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좋아하세요? II
해가 밝고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상태창을 꺼냈다.
[임무에 실패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불길한 얘기나 지껄이고 있다. 이 따위 상태창 무시하면 그만이다.
[생존 0/3]
문제는 저 문구다. 세 명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듯한 '0'. 그럼 그 세 명은 누구란 말인가? 의문의 품고 모른 척했지만, 사실 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 같다.
혹여 내 예상대로라면 소리, 사책, 샘일 테지. 만일 그들이 정말로 죽었다면 난 친구들의 죽음을 방관한 꼴이 되는 건가.
차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고 싶지 않다. 그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
8시 58분. 오늘따라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던 나는 최대한 늦게 교실에 들어섰다.
역시 무언가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평상시와 너무나 다른 반 분위기가 나의 예감을 방증한다.
학생들은 죄라도 지은 것마냥 쥐 죽은 듯 조용했고, 9시 정각이 되어서도 선생님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눈치가 있다면 학교에 사달이 나기는 났구나 알 수 있었다. 아니 모르면 병신이다.
"전날 밤에 우리 반 학생 세 명이 실종됐다는데?"
"누구??"
"아마도 그 지금까지 등교 안 한 애들이겠지."
"샘이하고 사책이? 미친 소리도 안 왔네?"
"근데 나도 부모님한테 전해 들은 거라 확실한 건 아니야."
"야 다른 애들은 몰라도, 우리 반에서 소리가 제일 먼저 등교하잖아. 개가 아직도 안 온 거면 무슨 일이 생기긴 했나 보지."
누가 애들 아니랄까 봐. 한 명이 입을 떼기 시작하니 반 전체가 술렁거렸다.
소문은 삽시간이 퍼졌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마다 부풀어졌다.
뒤늦게 등장한 선생님이 교탁을 치대며 제지하고 나서야 소문의 맥이 끊겼다.
"1교시는 자습이니까 조용히들 공부하고 있어. 반장은 무슨 일 생기면 교무실로 오고."
반 전체를 향하던 선생님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는데. 바로 내게로 꽂혔다.
"재인이는 잠깐 선생님 좀 따라와 봐."
***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각 학년 부장님과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학교의 증진이 모두 모여 있었다.
"네가 재인이구나. 곧 있으면 경찰분들이 오셔서 몇 가지 물어볼 테니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다."
교감 선생님이 안내해 주신 대로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머지않아 누군가 교무실 문을 두드렸고 얼굴을 보였다.
"조사에 협조해 두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막 추기구 학생과 면담이 끝났습니다."
"기구 학생한테 별일은 없는 건가요?"
"추기구 학생이 담력 시험을 가장 먼저 기획한 것은 맞지만 범행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 절은 예전부터 공포 테마파크로 익히 유명한지라 타 학교 아이들도 종종 방문했고요. 특이할 건 따로 없는 거 같습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홀로 앉아 있는 학생. 내 존재감은 누가 봐도 이질적이었다.
경찰은 단숨에 나를 알아보고는 불러일으켰다.
"재인 학생 맞죠? 괜찮으면 아저씨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교무실 문밖을 나선 나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했다.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 약속 장소와 약속 시간. 나 혼자 담력 시험에 빠진 이유. 그 외 특이 사항.
긴장된 분위기와 다르게 경찰과 나눈 대화는 일상적인 면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부적'과 '부활'을 빼놓고 얘기했을 때다.
당사자인 나조차 그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괜히 입 밖으로 꺼내 들었다간 오해만 살 것이다.
누군가는 진실을 은폐한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내 딴에는 가장 현실적인 대처였다.
"그래요. 얘기 나눠줘서 고맙고 이만 교실로 돌아가도 좋아요. 가는 길에 담임 선생님한테 인사드리고요."
"저기."
"뭐 더 할 말이라도 남았어요?"
"애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건가요.."
"친구들이 걱정돼서 물은 거죠? 재인 학생 마음은 잘 알겠는데 자세한 내용은 우리 경찰 아저씨들 일이라서 밝힐 수가 없어요. 교실 들어가서도 되도록 같은 반 친구들한테 별말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경찰 아저씨는 최대한 사건 상황을 알리지 않는 선에서 조사를 끝내셨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교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1학년 2반 실종 사건'을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
사건 발발 후 일주일이 지났다.
추기구는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책감에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재학생 중 실종자와 유대관계가 깊은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내 관계자들의 모든 이목이 내게 집중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내게 실종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부류도 있었다.
앞에서는 위로를 전하면서 뒤에서는 근거 없는 추측으로 나를 헐뜯는 무리도 있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누명을 쓴 주인공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억울하다는 감정을 눈과 귀로 즐길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가 현실에서 겪어보니 깨달은 바가 있다.
억울함은 눈물, 콧물, 분노, 각종 문학적 수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다시 돌아와 줄 수만 있다면 1학기 내내 이 누명을 달고 살 자신이 있다. 1학기로 부족하다면 1학년 생활 내내 감당하겠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졸업할 때까지 범행 관계자라는 오물을 뒤집어쓸 의향도 있다
열일곱 내 나이. 친구가 전부인 시절. 아무도 다가와 주지 않는다는 게 이토록 괴로울지 몰랐다. 유년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힘든 점은 실종자 부모님들의 눈빛이었다.
마치 왜 너만 살아남았냐는 듯한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면, 자식 잃은 부모의 애꿎은 원망이겠구나 넘어갔을 테다.
근데 정말 난 아무런 책임도 없을까.
[도깨비 터 임무에 실패하셨습니다.]
[생존 0/3]
상태창만 하염없이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체크 포인트로 즉시 돌아가시겠습니까?]
[임무를 포기하고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날의 사건은 꿈이 아니라는 걸 사실 난 알고 있었다.
친구들을 이대로 보냈다가는 죄다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서는 척만 했다.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게 너무나 두려웠으니까.
[체크 포인트로 즉시 돌아가시겠습니까?]
상태창의 정보를 믿어도 될지 의심했다. 믿는다면 어디까지 신뢰해야 좋을까.
생각이 많아지니 과정만 복잡해지고 결론은 안 나온다.
일단 임무 실패가 현실에도 영향을 끼쳤으니 상태창의 신빙성은 나름 증명된 것 같다.
[체크 포인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활하셔야 합니다.]
적절치 못한 처사일 수도 있다. 모른 척 이 아물고 사는 게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안 해도 될 짓 해서 사서 고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말이다. 기회가 쥐어졌을 때 인생을 걸어보는 것도 해볼 만한 선택 아닐까.
[부활하기 위해서는•••]
무모한 선택일 수 있지만 난 친구들을 구해보려 한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합•••]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멈춰 섰다. 이대로 복도를 지나서 현관문을 열면 우리 집 거실이다.
평소 같았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귀가했을 텐데 오늘따라 걸음이 무겁다.
현관문을 여는 대신 복도 난간에 기대어 밑을 바라봤다.
사람 머리가 개미 새끼마냥 자그맣다.
"개쫄리네."
가랑이 사이에 난간을 끼고 그 위에 앉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름이 끝나가려는지 바람이 차가웠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합니다.]
[소유주는 죽으십쇼. 소유주는 죽으십쇼. 소유주는 죽으십쇼.]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오늘의 난 자살하기로 했다.
[도감의 소유주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사인: 낙사]
[징벌 '무한 부활'이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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