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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허명의 서재입니다.

암살자가 만드는 천하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진허명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4
최근연재일 :
2023.06.26 0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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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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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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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0화 - 괴담(怪談)

DUMMY

160









예로부터 말 안 듣는 아이에게는 조부모님이 해주시는 옛날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무서운 이야기만큼 훈육에 효과적인 것이 없다 하였다.



예를 들어 시도 떼도 없이 울며 떼를 쓰는 아이에게는 당장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산중의 범이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와 덥석 집어갈 것이라며 겁을 준다거나,


부모의 속을 썩이고 사람 된 도리를 다하지 않는 이에게는 마른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진다는 터무니없는 속설(俗說) 말이다.



물론 하나같이 조금만 깊게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허술한 이야기들 뿐이었지만,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서 형태와 소재만 다를 뿐, 이러한 괴담(怪談)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만 보더래도 그만큼 훈육에 있어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똑- 똑-



하지만 진작부터 속세에 발을 디뎌 더 이상 어린아이로 남을 수 없게 된 이들에게 어설픈 괴담 따위는 그저 비웃음이나 냉소적인 비아냥만 자아내게 할 뿐이니,


이토록 세상의 풍파에 닳고 닳아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감흥을 받을 수 없이 마모된 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싶다면, 조금도 예측할 수 없는 요소가 필요하리라.



똑- 똑- 똑-



이제 막 해가 저물고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 내벽.



물론 이제 막 해가 저문 밤의 초입일 뿐이라지만, 어찌 되었든 이 늦은 시간에 남의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지극히 실례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내벽에 기거하는 마장들에게 있어 밤은 낮이요, 낮은 곧 밤이로니.


따지고 보면 아침 꼭두새벽부터 문을 두들기는 불청객의 성화에 다소 짜증이 일 수는 있어도, 그 바지런함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저리 안 꺼져? 누가 아침 댓바람부터 문을 쳐 두드리고 지랄이야!!"



물론 언제 어디서 칼침이 날아든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내벽의 밤에 허투루 문을 열어줄 만큼 덜떨어진 마인은 이미 진작에 묫자리에 몸을 뉘었을 것이니,


안쪽에서는 짜증과 경계심이 물씬 묻어 나오는 성난 목소리가 불청객을 내쫓고자 성을 내고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죄송하옵니다. 소녀가 급한 용건이 있어 실레를 무릅쓰고-"



벌컥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활짝 열린 문에서 다급함마저 느껴질 정도이니, 이 삭막한 내벽에서 결코 들을 수 없이 간드러진 목소리는 뭇 사내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한 모양이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더니만.."



거의 반사적인 속도로 문을 열어젖힌 마인이 탐욕과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나타났으니,


그 간드러지는 음성만큼이나 반반하게 생긴 계집 년이 자신의 눈앞에 떡하니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게 웬 떡-"



흠칫



얼굴과 목소리.



누군가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보고 듣게 되는 이 두 가지 요소는 상대의 첫인상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부분이니만큼,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상식과 기댓값을 월등히 뛰어넘어 자리하지 말아야 할 곳에 자리한 무언가를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는 호감 대신 두려움부터 밀려오지 않겠는가.



"으..."



목 위로는 반반한 계집이. 그 아래로는 민소매를 입고 있어 경계가 선명한 팔뚝의 굴곡이 훤히 드러나 있었으니,


능히 맨손으로도 범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투사(鬪士)의 육체가 반반한 계집년의 목 아래에서 극심한 부조화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싱긋



"소녀가 이번에 새로이 내벽에 발을 들인 터라, 이웃분들께 얼굴도장이라도 찍을 겸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여쁘게 봐주십시오."



싱그러운 웃음과 함께 아양이라도 떨듯 고개를 사선으로 살짝 숙이는 모습은 제법 교태롭다 할 수 있겠지만,


웬만한 사내보다 훨씬 두꺼운 여인의 팔뚝과 건장한 육체미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 역겨운 건 또 뭐야?"



상대적으로 치장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여인에게 첫 대면부터 용모 지적을 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라 할 수 있겠으나,


물론 적당히 예의를 갖출 만큼 점잖았더라면 애초부터 마인(魔人)이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설마하니 사내 놈이 분칠을 해서 계집년 행세까지 하고 다니는게냐? 이제 하다하다 별 해괴한 것들이 들어오는-"



콰직



어느새 이마에 박힌 한 자루의 철극이 함부로 입을 놀리던 마인의 머리통을 온전히 두 갈래로 나눠지게 하였으니,


경악으로 부릅 뜬 두 눈 사이의 간격이 멀어져 갈수록 마인의 몸뚱아리도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풀썩



"실례이옵니다."



문안인사 치고는 다소 격한 인사치레와 함께 마인의 머리통에서 철극을 뽑아든 여인은 다시금 아무렇지 않게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다만 이 기형의 여인은 분명 한 자루의 철극만을 사용했거늘, 맞은편에 들려있는 철극에도 아직 핏자국이 마르지 않은 것을 보아서는 이번이 필시 처음은 아니리라.



괴담(怪談). 괴이하고도 기이한 이야기.



해가 저물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들기거든 함부로 그 문을 열어주지 말라.


필시 굳게 닫혀있는 문 너머에서 감미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그대를 유혹할 테지만, 그럼에도 함부로 문을 열지 말라.


만약 이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끝끝내 문을 열게 되었다면, 그대는 문간 너머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형(畸形)의 존재와 마주치게 되리니.


명심하라.


행여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침묵은 금이라던 선인들의 격언을 받들어 정중하고도 과묵하게 목례를 한 뒤에, 그대로 천천히 문을 닫아라.


그렇지 않는다면 어느새 그대의 단단한 머리통은 한 자루의 철극에 의해 두 쪽으로 갈라져 속절없이 그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을 터이니.


명심하라.


무릇 여인이란 그 마음씨가 세심하여 여타 무딘 사내들보다 훨씬 많은 주의를 요해야 하는 존재이니만큼, 그들을 상대함에 있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만년설한의 추위보다 혹독하다는 여인의 한을 맞닥뜨리게 될 터이니.



이것은 괴담(怪談). 심히 기묘하고도 무서운 이야기.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주입시켜 주기 위해서 무서운 이야기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하였던가.



하지만 이토록 교훈과 당부로 점철된 괴담이 충분히 나돌기도 전에 곳곳에서 무딘 사내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우를 범하고 말았으니,


섬세한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머저리들은 이미 문간에 주저앉아 싸늘한 고깃덩어리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빨리 찾아!!"



"내가 어렴풋이 들었어! 분명히 계집 년의 목소리였다고!!"



"계집? 여기에 계집이 어디 있다고?"



"헛것을 들었겠지. 아니면 귀신이거나..."



9개의 무리가 결탁한 마장 연합의 처소에만 찾아든 괴담에 의해 이 밤의 초입부터 한바탕 시끄러운 소란이 일었으니,


자극을 받은 벌집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벌떼가 튀어나와 사방을 이잡듯 뒤지기 시작하던 와중이었다.



"잠깐만. 이러면 너희들 중 하나가 한 짓거리 아니야?"



"무슨 헛소리야? 계집년이래도!! 내가 분명히 목소리를 들었대도?!"



"그게 더 수상한데? 그럼 고작 계집년이 일격에 대가리를 쪼개놓고 다닌다는 말이 되는데?"



"그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황에 갑자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마장 연합 사이에서 팽팽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치덕-



"응?"



다만 아무리 잘 짜인 계획이라 해도 모든 상황과 변수를 통제하에 둘 수는 없는 법이니, 하물며 엉성하다 못해 즉흥적으로 수립된 작전이 어찌 순탄히 계획대로만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무언가 끈적이는 것을 밟은 마장 하나가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에 허리를 숙여 손가락으로 그 액체를 훑어보았다.



"이게 뭐지?"



킁킁



"윽- 갑자기 웬 기름이..."



손가락을 코끝에 가져다 대어 냄새를 맡자마자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이 퀴퀴한 악취는 기름에서 나는 특유의 향이었으니,


일벌 중에서도 유달리 성실한 일벌 하나가 쓸데없이 바지런을 떠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 또한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자의 소임이 될 것이었다.



"이러시면 소녀가 곤란해지옵니다."



부웅-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여인이 대뜸 철극을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귀신이 튀어나온 것처럼 갑작스러웠으나,


이미 습격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마장은 날렵하게 땅바닥을 구르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였다.



"여기 있다!!!"



더군다나 곧바로 응전하는 것 대신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목청껏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것만 보더래도 실전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 지 알 수 있었으니,


생각보다 유연한 대처에 당황해버린 여인은 삽시간에 구축되는 포위망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진짜 계집년이었잖아?"



"근데 저 꼬락서니를 계집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



"낄낄낄낄. 아무렴 어때. 일단 잡아서 족친 다음에 배꼽 아래에 뭐가 달려있는지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그럼. 게다가 나는 딱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서 말이지?"



저들끼리 음탕한 농담을 주고받던 마장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죄여오니, 결국 위치가 노출되고야 만 전려는 더 이상 괴담으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 심히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이러면 소녀가 곤란하옵건대..."



하지만 그녀가 누구의 후예이던가.



과거, 적의 계략에 빠져 별안간 기습을 당하게 된 상황임에도 속옷 차림으로 주저 없이 달려나간 장수 하나가 홀몸으로 수천의 적을 맞이하니,


맨손으로 날아드는 창을 부러뜨리고, 달려드는 적의 머리를 산 채로 짖이기는 위용에 중무장한 병사들조차 그 기세에 질려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였다고 했다.



하물며 술에 진탕 취한 것도 모자라 그가 애용하던 쌍철극마저 도둑맞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맹(威猛)을 보인 셈이니,


만일 그 장수가 제 한 목숨을 부지하고자 했다면 그보다 곱절에 달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한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모시던 주군께서 무사히 몸을 피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자 하니, 작은 옹성을 틀어막고서 농성을 하니 단 하나의 병사도 지나가지 못하였다 했다.



결국 개인의 기세에 밀린 군대는 뒤로 물러나 멀찍이서 화살만 쏘아내며 하루빨리 상대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렸으나,


수십, 어쩌면 수백 발의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굳건히 선 자리를 지키는 바람에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선뜻 다가가지 못하였다고 했다.



덕분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장수의 주군은 자신의 부덕함으로 인해 투신(鬪神)을 잃었다고 목놓아 울며 슬퍼했다고 전해졌으니, 그 장수의 이름은 전위라 하였다.



꿈틀 꿈틀



그런 투신의 후예라면 타고난 몸뚱아리가 비록 연약한 여인의 것이라 해도 능히 천군(千軍)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니라.



"뭐.. 뭐야?"



꿈틀 꿈틀 꿈틀-



그녀를 둘러싼 적들의 머릿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동안 기척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억눌러왔던 마기(魔氣)가 도리어 증폭되어가기 시작했으니,


안 그래도 두터운 그녀의 팔뚝이 우람하게 부풀어 오르며 전에 없이 방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에 한계가 없어 보였다.



"참고로 소녀는 임자가 있사옵니다."



전맹투신려(戰猛鬪神麗)



수천의 대군을 맨손으로 막아섰다던 전위의 후예답게, 지금 이 순간 쌍철극을 꼬나쥐고 있는 전려의 몸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투신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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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166화 - 이란격석(2) 23.05.31 72 1 10쪽
272 165화 - 이란격석(1) 23.05.22 64 1 10쪽
271 164화 - 개미지옥의 악령 23.05.09 87 0 12쪽
270 163화 - 암막(暗幕) : 검은 장막 23.05.05 65 0 11쪽
269 162화 - 기회를 쫓아서 23.05.04 61 0 11쪽
268 161화 - 고울 려(麗) 23.05.02 85 0 11쪽
» 160화 - 괴담(怪談) 23.05.01 66 0 12쪽
266 159화 - 완벽한 준비 23.04.28 73 0 10쪽
265 158화 - 대장장이의 노래 23.04.27 57 0 10쪽
264 157화 - 생환. 혹은 탈환(奪還) 23.04.26 62 0 10쪽
263 156화 - 목표는 생환(6) 23.04.25 63 0 11쪽
262 155화 - 목표는 생환(5) 23.04.24 65 0 11쪽
261 154화 - 목표는 생환(4) 23.04.21 72 0 11쪽
260 153화 - 목표는 생환(3) 23.04.20 78 0 11쪽
259 152화 - 목표는 생환(2) 23.04.19 68 0 10쪽
258 151화 - 목표는 생환(1) 23.04.18 81 0 9쪽
257 150화 - 대장장이(4) / 수혈(輸血) 23.04.14 94 0 12쪽
256 149화 - 대장장이(3) 23.04.13 78 0 12쪽
255 148화 - 대장장이(2) 23.04.12 78 0 10쪽
254 147화 - 대장장이(1) 23.04.11 83 0 11쪽
253 146화 - 태풍의 눈 / 생존기(生存記) 23.04.07 87 0 10쪽
252 145화 - 엄지손가락 23.04.06 76 0 10쪽
251 144화 - 100번째 마인(魔人) 23.04.05 91 0 10쪽
250 143화 - 비단길 23.04.04 77 0 12쪽
249 142화 - 쓸모의 정의 23.04.03 7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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