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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5.29 18:00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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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91,531

작성
23.1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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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9쪽

18화. 탐랑(貪狼) (2)

DUMMY

아침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전한 남생의 얼굴은 어두웠다.


“제자 중 왕태하와 백창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아··· 그 둘이 아가씨의 일을 천중에게 알린 것이 아닌가 하고.”

“···.”

“···송구합니다. 적어도 아가씨 곁을 지킬 사람을··· 남겼어야 했는데.”


아연실색한 얼굴의 설총은 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남생을 믿고 있었던 탓이다.


“빌어먹을!”


득구는 욕설을 내뱉고 벌떡 일어났다.


“어딜 가냐!”


달구가 팔목을 쥐자, 득구는 팔을 뿌리친 다음 말했다.


“아가씨를 구하러 가야지. 당연한 거 아냐?”

“딱 봐도 함정이잖아. 생각을 좀 해!”

“썅, 함정인 걸 알면 가만히 있어야 해?”

“조용히 하거라.”


설총의 말에 득구의 시선이 달구에게서 설총으로 옮겨갔다.


“형님, 남생 아저씨가 아가씨 지켜줄 거라고 그랬잖아요!”

“도련님, 이 일은 제 부주의로 일어난 일입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기필코 아가씨를 탈환해 오겠습니다.”

“웃기지 마십쇼! 뻔히 지키고 있던 것도 놓쳤으면서···!”

“뭐라? 이런 방자한 놈을···!”

“솔직히 말해봐! 당신도 아가씨가 별로 안 중요했지?!”

“헛소리!”

“그만!”


보다 못한 설총이 나서서 두 사람을 갈라놓자, 달구가 설총을 거들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달구에게 붙잡힌 득구는 틀어쥔 주먹을 차마 휘두르지 못했다.


“이건 내 실책이다.”


설총은 눈을 꾹 감았다.


“한현보에 남은 제자들을··· 적어도 나는 생각했어야 했다.”

“도련님, 그것이 어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야 했다. 나는··· 한현보의 가주가 되어야 할 사람이니까.”

“···도련님.”

“이 부분에서는 차마 아버님께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뭐가요! 대체 뭐가 옳았다는 건데요! 그 빌어먹을 개새끼들···! 그깟 놈들 감싸주는 것이 대체 뭐가 옳다는 겁니까?!”

“그래도 그 녀석들이 한현보의 제자니까.”

“뭐···라구요?”


득구가 기가 막힌 소리를 내자, 설총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나는, 나만큼은 너를 대한 것처럼, 그 녀석들을 대해야만 했다.”

“···그 빌어먹을 짐승 논리 때문입니까?”

“아니, 내가 한현보의 가주가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허···!”

“제 품에 들어온 새끼만을 거두는 부모를 그 누가 따른단 말이냐? 한 세가의 가주가 되는 자라면 무릇, 가문에 속한 모든 자의 부모와 같은 것이다. 미운 새끼와 고운 새끼를 갈라서 기르는 부모를 두고 어찌 부모라 부를 수 있단 말이냐!”


설총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한 줄기 선혈이 입가에서 흘러내렸다. 얼마 전, 제갈민에게서 공손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야 깨달은 것이다.


‘강자든, 약자든 합당한 판결을 하는 것이 정의다.’


공정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한 번도 그들, 내제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본 일이 없다. 9년 전 홍위윤의 일 이후로 설총의 내면세계에서 내제자들은 언젠가는 일소하여 한현보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설총의 그런 편견에 합당하게 행동했다. 대다수도 아니고 전부가. 그럼에도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바로 한현보였다.


열린 문호에 든 것 자체는 죄라 할 수 없다. 그들은 한현보주인 한주윤이 제시한 정당한 값을 치르고 한현보에 입문한 것이다.


“달리 생각했어야 했다. 저들은 돌이킬 여지가 없는 자들뿐이라고 어찌 판단할 수 있단 말이냐? 가르치는 자로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못했다···!”


만약 저들에게도 지금 득구와 달구에게 했던 것처럼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써서 가르쳤더라면. 그랬더라면···.


“도련님, 도련님은 최선을 다하신 것이 아닙니까.”

“···아니다.”

“도련님···!”


설총은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그리고 표정을 바꾸었다.


“왕태하가 분명하다고 했는가?”

“예. 홍 의원의 말로는 그가 칼을 들고 위협한지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그렇다면 한현보에 남은 제자들은 전부 천중과 결탁했다고 보아야겠군.”

“···그럴 겁니다. 남은 제자들의 구심점이 태하 녀석이니 말입니다.”


설총의 눈이 득구를 향했다.


“···말려도 듣지 않을 테지.”

“당연하지요!”

“그럼 좋다. 네가 앞장서거라.”

“뭐라고 말씀하셔도 저는 꼭···예?”

“네가 앞장서서 가란 말이다.”

“···지, 진짜요?”


득구만이 아니라 남생과 달구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괜찮겠습니까? 저들이 원하는 그대로 움직이는 꼴이 되고 말 텐데요.”

“원하는 대로 움직여줘야지 않겠나.”

“그, 그렇게 되면···!”


그때 제갈민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근처 나무 위에서 듣고 있었으리라.


“지금 죽으러 가겠단 얘기예요?! 그런 거라면 저는 절대로 한 소가주님 도와드릴 수─”

“아닙니다.”

“─없으니까요! 멋대로 죽으려 드는 사람을 어떻···예?”

“죽으러 간다니, 그 무슨 말을 그리 험하게 하십니까? 절대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간다는 거죠? 송화루는 지금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이라구요!”


설총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럼 어째서요?!”

“걸협 어르신은 어디까지 오셨지요?”

“허···!”


제갈민은 기가 막힌 소리를 냈다.


“지금 할배를 믿고 가겠다고 한 거였단 말예요?! 할배는 지금 개봉에 있다구요!”

“음, 역시 그렇군요. 만약 별다른 일이 없었더라면 늦어도 어제, 아니 오늘 아침에는 돌아오셨을 텐데 말입니다.”


제갈민은 이마에 열이 팍 오르는 것을 느꼈다. 혹시 이 사람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저기, 혹시 해서 여쭙는 건데, 지금 장난치시는 건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실없는 장난을 쳐서 득 볼 것이 없잖습니까.”

“그럼, 지금 무슨 대체 무슨 소릴 하고 계신 거예요?”

“제가 한현보에서 추방된 지, 오늘로 벌써 오늘로 이주 쨉니다. 보름이 다 됐군요.”

“그래서요?”

“지난 보름 동안 준비한 것을 시험해 봐야지요.”


이번에야말로 제갈민은 목이 졸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지금, 고작 보름 동안 다듬은 걸 가지고 백련교의 호법과 맞붙어 보겠다는 거예요?!”

“예.”

“무슨 그런 무모한 소리가 어딨어요?! 그렇게 따지면, 여기 득구 소협은 긍경을 수련한지 이제 겨우 팔 일째고, 나머지는 아예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게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무허 그 자식조차도 없다고요! 여기 있는 사람들만으로 송화루를 친다?”


제갈민은 독기를 가득 품고 설총을 노려보았다.


“그게 바로 죽으러 가겠다는 소리가 아니면 뭐예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피해야 합니까?”


그 말에 제갈민이 굳었다.


“···예?”

“언제까지 피해야만 하냔 말입니다.”

“그건···.”

“숨통을 물어뜯기 위해 지척까지 다가와 숨을 죽이고 있는 짐승을 보았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피해도, 피해도 계속 쫓아올 것이라면? 아무리 도망쳐도 쫓아낼 수 없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

“지금이 아니면, 언제겠습니까?”


설총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간밤에도 다 흘러가지 못한 구름이 먹먹하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지만, 백운으로 뒤덮인 하늘 아래에서도 검은 은백광으로 곧은 빛을 뻗어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물어뜯기는 일은 사양입니다.”

“당연한 소리!”


득구가 양 주먹을 가슴께에 쾅! 부딪치고는 말했다.


“울 아가씨를 건드려? 다 뒈졌다, 새끼들.”

“천중에겐 받을 빚이 있지.”


달구도 두 눈에서 서늘하기 짝이 없는 한광을 냈다.


“오늘에서야 받겠구만?”

“이게 무슨···!”


제갈민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건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야. 답답하긴!


“송화루에 매복하고 있을 상대는 백련교의 오대호법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갈민의 눈동자가 좌우로 계속 흔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며, 애써 불안감을 떨쳐 내려 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정말, 정말 추정에 불과한 거라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진짜로 송화루에 있을지 어떨지를 아직 몰라요. 다른 데 있을지도요. 하지만··· 하지만 정말 있을지도 몰라요.”

“누가 말입니까?”


설총의 담담한 어조를 듣자, 제갈민은 그만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빌어먹을 담담쟁이가! 지금 누구는 걱정돼서 죽을 것만 같은데, 이따위로 굴 거야?


“사독···파파요.”

“사독!”


제갈민이 원하던 반응을 보여준 사람은 오직 남생뿐이었다. 남생은 굳은 얼굴로 설총의 팔을 잡았다.


“도련님. 이것이 사실이라면 절대 도련님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사독은 천하삼절과 동렬의 고수입니다! 게다가 사독의 절기는 독공입니다! 실력이 비등한 자라도 독을 다루면 위험하기 그지없는데, 그런 고수의 독공을 어찌···!”

“내가 가지 않으면, 아마 사독이 한현보로 향할 것이다.”

“···예?”


남생이 염통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자, 설총은 득구와 달구를 이끌고 먼저 구제원을 나섰다.


“따라올 거면 각오를 다지고 와. 아니라면 한현보로 돌아가 아버님의 종적을 좀 찾아주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분량이 조금 애매해서 1편 더 연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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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6화. 쿤달리 (1) 23.11.30 403 9 14쪽
91 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6) +1 23.11.29 402 8 15쪽
90 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5) +1 23.11.28 397 8 15쪽
89 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4) +1 23.11.27 396 9 15쪽
88 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3) +1 23.11.27 390 9 15쪽
87 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2) +1 23.11.26 408 7 15쪽
86 25화. 역려과객(逆旅過客) (1) +1 23.11.26 457 5 17쪽
85 24화. 늑대는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다. (2) +1 23.11.25 471 8 15쪽
84 24화. 늑대는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다. (1) +1 23.11.24 452 9 16쪽
83 23화. 천하지회(天下之會) (3) +1 23.11.23 431 10 15쪽
82 23화. 천하지회(天下之會) (2) +1 23.11.22 454 8 17쪽
81 23화. 천하지회(天下之會) (1) +1 23.11.21 497 9 16쪽
80 22화. 감자, 하나 (2) +1 23.11.20 484 8 20쪽
79 22화. 감자, 하나 (1) +1 23.11.19 471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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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1화. 새 삶을 꿈꾸는 식인귀들의 모임 (2) +1 23.11.16 506 14 15쪽
75 21화. 새 삶을 꿈꾸는 식인귀들의 모임 (1) +1 23.11.15 524 10 14쪽
74 20화. 시우십결(時雨十訣) (4) +1 23.11.14 511 10 16쪽
73 20화. 시우십결(時雨十結) (3) +1 23.11.14 488 9 13쪽
72 20화. 시우십결(時雨十結) (2) +1 23.11.13 516 12 15쪽
71 20화. 시우십결(時雨十結) (1) +1 23.11.12 489 12 15쪽
70 19화. 아우를 위하여 (2) +1 23.11.11 497 12 16쪽
69 19화. 아우를 위하여 (1) +1 23.11.10 492 6 16쪽
68 18화. 탐랑(貪狼) (5) +1 23.11.09 491 12 16쪽
67 18화. 탐랑(貪狼) (4) +1 23.11.08 491 12 16쪽
66 18화. 탐랑(貪狼) (3) +1 23.11.07 486 7 15쪽
» 18화. 탐랑(貪狼) (2) +1 23.11.07 483 8 9쪽
64 18화. 탐랑(貪狼) (1) +1 23.11.06 529 9 17쪽
63 17화. 타초경사(打草驚蛇) (2) +1 23.11.05 512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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