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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저씨 님의 서재입니다.

신라, 천하를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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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저씨
작품등록일 :
2024.06.2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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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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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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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화. 제가(2)

DUMMY

3화. 제가(2)



『이쪽 세상으로 넘어와서 살다보니 지명이 엉망진창이다. 금성이라 불리는 사로국의 도읍은 경주 황성동이며, 음즙벌국은 경주 안강에 위치했다. 나중에 지명부터 바꾸던지 해야겠다. 도무지 외우기가 힘들다.

죽을 고생을 하며 정복한 소문국은 경북 의성군이고, 공작새 날개 3개를 가진 가진 금동관을 가진 행세깨나 하는 거수(渠帥-군장) 중의 하나로 유명했다.

참고로 이 동네 우두머리는 간(干)으로도 쓰고 왕(王)으로 읽으며, 여러 호칭으로 불리는 탓에 깜빡하면 자존심에 스크레치를 안겨준다. 조심해서 부르자!

-석영운의 일기: 음즙벌국과 소문국의 현대 지명』



금성은 조선시대 한양성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돌로 만든 성벽도 아니고, 아름드리 소나무를 뽑아다가 박은 토성 위의 목책성(木柵城)이다.

성 내부에 기다란 목재 건물 여러 개 동을 이어놓고 꾸며 놓았으며 왕궁으로 불렀다.


처벅! 처벅!


내가 있던 신궁에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왕궁의 초입부에서 내전으로 들어가는 마룻바닥을 지나는 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올해 흉작이라 들여온 비단의 수가 적답니다. 상인 왈, 산을 넘어 가져오는 통에 수백 필밖에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비단 이야기다.

사로국 사람도 우수한 옷감 소재를 아는 통에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한(漢) 나라에서 마한 대도시를 거쳐서 진한에 도착하면 1필당 소 두 마리 혹은 구리 3근을 줘야 했다.

공급이 부족해서 부족마다 경쟁 1순위 품목이 비단이었다.


“운연아, 올해 비단은 6부에 배당한 6할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내가 가져가기로 했잖아?”

“용사님이 소문국을 함락하는 조건으로 약조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회의 문 앞에서 들리는 소리가 가관이다.

거서간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는 데다가 사피부가 작당해서 사훼부를 엿먹이는 상황에 역 협상했다. 마냥 손해 보기가 싫어서 소문국을 정복하게 되면 올해 비단 수입량 중에 일부를 달라고 했다.


“저 노인네가 욕심이 더럽게 많아. 소문국을 함락하니 6부가 공평하게 나누자고 하잖아. 분배하고 남은 물량을 준다는 약속을 꿀꺽 삼켜!”


부아가 치밀었다.

팔자에도 없는 용사 노릇에 짜증이 나는 판국이다. 여기에 다쳐서 꼴꼴대는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대화를 지껄인다.


“사로분지에 정착한 이래 6부가 공생공사한 것을 모르오? 어느 부족이 욕심을 내면 결속이 깨지고 다른 나라에 침략당한다는 교훈을 모르다니. 전대 훼부의 군장은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르겠소.”


아예 논리를 만들어 비단을 공평하게 분배하잖다.

이거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올해 할당 받은 비단으로 할 게 있단 말이야.

사로국의 비단과 비교하면 북방과 서쪽 비단은 질이 뛰어난 탓에 수익성이 높았다.


“누가 약속을 어겨!”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제가회의장의 문짝을 발로 찼다.

있는 힘껏 걷어찬 까닭에 문짝이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활처럼 휘어버렸다.


쿵!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일 먼저 흠돌을 발견하고 노려보자, 사시나무처럼 떠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흠돌 군장! 오늘 죽어볼래요?”

“무, 무례하다. 이 장소는 사로국 제가회의장이다. 여봐라! 저 무례한 자를 잡아다가···.”


복도를 뛰어 들어오는 친위대.

여러 명이 청동판으로 동체를 감싼 판갑을 입었다. 1벌당 소 10마리 가격을 줘야 구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구리에 섞을 주석이 전량 수입품이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저기 있는 저 용사가···.”


흠돌이 말을 더듬거렸다.

왕좌에 있는 혁거세를 바라보며 변호했다.


“나의 거서간이여! 사피부의 군장이 용사를 용사로 보지 않습니다. 무례한 자로 손가락질당해서 기분이 더럽습니다. 결투로 감정을 풀 수 있게 조처해 주십시오.”


일순간, 장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진다.

대놓고 결투로 줘 패겠다는 말에 당사자 흠돌이 경악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뭐가?”


내 말이 짧아졌다.

타인을 비방하고 음모를 획책하는 자에게 존대할까.


‘흠돌, 저 새끼는 근시안적이야. 제 배만 부르면 끝나는지 알잖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작자를 치워야 사로국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다.


“사로국을 건국한 조상님들이 화목하게 지내라고 했소, 젊은 용사가 철이 없어 말을 함부로 하는 것 같소.”

“화목? 아주 좋아하는군. 용사를 전쟁터에 굴리면서 약속한 대금도 주지 않는 게 인간이야. 용사 사기죄 항목이라고!”


흠돌의 얼굴이 빨개졌다.

자기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류안 군장을 제외한 다른 군장들도 고개를 돌렸다.

너희도 동조한 것을 알아.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걸리면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다.


“다시 물어볼게. 소문국을 사훼부 군인을 동원해서 정복하면 비단의 4할을 준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그게···.”


나는 고개를 돌리고 근위대를 향해서 화사한 영웅의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 근위대는 사로국 제일의 병사다. 제3자 입장에서 누가 잘못했는지 묻고 싶다.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완수한 장병을 속이는 사악한 자가 있다면 어떻게 할 테냐? 그 사람이 죽은 군인의 미망인과 다친 병사에게 줄 상급을 잘라먹고 입 닦는다고 생각하면.”


근위대 병사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래전에 금성의 실권이 사피부에 넘어간 상황이라 눈치를 살폈다.


“저 그게···.”

“저희는 친위대입니다. 거서간을 호위하는 업무를 맡는 터라.”


애매모호하게 빠져나가려는 병사들.

나를 호구를 알면 안 되지.


“친위대가 공정한 계약을 모르는 체한다고? 다친 병사와 미망인이 굶주리고 죽게 만들겠다고? 내 귀가 이상하군. 너희의 이름을 알려다오. 사로 6부에 가서 어떤 놈의 자식인지 물어봐야겠다.”


친위대가 사색이 되었다.

혁거세가 탕평책을 펼쳐서 6부에서 골고루 뽑은 병사들은 평판이 좋았다. 오늘 사실이 알려지면 고향에도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는 자가 늘어났다.


“당연히 지켜야 합니다.”

“어떤 후레자식이 미망인과 고아를 굶게 만듭니까.”

“용사의 말대로 약속을 어기는 자는 살을 꿰어 공중에 매달고 채찍을 때리십시오.”


마지막은 과했다.

사로국뿐만이 아니라 삼한에서 가장 혹독한 체벌이니까.

그들의 말에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한 흠돌이다.

이쯤 되면 시인하고 물러날 법도 한데.


“일개 병사 따위가 국정에 감 놔라! 배 놔라! 당장 꺼져라!”


어럽쇼!

흠돌이 미쳤다.

근위대가 있어서 막아준다는 사실을 잊고 보호막을 걷어찼다.


“감히 누구를 매달고 채찍을 때려! 안 그렇소? 여러분도···.”

“우리 둘이 대면할 시간을 준다고.”


그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다.

흠돌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좌우로 곁눈질했다. 다른 군장들이 나서서 도와주기를 바라지만, 용사와 척질 자가 있을까.

심지어 혁거세도 기침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지금부터 일은 사피부 군장이 바란 거요. 내 주먹이···.”

“용사여! 소문국 정복을 경하드립니다. 제가 몇 마디 조언해도 되겠습니까?”


불쑥 끼어든 사람은 류안이다.

사로 6부 중에서 훼부는 사훼부와 사이가 좋고 용사를 어느 정도 대우해 주는 집단이며, 류안은 말이 통하는 친구였다.


“올해 마한에서 넘어온 비단의 양이 아주 적습니다. 남은 물량을 당장 주기에 어려움이 있으니 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맞아! 내 말이 그 말이라고.”


흠돌이 끼어든다.

마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에라! 이 양아치 같은 새끼를 밟아버리고 싶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6부가 공동 분배하고 남은 수량의 절반은 올해에, 내년에 절반을 받으십시오.”

“너무 많소. 사분의 일만 받으라고.”


류안이 도끼눈으로 흠돌을 노려봤다.

사로국에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무장의 섬찟한 기세가 뿜어졌다.

진짜 싸우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가 류안, 저 자식이다.


“흠돌 군장이 자꾸 개입하면 손을 떼고 용사와 자리를 마련해 드리지요.”

“아, 아닐세. 내 의도는 그게 아니고.”


횡설수설하는 흠돌.

다른 군장들의 눈빛도 비단 분배 축소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럴 때는.


“내가 양보하지. 줄어든 비단 물량만큼 노예를 줘.”

“노예를 달라고?. 류안 군장도 들었지. 저쪽에서 타협안을 내놓았으니 들어주는 게 도리겠지.”

“노예는 가족 단위로, 노동력이 없는 가구는 제외.”


오만상을 찡그리는 흠돌.

네 따위가 머리를 굴린다고 속을까.

나중에 철저하게 검증해서 받아낼 거다.


“좋은 제안입니다. 비단분배 건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잠깐!”


나는 류안을 믿지만, 흠돌과 능구렁이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류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노예의 호구는 소문국 정복의 전공을 더해서 100호(戶)를 제안합니다. 반대하는 분이 계시면 말해주십시오.”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0호, 약 500명 내지 600명의 인구를 얻었다. 소문국의 전체인구가 1700호인 것과 비교하면 무시 못 할 숫자였다.

드디어 죽도록 일해서 자립할 호구를 모았다.


“모두 좌정하시오! 용사가 당도했으니, 제가회의를 개최하겠다.”


혁거세가 노쇠한 음성으로 말했다.

흠돌이 콧방귀를 끼며 자리에 앉았다.

상좌에 있는 혁거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옆자리의 군장들과 소곤거렸다.


‘후유! 하필 떨어져도 고구려, 백제가 아니라 사로국이야? 저 양반도 토착 세력을 억눌렀지만, 이주 세력이라 견제를 받는군.’


그랬다.

사로국 최초의 용사, 알에서 깬 혁거세는 북쪽에서 내려온 조선(朝鮮, 고조선)계 유민이다. 나름 선진기술과 철제무기를 가져와서 기존 토착세력과 손을 잡았을 뿐이다. 어찌 보면 동등한 세력이랄까.


‘알이 진짜 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이주 세력의 성향을 드러낸 씨족 혹은 일족이 가진 표식의 의미다.

조선계 이주세력의 후계자가 신화의 주인공으로 기술되고, 사로국을 건국하며 오도된 내용이 후대에 전해졌단 뜻이다.


‘나도 마찬가지지.’


조금이라도 신기한 게 있으면 신과 결부시키는 상고시대(上古時代).

그 시대에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거서간이 노쇠하여 새로운 거서간을 뽑아야 할 때가 되었소.”


마침내 칼을 빼든 흠돌.

다른 군장들도 호응하듯,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로국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요. 흠돌 군장의 말에 찬성하오.”

“이웃한 압독국과 이서국, 비지국이 연합해서 서쪽 경계로 모이고 있습니다. 거사간이 병마에 시달린다고 소문이 나면 전사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제가회의에서 차기 거서간을 추대하는 게 어떻소?”


6부 중의 4부가 새로운 거서간을 원했다.

이쪽은 사훼부 군장 정길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혁거세의 조부와 부친을 최초로 조우한 부족의 군장이며 내가 신세 지는 곳의 주인장이다. 워낙 조용해서 있는 듯, 없는 듯해서 아랫사람들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훼부의 류안은 예상을 깨고 중립을 표방했다.


“여러 군장의 뜻이, 이 몸의 후계자를 원하는 것인가?”

“그렇소.”

“흠돌 군장은 누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군장들의 시선이 흠돌에게 집중되었다.

누구보다 사로국 부족연맹의 장(長)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자다.


“험! 험! 함-!”


헛기침을 연달아 하며 자신의 편에 선 군장들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나를 바라본다.


“불초 소생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흠돌 군장이 차기 거서간에?”

“우리 조상은 수백 년 동안 사로분지에 거주했고, 풍요로운 땅을 노리고 쳐들어온 다른 부족을 물리치는 데 앞장섰지요. 저 역시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싸워 상처를 얻었지요.”


흠돌이 소매를 걷고 팔뚝에 난 상처를 내밀었다.

다른 군장들이 맞장구를 쳤다.


“나도 그 전투현장에 있었소. 아주 치열했지.”

“허허허! 음즙벌국 전사는 동예가 부리는 야만인을 용병으로 데려와서 악전고투였죠.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립니다.”

“우리들이 흠돌 군장의 지시 아래 싸운 덕분에 사로국이 침략받지 않았잖습니까.”


자기들끼리 자화자찬이 오갔다.

양쪽의 표가 팽팽하면 혁거세의 편을 들 텐데, 흠돌에게 표가 몰리는 상황이라 답이 없다.

막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혁거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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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남해의 계(2) NEW +1 8시간 전 3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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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제가(3) +3 24.07.05 104 6 13쪽
» 3화. 제가(2) +2 24.07.04 111 6 13쪽
2 2화. 제가(1) +2 24.07.04 133 6 11쪽
1 1화. 서(序): 붕의 알 +4 24.07.04 155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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