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들어 움직이면 쏜닷! (2)
오 대위의 말에 584 부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네? 총을 쐈다고요?”
초소 귀신 이야기라면 질리도록 경험해봤던 584 부대원들이었지만 총을 쏴 대는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에도 으레 평범한 초소 귀신이거니 하고 출동한 1소대였다. 하지만 총을 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건 석우였다.
아, 내 청춘. 입 한 번 잘못 놀려서 인생 개 망했구나.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여자친구도 사귀어야 되고, 골레기로 승급도 해야 되고, 제대도 해야 되고.
“네. 암구호가 틀렸다며 총을 쏘더군요. 저랑 제 부대원 모두 바로 그 자리에서 줄행랑을 쳤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실탄이 맞습니까?”
이야기를 듣던 최 중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어보았다.
“음. 죄송합니다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 확인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게 아닙니까?”
짐짓 불쾌한 듯 오 대위가 말했다. 여기까지 말한 것도 오 대위 입장에서는 꽤 자존심이 상할 만할 터였다. 총소리를 듣고 도망친 군인이라니.
“네, 맞습니다. 오 대위님, 걱정 마십시요. 대위님 말씀처럼 그런 일을 해결하는 것이 저희 일이니까요. 저와 제 부대원들이 깔끔하게 이번 일을 해결해 놓겠습니다.”
그 말에 그제야 오 대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고. 꼭 좀 부탁드립니다.”
중대장실을 나온 1소대원들은 곧장 이번 의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최경수 중사님. 그럼 일단 삼 년 전에 있었다던 자살 사건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이런 경우 자살한 병사의 원한이나 미련 때문인 것 같지 말입니다.”
현수의 말에 최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른 케이스처럼 그렇지 않나 싶다. 근데 어느 정신 나간 부대가 자살한 얘의 기록 같은 걸 자세히 남기고 싶겠냐. 최대한 덮으려 하겠지. 게다가 중대장 오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 않냐.”
“그라도 부대 일지 같은 거에 사건 보고 같은 게 남아 있지 않겠습니꺼.”
그동안 말 한마디도 없던 지형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석우는 아직 익숙할 틈도 없었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계급과 관계없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584 부대의 불문율이었다.
“뭐.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사건 조사는 기록으로 남겨두었겠지. 그럼 일단 지형이랑 찬영이는 나랑 같이 사건보고서를 좀 검토해 보자. 뭐 잘 협조를 해 줄 것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해 봐야지. 그리고 현수야.”
“상병 박현..”
마지막 ‘수’ 자는 거의 안 들릴 정도로 관등성명을 대는 현수였다.
“넌 막내 데리고 일단 현장 조사부터 하고 있어라.”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못마땅한 듯 석우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적응도 할 새도 없이 입대하자마자 온 거라 아직 많이 힘들 거다. 황영준 준위님이 이번 일이 막내한테 경험 쌓기 딱 좋은 일이라 해서 좀 무리한 거다. 그러니까 견학시킨다는 생각으로 교육 잘 지켜줘라. 아 그리고 특히 니 현수가 얘 좀 잘 돌봐 주란 말도 하시더라.”
“휴우···네···네···”
얼씨구? 이 새끼는 아예 한숨까지 대 놓고 쉬네. 임마 나도 너 따라 기기 싫다고. 졸라 빠져서는. 저런 걸 부소대장님은 그냥 냅둬?
**
석우와 현수는 그 문제의 초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막 저녁 먹을 시간이라 어스름이 내려오는 중이었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크게 어둡지는 않았다. 현수는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석우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앞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야 막내.”
“이병 강석우.”
빠릿빠릿한 대답을 한 석우는 눈 앞에서 부적 한 장을 내미는 현수를 바라보았다.
“이건 육자대명주 부적이란거다. 호신부니까 잘 가지고 있어. 뭐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내가 있으니 별일이야 있겠냐만은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다 싶으면 무조건 부적을 들고 법문을 외워.”
“네? 법문이요? 아니 법문 말씀이십니까.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법문. 절에서 스님들이 외우는 경. 따라 해봐. 옴마니밧메홈.”
석우는 차칫 웃음을 뿜을 뻔했다.
옴마니밧메홈이라니! 관심법 타령하던 옛날 드라마에서나 듣던 걸 나보고 외우라고?
석우는 자신이 무슨 코미디 부대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뭔 생각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농담 아니고 그게 널 지켜줄 거니까 웃지 말고 따라 해봐. 그러다 뭔 일이 생겨도 난 책임 안 진다.”
석우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은 현수가 쏘아붙였다.
“아. 알겠습니다.”
석우는 자꾸 드라마 생각이 나서 웃음이 터질 뻔 했지만 꾹 참고 법문을 따라 했다.
“옴마니밧메홈. 옴마니밧메홈.”
“그래. 잘하네. 잊어버리지 말아라. 일반 군인에게는 총이 목숨이지만, 우리 같은 퇴마 부대원들에게는 부적 같은 각종 제령 도구가 목숨이야. 절대로 명심해라.”
“이병 강석우. 잘 알겠습니다.”
옴마니밧메홈. 옴마니밧메홈. 부처님 제가 여지까지 종교를 가진 적이 없지만 제발 이 법문을 듣고 이 병신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하지만 마음과 달리 석우와 현수는 현장으로 점점 다가가는 중이었다.
“저 박현수 상병님. 죄송하지만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석우는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해 봐.”
“그..저..저희가 어쨌든 귀신을 잡으러 온 거지 말입니다.”
“어.”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박현수 상병이 너무 얄밉게 느껴졌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귀신이 있다면..아니..초소 귀신을 잡으려면 말입니다..”
“뜸 들이지 말고 할 말이 뭐야?”
박현수 상병은 약간 짜증 나는 말투로 대답했다.
아 쫌. 이런걸 물어보는 나도 미친 거 같아서 그런다 임마. 배려 좀 해줘라.
“아직 해가 떠 있는데도 귀신이 나옵니까?”
“에휴. 이걸 어디부터 가르쳐야 한담.”
긴 한숨을 쉬며 박현수 상병이 말했다.
“그냥 간단히 말할게.”
현수는 어디부터 얘길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설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 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 스승님께서는 사람과 귀신을 이(理)와 기(氣)의 개념으로 가르치셨다. 그러니까 영혼이라는 것은 일종의 ‘기(氣))’이고 사람의 몸은 형태가 변할 수 있는 ‘이(理)’라는 거지. 너나 나나 이러한 이와 기가 조화를 이룬 형태로 살아가는 거란 말이지. 그런데 사실 귀신도 이러한 이와 기의 합일이고···.”
“···”
···글렀다. 이놈 설명충이었어. 이게 어떻게 간단하게 말한 거야. 아 어떻게 이 놈은 이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걸까. 이놈은 보나마나 여친도 없을거야. 아마.
그 뒤로 현수가 뭐라 뭐라 얘길 했지만 석우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해했냐?”
예기치 못한 박현수 상병의 말에 석우는 깜짝 놀라며 답했다.
“이병, 강석우. 자..잘···모르겠습니다.”
어리버리한 석우의 모습에 박현수 상병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이런 꼴통을 데리고 어떻게 일을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미 새끼도 알아차릴 수 있을 표정이었다.
“하아. 됐다. 그냥 낮에도 귀신이 나올 수 있다고만 생각해. 그러니까 그 부적 잘 챙겨라.”
해가 아직 지지 않아서 마음 한 켠으로 안심하고 있던 석우는 갑자기 한 걸음 한 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럴 수가! 요즘 귀신은 뭐 이리 부지런해! 밤에만 일하면 됐지. 왜 낮에도 나오는 거야. 개네도 열정페이 받고 야근 아니 초과 주간근무 하나?
낮에도 귀신이 나올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오만가지 생각이 석우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
“저 초소인가 보다. 넌 여기 잠시 대기하고 있어.”
박현수 상병은 눈 앞에 초소가 보이자 석우를 잠시 대기시켜놓고 혼자 초소로 걸어갔다. 그 순간 석우는 그토록 미워 보이던 현수에게 참을 수 없는 애정까지 느꼈다.
하나님 부처님 박현수 상병님. 고맙습니다.
초소는 흔히 볼 수 있는 계단을 올라가는 임시초소로 현수는 초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까지 별다른 영적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럴 경우는 보통 셋 중의 하나였다. 별 위험이 없는 잡귀이거나 흔적을 지울 정도로 엄청난 놈이거나 아니면 신고자가 헛걸 봤거나.
일단 많은 초소병들, 심지어 중대장까지 목격했다고 하니 헛것을 본 것은 아닐 터. 좀 심각한 귀신이라면 고작 이런 장난에 그칠까? 아무리 총을 쐈다 하지만 아무런 사상자가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짓궂은 장난인 것 같은데.
현수는 일단 초소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캉캉’거리는 철제 계단 특유의 쇳소리를 들으며 현수는 계단을 올라갔다. 초소는 안 쓴 지 오래되어 살짝 기울어져 보였고 여기저기 거미줄까지 쳐져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현수는 초소의 문을 열었다.
“어푸어푸.”
낡은 나무 판자 문이 열리자 여기저기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현수는 ‘퉤’ 침을 뱉으며 입 안에 들어간 먼지를 게워냈다. 이 와중에도 별다른 영적 느낌은 없었다. 현수는 조용히 탐혼(探魂)부를 꺼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공들여 초소를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네. 아무런 반응도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진짜 단체로 헛것을 봤다는 거야?
조용한 탐혼부를 보며 현수는 의아했다.
일단 여기 안에는 아무런 원혼이나 그런 게 없다는 건데. 내가 들어왔다고 밖으로 피한 건가? 아님 밖에 있는 건가? 잠깐 밖?
현수는 순간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밖에 혼자 대기하고 있던 막내 강석우. 현수는 다급하게 초소 밖으로 달려나갔다.
“야! 막내.”
하지만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석우는 보이지 않았다.
**
초소를 올라가는 현수를 멀찌감치 쳐다보면서 혼자 남은 석우는 애꿎은 땅이나 차면서 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맘에 안 드는 현수라도 초소에 혼자 들어가고 막상 자기 혼자 초소 밖에 남게 되니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으스스하기도 해서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음에도 조금 초조해졌다. 게다가 에지는 해도 거의 다 져서 꽤 어둑어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 이게 대체 뭐지. 정말 몰래카메라 같은 게 아닐까.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귀신을 어떻게 잡아.
차라리 욕할 대상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석우는 정말 이게 다 누구 탓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녀!”
그때 갑자기 저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입대한 석우로서는 그게 수하라는 걸 알 리가 없었다.
“네? 뭐라고요?”
“소녀!”
“아. 뭐래는거야. 거기 누구야.”
소리가 나는 쪽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작은 수풀이었다. 인기척은 없는데 머리에서 소리만 울리는 식의 괴상한 느낌에 석우는 크게 소리쳤다.
“뭐야! 누구야! 너! 숨어있지 말고 나와!”
석우는 무서웠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장난치는 줄 알았다.
“소녀!”
“뭔 개소리야. 소녀가 뭐 어땠는데. 내가 소녀로 보여?”
이 근방은 죄다 미친놈들만 있나. 저놈 낯짝이라도 봐야겠다.
석우는 수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타앙”하는 총소리와 함께 석우의 왼발 앞의 땅이 푹 패였다. 아무리 바보라도 이 소리가 총소리라는 건 모를 수가 없었다.
“으악!”
누군가 총을 쐈다. 나에게!
현 상황을 인식한 석우는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싶었다.
아니야! 살아야 한다!
라고 생각한 석우는 앞뒤 볼 거 없이 무작정 왔던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뛰기 어렵고 넘어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뒤에서는 “타앙”하는 총성이 도망가는 석우를 쫓았다.
“으아아아아아”
석우는 이제 정말 울 것 같았다.
입대 첫날에 이렇게 군대에서 개죽음당하기 싫은데. 하다못해 여자 사람 손 한 번 잡아보고 죽었으면···
석우는 눈물 콧물을 얼굴에서 내뿜으며 정신없이 달렸다.
“오..옴..마..니..바..밧메···홈···오..옴마..니밧..메홈···옴마니밧메홈···”
석우는 현수가 가르쳐준 법문만을 소리치며 걸음아 나 살려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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