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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허명의 서재입니다.

암살자가 만드는 천하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진허명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4
최근연재일 :
2023.06.26 08:00
연재수 :
2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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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80
추천수 :
745
글자수 :
1,310,564

작성
23.06.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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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7화 - 이란격석(3)

DUMMY

167










현실감이 없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도통 맥락(脈絡)이란 것이 들어맞질 않는다.



열 달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모친의 뱃속이 세상의 전부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온 순진한 핏덩이들은 머지않아 자신의 세계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극심한 충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말 터이니.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채 세상에 내던지자마자 이 핏덩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서럽게 목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것뿐이라지만,


목청껏 악을 써대며 흘리는 눈물 속에는 앞으로 저들의 앞에 펼쳐질 고난과 시련이 얼마나 혹독할지를 본능적으로 깨우친 자들의 애한이 담겨있는 것이렸다.



으레 사람이란 누구나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보고 - 듣고 - 먹고 - 만지고 - 말하고 - 깨우치며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법이니,


이러한 일련의 지리멸렬한 과정 속에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체득(體得)하고 축적(蓄積)되는 그 모든 자양분을 우리는 경험이라 칭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경험이라는 자양분의 껍데기는 대체로 투박하고 단단하여 그 속의 알맹이는 구경조차 못한 채 도로 뱉어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나름대로 있는 힘껏 쥐어짜낸 지혜와 무모하리만치 반짝거리는 용기를 통해 그 껍질을 벗겨내는데 성공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게 되는 것이니라.



이처럼 난해하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 구축되는 하나의 세계는 곧 상식(常識)이라는 대지와 사상(思想)이라는 하늘로 이루어지게 될 터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법칙은 곧 인과율(因果律)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당장 목전에서 이 인과율을 아득히 뛰어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느냔 말이다.



거진 대부분은 혼란스러워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일부는 아예 눈앞에 놓인 현실을 통째로 부정하여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그 성정이 제아무리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은 당장 마철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렸다.



꿈틀- 꿈틀-



당장에라도 마철을 산 채로 뜯어먹을 것처럼 아주 발광(發狂)을 해대던 마인이 어느새 조신한 새색시처럼 다소곳해져서는 소심하게 움찔거릴 뿐이니,


관자놀이에서 그 맞은편 관자놀이까지 차갑고도 냉혹한 검신에 의해 자비 없이 꿰뚫린 이의 최후는 벌레만도 못하다 칭해야 할만큼 볼품없는 것이었다.



푸슉-



그렇게 축 늘어진 굼벵이의 대가리에서 검을 빼낸 단우는 초점도 들어맞지 않는 눈으로 마철을 내려다보며 검을 쥐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끔뻑 끔뻑



아까부터 온갖 상념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정신이 산만해진 마철은 조금도 납득되지 않는 일련의 광경에 도통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분명히 사지가 남김없이 결박되어 자력으로는 그 무엇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거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자유의 몸이 되어있던 것으로도 모자라 손에 검까지 쥐고 있는 단우의 모습에는 도무지 현실감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담겨있지 않았다.



"마철, 네놈에게도 그리 얼빠진 표정이 있었다는 점은 제법 흥미롭다만..."



텁-



자초지종을 설명할 겨를이 없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저앉아있는 마철의 목깃을 움켜쥔 단우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말했다.



"한가롭게 시시덕거리며 실없는 소리를 늘여놓기에는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어서 일어나라."



휘 - 청



그렇게 원래의 의도대로라면 목깃을 움켜쥔 단우의 억척스러운 손길에 의해 마철의 척추가 곧추 세워졌어야 했지만,


마철을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되려 물에 흠뻑 젖어버린 헝겊 인형처럼 맥없이 당겨지며 쓰러진 선임 종마는 그대로 마철의 품에 쏙 안겨오는 꼴이 되어버렸다.



"단우님?"



"끄으으..."



마철이 아무리 용을 써도 떼어낼 수 없었던 마인을 단 일검에 꿰뚫어버린 사내의 위용에 걸맞지 않게, 어딘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변해버린 단우는 금방에라도 죽을 사람처럼 입가에서 나약한 신음 소리를 흘려내고 있었다.



"단우님. 괜찮으십-"



"끄아아아아악!!!!"



그저 가볍게 팔뚝을 움켜쥔 것뿐이거늘.



누가 보면 마철이 대단한 위해를 가한 것처럼 오해할 만큼 그 비명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끔찍하였다.



여지껏 생살을 찢고 멀쩡한 손톱과 발톱을 뽑아내는 그 모진 고문 속에서도 일말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던 단우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지러지게 질러대는 비명소리에는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이의 서글픈 칭얼거림이 떠오를 정도이니 당사자는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이냔 말이다.



"아프다!! 아프단 말이다!!!!"



그저 쓰러진 선임 종마를 일으켜 세우고자 가볍게 팔뚝을 움켜쥐었던 것이 전부였지만, 손에 닿은 질감이 이상하리만치 느물거리다 못해 헐겁다고 생각한 마철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손을 떼었다.



풀썩



"우으으으- 으우우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볼품없이 엎어져있는 단우가 이내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리며 상처 입은 짐승 새끼 마냥 애처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니,


황급히 단우의 팔을 놓아준 마철의 손끝에서 마치 썩어 문드러져 물컹물컹해진 과육을 매만진듯한 불쾌한 감촉이 떠나가질 않고 있었다.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든 마철이 쓰러진 단우의 옷깃을 슬며시 들춰보니, 그 안에는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한 움큼씩 패여져나간 속살이 앙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니.



그 견고함을 과시하려는 듯 단우의 전신을 물샐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굵은 밧줄이 어느새 끊어진 채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지금쯤 방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어야 할 단우의 검이 어떤 연유에서인가 제 주인의 손에 보란 듯이 들려있다는 점까지.



상식적으로 이해를 한다거나 그 이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순서를 지키지도 않은 채 무질서하게 마철의 눈앞으로 밀어닥치니,


마치 있어야 할 중간 과정이 통째로 생략되어 버린듯한 모종의 위화감이 그로 하여금 현실감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나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단우님.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우으으으..."



고작 그림 한 점을 그려내는 데에도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쥐어뜯는 고뇌와 붓을 쥔 손가락이 서서히 굽어가는 노고가 수반된다고 하지만,


뛰어난 화백이란 오로지 완성된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들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지루하고도 지리멸렬한 과정을 구태여 알게 하지 않는 법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기.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그림을 그려낸 화백이 하나 있었으니, 제 그릇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화폭을 욕심낸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도 잔혹한 것이었다.



하기야.



이미 단우의 몸 상태는 시력에 영구적인 손상이 올 정도로 지독한 구타와 잔혹한 고신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거늘.



그럼에도 만에 하나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듯 두텁고도 튼튼한 밧줄로 촘촘하게 묶여있던 단우의 결박은 쉽사리 자력으로 빠져나올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나마 마철이 발목의 결박을 끊어준 덕분에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 못하던 누에고치에서 꿈틀거릴 수라도 있는 굼벵이로 탈바꿈하게 되었다지만,


애시당초 외부의 조력 하나 없이 그 정도로 단단한 결박을 이리 짧은 시간 내에 풀어내기란 거진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끄으으으으..."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바짝 곤두서버린 핏발이 쇄골에서부터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은 단우의 동공에까지 곧장 이어져 있으니,


목구멍 깊은 곳에서 끌어 올라오는 단우의 신음 소리는 당장에라도 자신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어 이 고통을 끝내주기를 간청하고 있는 병자의 것과 비슷하였다.



"왜 이렇게 무리를 하셨습니까."



책임감과 강인함, 그리고 주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까지.



천마신교의 마인 답지 않게 본받을 점이 많은 선임 종마의 됨됨이를 모르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고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마철은 어떻게든 이에 견줄 수 있는 보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물론 이 모든 사달이 저희가 부족하고 미덥지 못하여 생긴 일이라지만, 그래도 조금은 저희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끄으으으으으으으으-"



무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분노,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마철의 안에서 한데 휘몰아치고 있으니,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은 마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난관을 헤쳐나가리라 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그러고자 무리를 이루고, 서로에게 등을 맡기며, 여지껏 생사를 함께 해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어떤 낙오자나 희생자가 없도록. 더 이상의 상실감은 결코 용납지 아니하겠다고. 마철은 굳게 다짐하였다.






쓰러진 채 애처롭게 웅크리고 있는 단우의 수혈(睡穴)에 손가락을 얹은 마철이 아주 조금이나마 내력을 끌어올리자 곧장 왼팔로부터 타는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지금 단우가 겪는 고통에 비한다면 이 정도의 뜨거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마철에게 하여금 불길이 들러붙는 듯한 통증마저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잠시만 눈 좀 붙이고 계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툭-



손가락 끝에 집중시킨 미량의 내력으로 수혈(睡穴)에 혈을 점하자마자 방금까지도 고통에 신음하던 병자가 조용히 고개를 떨구니,


그 모습이 어찌나 평온해 보이던지 진작에 이러한 안식을 선사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이를 다루듯 잠이 든 단우를 조심스럽게 등에 업은 마철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봤다.



"모두 다 잘 될 것입니다."



좁고 어두운 방을 조심스럽게 나서는 마철은 등에 단우를 들쳐매고 있음에도 아주 미력한 발소리만 남길 뿐이니,


다행히도 밖에는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화재(大火災)가 은밀하게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을 적절히 가려주는 장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적진 깊숙이 억류된 선임 종마를 구해내고자 다소 무리하게 감행하였던 단우 탈환 작전은 어찌 되었거나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눈물겨운 전우애로구먼."



다만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 쌍의 음흉한 시선이 존재하였으니, 그 목소리가 평범한 사내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심히 가느다랗고 비릿한 것이 썩 듣기 좋은 편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 무엇 하나 일단락되어 잠잠해진 것이 없으니.


어쩌면 밤은 아직 꺾일 생각이 조금도 없을는지도 모를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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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화 - 이란격석(3) 23.06.26 73 1 11쪽
273 166화 - 이란격석(2) 23.05.31 72 1 10쪽
272 165화 - 이란격석(1) 23.05.22 64 1 10쪽
271 164화 - 개미지옥의 악령 23.05.09 87 0 12쪽
270 163화 - 암막(暗幕) : 검은 장막 23.05.05 65 0 11쪽
269 162화 - 기회를 쫓아서 23.05.04 61 0 11쪽
268 161화 - 고울 려(麗) 23.05.02 85 0 11쪽
267 160화 - 괴담(怪談) 23.05.01 65 0 12쪽
266 159화 - 완벽한 준비 23.04.28 73 0 10쪽
265 158화 - 대장장이의 노래 23.04.27 57 0 10쪽
264 157화 - 생환. 혹은 탈환(奪還) 23.04.26 62 0 10쪽
263 156화 - 목표는 생환(6) 23.04.25 63 0 11쪽
262 155화 - 목표는 생환(5) 23.04.24 65 0 11쪽
261 154화 - 목표는 생환(4) 23.04.21 72 0 11쪽
260 153화 - 목표는 생환(3) 23.04.20 78 0 11쪽
259 152화 - 목표는 생환(2) 23.04.19 68 0 10쪽
258 151화 - 목표는 생환(1) 23.04.18 81 0 9쪽
257 150화 - 대장장이(4) / 수혈(輸血) 23.04.14 94 0 12쪽
256 149화 - 대장장이(3) 23.04.13 78 0 12쪽
255 148화 - 대장장이(2) 23.04.12 78 0 10쪽
254 147화 - 대장장이(1) 23.04.11 83 0 11쪽
253 146화 - 태풍의 눈 / 생존기(生存記) 23.04.07 87 0 10쪽
252 145화 - 엄지손가락 23.04.06 76 0 10쪽
251 144화 - 100번째 마인(魔人) 23.04.05 91 0 10쪽
250 143화 - 비단길 23.04.04 77 0 12쪽
249 142화 - 쓸모의 정의 23.04.03 7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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