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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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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4,721

작성
22.10.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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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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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41화

DUMMY

두려움은 없다.

공포 또한 없다.


지금 설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저 ‘전투’라는 행위.

그 자체일 뿐이었다.


“여기서 보는 건 처음이네.”


설야가 펼치려던 어둠- 무저갱(無底坑)을 파해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급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천천히. 여유 있게.

맞물린 마력의 반발력은 이미 소스라진지 오래다. 무저갱과 맞물린 마력은 이미 무저갱을 무마시켰고, 이내 조각처럼 깨어져 흐드러졌다.


사방으로 흩날린 마력 조각은 채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개중 몇은 바닥에 닿았지만, 튕겨나지 못한 채 흩날려 스러져갔다.


“설야.”


설야.

그 비극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밑단을 향해 내려온 머리카락은 어둠과도 같은 묵빛을 띠고 있었다.

몇 번이고 어둠을 압축시켜 펴바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고르게 섞이고 휘날린 흑이었고, 또한 암흑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영원토록 변색되지 않을 어둠이기도 했다.


눈동자 또한 한없이 깊은 심연을 담은 듯했다. 흑빛을 띤 왼쪽 눈을 바라보다가, 짙은 녹빛을 한 오른쪽 눈으로 시선을 돌린 설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날 알고 있나?”

“알지. 의뢰인한테 들었거든.”

“의뢰인?”


설야는 의뢰인이라는 설진의 말에 반문하려다, 멈췄다.

의뢰인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써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애당초 설야에 대해 말해줄 이는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연화였나.”

“정답.”


의뢰인의 정체가 연화라는 말을, 설진은 순순히 인정했다.

굳이 거짓을 섞어가며 끌고 올 대화는 아니었다.

설야는 연화의 존재를, 연화는 설야의 존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


들키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설진은 빠르게 진실을 고했다.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대화라는 이름의 탐색전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희생자를 늘리기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것도 엘프도 아닌 바깥 세계의 인간을?”


설야는 설진의 얼굴을 살펴보더니만, 빠르게 엘프가 아님을 확신했다.

그랬기에 어이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종족 싸움에서 끝내고 싶지 않다고 선전포고라도 하는 건지···.”


다크 엘프와 엘프 사이에 아무런 관계없는 외부인을 끌어들이다니.

싸움의 규모를 키우기라도 하고 싶은 건지.

순간 연화가 드디어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야는 눈을 잘게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으로 물들어버린 금일의 하늘에, 자그마한 김이 서려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김은 비눗방울처럼 체공하더니만,

화아-. 마치 방금의 광경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양 사라졌다.


‘어쩔 수 없나.’


가능하면 외부인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건만,

자신이 아닌 연화가 먼저 시작해 버렸다. 그렇기에 상대해야만 했고, 밟고 나아가야 했다.


‘쉬운 상대는 아닌 것 같지만···.’


당연하게도 연화는 바보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을 제 앞에 세워두었을 리가 없었다.

재차 시전하려던 무저갱을 깨뜨려버린 만큼, 어느 정도의 실력은 있는 상대일 터.


설야는 짐짓 고전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끝내야겠군.’


그럼에도 치고 나아가야 했기에, 정령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스르륵-.


어둠 정령은 삽시에 둔갑의 과정을 거쳤다. 설야의 손에 감길 만한 크기의 흑빛 막대기 형태로 변하는가 싶더니, 종래에는 날이 생겨났다.


그건 검이었다. 헤임 제국의 엘리나처럼, 그녀는 검과 마법을 이용해 싸우는 마검사였다.

아니, 마검사라기보단 정령검사하고 해야 할 터. 설야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어둠에 설진은 무망중 숨을 삼켰다.


“나서지 말아라.”


저벅-.


“저건 나 혼자 상대하겠다.”


설진이 상당한 실력자라는 가정을 둔 채 앞으로 나섰다.

나서며 그런 말을 했다.


굳이 다크 엘프군을 출정시켜가며 피해를 누적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군을 사용해 몰아붙인다면 연화에게 쏟아부을 전력이 감퇴할 터.


그러니까-.


금일, 이 자리에서, 지금의 시간에.

싸우는 건 다만 설야와 설진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격전이고, 그리하여 전투가 될 것이다.


“혼자서?”

“굳이 인원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만.”


그리 말한 설야를 보고서, 설진은 조금은 놀란 듯 눈을 부라렸다.

호오- 이어 무의식적으로 비음을 낸 채 걸음을 옮겼다.

서로의 얼굴이,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쪽도···.”


설진은 신호하듯 손을 흔들었다. 흔들림은 한동안 지속되는가 싶더니, 이내 짧은 간격을 가지고서 멎었다.

그 순간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폐 마법과 플라임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던 채린은 호흡을 고르며 마력을 흩트렸다.


화르륵-!


플라임은 불 속성 마법 중에서도 꽤 고위급에 속한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취소한 만큼 역풍이 일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사방을 살라 먹을 듯한 기세를 내보인 플라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설야는 아무 말 없이 설진을 바라보았다.

설진이라기보단 그 뒤에 있는 마법사에 시선을 고정했다.


채린에게 향한 시선이 한동안 멎었다. 채린이 사용한 마법이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졌는지 느꼈기 때문이었다.

만일 아무것도 모른 채 저런 걸 정면으로 맞았더라면···.


‘못해도 군의 이 할은 잃는다.’


다크 엘프들의 필시 죽음을 맞이할 터.

순간 짓쳐온 소름에 설야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손가락이 미약하게 흔들렸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선 본래의 이성을 유지시켰다.


스릉-.


채린을 향했던 설야의 고개가 다시 설진에게 향한 건 그런 소리가 울렸을 즈음이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듯 검을 올리는 소리. 조금이지만, 전장을 향해 불어온 고풍은 공간을 잠식해나갔다.


설진의 검에서부터 나온 바람이었다. 마냥 평범한 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계심을 올리기 시작한 설야는 마찬가지로 검을 들어 올렸다. 정령 무기. 그것도 어둠 정령을 매개체로 만들어낸 검.


“자, 그럼-.”


설진은 아직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검에서부터 인 미약한 바람은 설야에게까지 향했고, 머잖아 살결을 스쳤다.


스친 바람이 멎었을 즈음, 완전히 냉정함을 되찾은 설야가 볼 수 있었던 건,


“시작할까.”


전투의 시작을 알리듯 서서히 발을 움직이고 있는 설진의 모습이었다.


* * *


[목표 : 설야와 대치하십시오.]


연화에게 설야와 맞서겠다는 말을 했을 당시, 시스템은 그런 목표를 뱉었다.

설야와의 대치. 즉, 싸움.

그것이 바로 64층의 클리어 조건이었다. 설야와 싸우고, 싸움이 끝을 맺으면 일행은 65층의 스토리 모드로 전이되어 빙의할 터.


그렇게 되면 시작될 것이다.

엘프도 다크 엘프도 아닌 외부 세력, 오엘의 출현이.


‘그러니까.’


설야를 상대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전력을 발휘해 버리면? 서로 지쳐 아예 힘을 쓸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면?


다크 엘프 설야는 오엘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 다가오는 것이다.


실제로 본 결말이고 엔딩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버된 게임이 몇을 넘어갔었는지.


잠시 과거를 회상한 설진은 걸음을 옮겨 가며 설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겨서도 안 된다. 당연하지만 져서도 안 된다.

막상막하(莫上莫下). 서로의 실력이 너무나도 비슷해 승부가 나지 않을 만큼, 그만한 전투를 펼쳐야만 했다.


‘···혼자 나온 건 그나마 다행이네.’


병력을 물리고 홀로 나선 설야의 판단.

그건 설진에게 있어 정말로 다행인 경우였다. 설야 혼자를 상대하기도 벅찰 텐데, 다른 다크 엘프가 함께 달려든다면 힘을 조절하기 어려워지니.


물론 그때를 대비해 다른 일행을 숨겨뒀지만 일행이 나선다면 전투가 아닌 전쟁이 되어버릴 터.

커질 대로 커진 전쟁의 규모는 결코 개인이 제어할 수 없었다. 막상막하로 싸우리라 계획한 설진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온전한 일기투를 벌일 수 있게 된 지금의 상황이.


“자, 그럼-.”


다크 엘프의 부대도.

설진 일행도.


그 누구의 개입도 없는, 오직 설진과 설야의 싸움.


“시작할까.”


둘의 검이 서로를 향해 겨눠진다. 흑야를 품은 것 같은 설야의 검이 설진을 향하고, 흩날리는 고풍의 검이 설야를 향했다.


“바라던 바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이 절묘하리마치 맞물릴 즈음,


타다다다!!


둘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진격했다.


‘마력 단검.’


오른손에 쥔 검을 대신해 왼손에서 마력을 일으켰다.

형태를 구축하면서까지 일궈낸 것은 다름 아닌 마력 단검. 원거리에서 공격을 가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일거에 치고 들어갈 계획이었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설진은 생각한 것을 곧이곧대로 실행에 옮겼다.


파앗-!


뒤로 쭉 뻗은 왼손을 다시 앞으로.

순식간에 가속도를 얻은 단검이 쇄도하며 나아갔다.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설야.

설야를 노리고 달려드는 단검이 한순간에 목을 조준했다.


‘그 짧은 시간에 생성과 공격까지.’


설야는 설진의 행동을 관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서로에 관한 능력을 잘 모르는 만큼 탐색전으로 시작할 생각이었건만,


‘···일단 단검부터 쳐내야겠군.’


섬뜩하리마치 정교한 조준 능력에 기함하며 검을 들어올렸다.

일격에 죽을 정도는 아니나 단검의 위력은 꽤 위협적이었다. 맞아준다면 순식간에 열세를 점하게 될 터.


팅!


그렇게 둘 순 없다고 생각한 설야는 자신에게 날아든 단검을 쳐내기 시작했다.

위력은 있었지만, 방어 태세를 취한 설야의 수비를 뚫기란 불가능했다.


‘단검으로 데미지를 입힐 생각은 안 했어.’


설진은 속전속결로 마력 단검을 쳐내고 있는 설야를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설야의 공수는 워낙 탄탄해서,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뚫기 상당히 난해해진다.

지금은 공수 중 수에 집중하기로 한 모양.


‘그러니까 부딪힌다.’


단검이 아닌 제 몸을 움직였다. 단순 원거리 공격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으니, 자신이 직접 나아가 데미지를 입혀야 했다.


타앗-!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설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양 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이며, 설야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이윽고 검에 힘을 실으며 화악-!

가히 살인적인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


적중을 예감한 설진의 표정이 미묘해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살을 베는 감각이 아닌 쇠와 쇠가 맞물린 소리. 첫 번째 공격이 막혔음을 확신한 설진은 빠르게 몸을 물렸다.


단검으로 신경을 긁고, 이어 자신이 직접 공격하는 방법.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인 첫 번째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다. 설야의 몸을 감고 있는 검은 유형의 기운을 바라보며 설진은 혀를 찼다.


‘동체시력 강화인가.’


기본적으로 전신을 감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눈에 집중되어 있었다.

정령을 통해 오감 중 시각을 강화시킨 설야는 설진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곳곳에는 쳐낸 단검이 떨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실체화시킨 마력 단검을 전부 거둔 설진은 다시금 검을 올렸다.

설야 또한 마찬가지. 똑같이 검을 올리는 모습이다.


다를 것이 있다면 설야의 행동이 소극적이라는 점.

그녀는 아직, 전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수비에 집중하며 설진을 관찰하고 있었다. 탐색전. 시작부터 공격을 감행한 설진과는 달리, 설야는 지금을 탐색전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이쪽도 천천히···.’


대치에 가까운 소강상태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설진의 첫 공격 이후 누구도 먼저 행동하지 않았다.


설진으로서는 좋은 현상이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교전을 이어나가는 것. 지금 설진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그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설진의 머릿속이 바뀌기까지는,


“하아-.”


기운을 모으듯 등 뒤로 어둠을 방출하고 있는 설야가 눈에 들어오기까지는.

애석하게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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