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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킹 님의 서재입니다.

외계행성에서 연인과 떨어졌을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조율킹
작품등록일 :
2021.06.22 08:13
최근연재일 :
2021.10.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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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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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1화-반란(5) 악당

DUMMY

‘글러트니···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엇비슷한 키의 두 남녀는 동일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고작 1m 정도의 간격 사이에서 오가는 둘의 시선은 운동선수들이 주고받는 신호와는 거리가 멀었고, 연인들이 나누는 끈적한 그것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굳이 분석하자면 유미와 글러트니가 나누는 눈빛의 목적은 통찰, 그리고 과시였다.


“네가 존나 쎄다며? 뭐랬더라? 아, 공화국 최강의 마법사.”

“본 크러셔, 당신이 이 거구들을 모두 쓰러뜨렸나?”


케이시와 철수는 둘 사이에서 흐르는 팽팽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조금만 집중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연습실을 가득 채운 일촉즉발의 긴장감.


“글러트니, 우리를 도우러 온 겁니까?”


케이시는 글러트니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빠르게 시선을 돌려 연습실 바깥에서 입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수를 헤아렸다.


‘63명··· 별 의미는 없겠군.’


하나하나가 초월적인 마법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63명이나 있건만 연습실에 있는 존재에 비한다면 먼지와 같은 전력이었다.


와인색 숏컷에 가느다란 눈을 한 여성, 안유미. 세 계통 중 가장 희귀하다는 영역 계통의 마법사인 걸로 모자라 마법 이론의 권위자인 케이시도 설명이 안 될 불가사의한 출력을 지녔다.

검정 곱슬머리와 감정이란 것을 완전히 배제한 듯한 무표정의 얼굴, 글러트니. 항상 목숨을 걸고 이겨내는 제약으로 공화국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신체 계통 마법사다.


이 두 명이 있는 한 일반 병사가 나설 자리는 없었다.


‘글러트니가 누구에게 붙어 있느냐가 관건이야.’


지금 크렌시아 공화국의 수도 테무친에서는 소식이 빠른 마법사들끼리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김철수가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퍼뜨린 소문이 빛을 발한 것이다. 케이시에게 다행이라고 할 만한 일은 마법사 대다수가 공화국 쪽에 섰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글러트니가 공화국을 적대한다면 공화국은 전혀 유리하지 않다. 아니, 당장 패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 글러트니? 대답하세요. 본 크러셔의 포획을 도와주러 오셨나요?”


케이시는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글러트니를 재차 불렀다. 고개를 살짝 틀어 케이시를 바라본 글러트니와 눈을 맞추면서도 케이시는 그의 행보에 따른 경우의 수를 필사적으로 정리했다.


‘글러트니가 아군이라면 남은 일은 수월해. 유미 님의 마법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지속 시간이 치명적으로 짧으니까. 반면에 글러트니가 우리를 적대하는 시나리오가 최악이야.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긴급탈출기를 타고 사라지겠지. 그 외엔 글러트니가 아직 고민 중, 그러니까 누구의 편에 설지 결정 못 했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겠지.’


케이시는 내심 첫 번째 경우가 정답일 확률이 높으리라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에서 보인 그의 의욕적이지 못한 모습이 글러트니가 멘티의 수하여서, 일부러 전쟁을 늘어뜨리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역, 옥타곤.”


유미는 글러트니와 케이시의 대화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순식간에 확보되는 영역과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짜릿한 감각. 그와 동시에 유미의 예리한 레프트 훅이 글러트니의 후두부에 꽂혔다. 글러트니의 시야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유미의 펀치는 일반인이라면, 아니, 단련된 인간이라 해도 한순간에 절명할 정도로 강력하고 위험한 래빗 펀치였다.


“까아아악!”


그러나 비명을 터뜨린 건 글러트니가 아니었다. 그의 목숨을 노린 펀치를 날린 유미가 주먹을 감싸 쥔 채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누, 누나, 괜찮아? 뭐지? 분명 영역이··· 앗!”


연습실 구석에서 유미와 글러트니의 대치를 지켜보던 철수는 어둠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듯한 불안감에 유미의 영역 조건을 다시 한번 상기해봤다.


‘영역 내에서 무기와 마법의 사용을 금지한다··· 설마?’


철수는 글러트니가 유미가 영역을 확보하기 전부터 배틀폼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고 보니 마르크스에서 엘리제라는 여자가 쏜 총도 무사히 누나의 몸까지 도달했지? 설마 누나의 마법은 영역 바깥에서 사용한 마법이나 무기에 대해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건가?’


철수는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약점이 밝혀졌다고 생각했다. 일단 영역 안에만 있으면 무적이라고 생각한 유미에게 강력한 천적이 생긴 셈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신체 계통 마법사 중에서 변신 형태의 마법사들이 전부 유미 누나의 하드 카운터라는 얘기잖아? 젠장, 하필이면 공화국에서 수가 가장 많은 마법사가···’


“이, 이 새끼가?”

“잘했어요, 이제 됐습니다. 본 크러셔와 김철수의 신병은 저희가 확보하겠습니다.”

“뭐, 뭐야? 이거 안 놔?”

“자, 잠깐만요? 글러트니, 아니, 글러트니 님? 저 당신의 열렬한···”


글러트니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유미와 철수를 각각 양쪽 겨드랑이에 껴서 들어 올렸다. 유미와 철수, 특히 유미는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배틀폼의 글러트니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발버둥이었다.


“글러트니?”


글러트니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연습실을 나섰다. 총을 겨누고 있던 병사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지휘해야 할 케이시도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뜬금없이 침착한 몸짓이었다. 모두를 당황시킨 글러트니가 일정한 속도로 케이시의 앞까지 걸어간 후 내뱉은 말은 케이시에게 당황을 넘어 황당함을 선사했다.


“악-당.”


정확한 발음으로 짚은 그 단어만 남겨두고 글러트니는 몸을 한껏 웅크린 후 공중을 향해 뛰었다. 외골격도 착용하지 않은 글러트니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기껏해야 1m 도약이나 가능한 행위. 허나 글러트니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콰가가각-


도약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쳐 이내 점이 되어버린 글러트니의 모습. 지상은 글러트니의 가공할 도약의 여파로 땅이 산산조각이 났다.


“크윽.”


꼴사납게 넘어지고 나뒹구는 병사들과 달리 겨우 균형을 잡은 케이시는 급한 마음에 손바닥 위로 불꽃을 일으켰으나, 이미 멀어진 글러트니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생각났다. 글러트니의 성격.’


글러트니를 담당한 교육관-케이시의 전 제자-에게 전해 들은 그의 성격.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케이시는 글러트니가 남기고 간 단어의 의도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지독한 정의 바보.”



**



같은 시각, 글로리아 제국 수도 애덤에서는 4인의 남녀가 황제 명령으로 소집됐다. 감정과 생각을 추스른 황제가 반란군으로 정의된 용살, 철벽, 필중, 무퇴, 도전 부대를 추격 및 섬멸하기 위해 모은 정예들이었다.


“폐하, 섬멸대로 편성된 인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근위병의 보고에 포트케는 가볍게 손짓하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라.”


엠페러 타워 97층. 황제의 권위와 위상을 나타내는 옥좌(玉座)가 있는 층이다. 상위 5개 부대 대장의 임명식이나 원주민 응대, 국운이 걸린 작전의 승낙 등, 중대사에만 쓰이는 층이기도 했다.

황제가 부른 섬멸대는 차례차례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사람은 황제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가쿠후 겐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가쿠후 겐지. 징집 479년 차, 용살 부대의 부대장으로 다수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그 전부터 황제의 직속 자객으로서 수면 아래에서 벌어진 수많은 암투에 관여했다. 그에게 축적된 경험과 기술, 그리고 항상 들고 다니는 원주민의 선물로 무장한 그의 전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니스트,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겐지의 옆에서 걸어온 남성은 금색의 구불구불한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남성이었다.

이명 어니스트, 제국에서 단 두 명밖에 없다는 영역 계통의 마법사였다. 원래 마수 토벌 임무를 전담하는 인물이지만, 용살부대를 상대하는 데에 더할 나위가 없다는 겐지의 추천으로 소집되었다.


“다크시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어니스트를 따라 들어온 남성은 검은 천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도저히 황제 앞에서 할 차림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의 이명은 다크시즘, 10번 부대의 대장이자 유일한 부대원이다. 최소 인원을 맞추지 못했음에도 일개 부대급 전력으로 평가받은 물질 계통의 마법사이며, 일대 다수의 교전에 있어서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인물이다.


“블러드 퀸,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장한 사람은 검은색과 붉은색의 조화가 어우러진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었다. 창백한 피부와 단정하게 묶은 머리, 손가락 마디만큼 긴 손톱, 그리고 그녀의 블러드 퀸이라는 이명은 자신이 어떤 마법사인지 홍보라도 하는 듯했다.

블러드 퀸, 제국, 아니, 대륙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유명한 헌터였다. 뚜렷한 국적 없이 움직이는 게 보통인 그녀는 4인 중 유일하게 돈으로 고용된 인원이었다.


“반갑다. 그대들의 임무는 알다시피 반란군의 소탕일세.”


포트케가 말을 시작하자 네 명은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경청의 자세가 되었음을 나타냈다.


“부대를 소수정예로 운영하는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네. 첫 번째로 그대들이 상대할 반란군의 전력은 머릿수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지. 지나치게 많은 인원을 투입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보단 소수를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는 민심일세. 반란군을 공표하고 언론을 움직여 대서특필했음에도 아직도 국민은 반란군을, 정확히는 용살부대를 지지하고 있네. 이 작전을 표면에 드러내놓고 움직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바로 자네들을 소집한 거야. 임무를 누구보다 조용히, 빠르게, 그리고 확실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겠나?”


황제의 형식적인 물음에 네 명은 가지각색의 대답을 내놓았다.


“머릿수가 안 통하는 건 맞는 말이죠.”

“반드시 반란군을 설득하겠습니다.”

“······”

“약속한 돈만 충분히 주신다면야.”


황제는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원주민의 선물을 들고 있는 베테랑 병사와 제국군 마법사 두 명, 그리고 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헌터. 이것이야말로 클라우디아조차 예상치 못할 팀이라고 생각했다.


“좋다. 제국군의 시스템은 잘 알겠지? 자세한 방법은 임시 대장인 겐지가 정하도록.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 소크라테스에 처박힌 반란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게나.”

“예, 폐하.”


4인의 섬멸대는 황명에 동시에 대답하고 점핑 플레이스를 통해 사라졌다. 그들의 목적지는 소크라테스. 클라우디아의 영지였다.



4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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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하비 크리스 21.10.27 33 0 12쪽
43 42화-다시 만난 두 사람 21.10.22 29 0 12쪽
» 41화-반란(5) 악당 21.10.21 30 0 11쪽
41 40화-반란(4) 21.10.20 29 0 12쪽
40 39화-반란(3) 누구보다 강하게 21.10.15 35 0 12쪽
39 38화-반란(2) 21.10.14 25 0 12쪽
38 37화-반란(1) 21.10.13 29 0 11쪽
37 36화-진실에 다가가는 사람들 21.09.11 35 0 12쪽
36 35화-확신 21.09.09 31 0 12쪽
35 34화-찬희가 간과한 것 21.09.08 30 0 12쪽
34 33화-의심 21.09.03 31 0 12쪽
33 32화-재회 21.09.02 35 0 13쪽
32 31화-에우클레이데스 구역으로 21.09.01 26 0 13쪽
31 30화-공화국 최강의 마법사 21.08.25 32 0 12쪽
30 29화-작전명 바이러스(7) 역습 21.08.20 34 0 13쪽
29 28화-클라우디아 노트 이자벨라 21.08.19 30 0 12쪽
28 27화-작전명 바이러스(6) 등장 21.08.18 30 0 13쪽
27 26화-작전명 바이러스(5) 술래잡기, 대리석 디펜스 21.08.13 27 0 12쪽
26 25화-작전명 바이러스(4) 숨바꼭질 21.08.12 25 0 12쪽
25 24화-작전명 바이러스(3) 크세노폰,에우클레이데스 구역 21.08.11 27 0 12쪽
24 23화-작전명 바이러스(2)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구역 21.08.06 31 0 12쪽
23 22화-작전명 바이러스(1) 21.08.05 31 0 12쪽
22 21화-고찬희 21.08.04 33 0 13쪽
21 20화-집결 21.07.31 25 0 12쪽
20 19화-내분 21.07.30 32 0 13쪽
19 18화-안유미 21.07.29 34 0 12쪽
18 17화-원주민 21.07.28 37 0 13쪽
17 16화-마르크스 전투(4) 유미vs겐지 21.07.27 34 0 13쪽
16 15화-마르크스 전투(3) +1 21.07.23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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