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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1119_changkhan 1004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의 사이보그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이창창
작품등록일 :
2020.11.03 20:14
최근연재일 :
2020.12.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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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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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수 :
160,706

작성
20.12.0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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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對 국민당 1

DUMMY

○○○

“봤었어? 김친이 있었어.”

아지트의 식탁 의자에 앉아 총검을 만지작거리던 한터가, 일리야를 향해 무심하게 말했다.

총검은 어제 한터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텅스텐 합금을 기초로 만들어진 칼등과 무식한 탄소강으로 벼려진 칼날이 부자연스럽게 조합되어 있었다.

10kg이 넘는 무게 때문에, 쌀자루를 휘두르는 것 같은 억척스러운 감각이 손에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그 총검을 휘두르느라 한터는 땀에 젖어 있었다. 촛점없는 눈, 이완된 근육. 방금 도착한 일리야에게는 그런 모습이 왠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일리야는 대꾸 없이 말했다.

“얼른 나와. 저녁은 먹고 가야지.”


한터는 말 없이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주머니에 넣어져 있던 파란색 주사기가 손에 잡혔다.

장물아비에게서 구입한 그 주사기. 주사기에 그려진 동심원을 보고, 한터는 별안간 노다 도시아키에 대한 증오가 떠올랐다. 한터는 주사기를 꺼내 조용히 서랍에 넣어 두었다.


만주의 12월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말없이 일리야를 따라 걷는 한터. 매번 감자만 먹다가 외식을 하는 것이 놀랄 법한 일일텐데, 한터의 두뇌는 김친에 대한 생각에 완전히 삼켜져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일리야와 한터는 말 없이 요리집으로 향했다. 식당은 근방에서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 이통강(伊通江) 옆구리로 삐죽 튀어나온 작은 반도(半島) 같은 부지 위에 지어진 ‘검은 기와’의 고급스러운 건물은, 흐르는 강물에 감싸여 풍경화에나 나올법한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검은 기와’ 요리집에 들어서니, 꽤나 넓직하고 고급스러운 모습이 일리야의 눈에 들어왔다. 홀 주변으로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방마다 화려한 골동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일리야는 시크한 표정으로 점원에게 부탁해서 방에서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방에 난 창으로 이통강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지 메기조림’(鮎漁炖茄子)을 먹는 것이, ‘검은 기와’집의 알려진 묘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원은 일리야와 한터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방에 예약이 꽉 차서요..’라고 말을 흐리며, 답답한 홀 자리 끝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홀의 주변은 모두 방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쪽창 하나 나 있지 않아 폐쇄적인 느낌을 주었다.


일리야는 눈을 흘기며 자리에 앉아, 돼지고기 요리와 만두를 주문하고서 혼잣말을 했다.

“흥.. 또 이러네.. 돈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 방을 줄 수 없다는 건가? 방들이 텅텅 비는구만.. 예약은 X미···”


한터는 날카로운 눈매로 허공을 휘젓다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일리야에게 말했다.

“김친을 봤어. 살아있었어.”


일리야가 귀찮다는 듯이 한터를 훑어보며 대답했다.

“그럴리가 없잖아?”

점원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묻어 있는 말투였다.


“아니야. 내가 정확히 봤어. 조선의용대 군복을 입고 있었어.”


“흠.. 비슷한 사람을 잘못 봤겠지. 이상한 소리 하다가 혼나지 말고, 누나가 사는 거니까 야무지게 먹으라구.”


한터는 김친의 생존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다. 일리야가 봤다면 당연히 놀랐을 것이라고 한터는 생각했다. OSS활동을 하다 보면 머지않아 김친과 다시 만날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었다면 왜 한터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 정도 선에서 실타래처럼 복잡하던 김친에 대한 생각을 마음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제서야 한터는 고급 요리집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져 일리야에게 말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돈은?”


“돈이 조금 생겼지. 있다가 뭘 사러 가야 되거든. 그래서 공작금조로 돈을 좀 융통한 거야.”


“먹는 걸로 써도 되는 거야? 또 뭘 사려고? 이번엔 탱크?”


일리야는 슬쩍 돌아보며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탱크라니.. 그런 시대는 갔어. 전쟁은 이걸로 하는 거야.”

일리야는 자신의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정보’라는 것이지.”


언제나 주먹이 앞서고 화약냄새를 풀풀 풍겨대는 일리야가 ‘정보’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다니··· 한터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터의 썩은 미소를 무시하며 일리야가 말을 이었다.

“장준장이 관동군을 들쑤셔 놓고 다니면서 발견한 정보들이 많이 모인 모양이야.”


“장준장?”


“아.. 만주 국민당의 과격파지. 넘버2였지만, 우리가 ‘만주의 간디’를 제거하는 바람에 넘버 원이 됐어.”


“아.. 과격파 수장이로군. 그랬지.”


“그래. 장준장은 미국하고 잘 연대하기로 해 놓고선, 뒤로는 정보공유를 잘 안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뒷거래하는 장교를 통해서 돈 주고 정보를 사기로 했지. 1만엔에. 장준장 몰래.”


“그렇군..”

한터는 국민당과의 음흉한 뒷거래 이야기가 듣기 싫어졌다. 암투에 엮일수록 점점 자신이 괴로워진다고 느꼈다. ‘간디’를 죽인 뒤, 국민당과 조선의용대가 자신을 노리게 되면서 더욱 그런 혐오가 생겼다. 그런 고리타분한 암투 말고, 그저 노다의 거처를 알아내 당장이라도 깔끔하게 요절을 내고 싶은 게 한터의 마음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하나 둘 놓였다. 젓가락을 쥔 한터의 손이 조금씩 흔들렸다.


일리야가 그런 한터의 손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뭐야 그건? 몰래 술이라도 마셨어?”


“아니야. 감기인가.. 요즘 좀 그래..”


일리야는 한터의 얼굴을 골똘히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터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고통에 의한 흥분상태와 주사를 조금씩 몸이 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리야가 감정을 이기지 못해,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한터는 얼굴이 팔렸으니까 이번 일에 나서지 마. 혹시 모르니까 따라는 오지만, 차에 숨어있는 게 좋겠어.”

일리야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한터를 걱정하는 마음이 녹아 있었다.


○○○

정대위와 합류하고 나서, 밤이 되어서야 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터는 양계장 트럭 같은 상용트럭 짐칸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정대위에게 물었다.

“안경소위는?”


“카지노에 간다더군. 지난 번에 우리가 방해해서 기분이 좀 나빴나봐.”


일리야는 “뭐.. 어차피 머리쓰는 일 외에는 도움이 안되겠지..”라고 말 하더니, 생각 났다는 듯이 이어서 정대위에게 물었다.

“차라리 까마귀를 이번에 죽이고 그 ‘정보’라는 거랑 1만엔도 같이 챙기는 게 어때? 너무 아깝지 않아? 돈이.”


1만엔. 많이 받는다는 미군 중위 월급의 1년 반 치. 일리야가 눈 돌아갈 법한 액수였다. 까마귀라는 사람은 아마도 국민당에서 뒷거래를 하는 장교를 칭하는 모양이었다.


정대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으로 끝이라면 몰라도, 까마귀하고는 계속 친해져야 돼. 정보가 필요할 때마다 적의 수뇌부를 매번 공격해서 뺐어낼 수는 없으니까.”


“흠.. 그래도 1만엔은 좀 심하지 않아? 양심도 없어··· 쳇..”



컴컴하고 한적한 농장에서 차가 멈췄다. 모든 게 새카만 거대한 소 외양간에서는 소가 100두 정도는 사육되었을 터인데, 아무도 돌보지 않는지 잡초만 자라 허리춤까지 올라와 있었다.


정대위와 일리야가 차에서 내리자, 손전등이 무례하게 정대위의 얼굴을 비췄다.


“까마귀. 오랜만이군.”

정대위는 강한 빛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상대방을 확인하려고 했다. 확인됐다고 생각한 뒤에야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비싸게 부른 거야? 설득하는 데 애 먹었어. 다음부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액수는 받기 힘들 거야.”


손전등을 가지고 주변을 비추던 까마귀가 무심히 대답했다.

“흠.. 예전같은 중화(中華)의 보물이라면, 얼마든지 깎아서 줬겠지만, 이 건 좀 그래. 나도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


까마귀는 가죽가방을 가지고 조금씩 정대위에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나보군. 비용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만큼의 돈을 낼 의지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야 나는. 왜냐면 나는 목숨을 걸었으니까 말이야.”


정대위가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머금었다.

“웃기는 소리. 한 탕 하고 튈 생각이면서. 튀지 않고 우리와 계속 거래한다는 보장이 없으면 우리는 이 돈을 줄 수 없어. 계속 거래한다는 보장을 해 줄 수 있나?”


까마귀는 자신의 가죽가방을 통째로 정대위에게 넘겼다. 정대위의 현찰가방도 까마귀의 손으로 옮겨갔다.

“당연히 계속 해야지..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야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제 곧 승진해서 더 좋은 것들을 줄 수 있을 테니.”



갑자기 저만치 먼 곳에서 냉정하고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안타깝지만 거래는 이번으로 끝일 것 같은데...”

음성이 들려오는 쪽에 서 있던 차의 라이트가 까마귀와 정대위 일행을 비췄다.



까마귀는 화들짝 놀라, 손전등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이 요란하게 굴러가며 사방을 밝혀댔다.

귀신처럼 커다란 남자가 까마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큰 얼굴과 거대한 몸. 누가 봐도 단련된 무도가인 그는, 국민당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자를 보고 까마귀가 신음하듯 말했다.

“크윽··· 감찰부장인가?”


감찰부장은 서서히 속도를 붙여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대위와 일리야는 나름의 방식으로 공격에 대응하려고 했고, 짐칸에 숨어있던 한터도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짐칸에서 조심히 내려왔다. 오직 까마귀만이 공포를 못 이겨 허둥대며 권총을 빼려 하고 있었다.


감찰부장은 순식간에 까마귀 앞에서 멈추더니, 보폭을 넓히고 체중과 이동 가속을 실은 주먹을 날렸다. 주먹은 까마귀의 권총을 산산히 조각내더니 뒤이어 까마귀의 가슴팍을 뚫어버리듯이 가격했다.


순간 정대위와 일리야는 감찰부장과 거리를 만들며 반격의 기회를 찾았다. 까마귀는 피를 한 말이나 토하며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누가 봐도 즉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법한 모습.


“흠.. 돈은 안 줘도 되는 건가? 오히려 잘 됐는지도 모르겠군.”

계속 돈에 신경쓰고 있던 일리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정대위가 눈치를 줬지만, “목숨을 각오했다잖아?”라며 까마귀의 죽음에 냉정하게 반응하는 일리야였다.


감찰부장은 매섭고 순진한 눈빛으로 일리야와 정대위를 훑어보다가 말했다.

“가죽가방을 순순히 넘기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겠다.”


일리야는 감찰부장의 말에 관심도 주지 않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까리한데? ‘한 발 내딛어 정권지르기?’. 별 거 아닌 기본 기술처럼 보여도,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보면 알 수 있어. 한 방에 즉사해 버렸잖아.”


일리야는 깍지 낀 팔을 쭉 뻗어 몸을 풀었다. 그리고 정대위와 한터를 돌아보며 주의를 줬다.

“나한테 맡겨. 공수도도 가끔 써야 녹슬지 않으니까.”


감찰부장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수다는 끝났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지?”


일리야의 작은 체구로는 도저히 감찰부장을 상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리야는 체격 차이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분연히 감찰부장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마귀가 나비를 낚아채는 것처럼, 일순간 날카로운 지르기와 옆차기, 앞차기가 감찰부장을 향해 퍼부어졌다. 불꽃이 튀는 것 같은 예리한 공격들이 어두컴컴한 농장 안을 가득 채웠다. 감찰부장은 손으로 일리야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해 보였지만, 일리야는 몸을 일체화하여 흐르는 강력한 기술로 감찰부장의 가드를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난타.

한터는 그런 일리야의 능력에 새삼 경외감을 느꼈다. 2분을 넘는 일방적인 난타 후에, 일리야는 숨을 돌리기 위해 감찰부장과의 거리를 두며 뒤로 한 발자국 뛰었다.


일리야는 숨을 허덕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일리야의 눈빛에는 먹먹한 무기력감이 살짝 담겨 있었다.


“뭐냐? 그게 다냐? 아니면 또 보여줄 게 있는 거냐?”

감찰부장은 수많은 난타를 맞고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느긋하게 싸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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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20.12.23 72 0 -
28 강화 pt2 +1 20.12.22 58 1 8쪽
27 준비 20.12.20 22 1 12쪽
26 얀 데 로젤린 4 20.12.17 18 1 12쪽
25 얀 데 로젤린 3 20.12.15 23 1 11쪽
24 얀 데 로젤린 2 20.12.13 31 1 11쪽
23 얀 데 로젤린 1 20.12.10 24 1 11쪽
22 왼발 20.12.10 19 1 13쪽
21 정보 20.12.08 41 1 12쪽
20 對 국민당 2 20.12.06 25 1 13쪽
» 對 국민당 1 20.12.03 33 1 12쪽
18 다리파괴 2 20.12.02 26 1 13쪽
17 다리파괴 1 20.11.29 40 1 13쪽
16 리쿠르팅 20.11.26 33 1 13쪽
15 장물아비 20.11.25 44 1 14쪽
14 보급부대를 털어 보급 3 20.11.22 49 1 14쪽
13 보급부대를 털어 보급 2 +2 20.11.19 53 1 13쪽
12 보급부대를 털어 보급 1 +2 20.11.17 46 1 12쪽
11 강화 20.11.15 53 2 13쪽
10 파괴력 측정기 2 20.11.12 58 1 11쪽
9 파괴력 측정기 1 +2 20.11.10 73 1 13쪽
8 간디 제거 2 +2 20.11.10 72 2 13쪽
7 간디 제거 1 20.11.08 115 2 13쪽
6 새로운 팀 20.11.08 115 3 13쪽
5 저장소 습격 +2 20.11.05 155 4 15쪽
4 오욕 +1 20.11.03 210 4 13쪽
3 귀환 20.11.03 243 5 13쪽
2 탈출 20.11.03 290 7 14쪽
1 구원 +4 20.11.03 397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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