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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킹 님의 서재입니다.

외계행성에서 연인과 떨어졌을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조율킹
작품등록일 :
2021.06.22 08:13
최근연재일 :
2021.10.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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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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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화-작전명 바이러스(1)

DUMMY

글로리아 제국의 도시 소크라테스.

120층에 달하는 중앙건물에서 만들어지는 강줄기가 도시 전체를 십자 모양으로 나누는 특이한 모양의 도시다.

수도 애덤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였으나 칸트,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63년 전 참사 후 터진 전쟁 때문에 오로지 군인들만 존재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소크라테스에 주둔하는 제국군은 평범한 군인들이 아니었다.

상위 서열 부대.

사실상 제국 국방력의 최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단이다. 제국 군인들이 이룩한 전공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도시 하나에 모두 모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모인 부대도 모두 상위 15위권 이내의 존재들로 공화국의 어지간한 수비 중대 따위는 단독으로 격파할 수 있는 전력들이었다.

이만한 전력이 모인 이유는 바로 오늘이 공화국이 고안한 바이러스 작전의 실행 날짜이기 때문이다.


“오~ 엘리제~”


소크라테스의 중앙건물 기준 북서쪽에 있는 플라톤 구역을 맡은 것은 안토니오의 필중부대였다.

안토니오는 무기 상점에서 구매한 만능 스파이크를 이용해 건물 외벽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금빛 머리를 깔끔한 올백으로 넘긴 미형의 얼굴과 클래식한 느낌의 흑색 바바리코트는 그 자체만으로 서양 화보집 같은 느낌을 냈다.


“오늘도 당신의 눈은 빛을 머금었구려.”


페어리의 통신 기능으로 끊임없이 구닥다리 멘트를 날려대는 안토니오에게 중앙건물에 있던 엘리제는 질색했다.


[작전에 집중 좀 하시죠! 볼 때마다 질리지도 않으신가?]


엘리제는 통신 기능을 잠시 끄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어후, 누가 이탈리아 놈 아니랄까 봐 겁나게 껄떡대네.”


그러거나 말거나 안토니오의 추파는 계속됐다.


“엘리제, 그대를 위해 애덤에서 봐둔 기막힌 식당이 있소. 언제 한 번 그곳에···”


장난스럽고 능청스러운 말투였으나 그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지극히 필중부대에 어울리는 위치였다.

건물의 외벽.

마르스크에서 음역이 적의 눈을 피해 숨어있던 방법을 필중부대는 부대원 전체가 사용했다.

필중부대를 서포트하는 8번, 11번 부대가 교전을 시작한다면 필중부대는 대열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한 적에게 전원이 달려들어 목숨을 끊을 것이다.

이 사살과 귀환은 전력 손실에 있어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단순히 긴급탈출기로 귀환한 병사는 더 많은 경험을 지닌 베테랑 용사로 거듭나지만, 병사가 사살당한다면 군대는 4개월에 100명이 채 안 되는 수밖에 충원하지 못할 중요 자원을 잃게 되는 꼴이었다.

필중부대가 가진 킬 카운트 1위라는 타이틀이 독보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엘리제, 당신의 아름다움은 지중해···”

[닥치지 못하겠나? 이래서 지구인들은 안 된단 말이다. 전투 전에는 전투에 관련된 대화만 해라.]


안토니오의 작업에 끼어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삭. 서열 2위 철벽부대의 대장이자 이번 작전에서 남서쪽 알키비아데스 구역을 맡은 남자다.

성게같이 삐죽한 머리를 한 그는 우스꽝스러운 외형과 달리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작전에 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본인은 안토니오와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스파이의 보고를 듣지 못했나? 지나치게 보안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수상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중 함정이란 말이다!”


건물 외벽에서 바깥의 바람을 맞이하는 안토니오와 다르게 이삭과 부대원들은 모두 수십 채의 건물 내부에 고루 퍼져있었다.

엘리시온 현대전에 있어서 건물 내부에 있는 건 불리하다. 외골격의 기동력이 열쇠인 현대전의 특징상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삭과 철벽부대가 단련한 높은 수준의 팀워크는 그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지금 이삭과 철벽부대원들에게 세상은 모두 50cm 너비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삭이 자비를 털어서 주문 제작한 페어리의 애플리케이션 덕이었다. 이 복잡한 세상은 교전에 들어갔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여 적에게 공포를 선사할 것이다.


“저, 저도 이삭 대장님과 동감입니다.”


어딘가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가 페어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광대뼈까지 가릴 것만 같은 커다란 안경을 낀 그는 새롭게 서열 5위가 된 부대, 도전부대의 대장 뱅이었다.


“무엇보다 마법사 10인의 정보를 모두 공개한 게 너무 수상합니다. 스파이의 말에 따르면 심할 땐 매점에서 음식 먹다가 이야기를 꺼낸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너무 수상하지 않나요?”


쿵- 쿵-


뱅도 다른 대장들처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동쪽 크세노폰 구역에는 기다란 직사각형의 대리석들 수백 개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작업을 뱅 혼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힘도 쓰지 않고 손을 움직여서 대리석들을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그가 물질 계통의 마법사라는 증거였다.


[그보다 뱅? 전부터 궁금했는데, 너 부대 이름이 왜 도전인 거야?]


북동쪽 에우클레이데스 구역의 무퇴부대 대장 모리스 조던, MJ였다.

남색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바닥에 가랑이를 쩍 벌리고 앉은 그는 조용히 뱅의 대답을 기다렸다.


[예? 저, 그게··· 폐하께서 새로운 전술을 구사하는 빈도가 높다고 하셔서···]


뱅의 대답이 돌아오자 MJ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허벅지를 내리치며 웃었다.


“와하하, 황제 폐하도 참 센스 이상하시다니까? 전에도··· 응?”

“MJ? 우리는 뭐 준비 안 해도 돼?”


MJ와 완전히 똑같은 패션을 한 사람이 MJ에게 다가와 물었다.

옷차림, 인종, 성별, 심지어 제스처까지 비슷해 얼핏 보면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는 MJ의 부하였으나 대장이란 호칭은 붙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가 무례한 건 아니었고 MJ의 지시이자 부대의 규칙이었다.


“앤드류!”

“으, 응?”


앉아있던 MJ는 벌떡 일어서서 앤드류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말했다.


“이 염병과도 같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개··· 개성.”

“맞아 앤드류! 우리의 개성은?”

“기합!”

“그래, 기합이야! 빌어쳐먹을 기합이라고. 알겠어?”

“응.”

“그래, 좋아, 그럼 우리 각자 위치로!”


앤드류는 MJ의 지시대로 각자의 위치를 찾아갔다.

그 위치를 찾아간다는 게 MJ의 옆에서 똑같은 자세로 앉는 거라는 사실을 다른 부대의 부대원들도 알고 있었기에 MJ를 제외한 모든 인원은 피곤하다는 듯이 마른세수를 한 번씩 했다.

MJ는 그런 전우들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식으로 가져온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말했다.


“그보다 용살? 클라우디아는 어떻게 된 거야? 게다가 신병도 같이 날아갔다며?”

[지금 위성사진으로 볼 때 하루는 더 걸어야 합니다. 외골격을 쓴다면 단번에 날아올 수 있지만, 숲이니까 어쩔 수가 없죠.]

“호오~ 겐지? 지난번엔 영역 마법사한테 왕창 깨졌다며? 천하의 겐지가 미인계에 넘어간 건가?”

[MJ 씨도 한 번 붙어보시죠. 웃음이 쏙 들어갈 겁니다.]

“씨는 빼라니까? 와하하하, 그보다 너희들 괜찮겠어? 대장과 신입이 빠졌는데?”


MJ의 물음을 듣고 있던 용살 대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동시에 대답했다.


[누가 누굴 걱정해?]


중앙건물에서 진을 치고 있던 그들은 자신의 장비, 컨디션, 긴장감을 점검했다.


“개 같은 거, 전쟁 흐름은 내가 브리핑할 테니까 귀나 잘 열어두라고.”


니겔룬은 38개의 드론은 도시 전체에 퍼트렸다. 유미의 영역 범위는 이미 익혀뒀기에 한 곳에 드론 여러 대를 집중시키는 일은 피했다.


“과거도 승리- 오늘도 승리- 미래에도 승리- 승리-”


비브라토는 제자리 점프를 하며 몸을 풀다가 외골격의 제한 속도가 제대로 풀려 있는지 확인했다.


“대장들이나 잘하세요. 특히 안토니오 대장!”


엘리제는 마르크스에서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자신의 특수 탄환의 개수를 헤아렸다.


“남 걱정은 오지쥬? 그러면서 서열도 낮쥬? 아무 말도 못 해버리쥬?”


음역은 무기 상점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보며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생각했다.


“우린 용살이다.”


비니를 고쳐 쓴 숭은 수북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등 뒤에는 다른 대원들과 달리 E-1 산탄총이 빛을 내며 매달려있었다.


“대장님이 없다고 무능해지지는 않는다고.”


라르고는 새하얀 머리를 빗으로 쓸어넘긴 후 E-5 권총 두 자루를 품에다 넣었다.


“염려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겁니다.”


가쿠후 겐지는 머리에 쓰고 있는 푸른 두건을 쓰다듬었다.


“전투 전에는 제육볶음으로 조진다.”


슈베르트는 제육을 먹었다.

용살 대원 각자의 대답을 들은 다른 대장들은 안심과 믿음을 섞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뭐, 나의 엘리제만큼이나 우수한 병사는 용살에 많긴 하지.”

“흥, 그 정도 패기는 돼야 우리 위에 있을 자격이 있다.”

“최곱니다! 최고라고요, 용살 대원님들!”

“와하하하, 역시 용살.”


페어리를 통해 웃음을 나누던 5개 부대.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겐지와 니겔룬이 레이더에서 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잡담은 그만. 옵니다.”


후우우웅-


그들의 레이더에 잡히는 적들은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무수했다.

하지만 제국군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레이더가 나타내는 적의 종류였다.


“개 같은 거, 전투기라고?”

“왜? 왜? 왜 그런 구닥다리 방식을?”


엘리시온에서 전투기는 비효율적인 장비다. 아니, 비효율적인 것을 넘어서 아예 쓰지도 않는 물건이었다. 관련된 마법기도 개발이 안 됐고, 파일럿 육성이나 특화 안드로이드 제작도 어려우며 비용도 만만치 않게 잡아먹기 때문이다.

폭격기를 쓴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엘리시온의 건물들은 모두 마법 코팅(마법사가 비효율적이지만 담기 쉬운 의지를 부여하는 과정. 이렇게만 해도 어지간한 폭탄 정도의 충격까지는 건물을 지켜낸다)이 되어있어서 파괴도 힘들뿐더러 만에 하나 파괴에 성공한다 해도 점령 후 건물 복구 비용을 생각하면 심각한 세금 낭비였다.

황당한 기분은 MJ도 마찬가지였다.


“와하하, 공화국도 미쳤나? 하긴, 이 미친 세상, 미치는 게 최선이긴 하지. 와하하··· 어라?”


MJ는 마침내 도시 위를 지나간 비행기들에서 무엇인가 내리는 걸 목격했다.

처음에는 폭탄인 줄 알았으나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페어리는 MJ의 눈에 비친 것들이 진짜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라고 알려줬으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와··· 하, 하, 난리가 났구먼.”


하늘을 뒤덮은 무수히 많은 안드로이들은 모두 공화국 군인의 제복을 차려입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중앙건물의 겐지도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다.


“자세히 보니 진짜 군인들도 섞여서 떨어지네요. 게다가 외모가 정확히 일치하는 군인과 안드로이드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음역 군이 꽤 큰 영감을 준 모양인데요?”

“진짜 개 같은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도시의 각 구역을 노리고 안드로이드가 섞인 대규모 병력이 오고 있습니다.”

“와~ 기합 잔뜩 넣고 왔네요.”


드론들이 보낸 영상을 분석하는 니겔룬의 표정은 더더욱 구겨졌다.


“10인의 마법사도 전부는 아니지만 섞여 있습니다. 각 구역에 2명의 마법사가 붙는 모양입니다. 분석 결과 전력은 우리의 15배 이상.”


그야말로 전의를 상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전력 차.

하지만 용살부대는 물러설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았다.


“여러분.”


클라우디아 대신 임시로 용살부대를 이끄는 겐지는 스스로 뺨을 두 번 친 후 말했다.


“개전입니다.”


63년간 이어진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시가전이 지금 막 시작됐다.



2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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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하비 크리스 21.10.27 33 0 12쪽
43 42화-다시 만난 두 사람 21.10.22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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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화-반란(4) 21.10.20 29 0 12쪽
40 39화-반란(3) 누구보다 강하게 21.10.15 35 0 12쪽
39 38화-반란(2) 21.10.14 25 0 12쪽
38 37화-반란(1) 21.10.13 29 0 11쪽
37 36화-진실에 다가가는 사람들 21.09.11 35 0 12쪽
36 35화-확신 21.09.09 31 0 12쪽
35 34화-찬희가 간과한 것 21.09.08 30 0 12쪽
34 33화-의심 21.09.03 31 0 12쪽
33 32화-재회 21.09.02 35 0 13쪽
32 31화-에우클레이데스 구역으로 21.09.01 26 0 13쪽
31 30화-공화국 최강의 마법사 21.08.25 32 0 12쪽
30 29화-작전명 바이러스(7) 역습 21.08.20 34 0 13쪽
29 28화-클라우디아 노트 이자벨라 21.08.19 30 0 12쪽
28 27화-작전명 바이러스(6) 등장 21.08.18 30 0 13쪽
27 26화-작전명 바이러스(5) 술래잡기, 대리석 디펜스 21.08.13 27 0 12쪽
26 25화-작전명 바이러스(4) 숨바꼭질 21.08.12 25 0 12쪽
25 24화-작전명 바이러스(3) 크세노폰,에우클레이데스 구역 21.08.11 26 0 12쪽
24 23화-작전명 바이러스(2)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구역 21.08.06 31 0 12쪽
» 22화-작전명 바이러스(1) 21.08.05 31 0 12쪽
22 21화-고찬희 21.08.04 33 0 13쪽
21 20화-집결 21.07.31 25 0 12쪽
20 19화-내분 21.07.30 32 0 13쪽
19 18화-안유미 21.07.29 34 0 12쪽
18 17화-원주민 21.07.28 37 0 13쪽
17 16화-마르크스 전투(4) 유미vs겐지 21.07.27 34 0 13쪽
16 15화-마르크스 전투(3) +1 21.07.23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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