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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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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65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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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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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배신자

DUMMY

비영사들이 떼죽음을 당했지만 청양의 분위기는 평소와 별반 달라진게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을 빠져나와 좁은 골목을 몇 번 돌다 보면 나오는 기묘한 느낌의 소로(小路).


어슴푸레하고 서늘한 느낌에 구린 안개가 낀듯한 이곳에 이씨철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도칠은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그늘진 지붕 위에서 사방을 주시했다.


그는 방려가 건네준 건량(乾糧) 주머니를 매만지고 있었다. 육포와 구운 잣이 들었는데 둘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적당히 기름지고 고소한 것이 꽤나 맛이 좋아 시시때때로 집어 먹었다.


그는 그렇게 질겅질겅 건량을 씹으며 이씨철방과 길목을 관찰한지 삼 일째였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이제 막 정오가 지났을 뿐인데, 다섯 명의 가족 모두가 우울한 표정에 맥이 빠진 얼굴들이다. 조그만 사내아이가 촐랑거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런 좁은 소로를 지나는 가족들 대부분이 이같이 희망을 잃고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썩어빠질대로 썩은 세상.


그것이 사도칠이 생각하는 지금의 패국이었다. 국토는 점차 넓어지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황제에게 있다.


패국 초대 황제 연권. 그는 대단히 능력있는 남자였다. 소국(小國)이었던 백양(白陽)의 왕이 이토록 거대해진 연합국의 황제가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위나라가 천하를 호령하던 시대였다.


위 말기, 위 황족들의 횡포와 위나라 국교였던 육천종(六天宗)의 패악이 하늘을 찔렀으니, 당시 위나라 속국(屬國)이었던 제백, 창해, 남강, 옥명, 백양 등 다섯 개의 나라가 연합해 그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렸다. 당시의 영웅들 중 하나가 바로 연권이었다.


황제가 된 연권은 비영사를 만들었고 그들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황권을 강화하여 나라 전체를 휘어잡았다. 그가 다음으로 행한 것은 바로 제백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제백의 왕 환중길은 연권을 신뢰하는 우(愚)를 범했고, 때문에 손 한번 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 그 환중길의 아들 환소백이 바로 사도칠의 주군이었다.


사도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왜 그랬소··· 내가 그만큼 믿지 말자고 했었는데···”


사실 죽을 힘을 다해 말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주군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타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제백의 왕이 죽자, 연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교도법을 제정했다.


육천종의 패악을 경험했기에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교도법을 환영했고, 그에 힘입은 비영사들은 닥치는 대로 종교인들을 색출했다.


제백 출신 권력자들은 줄줄이 패망의 길을 걸었고 제백의 백성들은 핍박받았지만 손을 내밀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찢어죽일 놈······”


연권의 면상이 떠오르자 사도칠은 치를 떨었다.


허나 모순되게도 그가 적휘를 데리고 찾아가려는 기왕(祁王)은 그 연권의 아들이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간사, 세상사라지만 너무 오묘하지 않은가.


수도에 도착하게 된다면 스스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 감도 오지 않았다.


좁은 길목으로 관군 둘이 들어왔다.


지난 삼 일 동안 관군들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비영사들이 떼죽음 당했으니 조사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까지 이곳에 들르거나 지나친 관군들은 모두 서른두 명.


사도칠은 모든 것을 파악하면서 면밀히 관찰해 왔다.


대체로 의미없는 시간이 될테지만 곧 의미를 가지게 될 터였다.


사도칠은 천천히 자신의 회백발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묶었다. 그리고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삼 일 동안의 기다림을 끝낼 시간이었다.


그는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 후, 곧바로 이씨철방에서 볼일을 마친 관군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어이!”


사도칠은 다짜고짜 그들을 불렀다. 정확하게는 소로의 끝에서 관군들을 기다리는 한 사내를 향한 것이다.


도칠을 발견한 사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사도칠은 입술을 비틀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우라지게 반갑고.”







*






사도칠은 뒤를 돌아보는 관군 두 명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물론 그들은 비영사도 아니었으니 기절시킨 것이 다였다.


소로의 끝에 있던 사내는 사도칠을 발견한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 도망쳤으나 일각도 지나지 않아 사로잡혔다. 그리고 질질 끌려갔다.


사내의 이름은 성묵. 재제위(再齊衛) 소속 말단무사였다.


제재위는 쓰러져버린 제백의 재건을 위해 음지에서 활동하는 단체의 이름이었고, 그곳의 핵심 인사 중 하나가 사도칠의 벗 호정이었다.


어둡고 퀴퀴한 폐가 내부는 먼지가 많아, 창으로 들어온 옅은 빛이 부옇게 보였다.


“어르신. 저한테 왜이러십니까?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폐가 중앙의 나무의자에 묶인 성묵이 말했다.


평범한 체구에 평범한 인상을 가진 그의 얼굴은 죄를 지은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비록 붙잡힌 신세였지만 얼핏보면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오연한 태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팍!


성묵의 곁에 있던 나무기둥에 작은 손도끼가 박혀 부르르 떨었다.


그로 인해 두려움을 숨기려 했던 성묵의 손가락은 어느새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그는 눈 앞의 무인이 적을 맞이했을 때, 얼마나 거칠고 과격하며 단호한지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인이 감정이 배제된 눈으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고민했지. 어쩌다 일이 이지경이 되었을까··· 나 때문일까? 비영사 놈들이 날 잡기 위해 왔던 것일까? 아니면?··· 아니. 아니야. 그보다 놈들이 어떻게 그곳을 알아냈을까? 그게 우라지게 궁금했지. 우린 은신에 관해선 누구보다 전문가들이었거든. 헌데 딱 한번 그곳이 드러난 적이 있었지. 우리의 은신 방식을 알고 있는 호정이 네놈을 통해 연락을 보냈었단 말이야.”


“어르신. 저 재제위 사람입니다. 제백 사람을 도왔으면 도왔지 어찌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겠습니까. 오해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성묵이 자신을 재제위라는 사실을 주장한 것은 그의 입장으로 볼 때 매우 적합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사도칠이었고 그는 사도칠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길 바랬지. 내가 재제위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나도 제백 사람아닌가.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고 그들을 믿고 싶었단 말이지. 적어도 네놈이 그곳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런데 나라고 어떡하겠느냐. 나는 내 눈으로 본 것마저 부인할 만큼 미련한 놈이 아니야.”


“어르신···”


“왜? 최근 들어 재제위와 관군들이 공모라도 하고있다 변명할 셈이더냐? 뒷일에 개의치 않는다면 그래도 좋다. 그렇지. 그래도 동향 사람인데 충고 하나 해주마. 네 대답이 내 마음에 들기만 하면 거칠게 대하진 않을 것이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고저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일관한 사도칠이 기둥에 박힌 손도끼를 빼내 들자, 성묵의 눈동자가 둘 곳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해야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지 백방으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사도칠은 결코 시간을 넉넉히 주지 않았다.


“누가 시켰느냐?”


“누가 시켰다니요. 저는···”


턱!


"으아아악!"


성묵은 사도칠이 원하는 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팔걸이에 올려져 있던 손가락 네 개를 단번에 잃었다.


사도칠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성묵을 바라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꺼냈다.


“세상에는 정말 독한 놈들이 많아. 아무리 고통을 주고, 목숨을 위협해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지독한 새끼들. 하지만 네놈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고문에 대한 훈련을 받기는 커녕 쬐끄만한 고통에도 면역이 없을 것 같은데···”


“흐흑.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누가 시켰더냐?”


성묵은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자신의 목숨을 건질 말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르신. 제가 만약 말씀을 드리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턱!


"으으아아악!"


손가락을 잃었던 손목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전신이 결박되어 움직이기 불편했지만 성묵은 온몸을 흔들며 발작을 했다.


“질문에 답을 해야지. 질문을 하면 어떡하누. 쯧쯧. 답답한 놈이 대가리도 삐꾸구만. 한쪽만 자르긴 했다만 오래 방치하면 과다출혈로 상당히 곤란해질거야. 다시 묻지. 누구냐?”


“이름은 모릅니다··· 크으윽··· 제백 출신이고 최근에 재제위에 들고 싶다하여··· 호정님에게 접근한 적이 있는 노인입니다. 크흑.”


성묵은 비명을 섞어 가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답했다.


사도칠은 도끼를 움직이지 않았지만 딱히 그의 답을 신뢰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의 매서운 눈빛은 성묵으로 하여금 허겁지겁 말을 덧붙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추호도 거짓이 없는 진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어르신.”


“내가 돌대가리인줄 아느냐. 재제위가 아닌 사람은 재제위란 이름조차 모르는데 어찌 호정을 찾아갔단 말이냐.”


“정확히는 재제위가 아니옵고 암향장(暗香葬)을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은 세 개 밖에 없지만 최근 재제위에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상회이고 노인이 찾아간 암향장 지부의 담당자가 호정님이십니다.”


사도칠은 그제야 성묵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어떤 단체든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고는 명맥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고 상업이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가장 고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도칠의 생각을 알 수 없던 성묵은 여전히 서늘한 그의 표정에 재차 위협을 느끼고 떠들기 시작했다.


“한 달 전, 웬 노인이 호정님을 뵙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호정님이 모르는 이를 만나주실 분이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정중히 돌려 보냈습니다. 헌데 다음 날 다시 찾아오길래 거듭 거절을 했습니다만 호정님이 아닌 절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꼭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정확히 어르신이었지요.”


“그놈의 이름을 모른다? 어찌 생겼더냐?”


“그게···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억양을 보면 제백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아, 복식이 꼭 유생과 같았습니다. 하얀 도포에 갓을 쓰고 있었고. 부.. 부채! 붉은 부채를 들고 있었습니다. 확실합니다.”


“비영사들이 영감이라 부르던데, 그놈이 그놈인가?”


“영감···? 아 예! 맞습니다. 곁에 있던 놈도 그 노인을 영감이라 부른 것 같습니다. 예. 맞습니다.”


사도칠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성묵의 설명으로는 도저히 누군가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호정에게 찾아갔다면 그놈도 지금 안강(安康)에 있다는 말이렸다?”


질문이 아니었다. 사도칠은 더이상 성묵에게 궁금한 것이 없었다.


이놈은 영감이라는 쳐죽일 놈의 위치를 모른다. 그러니 호정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당시 호정은 안강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성묵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안강이 아닙니다. 호정님은 줄곧 청양에 계셨습니다.”


“청양? 이곳에?”


사도칠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호정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제재위에 속하지도 않은 자에게 위치를 정확히 알릴 필요는 없을테니까.


잠시후, 그의 얼굴에 유일하게 띄었던 호기심이 사라지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성묵은 자신에게 시간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서둘러야 했다. 쓸모가 없어진 배신자의 말로는 뻔한 것이니까.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서 그랬습니다. 제발.”


“가족들이 인질로 잡혔다고?”


“예. 예. 맞습니다. 안그랬으면 제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모른다고 딱 잘라 말했지요. 이상하다 싶어 호정님께 여쭐까 고민도 했습니다. 헌데 그놈들이 다시 찾아와 제 안사람과 두 아들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데 제가 어떡하겠습니까. 저는 힘이 없고 다른 곳에 발설만 해도 다 죽인다는데. 흐흐흑.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르신이야 워낙 전설같은 소문을 많이 들었으니 그런 놈들에게 당하지는 않겠다 생각하여···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저같이 힘없는 자들이 무슨 방도가 있었겠습니까. 제발. 흐흐흑.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사도칠은 들고 있던 손도끼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에 잃었던 생기가 다시 도는 것처럼 성묵의 얼굴에 희망이 서렸다.


“나는 널 동료라 생각했다. 같은 길을 가지는 않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하지만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게지.”


“어르신. 저는···”


“이해한다. 가족이 잡혔는데 어쩔 수 없었겠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같은 사람은 가족이 볼모가 되면 조국도 팔아먹을 놈이란 말이지. 그런 놈은 조국에 필요가 없는 법이야.”


사도칠은 말을 마치며 허리 춤에 있던 항마도를 꺼내 한차례 휘둘렀다.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겁쟁이 한 놈으로 인해 죽은 동료들의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살려두면 언젠가 호정에게도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하게 처리했지만 뒤끝이 이상하리만큼 찝찝했다. 그는 자부심 넘치는 무인이었지, 약한 자를 죽이는 살인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더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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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포고문(布告文) +3 21.05.20 375 10 16쪽
13 혼부(魂瓿) +2 21.05.19 397 11 13쪽
12 진왕 연정백 +4 21.05.18 402 10 15쪽
11 호정 +2 21.05.17 415 10 14쪽
10 무투장 +1 21.05.16 417 12 12쪽
9 회서파(淮西波) - 2 +1 21.05.15 415 12 13쪽
8 회서파(淮西波) - 1 +2 21.05.15 433 13 12쪽
» 배신자 +2 21.05.14 456 14 14쪽
6 첫 만남 +4 21.05.14 527 16 14쪽
5 가족 +3 21.05.13 512 16 11쪽
4 탈환 +1 21.05.12 519 15 15쪽
3 이씨철방(李氏鐵房) +1 21.05.12 548 16 11쪽
2 비영사(秘影社) +3 21.05.12 647 21 16쪽
1 서(序) +4 21.05.12 764 2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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