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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5.29 18:00
연재수 :
266 회
조회수 :
117,830
추천수 :
2,402
글자수 :
1,791,531

작성
23.11.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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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
추천
12
글자
16쪽

19화. 아우를 위하여 (2)

DUMMY

설총은 검을 치켜들었다.


거의 메마른 단전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무시무시한 눈빛.”


교랑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도 설총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설총과 교랑의 사이에는 계단만 남아 있었다.


“정말 해볼 생각이신가요?”


교랑이 한 계단 내려섰다.


“···.”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시는데···.”


설총은 대꾸하지 않고 한 계단 올라섰다.


“살수는 쓰지 않을 테지만, 각오는 하셔야 할 거예요. 후후···.”


설총은 고소를 입에 머금었다. 분명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살수를 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물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그럼. 뭐 어떠냐? 설총은 이를 드러냈다.


도리어 얕봐주면 고마운 일이다. 죽을 걱정 없이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다.


애초부터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이용할 생각이었다. 무예보다도 병법을 우선하여 가르치는 군문세가의 소가주로서, 이번 싸움에 임하기 위해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려두고 왔다. 지금은 실력을 겨루러 온 것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러 온 것이다.


‘방심해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지.’


설총은 차분하게 발을 내딛었다.


교랑의 눈이 마치 뱀처럼 그 걸음을 쫓았다. 느리고, 답답한 보법이었다. 마치 거북이가 힘겹게 땅을 기는 것처럼.


묵직한 발자국이 뭉개지듯 새겨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답답할 정도로 무겁게 땅을 짓누른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한 발걸음이다. 결코 싸움에 임하는 무인의 발걸음이 아니다. 형구를 찬 죄인이 간신히 발을 끌며 걸을 때 나올 법한 걸음걸이다.


그러나 교랑은 그 느리고 답답한 걸음을 내딛는 설총을, 섣불리 칠 수가 없었다. 무리해서 치지 않아도 스스로 넘어질 것만 같아 보이는데도.


교랑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보면 볼수록 정녕 탐이 나는 인재다.


“한 줌의 공력으로도 능히 나한진(羅漢陳)에 대적할 기세로고.”


광야사자의 평이 들려오자, 욕심의 심지 위로 더욱 거세게 불이 타오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저 정도의 인재라면, 어쩌면─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그것을 이루기 위한 아주 귀중한 재료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교랑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비록 법왕의 계획에는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 사내를 실혼인(失魂人)으로 만들고 역용술로 얼굴을 바꿔버리면 실질적으로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후후후···.”


아마도 지금 상황이 마무리될 때쯤엔 그 꼬마 아가씨의 준비도 끝나 있을 테니,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시술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 * *



“으랴!”


콰득!


박 터지는 소리가 울리고, 주먹을 얻어맞은 박도를 든 놈을 비롯해 세 명이 동시에 자빠지고 말았다.


“됐다! 발경!”

“되긴 뭘 돼요? 그냥 힘으로 친 거구만, 뭘!”

“에이, 씨! 거, 대거리 좀 그만하쇼!”

“그러게, 수련할 때 땡땡이치지 말았어야죠.”

“누, 누, 누가 땡땡이를 쳤다고!”

“왜, 만날 다리에 쥐 난다고 빼드만?”

“에이, 거야 뭐, 만날 똑같은 것만 하니까 그런 거 아뇨!”

“정말 똑같은 것을 반복했다고 생각해요? 그것뿐이라고?”


뜨끔, 가슴이 쿡쿡 찔려왔다. 이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득구 녀석이 보여준 발경(發勁)은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단순히 앞으로 걸어가는 그 동작에도 무게중심이 완벽하게 분배되어 있을 정도였다.


마치 일전에 보았던 그 범이 걸음마다 힘과 위엄을 싣고 내딛듯.


“잡소린 그만합시다.”

“좋아요. 쫄따구들 앞에 두고 긴장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방심해서 한 방 먹는 게 훨씬 쪽팔리니까.”

“···끄응.”


달구는 앓는 소리를 냈다. 조금만 더 갈구면 진짜 졸도할 것 같았다. 진심으로 저 여자는 사람을 갈구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치대는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다음은 술시(戌時) 방향!”


달구는 투로를 따라 보법을 밟았다. 달구에게 날아드는 창은 제갈민의 검이, 손도끼와 비수 등의 투척 무기는 제갈민의 비수가 쳐냈다. 달구는 힘껏 진각을 밟았다.


퍽!


“으랴아!”


다시 한번 북 터지는 소리가 나고, 이번엔 두 놈이 자빠졌다. 달구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번 일격을 곱씹었다. 분명 자세는 완벽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위력이 부족하다. 제갈민의 말대로, 이건 그저 힘으로 친 것이나 다름없다.


“왜 안 되지? 왜···!”


실질적인 충격량만큼은 득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공력을 실은 주먹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달구의 힘이 그 차이를 메우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무언가가 계속 부족하다.


“자시(子時) 방향! 직진해요!”

“으랴, 으랴!”


마치 힘 좋은 황소가 밭갈이하듯, 달구가 천가방의 졸개 놈들을 싹 갈아버리자, 제갈민이 흥 오른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잘한다, 누렁이!”

“누가 누렁이냐, 누가!”

“앞에 집중!”

“제에기!”


달구는 솟구치는 울분을 담아서 땅을 짓밟았다. 그리고 주먹을 있는 힘껏 날렸다.


쾅!


이번에야말로 화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달구는 저도 모르게 제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어?”


분명 주먹으로 후려쳤는데, 손목에는 충격이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솔직히 제대로 친 게 맞나 싶은데,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됐네요?”


제갈민이 어깨를 툭, 치자 달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 그게.”


그 잠깐 사이에 기껏 뚫어놓은 영위진의 포진이 다시 두 사람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아, 진짜!”

“젠장.”


두 사람이 동시에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제갈민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 *



“끄억··· 컥.”


왕태하의 상태가 이상했다. 성채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방에 장식되어 있던 사슴뿔

을 떼어, 단단히 틀어쥐고 왕태하를 살폈다.


“끄으, 흣, 흐어어···!”


코에서 계속 핏물이 흘러내리고, 입에서도 간간이 날숨과 함께 핏덩이가 튀어나온다. 그저 코를 깨물기만 했을 뿐인데 왜 저렇게 되었는지, 성채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으, 억.”


몸을 부들부들 떨던 왕태하의 경련이 멈추었다. 그 순간, 성채는 알 수 있었다. 왕태하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상한 얼굴이 안 보여···.’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이해되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방금까지 왕태하에게 귀신 같은 무언가가 ‘씌어’ 있었고, 지금은 그것이 떠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으윽.”


멍한 눈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던 왕태하가 눈을 돌렸다.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지만, 차차 그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성채.”


왕태하의 입에서 성채의 이름이 흘러나온 순간, 그의 이성이 완전히 돌아온 모양이었다. 왕태하는 성채를 쳐다보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여긴···!”


성채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방을 뒤졌다. 다행히 옻칠이 된 장식장에 간략한 적바림(메모)용 쪽지와 세필, 먹물 병이 있었다. 성채는 다탁 위에 지필묵을 펴놓고 빠르게 글을 썼다.


[송화루 별채]


“그런가···!”


[어떻게?]


“···.”


왕태하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꾹 다문 입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성채는 재촉하지 않았다. 왕태하의 손을 잡았다. 왕태하는 놀란 눈을 들어 성채를 쳐다보았다. 성채의 손은 뜨거웠다. 열이 펄펄 끓는 성채의 손에 잠시 고민하던 왕태하가 입을 열었다.


“실은···.”


성채가 차크람에 맞아 쓰러진 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한 왕태하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실수했다. 큰 실수를 했어···! 악마와 손을 잡고 말았다.”


[천가방?]


“천가방···. 아니, 천가방이 문제가 아니다. 그 교랑이란 여자는 악마다! 아니, 악마가 아니지. 그 여자가 바로 그 사독파파다.”


성채는 붓을 떨어뜨릴 뻔했다. 어린 시절, ‘못된 아이는 사독파파가 와서 잡아간다.’ 같은 말을 듣고 자란 그녀에게 그 이름은 말 그대로 마귀 그 자체였다.


“큰 실수를 했어, 끔찍한···. 나, 나는 그저···!”


왕태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섞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채는 그런 왕태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흠칫, 놀란 왕태하가 고개를 돌리자, 성채는 가만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 붓을 들었다.


[도망]


“어디로 도망친단 말이냐? 어디로?”


왕태하는 이를 꽉 깨물었다.


“바로 그 사독파파란 말이다, 사독파파! 무사할 리가 없어! 한현보? 한현보는 이제 끝이다!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야···!”


성채는 그런 왕태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신발과 아까 호신용으로 들었던 사슴뿔을 챙겨 들었다.


“뭐···. 뭘 하는 것이냐?”


왕태하가 묻자, 성채는 홱,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왕태하를 쏘아보면서 한 자, 한 자, 입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왕태하에게 독순의 재주는 없지만, 그 입 모양이 워낙 뚜렷했던 탓에 왕태하도 성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겁쟁이.’


성채는 창밖을 가리켰다. 왕태하는 그제야 밖에 난장판이 벌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난장판은 분명히 성채를 구하러 온 한설총과 미친개가 벌인 것이 분명했다.


“···!”



* * *



‘호흡···. 호흡을 다스려야···.’


득구는 혼미한 와중에 끊임없이 되뇌었다. 쏘아낸 경력이 되돌아오다니. 그 사실에 놀라는 바람에 그 대응이 늦어져, 등신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쿨럭!”


지금 득구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에 걸친 상태였다. 피 섞인 기침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 간신히 입을 다물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기혈(氣血)이 빠져나가면 그대로 주화입마까지 직행이다. 이미 진탕된 내장 탓에, 본래의 흐름을 잃고 야생마처럼 날뛰는 기혈이 터지지만 않도록 간신히 붙잡아둔 상태였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게 불어난 진기공력이 외려 독이 되었다. 얼른 내상을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흐름 자체가 커진 탓에, 제어가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호흡···.’


넋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득구는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어찌 되었든, 이대로 자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뒈지지 않았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뒈지기 싫다면 더더욱 뭐라도 해야만 한다.


쿵!


내상 탓에 먹먹해진 고막 위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내상 외에 다른 곳에 신경을 돌려선 안 되는 상태였기에 득구는 의도적으로 그 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쿵!


그러나 신경을 돌릴수록 그 발소리가 고막을 울려왔다.


쿵!


야속하기 짝이 없는 발소리가 세 번째, 들려왔다. 이번에는 정말로 흐름을 놓쳐버릴 뻔했다. 간신히 흐름을 따라잡는 데 성공한 득구는 이를 악물고 우선 낫기만 하면 저 발소리부터 조져버려야겠다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흐름을 잡아가는데,


쿵!


‘대체 저 발소리는 뭐야!’


울컥 치미는 분노에, 저 무의식 아래로 침몰해 있던 득구의 정신이 깨어났다.


그리고 이성이 돌아오자, 급박한 내부 상황에도 불구하고 더욱 심각한 외부 상황을 드디어 인지할 수 있었다.


‘그, 그래. 지금 나는···!’


덤비지 말라는데 등신같이 덤벼들었다가, 등신같이 얻어맞고, 등신같이 뻗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설총은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득구를 거의 골로 보내버린 괴물과 혼자서 대치하는 중이다. 쓸데없이 무리해서 공력까지 죄 날려버린 상태로.


‘난장···판이다. 개판이야.’


저도 모르게 울컥, 눈시울에 뜨끈하게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울어버리면 그건 정말 등신 낙인을 쾅 찍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심해서, 또는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또는 저기서 무식하게 혼자 맞서는 설총에게 미안해서 득구는 울 것만 같았다.


‘제기랄, 제기랄!’


자책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에 따라 기혈의 흐름 또한 뒤엉키기 시작하는데,


쿵!


또 발소리가 울렸다. 다섯 번이나 듣고 나니까, 이 발소리가 누구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도련님.’


생각해보면 수련하는 내내 질리도록 들은 박자다. 아마 연주행보. 아니, 등단선릉인 것 같다. 수세를 취하는 연주행보의 묘리를 운용하되, 펼치는 보법 자체는 연주행보보다 공격에 적합한 등단선릉을 펼치는 것이 확실하다.


쿵!


여섯 번째 발소리는 자못 비장하게까지 들려왔다. 평지를 걸을 때 나는 소리는 아니다.


‘어딘가를 오르는···? 아, 계단!’


거의 다 소진해버린 공력을 운용해가며 보법을 펼치는 것도 죽을 맛일 텐데, 두 가지 묘리를 동시에 운용하는 발걸음이라니─


제길, 괜히 더 비참해진다. 따라잡았다 싶으면 멀어지고, 등이 보인다, 싶으면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버리다니.


‘연주행보의 묘리를 운용하면서··· 등단선릉을 펼친다고?’


연주행보(剈柱行步)는 이름 그대로, 자기 집의 대들보를 뽑아 들고 걷는 사람의 걸음걸이다. 대들보를 뽑아 들었으니, 많은 것을 짊어졌을 터이다. 그리고 그만큼 한 걸음, 한 걸음을 허투루 내딛지 못할 것이다.


등단선릉(登亶禪陵)은 조금 믿기지 않는 유래가 있다. 제 가문을 구하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제물 삼아 제사를 올리려 한 어떤 미친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 유래이다. 하나를 이루기 위해 가진 것 전부를 걸고 내딛는 걸음이니, 그보다 결연할 수가 없다.


일견 통하는 것 같지만, 서로 전혀 다른 묘리를 가진 보법이다.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그 결연한 뜻은 같으나, 목적이 다르다.


연주행보의 극의(極意)는 가진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려는 자의 마음가짐이고, 등단선릉의 극의는 가진 것을 전부 버려서라도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자의 마음가짐이다.


연주행보는 지키고, 수호하는 자의 걸음이며, 등단선릉은 성취하고, 얻어내는 자의 걸음이다.


합치될 수 없는 묘리다. 상반되는 묘리의 보법이 한 걸음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완전한 모순인데도, 설총은 지금 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두 가지 흐름 안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두 가지 흐름 안에서···!’


그 순간 득구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설총이 내딛는 발걸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쿵!


그리고 일곱 번째 발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득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득구는 억지로 움켜쥐고 있던 기혈의 흐름을 놓아버렸다.


“쿨럭! 크흡!”


머리통이 찡하고 울려올 정도로 강렬한 통증이 가슴을 두드렸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기혈은 가슴을 찢고 튀어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 그 벽을 두드린 후, 튕겨 나와 다른 쪽을 향해 맹렬히 휘돌 뿐이다.


퉁, 퉁, 퉁!


득구는 기경팔맥을 모조리 휘저으며 난장을 치는 기혈을 제어하기를 포기했다. 단지, 흘러야 할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둑을 쌓으며 길을 지켰다.


속에서 쿵쾅거리며 전신의 혈맥을 마구잡이로 두들기던 기혈은 이제 범람하기를 그만두고 열린 길 안에서 거세게 흐르는 대류가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불어났던 공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감당할 수 없던 힘이었다.


‘내려놓는다. 내어준다. 내가 쌓은 것이 아니니─’


득구는 그것을 미련 없이 내어버렸다.


득구는 점차 공력이 줄어듬과 동시에 상태가 호전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거세던 흐름이 잔잔히 잦아들고, 본래 스스로가 쌓은 진기공력만이 남았을 때, 득구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설총과 같은, 무심결 6성에 다다랐음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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