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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천재와 천재와 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용무기
작품등록일 :
2022.08.30 19:50
최근연재일 :
2022.09.01 11:26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92
추천수 :
4
글자수 :
14,963

작성
22.08.30 22:14
조회
59
추천
1
글자
10쪽

1. 주지육림

DUMMY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은나라의 주왕이 만든 연회장으로, 풀자면 술로 연못을 만들고, 바깥에는 나무마다 고기를 걸어놓은 곳이지.

이른바 지상낙원.

근데 여기에는 아주 특별한 세 가지 규칙이 있다. 그게 뭐냐면.


금의(禁衣), 금수(禁手). 그리고 금법(禁法).


남녀노소 몸뚱이에 실오라기 걸치지 말고, 먹을 땐 손 쓰지 말고 게걸스럽게. 외에는 어떤 법도도 일절 지킬 필요가 없다.


한 마디로 우리에 갇힌 돼지 신세랄까.

뭐, 넌 좋다고 갈 거 같긴 한데······. 아니라고? 에라이.


아무튼 저 높으신 관료 중엔 품위를 중시하는 분이 많으셨거든. 왜 추레한 꼴 보이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양반들. 알지?

근데 생각해 봐.

왕이라는 작자가 연회장이라고 만든 게 돼지우리라니. 절세미녀가 기다려도 못 가지, 못 가. 격 떨어지잖아. 해서 온갖 핑계를 대며 대부분이 불참을 선언했는데······.


아, 이 주왕이라는 놈이 어떻게 한 줄 알아?

글쎄 국사를 궁궐이 아닌 주지육림에서 보겠다는 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가야지. 가서 일 봐야지. 안 그러면 녹이 안 나와.


결국엔 신하들이 모여 국사를 보는데, 이거 봐라.

아리따운 궁녀들이 술로 만든 연못 앞에 엎드려 술을 먹고 앉았네.


근데 주지육림은 뭐다?

그래, 금의, 금수. 입지도 말고, 손도 쓰지 마라.

자, 상상이 가?

그럼 은나라는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는데요?”


담장 앞에 모인 아이들이 눈을 말똥말똥 굴리며 묻는다. 꿀꺽. 얘기의 대가로 받은 주먹밥을 한입에 털어놓고, 흑립을 살짝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덧 해가 기웃기웃 서쪽으로 저물고 있다.


시간이 다 됐다.


난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자그마한 촌락 뒤에 새하얀 구름이 두둥실 둘려진 영롱한 산.

그 이름하여 무당산.

조사이신 장삼봉 진인께서 세우신 무당파가 자리한 성역이다.

한때는 정도의 빛이자 무림의 희망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도박과 기녀들이 판치는 주지육림이 된 지 오래다.


“형, 알려주고 가야죠!”


무당산으로 걸음을 옮기다 뒤에서 아이들의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난 우뚝 걸음을 멈추고 환히 웃으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러니까······.”


파아앗!


“어, 어어! 난다! 무림인이다!”

“비, 비겁해!”

“와아아!”


경공을 펼치자 단숨에 산세를 가르며 멀기만 했던 무당산이 당겨진다.

내 이름은 흑무린.

칠 년 만에 본산으로 다시 돌아온 귀환자다.

아, 그래서 은나라는 어떻게 됐냐고?


“아주 제대로 망했지, 뭐.”


그리고 오늘.

무당파도 그렇게 될 예정이다.

씨익.


*


어느덧 해는 자취를 감추고, 산길은 한없이 척박해지고 어둑해질 무렵.

수풀을 지나 탁 트인 터가 나타나자 드디어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졌다.

달빛을 머금은 널따란 푸른 연못과 그 위에 길게 펼쳐진 외다리.

그리고 그 끝에 세워진 삼 층 높이의 마천루.


【해검각(解劍閣)】


풀 해(解), 칼 검(劍).

황궁을 연상하듯 누구든 안으로 들어서려면, 무기는 전부 내려놓으라는 긍지 높은 무당파의 입구.

해검각이 나타난 것이다.


“여전하네.”


다리를 건너며 연못을 둘러보자 달빛에 비춘 붕어들이 분홍빛 연꽃 사이를 떼 지어 움직인다. 이에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

칠 년만이지만, 여전히 해검각은 아름답다.


“멈추시오.”


물론 여전이라는 말이 통하는 건 여기까지.

해검각에 들어서자 왈패 같은 무사들이 길을 막았다. 힐긋 살피자 하늘빛 비단 도포에 머리에는 관우가 썼을 법한 결건을 두르고 있다.


무당파의 이대제자들이다.

본래 배분이 낮은 어린 삼대제자는 띠 하나만을 둘렀고, 이대제자는 결건을, 그리고 일대제자가 되어야만 도사가 되었다고 하여 장자건을 허락받는다.

해서 저 결건은 어찌 보면 삼대제자의 낭만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로소 무사가 된 것이니까.


한데 검은 낡았는데, 고급스러운 결건이라.

해 처먹을 게 없어서 군수품까지 건드렸구나.


“오늘 큰 판이 열린다고 해서 왔는데.”


난 슬며시 턱을 올리곤 낮게 읊조렸다.

예전이라면 해검각의 명성대로 무기를 내려놔야겠지만, 찰랑찰랑. 난 대신 전낭을 꺼내 탁상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이대제자는 자연스레 이를 주워 들곤 품에 넣는다.

눈빛이 순해지는 건 덤.

어쨌든 소지품 검사는 이거로 끝이다.

그 뒤의 과정은 간단했다.


“어디서 오셨소.”

“운남.”

“음?”


이대제자의 눈에 일순 경멸과 무시가 서렸다. 운남은 남서 끝자락에 놓인 지역으로 유서 깊은 정도 문파가 없고, 흑도 세력이 판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나를 버르장머리 없는 흑도 졸개로 봤다는 얘기.

물론 쟤 말이 맞다.


“초청패는 가지고 있나?”

“있지.”

“말이 짧군.”

“너도.”


내가 선택적 예의 주의자라.

이대제자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고, 좌우로 무사들이 몰려든다.

여기서 끝까지 가보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오늘 상대는 너희가 아니다.


이대제자들의 손이 점점 허리춤으로 갈 무렵.


난 덤덤히 출도를 알리듯 옥으로 만든 둥그런 패 하나를 척 꺼내 밀었다.

그러자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포권을 취해 예를 갖췄다.

무당파의 장로가 귀객에게만 선물한다는 태극 문양이 양각된 패였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존성대명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 운남이. 가도 되지?”


다시 말하지만 내가 선택적 예의라.

난 얼굴이 시뻘게진 녀석들을 좌우로 밀치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관례인 해검각을 통과하자 드디어 무당파의 전경이 나타났다.

이게 얼마 만인가.

바닥엔 이런저런 교리가 새겨진 사각 돌판이 도로를 만들고, 우측 담벼락 위엔 푸른 산세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이제 여기 앞에서 태청검법을 익힌 일대제자들이 좌우에 쭉 늘어서서 들어서는 이들의 오만한 마음을 경건케 해야 하거늘······.

그게 맞거늘.


“개판이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하하하, 어디 춤 한 번 춰 보거라.”

“어머, 대인.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놀아요. 좋아하시는 술상 펴놨답니다.”


일대제자는 온데간데없고, 웬 돈 많은 잡것들이 여인을 끼고 거리를 활보한다.

거기다 늘어선 건물에 매달린 홍등이라니.

이건 운남의 천한 유곽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주지육림이 됐다는 건 알고 있던 바이지만, 설마 초장부터 이럴 줄이야.

심지어 띠를 두른 어린 삼대제자들이 등롱을 든 채 길잡이 노릇까지 하고 앉았으니.


“그냥 여기부터 엎어?”


그래, 그게 낫겠다. 계획이고 뭐고, 여기부터 치자. 거슬려서 못 보겠다.


“소협,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음?”


맘 잡고 걸어 나가려 하자 아래에서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이자 이제 열세 살쯤 되나.

제 머리보다 훨씬 큰 결건을 쓴 귀여운 이대제자가 무뚝뚝한 얼굴로 등롱을 든 채 서 있었다.


“이대제자면 못해도 약관은 됐을 텐데······.”


나이 대비 배분이 높은 녀석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하나였다.

가문이 잘살아 어릴 때부터 영약 먹고, 일대 제자한테 청탁 넣어 들어온 놈.

왜냐고? 별거 아니다.

또래들이 띠 두르고 싸부, 싸부하며 엎드릴 때, 저는 그들과 형, 동생하며 내려볼 수 있으니까.

이른바 사회생활 시작부터 출발점을 다르게 간다는 얘기.

이런 걸 후문 출신이라고 불렀다. 구대관문 다 건너뛰고 뒷문으로 들어온 아주 빌어먹을 놈이란 뜻.

그러니까.


“저 후문 인사 아니고요. 부모님 안 계셔서 돈 없고요. 사부님께서 느지막하게 제자를 찾으셨는데 인성, 자질 모두 검증받아 들어왔습니다.”


뭐냐, 너.


“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렇게 쳐다보면 말 안 해도 알아요. 예의라고는 일절 없는 눈에 얄밉게 웃는 입. 딱 보니까 알겠네요. 사숙이시죠?”

“어린아이 탈을 쓴 반백 살 제자 하나 거뒀다더니. 너구나.”

“사부님께 얘기 많이 들었어요. 태하예요.”

“흑무린이다.”


꼬마가 고개를 끄덕이곤, 길을 안내하듯 앞으로 향했다. 녀석의 도명은 태하.

이곳으로 날 부른 ‘그 녀석’의 제자이자 내 옆에서 오늘 밤을 보조하게 될 녀석이었다.

늘 서신으로만 들어오다가 이렇게 마주한 건 처음이었는데, 참 듣던 대로다.


“그 녀석은?”


안부를 묻자, 태하는 먼발치 구름에 가려진 가장 높은 봉우리를 턱짓하며 말했다.


“여전히 자미봉(紫微峰)에 계시죠. 사부님과 절친한 벗이니 아시잖아요. 폐관 수련 중이신 거.”

“폐관은 무슨. 장문인한테 찍혀서 칠 년째 유배 중이지.”

“사숙!”


아, 깜짝이야.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춘 태하가 돌아서서 싸늘하게 노려본다. 뭐, 왜. 그리고 사숙 아니고 사백이거든? 생년이 내가 두어 달 더 빨라.

태하가 좌우를 슬쩍 살피곤 속삭이듯 말했다.


“거사를 방해하러 오신 게 아니라면, 언행을 삼가셨으면 합니다. 여기엔 눈과 귀가 많습니다.”

“어, 근데 네가 제일 수상하거든?”

“제가 왜요?”


흘러내리는 결건 쓰고 길잡이 하는 게 너밖에 없거든. 뭐, 네 사부에 대한 처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은 가지만.

뭐, 어쨌든.


“자, 오늘 내 가보까지 팔고 왔으니 장문인 처소 기둥 하나는 뜯고 가야겠다! 앞장서거라!”


하하! 난 들으란 듯 크게 웃음을 터트리곤, 태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뭐 해? 안 가고.


“하, 진짜 아무도 못 말린다더니······.”

“말려서 될 일이면 네 사부가 날 부르지도 않았지.”


태하는 속상한 눈으로 입을 오물거리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인정은 빠르네. 크면 좋은 협객 되겠어.

그러니까.


“안내해라, 태청당(太淸堂)으로.”


그 녀석 ‘백서’의 계획대로.

무당파 장문인 용무기.

멱 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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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무당의 잠룡, 백서 22.09.01 30 1 10쪽
3 2. 태청당 22.08.31 40 1 12쪽
» 1. 주지육림 22.08.30 60 1 10쪽
1 0. 백서의 멸살록 22.08.30 63 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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