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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저씨 님의 서재입니다.

신라, 천하를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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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저씨
작품등록일 :
2024.06.2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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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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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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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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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제가(1)

DUMMY

2화. 제가(1)



『망할 사로국 놈들!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 사로국은 신라의 초기 이름이다. 전쟁터로 보내놓고 말 바꾸기 신공을 시전했다. 가만 놔두면 눈 뜨고 코 베인다. 악을 쓰고 달라고 우겨야겠다.

-석영운의 일기: 상고시대 망할 인간들』



포근하고 부드럽다.

뭐지?

그냥 눈을 감고 일어나지 말자.

일어나봐야 싸우러 보낼 뿐이다.


뭉클! 뭉클!


점점 더 궁금해진다.

뭐길래.

한쪽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비단이불 아래에 꿈틀거리는 것은 여자다.

화들짝 놀란 나머지 움찔하는 순간, 전라 여인들의 얼굴과 마주했다.


“용사님이 눈을 뜨셨어요.”

“운연 전사장을 부르세요.”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자세히 보니 사로국 신궁의 신녀들이다.

상처가 나서 체온을 회복시켜 준다고 뛰어든 게 기억났다.


“윽!”


벌거벗은 상체를 일으키던 중에 통증이 욱신거렸다.

면포가 없어서 삼베로 칭칭 감았던 곳에 핏자국이 말라붙었다.

화살이 피부에 상처를 내고 장기는 건드리지 않은 것 같다.


“화살을 뺏느냐?”


신궁의 궁녀 중에 나이 많은 여자 왈, 옷도 걸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칼로 상처를 째서 화살촉을 뺐고, 독을 입으로 없앴습니다.”


리얼한 설명.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나체로 있기에 민망해서 비단 요를 살짝 당겼다.

옆구리가 결렸는지, 가슴팍에서 불로 지지는 고통에 짧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윽!”

“아직 독기가 남은 것 같습니다.”

“무슨 독인지 알고 싶다.”

“소문국에서 화살촉에 살모사의 독을 발라서 해독과 치료에 손이 많이 갔습니다.”


어쩐지 심하게 아팠다.

독사 중의 독사라 불리는 살모사의 독을 화살에 발라? 소문국 잔당을 만나면 밟아줘야 독화살을 안 쏘겠지.

장소가 낯설다.

사로국 6부 중의 하나인 사훼부(沙喙部) 군장의 저택이 아니다.

우두머리의 집에 붉은 비단이 없다는 것과 붉은색을 싫어하는 것 때문이다.


“여기가?”

“사로국의 왕궁입니다.”

“아이쿠! 금성이란 말이지.”


내가 소속된 사훼부는 훼부(喙部), 잠훼부(岑喙部), 본파부(本波部), 한지벌부(漢只伐部), 사피부(斯彼部)와 함께 사로국을 구성하는 6개 부족 중의 하나다. 그동안 왕과 소원한 사이라서 신경을 끄고 살았다. 느닷없이 왕궁에, 왕국의 길흉을 점치는 신궁의 신녀가 쌍으로 혜택을 주니 어안이 벙벙했다.


“맥을 짚어보겠습니다.”


말도 없이 비단 요를 걷고 진맥했다.

아무리 여자를 좋아해도 여러 명이 지켜보고 있어서 난감했다.

그나마 배꼽 아래를 사수했다.

왕의 여자를 건드렸다가는 아랫도리가 싹둑! 잘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기맥이 안정을 찾았습니다. 소문국의 독화살을 맞고 살아난 자는 용사님을 제외하고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위대한 붕의 가호가 전해졌다는 게 진짜인 것 같습니다.”


지랄!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보잉7X7 맥스가 봉황이라니? 결함투성이 비행기를 탔다가 추락했단 말이야.


“으드득!”


이빨을 갈아댔다.

신녀들이 분기를 참으라고 토닥거린다.

내가 아이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소문국의 활 쟁이는 잡아두었답니다. 직접 복수하게 하라는 사훼부 군장의 배려입니다.”

“알았다.”


나중에 상판대기를 봐야겠다.

다른 놈도 있는데, 나를 맞출 생각을 했는지 묻고 싶다.

전쟁의 원흉인 사로국왕은 제쳐두고 용사라고 이용당하는 한국인을 죽이고 싶을까.


우당탕! 우당탕-!


대화 도중에 복도에서 뛰어오는 소리.

곧이어 정체가 드러났는데, 문짝을 활짝 열어젖히며 운연이 들어왔다.


“용사님, 살아계셨군요.”


그 육중한 체구로 점프하듯, 침대로 몸을 날렸다.

안돼!

내 입속의 명령도 거부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자는 사훼부의 백장(百長)이다.

남산에 비행기가 떨어지고 화염 속에서 걸어 나올 때. 제일 처음 목격한 전사로, 그 후에 줄곧 따라다녔다.


“윽! 쉰내가···.”


운연의 차림새가 소문국과의 전장터에 투입할 때 입은 갑주 차림이다. 피와 흙이 군데군데 묻은 게 이 상태로 왕궁까지 따라왔다는 뜻이다.


‘진짜 좋은 동료를 건졌군.’


이 세계에 떨어진 이래로 암울한 기억 속에서 신뢰할 녀석이었다.

하지만, 아파도 너무 아플 정도로 누르는 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당장 가슴팍에서 비켜!”


그제야 후다닥! 일어나는 운연이다.

보더콜리가 혀를 내밀고 주인을 걱정하는 모습을 하는 통에 분노가 식었다.


“운연님이 용사님을 업고 이송했습니다. 한 시진만 늦었으면 죽었을지 모릅니다.”


신녀가 추임새를 넣었다.

이래서야 운연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잖아.

한가지 다행인 점도 있었다. 화살을 빼고 독을 빨아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흉악한 입술이 닿으면 내 순결은 어디서 찾으라는 거야.


“내가 쓰러진 지 며칠이나 지났지?”

“소문국에서 돌아온 지 여드렛날째입니다.”

“뭐!”


오늘이 그날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비단 요를 집어 던졌다.

이미 다 볼 때로 본 사이라 꺼릴 게 없다.


“내 옷을 가져와라!”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가회의가 있는 날이다. 오늘을 놓치면 개판이 될지 몰라.”


고통을 참고 화를 냈다.

왜냐고?

오늘 제가회의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할 예정이다.

사로국의 거서간의 권좌에 있는 혁거세의 건강이 나빠져서 차기 후보자를 물망에 올리는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참고로 거서간은 왕과 제사장을 총괄하는 용어다.


‘6부 중의 3개 부가 작당 모의했고, 용사의 한 표에 2대 거서간이 결정되는 날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해야 했다.

곧바로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갑옷도 가져와라!”


운연이 우당탕! 복도로 나갔다.

그 사이에 신녀들이 장삼을 입혀주고 허리띠도 매어준다. 아주 편하다 못해서 품위가 극강이다. 다만, 눈앞에서 흔들리는 물체에 얼굴이 붉어졌다.

신녀들이 눈치를 채고 호호호! 하하하! 웃어젖힌다.

그러라고 놔두었다.

내가 고자도 아닌데, 화끈하게 덤비지 않은 이유는 자식새끼 만들어서 피로 물든 곳에 던져두고 싶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상호(上戶)의 자식이 5살이 되면 병영에 던진다. 15살까지 맹수사냥과 보조병으로 부려 먹다가 죽어도 신경을 끈다. 경주 남산에 떨어진 이래. 해가 세 번 바뀔 동안 죽은 소년병의 수가 200명이 넘었다.


“가져왔습니다.”

“갑주를 입히고 상처를 단단히 동여매라.”


무식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섬세하게 갑옷의 끈을 묶고 가져온 칼도 내준다. 청동녹이 군데군데 핀 오래된 청동검이다.

망할! 청동기시대.

칼의 길이도 짧고 폭이 넓어서 싸우다 보면 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동안 잘 사용한 청동검의 날도 이빨이 빠진 흔적이 한두 개가 아니다.


‘왕국 재편이 끝나면 철기 제작을 알아봐야겠어.’


대충 생각을 마치고 문을 나설 찰나.

신녀들이 마중에 나섰다.

나는 왼손바닥에 오른 주먹을 대고, 앞다리를 세우고 뒷다리를 뻗었다.


“오늘 은혜는 잊지 않겠다.”

“용사께서 사훼부의 군장이 되시어 올바른 동량이 되기를 신께 기원하겠나이다. 저는 운제라고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새로운 격전장이 될 장소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 너구리와 여우, 곰과 호랑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왕을 뽑는 자리였다.



※※※※※※



사로국 금성의 제가회의장.

사로국의 역사는 요하에 자리 잡은 조선(朝鮮, 고조선을 의미함) 이주민의 남하로 시작되었다. 사로분지에 정착해서 토착주민과 결합하니, 진한 사람들이 사로족이라 호칭했다.

오늘날 사로국의 국명을 얻고, 6개의 부, 사훼부·훼부·잠훼부·본파부·한지벌부·사피부가 연맹했다고 해서 부족연맹국가로 분류했다.


“콜록! 콜록!”


제가회의의 상석에 혁거세가 자리했다. 그는 파리한 얼굴로 연신 기침을 해댔고, 서리가 내려앉아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거서간이여!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일곱 개의 자리, 그중에서 첫 번째 자리에 있는 사피부 군장 흠돌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서간 혁거세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기침을 억제했다.


“아직 용사가 오지 않았다.”


6부를 상징하는 6개의 좌석과 달리 빈 자리가 있었다.

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이래로 알에서 태어난 자는 용사의 칭호를 받으며 6부의 군장과 동급이라는 규칙이 존재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군장은 흠돌뿐만이 아니었다.

제가회의는 투표로 거서간을 결정하므로 한 표가 소중했고, 용사의 표까지 추가되는 꼴을 싫어했다.


“류안 군장, 그대의 뜻은 어떻소?”


올해 서른 살의 장발은 훼부의 군장으로 공정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았다. 이에 다른 군장들이 시선을 집중했고 어떤 말이 나올지 쳐다봤다.


“달이 중천에 뜨지 않았습니다.”

“흥! 한두 시진만 지나면 약속된 시간인데. 꼼꼼히 따지니 할 말이 없소.”


흠돌의 비아냥거림에도 류안이 대꾸하지 않았다.

다른 군장이 냉랭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차를 요청했다.

서쪽 마한연맹체에 자생하는 풀로, 신의 물을 만드는 약초의 이름을 차라고 했다. 쓴맛에 꺼리는 자가 많았으나, 용사가 몸에 좋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말에 장려했다.

사로국 역사상 붕의 알에서 태어난 용사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군장 중의 일부도 마시는 통에 급속도로 퍼졌다.


“밍밍한 차가 뭐에 좋다고. 나는 술을 가져와라!”

“사피부 군장께서는 제가회의의 규칙을 모르십니까. 회의가 끝날 때까지 맑은 정신이어야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건국 용사께서 말씀하시었습니다.”

“알았네. 술은 끝나고 먹어도 되지만, 거서간이 바뀌면 규칙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게.”


대답하지 않았다.

흠돌은 차기 거서간이 된 듯 행동하며 몇몇 군장을 쏘아보았다.

그들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모양새가 협의가 끝난 모양 같았다.


“이왕지사 늦게 시작할 테니, 마한과의 교역 건에 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진한의 동쪽에 있는 마한에는 강대한 나라가 많았다. 척박한 동쪽과 달리 비옥한 평야지대가 이어진 터라 부유한 도시가 제법 되었다.

그들은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한(漢)에 배를 띄우고 비단을 들여왔으며, 웃돈을 받고 진한 여러 국가에 팔고 있었다.


“올해 들여온 비단의 수가 적답니다. 상인 왈, 산을 넘어서 가져오는 통에 수백 필밖에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비단은 수요가 많고 공급이 부족했다. 사로국 6부마다 원하는 아낙네가 많은지라 분쟁이 잦았다.


“6부가 똑같이 분배하면 되지 않소.”

“흠돌 군장의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류안이 트집을 잡았다.

흠돌이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했다.


“사로분지에 정착한 이래 6부가 공생공사한 것을 모르오? 어느 부족이 욕심을 내면 결속이 깨지고 다른 나라에 침략당한다는 교훈을 모르다니. 전대 훼부의 군장은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르겠소.”


아비가 욕을 먹자, 류안의 얼굴이 변했다.

다른 군장들도 혀를 차며 사태를 지켜봤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흠돌이 얼굴을 누그러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내 말뜻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문짝이 활처럼 휘면서 쿵!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누가 약속을 어겨!”


그는 용사로 추대된 석영운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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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남해의 계(2) NEW +2 8시간 전 31 4 13쪽
5 5화. 남해의 계(1) +3 24.07.06 76 6 13쪽
4 4화. 제가(3) +3 24.07.05 104 6 13쪽
3 3화. 제가(2) +2 24.07.04 111 6 13쪽
» 2화. 제가(1) +2 24.07.04 134 6 11쪽
1 1화. 서(序): 붕의 알 +4 24.07.04 155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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