 기억에 남았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지. 1.5군 정도로 어설프게 선수 생활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패배의 분노를 곱씹어라.

그리고 혹독한 훈련으로 널 밀어붙여라.

오늘의 패배는 내일의 승리를 위한 교훈이다.


그동안 만난 전설들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점에 섰다고 했다.


[아무튼 야구는 알다가도 모르겠어. 완성도 높은 포심은 잘 공략하면서 완성도 낮은 변화구에 당하다니. 108번뇌 커브? 그게 뭐야?]

“동감이다. 레전드 홈런왕 이승엽도 슬럼프로 계속 연구하고 폼을 바꿨다고 했지. 뭐, 그게 야구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럼 다음 특훈은 뭐야? 배트 컨트롤을 정교하게 만들 묘책이 있어?]


람파스는 주위를 맴돌며 들뜬 표정으로 보챘다.


처음엔 마지못해 거들더니.

이젠 당사자보다 수호천사가 더 흥분했다.


“다음 특훈은 단지 배트 컨트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야. 정신력과 파워까지 강화할 수 있는 특훈이지.”

[오, 그런 게 있어?]

“물론. 다만 이건 스포츠라기보다 무예에 가까워. 내가 지금까지 초빙한 전설 중에서 제일 만나 뵙기 어려웠지.”


민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야구장 입구를 바라봤다.


[누구지?]


람파스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멈칫했다.


조명탑에서 한 줄기 조명이 내려왔다.

힘찬 걸음걸이와 함께 ‘그분’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분이 뭔가를 슬쩍 던졌다.

파파, 섬광이 번쩍한 순간 그것은 정확히 팔등분돼 떨어졌다.

인제 보니 그분이 벤 건 야구공이었다.


“이번 특훈은 검도야. 방금 본 것처럼 이분은 검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빠르지.”


민재의 자랑스러운 소개.

‘그분’이 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사람이 아니라 잘 벼려진 검처럼 기세가 날카로웠다.


[과연.]


람파스는 전설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검도하고 야구가 정확히 무슨 관계야?]

“이걸 들어봐.”


민재는 어느새 배트와 검을 준비해 내밀었다.


왼손에는 배트, 오른손에는 검.

람파스는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윽.]


녀석의 작은 오른팔이 대번 아래로 쳐졌다.


“내가 쓰는 야구 배트의 무게는 900g. 반면 진검은 1.5kg 넘지. 그리고 배트를 정확히 컨트롤하는 것, 임팩트 후 타구에 힘을 싣는 건 모두 손목과 관련이 있고.”


민재는 손목을 강조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배트보다 무거운 검.

우리의 전통 검술로 손목을 단련한다.


이것이 이번 특훈의 과제였다.


[이분은 누구셔? 이런 대단한 무인이라면 천계에서도 특별관리 대상일 텐데.]


람파스는 존경과 감탄의 눈빛으로 전설을 바라봤다.


“조선제일검이라 불린 전설. 김 자, 체 자, 건 자 님이시다.”


민재는 전설을 향해 꾸벅 상체를 숙이고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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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번째 전설 (1) 23.09.30 507 12 12쪽
6 강민재가 누구야? 23.09.29 541 13 13쪽
5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2) 23.09.29 544 14 11쪽
4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1) 23.09.28 556 14 13쪽
3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2) 23.09.27 578 12 12쪽
2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1) 23.09.27 602 18 12쪽
1 그러니까 악마지 23.09.27 82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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