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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전설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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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향
작품등록일 :
2023.09.27 18:35
최근연재일 :
2023.10.12 11:1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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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30
글자수 :
113,468

작성
23.10.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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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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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군에서 보자 (3)

DUMMY

‘지금 내 배팅 기술로 절묘한 배트 컨트롤은 무리다. 히팅 포인트를 좁히고 노려 치자.’


정식 시합이 아니었다.

아직 34구나 남은 라이브 피칭이었다.


피칭 재개.

7구는 바깥쪽 높은 코스로 날아왔다.

지금도 테니스 전설과의 특훈은 꾸준히 하고 있었다. 공의 실밥이 어렴풋이 보였다.


민재는 타이밍을 잡고 골반을 돌리다가 멈췄다.

공은 그를 지나쳐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눈이 좋은데? 하나만 노려 치겠다는 건가?”


정수찬은 대번 민재의 의도를 간파했다.


히팅 포인트는 어디에 형성돼 있을까?

방금 던졌던 코스만 계속 던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저 녀석도 명색이 프로다. 한두 개는 통할지 몰라도 코스가 눈에 익으면 여지없이 장타야.’


장수찬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구경하는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제8구.

공은 민재의 무릎 위를 지나갔다.

민재는 이번에도 타이밍만 잡고 스윙 도중에 배트를 멈췄다.


“와. 압박감이 장난 아닌데?”


공을 돌려주는 포수가 더 긴장해 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시합이었다면 장수찬이 유리했겠지만, 대결의 주도권은 민재가 쥐고 있었다.


“이거 쫄깃하네. 러시안룰렛이야?”


양 선배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장전된 총알은 한 방.

앞선 공 2개는 운 좋게 불발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공이 히팅 포인트에 걸리는 순간, 민재의 배트는 리볼버처럼 불을 뿜을 것이다. 장수찬이 압박감에 무너져 실투를 던져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제9구.

장수찬은 세트 포지션으로 바꾸고 빠른 리듬으로 공을 던졌다.


‘원, 투.’


민재도 스윙을 빨리 가져갔다.


걸렸다.

공이 몸쪽 높은 코스로 날아왔다.

이번엔 중간에 멈추지 않고 풀스윙으로 휘둘렀다.


손에 느낌이 왔다.

콰앙, 배트가 공을 쪼갤 듯 후려쳤다.

공을 던진 장수찬, 타격한 민재, 구경하던 모두가 1루 외야로 고개를 돌렸다.


파울 홈런.

공은 높이 솟아올라 폴대를 살짝 벗어났다.


“으아아! 아깝다.”


양 선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히팅 포인트에 제대로 걸렸는데. 타이밍이 조금 빨랐나?”


민재도 배트로 땅을 치워 아쉬워했다.


그래도 감을 잡았다.

남은 공은 31개. 하나만 걸리면 공은 담장까지 날릴 자신이 있었다.


포수가 장수찬에게 새 공을 던져 줬다.


“후배님이 살벌하구먼.”


공을 받은 장수찬은 모자를 벗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지금부턴 다른 공도 던질 거야. 원래 옆구리 투수는 변화구가 더 위력적인 거 알지?”


장수찬도 승부욕이 발동했다.

새카만 후배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이기도 했다.


“환영입니다.”


민재도 배팅 장갑을 고쳐 끼고 타석에 들어갔다.


운동장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장수찬의 낙차 큰 커브는 2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마구였다.


그때였다.


“이 미친 새X들아. 보자 보자 하니까 갈수록 가관이네. 지금 영화 찍어? 팔꿈치 안 좋아서 내려온 XX가 무슨 변화구 승부야?”


욕설 섞인 호통이 긴장을 깨고 울려 퍼졌다.


“이크.”


민재는 움찔하며 1루 쪽을 돌아봤다.


처음이었다.

그 점잖던 감독의 입에서 이런 걸쭉한 욕설이 나온 건.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장수찬도 멋쩍게 웃으며 투구판에서 발을 뺐다.


라이브 피칭 종료.

언뜻 보면 무승부였지만 구경하던 모두는 알고 있었다. 오늘의 승자가 누구인지.


“민재가 분위기를 장악했어.”

“잃을 게 없는 2군 타자. 1군 선발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만으로도 민재의 승리지.”


다른 선수들은 손뼉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1군 베테랑의 리듬을 잡았어? 이전 생애 같았으면 공도 못 건드렸을 내가?’


민재도 입가를 씰룩거리며 애써 웃음을 참았다.


확신이 생겼다.


- 다양한 스포츠의 장점을 취해 새로운 야구를 펼친다.


이건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감독의 잔소리가 뒤따를 테지만 해냈다는 성취욕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소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상의 사인이 담긴 배트. 그건 가보로 보관할 빛나는 전리품이었다.


***


그날 저녁, 감독실.

장수찬은 평상복 차림으로 감독과 마주 앉았다.


“이 사람아, 베테랑이 분위기에 휩쓸리면 어떻게 해? 그러다가 팔꿈치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내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감독은 녹차를 따르며 핀잔을 줬다.


“그 녀석은 묘한 구석이 있어요. 사람을 불타오르게 만든다고 할까요? 오랜만의 수 싸움이라 재미있기도 했고.”


장수찬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배트 컨트롤은 미숙한데 제 타이밍을 정확히 읽더라고요. 공 보는 눈도 상당한 것 같고. 만약 배트 컨트롤마저 좋았다면 제가 먹혔을 겁니다.”

“말했잖아. 2군에 별난 녀석이 있다고. 1군 한번 못 밟아 본 친구가 며칠 만에 그렇게 좋아질 줄이야. 야구 밥 먹은 지 40년 만에 그런 놈은 처음이라니까.”


감독은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이 왜 지금까지 무명이었습니까?”


장수찬이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나도 그게 이상해. 한 달 전만 해도 평범한 녀석이었거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귀인이라도 만났나?”


감독은 민재의 타격 자세를 떠올렸다.


골프 스윙과 비슷한 인 앤 아웃.

코치의 도움 없이 머리가 흔들리는 단점을 고쳐 왔다.

야구가 그렇게 쉬운 스포츠라면 감독과 코치는 전부 실업자가 돼야 했다.


“역시 야구는 알다가도 모르겠어. 별놈이 다 있다니까.”

“동감입니다. 조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는데, 민재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녀석을 보류선수로 전환한 것도 그 때문이야.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다른 선수들도 녀석에게 자극받아 열심히 하게 됐거든.”


감독은 자극을 강조하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 다른 선수 중에 저도 포함되는 건가요?”


장수찬도 감독을 따라 웃었다.


“참, 대전에는 언제 올라갈 거야?”


감독이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화제를 돌렸다.


“저녁 먹고 바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요즘 팀 분위기가 너무 좋잖아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니까 무섭더라고요. 일주일 쉬었으면 충분하죠.”


장수찬의 푸념은 엄살이 아니었다.


다른 투수들도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외국인 원투 펀치를 제외하면 선발진은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좋은 자세야. 그 각오로 열심히 해보자고. 올해는 우리 이글스가 일 내야 하지 않겠어?”

“당연하죠. 퓨처스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민재의 발전도 관심 있게 지켜 보고요.”


감독과 장수찬은 악수를 나누고 일어났다.


***


저녁 식사 후.

민재는 양 선배와 주차장에서 장수찬을 배웅했다.


2군에서 머문 기간은 열흘도 안 됐다.

짐은 SUV 트렁크에 실은 캐리어 한 대와 큰 야구 가방 하나 전부였다.


“내기는 내기지. 원래 승부와 관계없이 주려고 했던 거야.”


장수찬은 트렁크에서 야구 배트를 꺼내 건넸다.


“정말 주시는 겁니까?”


민재는 눈을 빛내며 배트를 공손히 받았다.


배트를 가로등에 비춰봤다.

가운데에 ‘그분’의 사인이 휘갈겨 있었다.

누가 우직한 연습벌레 촌놈 아니랄까 봐 사인에서도 투박하지만 단단함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입이 귀에 걸려 꾸벅 인사했다.

라이브 피칭이 끝나고 내심 기대했지만, 안 주면 어쩌나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제 자리 잘 닦아 놓으십시오.”

“그래. 날 더워지면 보자. 그때까지 관리 잘하고.”


양 선배와 장수찬의 짧은 악수.


“너도 조만간 다시 보자.”


장수찬은 민재에게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네? 다시 2군에 오시는 겁니까?”


민재는 손을 맞잡고 무심코 말하다가 멈칫했다.


내심 아차 싶었다.

1군 베테랑한테 2군에 오냐는 질문을 하다니.


“뭐, 인마? 지금 나한테 악담하냐?”


장수찬은 짐짓 인상을 찌푸렸다.


장난이었다.


“2군은 사양이다. 네가 1군에 올라와야지.”

“제가요?”


민재는 당황해 되물었다.


특훈 이제 시작이었다.

연습할 게 많이 남았고, 2군에서 실적도 쌓아야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너처럼 발전 속도가 빠른 친구는 처음이야.”


장수찬은 민재의 어깨를 두드리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이대로 계속 노력하면 기회는 반드시 올 거야. 정규 시즌은 마라톤처럼 길고, 부상이나 슬럼프 등으로 낙오하는 선수는 나오기 마련이거든. 올라오면 내가 고기 한번 살게.”


인사는 여기까지.

보령에서 대전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민재와 양 선배는 장수찬의 SUV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내가 1군이라.’


상기된 표정의 민재.

1군이라는 단어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


그날 밤, 수비 코치가 소회의실로 호출했다.


“민재야, 너도 현재 우리 팀 외야 사정을 알 거야. 두 자리는 용병하고 FA 차지고,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지.”


수비 코치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외야의 남은 자리는 하나.

1군에서는 용병과 FA를 제외하고 외야수 여섯 명이 훈련하고 있었다.

재활 막바지인 양 선배도 잠재적 경쟁 상대였다. 시범 경기가 끝나면 몇 명은 2군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렇다고 2군의 외야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투수 다음으로 많이 뽑은 게 외야수였다. 확실한 주전감이 없이 고만고만해서 문제였지만 숫자는 차고 넘쳤다.


“솔직하게 말할게. 퓨처스 리그에서도 네 자리를 보장할 수 없어. 1군에서 내려온 선수가 주전으로 고정될 테니까. 넌 아마 대타나 대수비로 뛸 테고, 그러다 보면 경기 감각도 떨어질 거야.”

“······.”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2군에서 출장하는 건 물론이고, 1군에 빨리 올라갈 방법이 하나 있어.”

“그게 뭡니까?”


민재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트레이드?’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 그는 트레이드 가치가 너무 낮았다.


‘보류선수로 전환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방출은 더더욱 아니고. 역시 그건가?’


알 것 같았다.

하고 많은 코치 중에 왜 수비 코치가 면담을 요청했는지.


“지금도 내야 수비를 연습하고 있지만, 그걸 본격적으로 해보는 건 어때? 내, 외야가 모두 가능한 수비 요원이라면 기회가 많을 거야. 감독님한테 말씀드렸더니 네 의사를 먼저 물어보라고 하시더라고.”


예상대로.

코치는 슬그머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도 내야 수비의 기본은 가능했다.

감독과 코치가 원하는 수준은 그 이상,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코치님 말이 맞다. 1군에서 뛰려면 자신만의 경쟁 무기가 필수야.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면 감독 입장에서도 쓸 데가 많고.’


민재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했다.


타격은 기복이 있어도 눈과 수비는 기복이 없다고 했다.

특훈으로 선구안은 좋아진 상태. 수비까지 갖추면 1군 콜업이 꿈만은 아니었다.


“연습 때 보니까 대시와 바운드에 대한 대처도 눈에 띄게 좋아졌더라. 내야 수비가 공을 받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가능성은 있어.”


코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덧붙였다.


테니스 특훈의 성과였다.

야잘잘, 나아가 운동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는 ‘운잘잘’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테니스에서 서브를 따라가는 대쉬, 바운드에 대한 대응은 야구의 수비에 좋은 참고가 됐다.


“알겠습니다. 투수, 포수 빼고 다 가능하게 만들겠습니다.”


민재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지션 추가는 그도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코치와 감독이 고마웠다.


“잘 생각했어. 어려운 도전이 될 테지만, 성공하면 보상은 확실할 거야.”


코치는 그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일단 2군에서 확실하게 내 자리를 만든다.’


퓨처스 리그 개막에 앞서 새로운 과제가 부여됐다.

예전 같으면 도전을 시작하기 전부터 겁을 먹었겠지만 이젠 달랐다.


‘새로운 전설을 만날 시간이군.’


이번엔 좀 특별한 전설이었다.

지금까지 안 힘든 훈련이 없었지만, 이번엔 곡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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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진짜 야구의 시작 (1) 23.10.02 502 13 13쪽
8 두 번째 전설 (2) 23.10.01 481 12 14쪽
7 두 번째 전설 (1) 23.09.30 507 12 12쪽
6 강민재가 누구야? 23.09.29 541 13 13쪽
5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2) 23.09.29 544 14 11쪽
4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1) 23.09.28 556 14 13쪽
3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2) 23.09.27 578 12 12쪽
2 그게 야구라는 말은 안 했다 (1) 23.09.27 602 18 12쪽
1 그러니까 악마지 23.09.27 825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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