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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전설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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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7 18:35
최근연재일 :
2023.10.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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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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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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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루틴 (1)

DUMMY

양 선배는 알게 모르게 습관이 많았다.


‘보기보다 예민한 양반이네.’


양말은 꼭 오른쪽부터 신었다.

취침은 11시 정각이었고, 아침 7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기 전과 일어난 후에는 물을 2잔씩 마셨으며, 각종 영양제와 비타민도 날짜별로 챙겨 먹었다.


너무 칼같이 지켜서 기계를 보는 줄 알았다.

방 정리도 깔끔했고, 빨래한 언더셔츠도 군대처럼 각을 잡아야 직성이 풀렸다.


“너도 너만의 루틴을 만드는 게 좋을 거야.”


어느 날 양 선배가 같이 방을 청소하며 불쑥 말했다.

후배에게 청소와 빨래를 미루는 선배도 있었는데, 양 선배는 그런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루틴이 꼭 필요할까요? 미신 아닌가요?”

“처음엔 불편해도 익숙해지면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되거든. 야구뿐만이 아니라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루틴이 있지.”


양 선배는 청소를 멈추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루틴에 대한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미신이라 웃어넘기거나 작은 것 하나에도 민감하고 세심하거나.


장단점이 있었다.

털털한 성격은 멘탈 관리가 편했다. 홈런을 맞거나 실책 등의 나쁜 기억은 빨리 잊고 곧장 다음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이글스의 기인으로 불리는 레전드 구대성 선수가 대표적이었다.


반면 세심한 스타일은 컨디션 관리에 이점이 있었다.

항상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아무래도 기복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너무 민감해서 때론 나쁜 기억을 빨리 떨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프로야구 3김 감독의 하나였고, 이글스에서도 감독을 지낸 김성근 감독이 대표적이었다.


이전 생에서의 민재는 중간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안 먹는 것 같은 일반적인 미신은 따랐지만, 야구와 관련해선 특별한 습관이 없었다.

애초에 루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참, 너도 버릇이 하나 있던데?”

“제가요?”

“그래. 무슨 잠버릇이 그래? 느닷없이 골프 스윙해서 깜짝 놀랐잖아. 꿈에서 골프를 쳐? ‘사장님, 나이스 샷’은 왜 나와?”


양 선배는 피식 웃으며 골프를 흉내 냈다.


“아.”


민재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영혼과 육신은 별개가 아닌 터.

중간계의 훈련에 육신이 반응한 모양이었다.


- 루틴으로 컨디션을 조절한다.


‘난 무슨 루틴을 만드는 게 좋을까?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 그러면서도 지키기 쉬운 게 좋겠지?’


민재도 루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양 선배가 깊은 잠에 빠진 뒤.

민재는 몸을 빠져나와 중간계의 연습장에 올라갔다.


야구장이 전보다 화려해졌다.

그의 성장에 맞춰 람파스의 영력도 높아진 덕분이었다.


[내야수를 하겠다고? 내야하고 외야는 전혀 다르지 않아? 뭐, 둘 다 뛰는 멀티 플레이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내야수는 반사신경과 운동능력, 안정된 스텝, 순간적인 판단력, 강한 어깨, 부드러운 글러브질과 포구 등이 필요하지. 특히 단단한 하체는 내야뿐만이 아니라 모든 운동에서 필수고.”


내야수도 포지션에 따라 필요한 능력과 기술이 제각각이었다.

가령 3루수는 강습 타구에 대한 대처 능력과 강한 어깨가 필요했고, 1루수는 안정된 포구가 중요했다.

유격수는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 부드러운 글러브질, 정확한 판단력 등이 요구됐으며, 2루수는 역동작으로 1루로 송구하기 때문에 날쌘돌이처럼 빠른 터닝이 필요했다.


“유격수에서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게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지. 팬들은 수비 전문 요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수비가 우선이야.”

[감독님은 내야에서 어떤 포지션을 맡길까?]

“난 아마 2루를 보게 될 거야. 유격수는 상대적으로 할 게 너무 많고, 3루수를 보기엔 어깨가 약한 편이니까. 그렇다고 거포 1루수도 아니고.”

[2루수도 쉽지 않을 텐데? 중계 플레이, 다이빙 캐치도 배워야 하고.]


람파스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악마와의 내기.

기한은 딱 1년이었다.

기초부터 밟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맞아. 내가 당장 박진만처럼 기술이 좋은 내야수가 되는 건 무리야. 그건 타고난 센스 외에도 수많은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니까. 펑고를 수만 번 받아도 될까 말까지.”

[그럼 대책은?]

“내 목표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 글러브질은 상대적으로 부족해도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반사신경으로 단점을 덮어 버리는 거야.”


박진만과 이종범.

KBO 명 유격수의 계보를 잇는 레전드였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우선 박진만의 플레이는 편안했다.

미리 자리를 잡는 뛰어난 타구 판단력, 빠르고 정확한 글러브질과 송구 등으로 유격수 수비의 교과서로 불렸다.


반면 이종범의 플레이는 역동적이고 화려했다.

과장을 보태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녔고, 팬들이 환호하는 진기명기 수비를 여러 차례 선보였다.


“내 목표는 이종범 같은 유격수. 사기적인 반사신경과 스텝으로 타구를 처리하는 거지.”


민재도 프로였다.

일반인에게 비하면 반사신경이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상위 라운드의 천재들에게 비하면 어림없었다.

전국구 유망주는 ‘같은 사람 맞나?’ 싶은 정도의 괴물이었고, 그 괴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극소수가 1군 붙박이였다.


“선천적인 재능은 부족해도 후천적인 훈련으로 반사신경을 높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장기 레이스에서 버틸 수 있는 스태미나도 키우고.”


민재는 입구를 향해 손뼉 쳤다.


“전설님, 나오십시오.”


이번엔 연출에 신경 썼다.

주위가 어둑한 가운데 한 줄기 조명이 내리비쳤다.


빠바밤, 빠바밤.

로키의 주제가가 울리며 복싱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날렵한 스텝으로 등장했다.


키는 민재보다 조금 작았다. 180cm 정도?

복서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몸이 통나무처럼 단단해 보였다.


전설은 민재 앞에서 몸을 풀었다.

상체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잽잽, 원, 투 스트레이트.

주먹이 잘 안 보였다. 주먹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와, 인상 살벌한데?’


민재는 후드 아래로 언뜻 보이는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눈썹이 짧고 눈두덩이 불룩했다.

복싱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수많은 펀치로 얼굴형이 바뀐 것 같았다.


[복싱으로 반사신경을 향상한다고? 그게 가능해?]


람파스가 민재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네가 한 번 던져 봐. 인정사정 보지 말고 힘껏.”


민재는 람파스의 손에 야구공을 쥐여 줬다.


[이 거리에서?]


녀석과 복싱 전설의 거리는 5미터 남짓이었다.


아기의 외형을 하고 있어도 녀석은 천사였다.

영력을 실어 던지면 200km는 가뿐히 넘길 수 있었다.


[괜찮네. 그 정도는 준비운동도 안 되니까.]

[그래도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


복싱 전설은 상체를 상하좌우로 흔들며 재촉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죽은 분이니까 또 죽진 않겠지.]


람파스는 입술을 깨물고 공을 던졌다.

파앗, 공이 얼굴을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으악!]


녀석은 비명을 지르다가 멈칫했다.


전설의 상체가 왼쪽으로 스르르 움직였다.

천사의 시력으로도 잔상만 흐릿하게 보였다.

공은 전설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뒤 외야로 날아갔다.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반사신경은? 이걸 피한다고?]


람파스는 황당해하며 민재를 돌아봤다.


“통산전적 200전 173승 19패 6무승부 2무효 108KO.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현대 복싱의 틀을 완성한 전설. 슈거 레이 로빈슨이시다.”


민재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참고로 체급과 무관하게 선수를 평가하는 '파운드 포 파운드(P4P)'도 내 기량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물론 P4P 넘버원은 바로 이 몸이고 말이야.]


전설이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화려한 스타일과 전적만큼 자존감도 넘쳤다.


***


[몸 좀 더 풀어 볼까?]


전설은 민재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더그아웃에서 야구공을 박스째 가져왔다.

타악, 타악. 민재는 배트를 들고 연달아 펑고를 날렸다.

파팟, 파공음이 살벌했지만 전설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공을 피했다.


[왜 자꾸 피하기만 하십니까? 야구는 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잡는 스포츠인데요.]


람파스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미안. 난 아웃복서라.]

[네?]

[농담일세. 아웃복서라도 공을 피하기만 하는 건 아니지. 동체신경과 반사신경, 운동능력 등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네.]


복싱의 전설은 민재를 향해 다시 손을 까닥였다.


자세와 눈빛이 바뀌었다.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비스듬히 선 자세, 일명 오소독스였다.


[무슨 생각이시지? 잘 피하니까 아웃복서 아니야?]

“보면 알아.”


민재는 히죽 웃으며 배트를 들었다.

공을 쪼갤 기세로 강한 펑고가 날아갔다.


전설은 상체를 좌우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가 살짝 움직였다고 느낀 순간, 왼손 잽이 공을 튕겨냈다. 그것도 정확히 아랫부분을.

퍼억, 공은 방향이 바뀌어 천장으로 날아갔다.


[날아오는 공을 주먹으로 쳐 낸다고?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람파스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피하는 건 첫 단계네. 자네가 배울 건 바로 이것. 상대의 펀치를 커트하는 기술이지. 공을 커트하느냐 잡느냐의 차이는 있어도 접점까지의 과정은 비슷하거든.]


전설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알겠어? 복싱의 반사신경과 풋워크. 여기에 테니스 대시를 추가하면 강습 타구에 대한 반응이 확실히 진다고.”


민재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동체시력과 반사신경.

거기에 복싱 특유의 리듬감과 풋워크, 체력까지.

내야 수비만이 아니라 야구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가 들어 있었다.


[나도 야구를 봤네. 그게 운동 선수의 몸인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전설은 가운을 벗고 목을 좌우로 까딱였다.

역삼각형 상체에 근육과 복근이 조각처럼 선명했다.


‘어떤 지옥 훈련을 하려는 거지?’


민재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복싱 훈련을 떠올렸다.


그들의 피나는 훈련과 노력.

그리고 눈물겨운 감량은 같은 운동선수로서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야구를 택해서 다행이다. 난 평생 저런 거 할 일 없겠지.’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남의 일이라 여겼던 고행이 현실이 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전설님께 부탁드린 게 아니니까요.”


민재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오전 훈련 20분 전.

선수들은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며 몸을 풀었다.

잔디의 이슬도 마르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선수들의 얼굴에는 의욕이 가득했다.


운동장 구석.

감독과 수비 코치는 나란히 서서 선수들을 지켜봤다.


“민재는 어때? 스케줄 잘 따라오고 있어?”


감독이 수첩을 꺼내 훈련 일정을 확인하며 물었다.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핸들링이나 송구는 아직 멀었지만, 집중력과 스텝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반사신경은 기가 막힐 정도고요. 다만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상한 구석?”

“네. 민우가 룸메이트잖습니까? 민우가 그러는데, 민재가 요즘 악몽을 꾸는지 자다가 운다고 합니다. 잠꼬대도 하고요.”


코치는 고개를 돌리고 킥킥거렸다.


“자다가 울어? 훈련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허해진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꿈에서 복싱을 배우는지 사흘째 입으로 췩췩 거린대요. 그것 때문에 민우가 죽을 맛이랍니다.”


코치는 복싱의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이건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야. 내 주먹이 우는 소리지.”


췩췩, 침을 튀기며 원투 스트레이트.

코치는 영화 로키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섀도복싱을 흉내 냈다.


양반은 못 됐다.

멀리서 민재와 양민우가 큰 야구 가방을 메고 나란히 걸어왔다.


“복싱이라고?”


감독은 민재를 유심히 살폈다.


며칠 사이에 민재의 몸이 달라진 것 같았다.

복싱 선수처럼 등이 역삼각형으로 발달했고 허벅지도 두꺼웠다.


“하긴, 복싱의 풋워크는 내야수한테 유용하지. 덤으로 체력도 좋아지고, 광배근을 단련하면 파워도 향상할 수 있어. 실제로 옛날 선배들은 비시즌에 복싱을 배우기도 했으니까.”


이번엔 또 뭘 보여주려나.

감독은 기대에 찬 눈으로 민재를 응시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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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번째 전설 (1) 23.09.30 507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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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2) 23.09.29 544 14 11쪽
4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1) 23.09.28 556 14 13쪽
3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2) 23.09.27 578 12 12쪽
2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1) 23.09.27 602 18 12쪽
1 그러니까 악마지 23.09.27 82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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