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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건영(建榮) 님의 서재입니다.

패국통천가(覇國通天歌)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드라마

건영(建榮)
작품등록일 :
2021.05.12 10:33
최근연재일 :
2021.06.25 10: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2,464
추천수 :
390
글자수 :
249,672

작성
21.05.1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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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비영사(秘影社)

DUMMY

“지금부터 네 주인이 될 사람이다.”


하늘처럼 받들던 주군의 마지막 말이었다.


여전히 따뜻한 주군의 미소.


하지만 사도칠은 알고 있다. 따뜻한 미소를 보이는 입 속엔 이가 악물려 있었다는 것을.


그의 품에는 어느새 주군에게 건네받은 갓난아이가 고이 잠들어 있었다.


강퍅한 인상을 사정없이 구긴 사도칠이 외쳤다.


“가자.”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동료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더이상 주군을 설득할 수도, 주군과 함께할 수도 없다. 그저 천고의 기재라 불리는 그의 판단을 믿을 뿐 다른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붉은 화염이 가득했고 불길은 넘실거리며 온갖 곳으로 옮겨붙고 있었다. 대저택의 곳곳에서 동시에 불이 피어올랐고 숨을 들이킬 때마다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는 적들의 준비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체감케 했다.


쐐애애애애액


투두두둑


적들의 화살들이 건물을 뚫고도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날아온 방향은 하나였지만 노린 곳은 대저택 모든 곳이었다.


동료들이 죽어갔다.


사도칠의 안위를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받이를 자청한 그들은 고슴도치가 되어서야 무거워진 몸을 차례로 뉘였다. 그가 직접 키운 진짜 사내들이었다.


분노로 인해 매섭게 뻗은 사도칠의 눈초리가 더욱 짙어지고 거미줄 같은 잔주름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다소의 희생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을 지체한다면 모든 동료를 잃고 말 것이다. 승리에 취한 적들의 광소가 먼 거리를 뚫고 그의 귀를 때리는 것 같았다.


“얼어죽을!”


사도칠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달음질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이 지독한 화염지옥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굳게 믿었다. 적어도 아직은 적의 본대가 도착하진 않았을 터.


“단주! 저기!”


“오냐.”


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나··· 문이··· 잠겨있었다.


건장한 사내들이 몸을 날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대로 있다간 화마에 휩쓸려 뼛조각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다.


사도칠의 얼굴에 단호한 빛이 서렸다.


아이를 맡긴 그가 걸어간 곳에는 바닥으로 떨어진 커다란 서까래가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망설임이라는 단어는 이미 지웠으니까.


덥썩.


“으라아아아아!”


혼자 힘으로 커다란 서까래를 들 수 있는가. 아무리 대단한 장사라 해도 무리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들어 올렸다. 지체없이 서까래로 달려든 동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뜨겁다. 타오르는 불꽃이 순식간에 손과 팔을 녹여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손에 힘을 빼지 않았고, 불타는 서까래는 화마를 잠재울 듯한 커다란 기합소리와 함께 문으로 질주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잠겨있던 문이 단번에 박살났다.


매케한 연기 속을 빠져나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상쾌한 공기가 아닌 당혹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적들이었다.


“으아아아악!”


적들의 비명이 사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적을 베고, 검을 찔러오는 적을 베고, 등을 보인 적을 베었다. 아이를 안은 채 휘두르는 사도칠의 도(刀)는 멈출 줄을 몰랐다.


상대의 피로 온몸을 붉게 적신 사도칠이 앙다문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검붉은 피로 뒤덮힌 얼굴에 새하얀 이가 드러나는 광경을 섬뜩함이라는 말 외에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를 마주한 적들은 끝 모를 두려움에 몸서리 쳤다.


마침내···


초열지옥과도 같았던 포위망을 뚫고 뒤를 돌아 보았을 때, 거대한 저택이 끔찍한 화마에 휩쓸려 맥없이 주저앉고 있었다.


어금니를 악물은 그가 고개를 숙여 갓난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얼굴에까지 피가 튄 아이의 눈은 그를 향해있었다.


울지도 않는 것이냐.


“소주(小主). 갑시다.”


몸을 돌린 그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글거리는 눈 속엔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치는 불길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






깡!


깡!


깡!


불꽃이 튄다.


팔 년이 지났음에도 불꽃만 보면 그날 일을 되새기게 된다.


쇠를 두드리는 노인의 눈동자에도 불꽃이 피어올랐고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 강렬했다.


산발한 회백색 머리, 심한 매부리코, 광대뼈 아래의 볼때기가 깎은 것처럼 푹 꺼져있어 유달리 강퍅한 인상을 가진 노인.


사도칠이었다.


장정처럼 탄탄한 근육을 가진 그는 힘든 내색도 없이 일정한 자세를 유지했고 그가 쇠를 다루는 모습은 너무도 진지하여 짐짓 경건하기까지 했다.


쇠를 혼자 두드릴 수는 없는 법. 노인의 곁엔 능히 칠 척은 될 법한 거한이 앉아 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쇠는 불덩어리에 가깝다.


마치 용암처럼 열기를 내뿜는 그것을 집게로 잡고 있는 거한은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 일체의 움직임도 없었다.


노인과 거한. 어울리지 않는 그들에게 유일하게 닮은 점이 있다면 철녹이 끼고 시커먼 그을음이 가득한 양손에 일그러진 화상 자국이었다.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았고 그렇게 수십 번을 더 두드렸을 때, 돌연 모양을 잡아가던 쇳덩이가 툭 부러졌다.


거한 호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도칠에게 말했다.


“단주께서도 늙었나보오.”


“얼어죽을. 웬 헛소리냐!”


사도칠은 눈을 흘기며 쇳소리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앞에서 힘자랑 할 것이 무에 있단 말이오. 조금 무리하시는 것 같던데.”


“이놈이! 그 주둥이랑 벌써 작별하고 싶은게냐? 아니면 가만히 입 닥치고 있거라. 이익! 이건 뭐 툭하면 부러져. 젠장할.”


“······”


“그리고 이놈아. 이 짓거리 시작한지 고작 이 년이다. 사람이 어찌 처음부터 잘할까?”


“저들을 보시오.”


‘이씨철방(李氏鐵房)’이라 명명된 대장간 한편에 건장한 사내들이 각자 쇠를 두드리고 날을 벼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농기구부터 식칼, 병기, 이름 모를 연장까지 그들이 만들어낸 물건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 번쩍거리는 쇳덩이들을 본 사도칠은 금세 얼굴이 붉어져 호통을 쳤다.


“야,이놈들아! 적당히 할 것이지. 수련은 도외시하고 망치질에 열과 성을 다하면 어쩌자는 게야! 무인의 본분을 잊었더냐!”


“에이 단주. 열 올리지 마시오.”


“열과 성을 다하라고 한 것은 단주잖소.”


“들키지 않게 제대로 하라고 하더니.”


“나름 수련도 되고 좋습디다.”


사내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저마다 크게 대꾸했다.


한마디를 하고 열 마디를 받은 사도칠은 얼굴을 구기며 망치를 세차게 내려놓았다.


“네놈들이나 하거라.”


“잘 생각하셨소.”


“흥!”


사도칠은 망치 대신 날카로운 도(刀)를 들고 자리를 옮겼다.


이글거리는 열기로 가득한 대장간 외방과는 달리 내방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평범한 여염집과 다름없는 그곳엔 아이들이 뛰놀았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사도칠은 아이들을 발견하자마자 소리를 꽥 질렀다.


“다들 썩 꺼지지 못해! 여기가 무슨 도떼기시장인 줄 아는게야!”


인상이 험한 사도칠이 칼까지 들고 소리치자 아이들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잠시후, 그곳에 남은 유일한 사내아이가 뒷짐을 진 채 그에게 다가왔다.


“도칠.”


“뭐요?”


여덟 살이 된 아이는 하대를 하고 예순을 바라보는 사도칠은 공대를 했지만 위화감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주인과 노복. 주종관계란 의당 그래야하니까.


“희원의 말이 사람을 빈부귀천에 따라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했어.”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 같소?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소주(小主)는 저런 아해들과 어울리면 안된다고 누차 말하지 않았소.”


자신이 아이들을 싫어한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도 않는다.


총기 가득한 커다란 눈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적휘는 호연이 그러했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사도칠의 입에서 불만이 비집고 나오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도칠. 배고파.”


“으앙?”


“배가 많이 고파.”


“그걸 왜 노복에게 말하시오? 이젠 노복이 음식이나 하는 숙수(熟手)로 보이시오?”


얼굴을 사정없이 구긴 사도칠의 발걸음이 푸줏간으로 향했다.


꼭 주인으로 모시는 적휘의 성화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쫓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주변 상황을 경계하는 일을 제외하면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즉, 그의 일상이었다. 아직 성장기에 있는 주인을 위해서라면 큰 수고도 아니었다.


강퍅한 그의 인상에서 매서운 기운이 흘렀지만 푸줏간 주인은 여느때와 같이 허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손주는 잘 크고 있지요?”


고기를 한덩이 더 얹어주며 넉넉한 인심을 보인다. 꽤 오랜 시간 꾸준하게 다녔던 곳이니 그럴만도 했지만 지금같은 세상엔 생소한 온정이었다.


그는 손주가 아니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답으로 미소를 보이는 것조차 어색한 성격이었으니까.


그때, 그의 귓가에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이런 제기랄. 재수 옴 붙었군. 피바람이 불겠어.”


“에휴. 오늘은 몇이나 죽으려나. 어여 가세.”


사도칠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을 따라 청양성(靑陽城) 남문을 향했다.


청양은 제백령(齊百領) 금서주(嶔西州) 남부에 위치한 커다란 성이다. 남강(南羌)과 이제는 사라진 옛 나라 제백(齊百)의 경계.


이제는 모두 패국이라는 연합국에 속해 전쟁이 사라진 지금, 교역이 발달한 청양의 성문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흘러들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확 띄는 존재들이 있었다.


검은 제복. 검은 관모. 가슴의 은빛 각인.


눈에 띄는 복식을 한 네 명의 사내가 말 위에 올라타 청양성 남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사도칠은 당장 달려가 쳐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즉시 마음을 눌렀다.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에 소란을 피우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니까.


그는 태연하게 일을 본 후 여유롭게 움직였다. 지척에서 말들의 투레질 소리에 이어 큰 소란이 일었을 때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그를 잡기 전까지는.


왜 그랬을까.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발을 멈췄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가 보게 된 것은 높게 띄워진 무고한 백성의 머리였다. 너무도 허망하고 가벼운 죽음.


조금전까지 허허 웃으며 넉넉한 인심을 보이던 푸줏간 주인의 얼굴이 제 몸을 잃고 새파랗게 질린 두려움만 남기고 있었다.


분노에 떨고 있는 사도칠의 귓가에 낄낄 거리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오늘 거사를 치른다고 했잖아. 소란피우지 말라는 영감 말 못들었어?”


“영감 말은 영감 말이고, 우리의 임무가 뭔가? 더러운 이교도놈들 처죽이는거 아닌가. 이보다 중한 일은 없지. 더군다나 이몸은 소란피우지 말라는 말 못들었다고.”


“허허. 이놈아. 그놈이 이교도인건 확실하고?”


“클클클. 비영사에 몸 담은 지가 십 년이야. 얼굴만 딱 보면 이교돈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야지!”


“하여튼 저 미친새끼.”


이를 앙다문 사도칠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도망쳐야 했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몸을 숨기고 있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악적들이기 때문이었다.


비영사(秘影社).


현 황제 직속 감찰기관의 이름이다. 십여 년 전, 패국 황제 연권은 유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자유를 구속하는 이교도법을 제정했고 비영사는 그 법의 집행자였다.


다종교 국가였고 백성들의 팔 할이 종교인이었던 제백은 그들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다. 제백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숙청되었고 그 중에는 사도칠의 주군도 있었다.


푸근했던 푸줏간 주인의 얼굴이 다시금 떠오르고 더이상 만날 길이 없는 주군의 마지막이 뇌리를 스치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비영사들을 향해 돌아섰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이 푸줏간 주인의 목을 베고 낄낄 거리던 놈을 찾았다.


그놈은 사내 하나를 구타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물어! 개처럼 물라고 제백놈아!”


두려움에 떨던 사내는 계속되는 구타에 결국 눈물을 흘리며 저항을 포기했다.


그리고······


사내는 덜덜 떨리는 입을 힘겹게 열고 포목점 입구를 오르는 계단 모서리를 물었다.


그 모습을 본 비영사는 호탕하게 웃었고, 있는 힘껏 몸을 날려 사내의 뒤통수를 밟아버렸다.


빠각.


그 둔탁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소리는 사내의 목숨을 끊었고 사도칠의 마지막 인내심마저 가볍게 끊어내었다.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같은 사람의 목숨을 까닭도 없이 유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풀어 헤친 긴 회백발을 쓸어 올려 머리 위로 묶었다. 분노로 인해 매섭게 뻗은 그의 눈초리가 더욱 짙어지고 거미줄 같은 잔주름이 꿈틀거렸다.


푸줏간에 도착한 그는 주인이 사용하던 넓적한 푸주칼을 집어 들었다. 주인이 매일같이 갈아댄 그 칼은 사람을 해치기에 손색이 없다.


때마침 지나가는 화려한 녹색 마차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가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아직도 웃어대는 비영사의 뒤를 점한 뒤 단숨에 그놈의 목을 갈랐다.


“웬 놈이냐!”


별안간 동료를 잃은 비영사들이 황급히 검을 뽑았다.


비영사들이 습격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들은 황제의 검이나 마찬가지니까.


첫 경험은 당혹을 낳고 제 실력의 대부분을 앗아간다. 남은 비영사 셋은 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사도칠은 그 짧은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가 휘두른 칼이 한 놈의 다리를 갈랐고 그가 던진 칼이 한 놈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빈손을 움직여 죽은 비영사의 검을 들어올린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썩을놈들. 곧 죽을 놈들이 누군지는 알아서 뭐하누? 수준들을 보아하니 흥이 나긴 글렀구나. 퉷.”


쇠 긁는 듯한 목소리에 비영사들은 검에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사도칠은 어느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순간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몸을 숨기고 발각될까 전전긍긍하는 생활은 도무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사라진 제백에서 단연 독보적인 무력을 자랑하던 숭무련(崇武聯). 그 중에서도 단 일곱 명 밖에 없는 단주 중 하나였던 사내.


그가 비영사들에게 달려갔다.


흙먼지가 날리고 피가 튀고 비명이 튀어나온다. 비영사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차례차례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양민들은 옮기던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악명 높은 비영사를 쓰러뜨렸지만 그를 응원하긴 커녕 괴물로 여긴 것이다.


“쿨럭. 네··· 네놈··· 숭···”


아직 한 놈이 살아있었다. 사도칠은 익숙치 않은 비영사의 검을 돌려주었고, 복부로 검을 받은 비영사는 절명했다. 모두 죽은 것이다.


허나······


잠시 후, 그는 영문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죽일 놈들을 모조리 참했으니 개운해야 하건만, 심장은 오히려 더 세차게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니라고. 아닐거라고 수차례 되뇌었지만 덜컥 찾아온 두려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거사를 치른다고 했잖아.’


‘숭···’


그는 더이상 걸을 수 없었다. 청양은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다. 허나 그 거사의 대상이 자신들이 아니란 보장도 없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동료들이 있는 철방도 멀지 않다. 하지만 불길한 상상은 점점 커져만 갔다.


숨이 가빠왔다. 심장이 어찌나 세차게 뛰는지 주저 앉을 뻔도 했다.


익숙한 골목들.


하지만 워낙 서두르다 보니 벽이나 장애물에 부딪쳐 상처들이 생겼다. 크게 찢어진 곳도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불안은 어느새 그의 통각을 앗아간지 오래였고, 점점 몸집을 부풀리더니 그에겐 생소한 공포를 선사했다.


마침내 그의 발이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 ‘이씨철방’이라 적힌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은 현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작은 출입문 앞에는 그의 오랜 동료가 가슴이 꿰뚫린 채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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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씨철방(李氏鐵房) +1 21.05.12 548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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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序) +4 21.05.12 764 2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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