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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전설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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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2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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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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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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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눈도장 (1)

DUMMY

3월 13일.

프로야구가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 THE ONLY WAY IS UP.


이제 우리의 길은 오직 도약뿐.

이글스의 강렬한 의지를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시범경기가 시작됐다.


2군 선수에게 시범경기는 최종 리허설이자 기회의 장이었다.

특급 유망주나 1.5군은 진즉 짐을 싸서 대전으로 올라갔고, 2군에 남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흥분과 전운이 감돌았다.


“만년 꼴찌가 지겹지도 않아? 자존심도 없어?”

“맞습니다. 올해는 제대로 일 한번 저질러 보자고요!”


감독과 코치들도 비시즌 때보다 눈에 띄게 의욕에 불탔다.


민재도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낮에는 팀 훈련, 저녁에는 웨이트, 밤에는 테니스와 골프 특훈.

밤낮으로 훈련에만 매달렸지만 딱히 힘든 줄 몰랐다.


“민재가 요즘 확실히 달라졌네. 연습 때 소리도 잘 지르고, 더 활발해진 거 같아.”


감독이 티배팅 도중 지나가는 말처럼 칭찬했다.


신고선수와 정식선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이제 벽 안으로 들어갔다. 정확히는 아직 정식선수가 아니라 전환 대상자였지만.

그래도 연습경기 때 기회가 늘어났고, 코치들이 전보다 신경을 써 주는 게 느껴졌다.


훈련이 끝나고 방에 돌아온 뒤.

노트북으로 팀의 경기 영상을 챙겨보는 게 새로운 일과가 됐다.


- 올해는 리빌딩을 끝내고 재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입니다.


팀은 말로만 도약을 외친 게 아니었다.


시범경기 첫날부터 광주 타이거즈를 1 : 6으로 완파했다.

신인 위주로 다양한 선수가 투입됐고 컨디션 점검이 목적이었지만, 팀의 분위기가 달라진 게 확실히 느껴졌다.

월요일인데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도 인상 깊었다.


다음 날 아침, 2군 감독이 호출했다.

민재만 부른 게 아니었다. 정우영과 박천수도 함께였다.


“우선 대전에 가는 걸 축하한다. 하지만 너흰 아직 1군이 아니야. 1군에서 훈련하는 걸 보고, 1군 분위기를 익히라는 배려지. 벤치에서 1군 선수들의 플레이도 잘 보고. 자만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 해. 노력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못하지만, 좋은 결과 뒤엔 늘 노력이 있었다는 걸 명심하고.”


D-Day는 3월 16일.

홈에서 수원 위즈와 시범경기 2차전이 있는 날이었다.

2군 삼인방은 15일 저녁에 올라가 선수단과 인사하고, 다음날부터 훈련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날 밤, 대전 이글스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 보령 이글스의 아기독수리 삼인방 전격 콜업.

- 미래를 준비하는 2군 선수들.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 이글스의 무한 잠재력 1군 훈련 합류. 미래를 위한 포석.

······


2군 선수 셋의 1군 합류 소식이 올라왔다.

TV나 일간지는 아니더라도 지역 신문 몇 군데서 꽤 비중 있게 다뤘다.


2019년 2차 1순위 좌완 정우영.

실전만 서면 약해져도 묵직한 구위가 일품이다. 제구만 가다듬으면 1군에서도 통할 레벨이다.


2021년 2차 1순위 우타 박천수.

수비는 별로지만 타격 재능은 아마추어 때부터 인정받았다.

경미한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연습 때 배트 돌리는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2001년생 군필 유틸리티 강민재.

외야 전 포지션과 2루까지 커버하는 수비가 인상적이다.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점도 많지만 특유의 파이팅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꾼다.


언론의 평가는 대충 애랬다.

정우영과 박천수는 이해됐지만, 민재가 포함된 건 조금 의외였다.


- 강민재가 파이팅 넘치는 건 알겠는데 벌써 1군 레벨인가?

- 현재보다 가능성을 본 거 같은데요. 강민재는 무명에서 갑자기 치고 나왔잖아요.

- 너무 빠른데. 냉정히 말해 퓨처스에서도 보여준 게 없잖아요.

- 2군 감독님의 안목을 믿어 봅시다. 게다가 군필이잖아요, 군필.

- 맞아요. 외야 자원이 좋은 것도 아니고. 가능성 있는 군필 외야수는 많을수록 좋죠.


팬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대체로 민재를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르다는 의견도 종종 보였다.


‘내가 전국구 유망주와 같이 거론되다니.’


이전 생에서는 언론에 나오는 걸 꿈도 못 꿨다.

민재는 자신의 실력이 일취월장했음을 실감했다.


***


저녁 6시 무렵.

민재는 정우영의 SUV를 타고 대전으로 올라갔다.


“형, 얼굴이 왜 그래요?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요?”


조수석에 앉은 박천수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긴장하셨구나? 사실 저도 어제 잘 못 잤어요.”


운전석의 정우영도 백미러로 그를 힐끔거리며 피식 웃었다.


“잠은 잘 잤는데 좀 피곤하네요.”


민재는 눈 밑이 퀭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다들 비슷했다.

훈련 보조라고 해도 1군이었다.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을 절호의 기회.

인생 2회차라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참, 감독님은 어떤 분이세요?”


창밖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글쎄요. 저도 직접 뵌 적은 없는데, 1군 선배들한테 들어보니까 젊고 화끈하신 분 같아요. 평도 좋고요.”


정우영이 핸들을 잡은 채 간단히 설명했다.


제임스 리 감독.

이글스에서 리빌딩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데려온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40대 후반으로 젊은 편이었는데, NCAA 산하의 미국 대학 야구에서 Division 1 토너먼트 준우승 등 경력이 화려했다.


대학 야구라도 한국을 생각하면 안 됐다.

미국은 야구의 왕국. 민재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로는 CWS(college world series)는 월드 시리즈만큼 열기가 뜨겁다고 했다.


“미쿡물 먹은 감독이라 그런지 선수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공평하게 평가한다는 소문이에요. 가능성이 보이면 팍팍 밀어준대요.”


박천수가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


‘한국 야구에 낯선 감독. 철저하게 실력만 본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

한국 프로야구는 넓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좁았다.

실력 못지않게 인맥도 중요하다는 건 팬들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이었다.

잠시 후, 늦은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한밭야구장이 나타났다.


***


주차장에 코치진과 선수의 차들이 길게 서 있었다.

구석에 주차한 뒤, 짐을 챙겨 들고 감독에게 인사하러 갔다.


따악, 따악.

시범경기 시즌인데도 특타를 하는 모양이었다.

조명이 환한 가운데 타자들이 타격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코치들도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걸 지켜봤다.


외야에서는 투수들이 러닝 중이었다.

한 시간이 넘은 것 같았다. 몸에서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미국식 자율 훈련이라고 안 그랬나? 하긴, 1군까지 왔으면 죄다 독종일 텐데. 쉬라고 말했다고 쉴 놈들이 아니지.’


새삼 깨달았다.

스타 플레이어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곳.

프로야구 판은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치열한 정글이었다.


“훈련량이 2군 못지않은데요?”

“아니야. 집중도를 생각하면 2군 이상일 거야.”


박천수와 정우영도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2군 감독이 둘을 콕 짚어 보낸 이유를 알겠네.’


민재는 내심 웃음을 참고 둘을 바라봤다.


박천수는 잔 부상과 불성실한 훈련 태도가 문제였다.

더 대단한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그도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정우영은 약한 멘탈이 문제였다.

구위나 기술적인 면도 중요했지만, 선배 투수들을 따라다니면서 컨디션 관리 등 정신적인 면을 배우라는 의미였다.


“자, 갑시다.”


민재는 둘을 데리고 배팅 훈련장으로 향했다.


코치들 사이에 유독 키가 큰 중년 남자가 보였다.

사진으로 본 감독이었다. 올해 시무식에서 인사했을 테지만, 그건 과거의 민재였다.


‘사람은 좋았던 거 같은데.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악마가 기억 일부를 제한한다고 했는데,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강민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씩씩하게 인사.

옆에 있는 다른 코치와 선배들에게도 예를 갖췄다.


“안녕하세요, 정우영입니다.”

“21년도 지명, 박천수입니다!”


정우영과 박천수도 차례대로 인사했다.

셋 중 제일 어린 박천수가 기합은 제대로 들었다.


“반가워. 오랜만이네. 시무식 때 보고 3개월 만인가? 밤에 올라오느라 피곤하지 않아?”


감독이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셋은 꾸벅 인사하고 두 손으로 공손히 맞잡았다.


“민재는 무슨 특훈이라도 했어? 영상으로 본 것보다 더 좋네. 특히 코아와 하체, 광배근이 골고루 잘 발달했고, 밸런스도 좋아.”


감독은 민재를 더듬으며 감탄했다.

다른 코치들과 선배들의 시선도 그에게 집중됐다.


“감사합니다.”

“무슨 운동 해? 이건 야구만으로 만들 수 있는 레벨이 아닌데. 일반적인 웨이트 트레이닝도 아니고. 허벅지하고 장딴지를 보니까 복싱이나 테니스 같은데.”

“네?”


순간 당황하는 민재.

감독은 생각했던 것과 여러모로 달랐다.


첫째, 억양이 너무 구수했다.

교포 출신이라 박찬호처럼 버터 섞인 발음을 예상했는데, 느리고 끝이 늘어지는 전형적인 충청도 스타일이었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자신의 비밀을 한눈에 알아봤다는 점이었다.

2군에 있을 때도 근골격이 좋아졌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하지만 테니스와 복싱까지 맞춘 건 처음이었다.


‘이 양반 뭐야?’


민재는 굳은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봤다.


“놀랄 필요 없어. 한국 야구선수는 보통 아마추어 때부터 야구 한 우물만 파지. 다른 운동은 취미로 즐기는 수준이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때 다른 운동을 병행하는 게 보통이거든. 수영은 기본이고 풋볼,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하지.”


감독은 민재의 몸에서 손을 떼며 웃었다.


“아.”


민재는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해 보라고 말하고 있어. 어렸을 때야 야구만 하는 게 실력 향상이 빠르겠지만, 나중에는 다른 스포츠를 경험한 게 큰 도움이 되거든. 경기를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보 잭슨, 데이브 윈필드, 토니 그윈 등.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유명한 스타들을 언급했다.


- 야구에 다양한 스포츠를 접목한다.


한국에서는 두 종목 이상을 성공한 사례가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꽤 많았다.

가령 보 잭슨은 80~90년대에 메이저리그와 미식축구(NFL)를 병행하며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명 외야수 토니 그윈도 대학 때는 농구팀에서 뛰었고, 데이브 윈필드는 메이저리그에서 22년간 뛰며 NBA에서도 활약했다.


비단 야구뿐만이 아니었다.

NBA 레전드 팀 덩컨이 버진 아일랜드의 국가대표급 수영선수였다는 건 유명한 터.

앨런 아이버슨은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로 주 챔피언을 따냈다. 호쾌한 덩크로 유명한 빈스 카터도 학창 시절에 배구를 병행했는데, 실제로 덩크 할 때 그의 점프나 팔 궤적은 농구보다 배구에 가깝다는 평이었다.


“그러고 보니 민재 형이 복싱한다는 소문이 있었지.”

“맞아. 전에는 골프 연습도 했고. 폼이 꽤 예쁘다고 했어.”


박천수와 정우영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민재를 바라봤다.


“배트는 얼마지?”

“900g 34인치입니다.”

“체격에 비해 좀 무거운 걸 쓰네. 뭐, 배트 무게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감독은 민재의 위아래를 슬쩍 훑어봤다.

입가엔 여전히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은 탐색하듯 날카로웠다.


900g 34인치 배트.

레전드 홈런왕 이승엽이 사용하던 배트 규격이었다.

같은 임팩트라면 당연히 무거운 배트에 더 파워가 실리지만, 선수마다 선호하는 배트가 제각각이었다.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푹 쉬고. 민재는 내일 아침에 배팅 연습장으로 와. 타격 영상을 유심히 봤는데, 지금 네 타격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거든.”

“중대한 결함이요?”


듣고 있던 박천수가 깜짝 놀라 물었다.


“이상하네. 예전에야 머리가 흔들리고 엉망이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예쁜 폼인데.”


정우영도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영상만 보고 내 약점을 알아보다니. 괜히 1군 감독이 아니네.’


민재만 내심 씁쓸하게 웃었다.


선구안, 인 앤 아웃의 스윙, 임팩트 후 벽 만들기 등.

타격 메커니즘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발도 빠른 편이었고, 탭댄스 특훈 덕분에 투수의 타이밍 잡는 노하우도 익혔다.


‘하지만 타격은 그게 전부가 아니지. 감독이 말한 중대한 결함도 그 때문이고.’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겨우 복싱의 스텝에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새로운 전설을 불러야 할 타이밍이 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잖아? 약점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본인이 느끼는 게 좋지.”


감독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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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번째 전설 (1) 23.09.30 507 12 12쪽
6 강민재가 누구야? 23.09.29 541 13 13쪽
5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2) 23.09.29 544 14 11쪽
4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1) 23.09.28 556 14 13쪽
3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2) 23.09.27 578 12 12쪽
2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1) 23.09.27 602 18 12쪽
1 그러니까 악마지 23.09.27 82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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