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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허명의 서재입니다.

암살자가 만드는 천하제일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진허명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4
최근연재일 :
2023.06.26 0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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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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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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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 완벽한 준비

DUMMY

159









부스스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를 인지할 겨를도 없이, 의식이 꺼졌다 깨어나기만을 반복하던 단우는 마침내 온전한 정신을 되찾게 되었다.



"여긴 대체..."



욱신-



얼마나 맞은 것인지 부어오른 눈두덩이로부터 엄습해온 고통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겨주었으니,


이는 당장 손과 발이 어디에 달려있는지도 모를 만큼 둔해져있던 오감이 차츰차츰 제 기능을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꿈틀



하지만 한낱 통증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던 단우는 당장 자신의 사지가 멀쩡히 달려있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니,


남의 몸뚱아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진 신경을 되살리는데 집중한 단우는 이내 손가락과 발가락이 남김없이 작동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불구자 신세는 아닌가 보군."



물론 '아직'이라는 말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조만간 사지가 뜯겨나가고 단전이 폐해지는 등 온갖 수모를 겪다가 끝끝내 목숨을 잃게 될 터이니,


당장 사지가 멀쩡히 달려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워진 단우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려다가 더욱이 극심한 고통을 맞이하였다.



"윽... 이 정도면 아주 꼴이 말이 아니겠군."



이 정도라면 그 몰골이 남에게, 혹은 자신에게도 보여주기 미안할 정도로 흉측할 터이니,


어찌 되었거나 사지라도 멀쩡히 붙어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기로 한 단우는 차분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당장 두 팔은 등 뒤로 묶여 단단히 결박된 상태였으며, 두 다리 역시 발목을 옥죄고 있는 압박감만 보더래도 쉽사리 운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추정되니,


옆으로 누워 서늘한 바닥의 냉기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던 단우는 힘겹게 눈을 뜨며 주위를 살펴보려 했다.



끔뻑 끔뻑



눈두덩이가 심각하게 부어올라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간신히 치켜뜬 단우는 자신이 다소 어두컴컴한 곳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어디선가 조금씩 스며드는 빛을 따라 시선을 움직여 보았으나 이상하게도 그의 눈동자는 사물의 형상을 똑바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끔뻑 끔뻑 끔뻑



거나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의 몽롱함처럼 단지 일시적인 흐릿함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단우가 몇 번이고 눈꺼풀을 감았다 떠보았으나,


시간이 충분히 흘렀음에도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더없이 암담하게 다가왔다.



"이제 보니 팔다리 대신 다른 것이 먼저 망가져 버린 겐가? 하여간 나약하기는.."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마인의 삶에 있어 분명 심각한 사안이었으나, 새삼 놀랍지도 않다는 듯 도리어 자신의 연약함을 질책하던 사내는 어디선가 가까워져오는 인기척을 향해 온전치도 못한 시선을 향했다.



벌컥



"드디어 일어나셨는가? 꼬박 하루를 내리 잠만 자길래,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가?"



단우의 망가진 눈으로는 오로지 상대의 흐릿한 윤곽선밖에 식별하지 못했지만, 유별나게 가늘어 앵앵거리는 목소리는 구태여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간용."



"그런데 자네... 이거 갑자기 미안해지려고 하는구만."



붓기라는 게으른 녀석이 원래 그렇듯 그다음 날이 되면 한층 더 부풀어 올라 파랗고 노랗게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우는 법이니,


단우의 얼굴이 얼마나 눈뜨고 봐주기 어려울런지는 간용의 반응만 보더래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미안하다면 이 결박이나 풀어줘 보게나. 그다음은 내 알아서 해보려니까."



능청맞게 떨어대는 단우의 너스레에는 이토록 처참한 꼴이 되었어도 당장 손발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포되어 있었으니,


포로 따위에게 업신여겨졌음에도 성난 기색이 전혀 없던 간용은 이내 차가운 맨바닥에 모로 누워있는 단우의 옆으로 다가와 살포시 쪼그려앉았다.



"이제 머지않아 해가 질 것이다."



딱히 훔쳐들을 이도 없건만, 쓸데없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서 속삭이는 탓에 손발이 묶여있는 단우는 그 듣기 싫은 목소리를 강제로 새겨들어야만 했다.



"알다시피 예부터 단우, 네놈에게 크고 작게 신세를 진 것들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그런고로 어젯밤은 이 몸이 온정을 베풀어 적당히 손봐주는 것으로 넘어갔다지만, 오늘부터는 마음을 아주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적당히 손봐주는 것만으로도 영구적인 시력 손상이 일어났으니, 간용의 경고대로라면 내일의 해를 반기는 것조차 단우에게는 쉽지 않을 일이 될 것이었다.



"물론 네놈이 송장이 되기 전에 아주 재밌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질 것 같으니, 나름 기대를 해보는 것도 좋을 테지."



"기대?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음?"



상대의 반응이 당혹스럽기는 피차 매한가지였으니,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우친 단우가 험악한 기세를 풍겨내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물었다, 간용! 똑바로 답해라!!"



"허... 정말 그리 생각하고 있던 게야? 네 휘하의 그 미련한 것들이 이대로 잠자코 틀어박혀 있을 것이라고?"



"....."



설마하니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던 단우의 안색이 어느새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으니,


오랜 친우이자 악연으로 얽힌 호적수가 처음으로 내보인 어수룩함에 간용 또한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허참, 어찌 제 수하들을 나보다도 모르는지... 이제 보니 네놈은 선임 종마의 자격이 없도다, 자격이."



이런 모지리와 더는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간용이 충격에 빠진 단우를 내버려 둔 채 자리를 뜨니, 이미 모든 안배를 끝마쳐 둔 모략가의 입가에는 비릿한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최대한 발버둥 치거라.'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거라.'


'그렇게 너희들이 아둥바둥거리며 불러올 피바람이 한바탕 일대를 휩쓸고 지나가면, 그 뒤로 폭삭 내려앉은 쑥대밭 위에 이 간용님께서 친히 새로운 뼈대를 세울 것이니.'



당장의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내는 아무리 지닌 것이 많아도, 더 많은 것을 탐하는 법이니.



그가 내다보는 미래에는 내벽의 밤과 모든 마장을 발아래에 둔, 한 사내의 형상이 어렴풋이 비칠 뿐이었다.










"으... 냄새."



속을 매스껍게 만드는 악취에 인상을 찡그린 허담은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어느덧 등 뒤로 날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붉은 휘장이 드리움에 따라 그의 마음도 점차 조급해졌다.



"장사위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



마철이 어디선가 구해온 대량의 기름은 아무리 뿌리고 뿌려도 동날 줄을 몰랐으니,


낮을 틈타 남몰래 기름을 내벽 곳곳에 흩뿌려놓던 허담은 함께 짝을 이루던 장사위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장사위님?"



한동안 펴질 줄 모르던 허리를 오래간만에 곧추세우며 장사위를 바라본 허담은 그곳에서 덜컥 굳어버린 장사위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기름을 뿌리다 말고서 한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장사위의 발치가 이미 기름으로 흠뻑 적셔져 있었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지..."


"항상 모든 일에 선봉은 이 몸이 도맡아왔거늘, 왜 이번에는 다른 것이냔 말이다... 대체 왜?"



곱씹어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푸념에 빠진 장사위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허담은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짜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장사위님.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남은 기름을 어찌해야 좋을지 논의를..."



"필시 마철, 그 빌어먹을 놈이 지금 나보다 그 정신 나간 년을 더 높이 치고 있는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중차대한 일을 내게 맡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이더냐?!"



으득



아까부터 이상한 곳에 초점이 맞춰져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장사위의 구시렁거림에 허담의 속이 얹힌 것처럼 갑갑해졌으니,


영원히 쓴소리 한 번 하지 못할 것만 같이 온순한 이조차 결국 밀려오는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서 버럭 일갈(一喝)을 내질렀다.



"마철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아니, 분명 각자 잘하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설마하니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고서 일을 맡기겠습니까?"


"정 그러시다면 옳다꾸나 이번 기회에 장사위님의 진가를 보여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평소에 잘만 하시던 것 그대로 그냥 눈에 닥치는 족족 쳐 죽이면 그만인 것을, 왜 이리 오늘따라 징징거리십니까? 예?!"



"....."



한바탕 쏟아내니 얹힌 것 같은 느낌은 사라졌다지만, 그 뒤의 일은 생각해 보지 못한 허담에게 있어 장사위의 침묵이 더없이 무섭게만 다가왔다.



"어..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렇지.."



갑작스레 차분해진 장사위는 허담의 직언에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것인지, 평상시처럼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보이는 족족 쳐 죽이면 그만이었지..."



"장사위님?"



덥썩



이제 얼마 뒤면 해가 저물 시간이었으니, 특유의 괴력으로 남은 기름 동이를 한꺼번에 짊어진 장사위가 주저 없이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지키는 것은 허담. 네가 도맡거라."


"나는 그저 불사지를 줄만 아는 자이니, 각자 잘하는 것을 하면 그뿐이겠지."



반나절이라는 시간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기에 더없이 짧은 시간이라지만, 어차피 세상에 확실하고도 완전한 것이 몇이나 있단 말인가.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가장 잘 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만이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최선을 향해 가는 길이렸다.



그런고로 준비는 끝났다.



밤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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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164화 - 개미지옥의 악령 23.05.09 87 0 12쪽
270 163화 - 암막(暗幕) : 검은 장막 23.05.05 65 0 11쪽
269 162화 - 기회를 쫓아서 23.05.04 61 0 11쪽
268 161화 - 고울 려(麗) 23.05.02 85 0 11쪽
267 160화 - 괴담(怪談) 23.05.01 66 0 12쪽
» 159화 - 완벽한 준비 23.04.28 74 0 10쪽
265 158화 - 대장장이의 노래 23.04.27 57 0 10쪽
264 157화 - 생환. 혹은 탈환(奪還) 23.04.26 62 0 10쪽
263 156화 - 목표는 생환(6) 23.04.25 63 0 11쪽
262 155화 - 목표는 생환(5) 23.04.24 65 0 11쪽
261 154화 - 목표는 생환(4) 23.04.21 72 0 11쪽
260 153화 - 목표는 생환(3) 23.04.20 78 0 11쪽
259 152화 - 목표는 생환(2) 23.04.19 68 0 10쪽
258 151화 - 목표는 생환(1) 23.04.18 81 0 9쪽
257 150화 - 대장장이(4) / 수혈(輸血) 23.04.14 94 0 12쪽
256 149화 - 대장장이(3) 23.04.13 78 0 12쪽
255 148화 - 대장장이(2) 23.04.12 78 0 10쪽
254 147화 - 대장장이(1) 23.04.11 83 0 11쪽
253 146화 - 태풍의 눈 / 생존기(生存記) 23.04.07 8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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