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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급 회귀자의 탑 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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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리힐드
작품등록일 :
2024.07.01 06:48
최근연재일 :
2024.07.0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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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7.0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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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화. 종말의 포식자.

DUMMY

###

한때는 나도, 세계의 멸망이나 인류의 멸망이 오직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구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핵 전쟁 같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일어나기 힘든 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일곱살의 어느날.


툭하면 폭력을 일삼는 뚱뚱한 보육원 원장을 피해 도망친 베란다의 밤하늘을 올려 본 순간.


그 하늘이 피보다 짙은 선홍의 핏빛으로 물들어 있음을 인지한 순간, 내 믿음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져내렸다.


우습게도.


인류의 멸망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날.


세계는 하늘에서 떨어진 불꽃을 머금은 외계의 운석 아래에서 절반쯤 멸망을 맞이하게 되었다. 육중한 주먹질이 특기였던 뚱뚱한 보육원 원장도 그 멸망과 마지막을 함께 했고.


그래.


그것이 내 유년기의 기억이다.


굶주림과 학대, 가끔은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음날이 되어있던,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온 종말과 함께 야만의 시대가 되어버린.


빈말로도 달콤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초현실적인 비극으로 가득했던 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당시 나는 돼지처럼 죽어버린 원장의 시체 앞에서 다짐했다.


살아남을 것이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다짐을 지키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능이 있었다.


저주라 불러마땅할 끔찍한 재능이.


고유권능, 포식.


난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탐욕스러운, 저주 받은 힘이라고.


###

늘 그랬듯, 우주의 모든 것들은 언젠가 종말을 고한다.


그것이 영원처럼 길게 보일 만큼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는 종말인지, 아니면 잠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종말인지, 단지 그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 인류는 반쯤 멸망했다.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달도 자취를 감췄다.


밤하늘을 밝게 비추던 별들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생명이 넘쳐흐르던 바다에는 귀여운 돌고래와 물개들 대신, 한 입에 항공모함도 삼키는 괴물들이 득실거리게 되었다.


인류는 완전한 멸망은 아니지만 절반쯤은 종말을 고했고.


그 종말의 기록은 우주의 모든 멸망과 종말이 그러했듯, 달을 대신하여 하늘 위에 자리잡은 종말의 탑에 기록되었다.


인류의 종말은 탑의 몇 층에 기록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모른다.


인류는 완벽하게 종말을 맞이한 것이 아닌, 종말화의 중간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사실 멸망이니 종말이니 거창하게 떠들어댄 것치곤 상당한 숫자의 인간들이 생존해 있었다.


대도시의 인프라도 어느 정도는 살아있었고.


물론 인간들은 여전히 죽어가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죽어나갈 것이다.


탑의 선택을 받은 플레이어들이 탑의 등반을 시작하면서 박살난 지구가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곤 있지만, 그 회복의 속도를 빠르다고 보긴 힘들었다.


고작해봐야 종말화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정도.


인류는.


여전히 종말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천천히.


느리지만 확실한 속도로 말이다.


“······.”


나는 갈가리 찢겨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의 사체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신체의 일부로 짐작되는 그것은 산맥 하나를 박살낸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름 모를 귀족의 거대한 포도 농장까지 흔적도 없이 집어삼킨 채 대지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부서진 손톱, 날카로운 공격에 찢겨져 살점을 뚫고 뛰어나온 뼛조각은 그것이 무언가의 손가락임을 말해줬다.


거인의 손가락이었다.


나는 이제는 생명 활동을 멈춘 거인의 사체, 그 손가락 위에서 품을 뒤적이더니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파츠츳-


불을 붙이고 깊게 숨을 들이쉬자 기분 좋은 연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후우우.”


기분 좋게 연기를 내뿜고는 산맥을 박살내며 늘어진 거인의 손가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바다가 보였다.


해안의 경계선으로는 대도시에도 견줄 만큼 거대한 마법선들이 박살난 채 흩어져 있었고, 그 너머로는 그 배들이 조약돌 크기로 보일만큼 거대한 거인의 사체들이 늘어져 있었다.


바다는 거듭된 마법의 포화와 거인들과의 전투 속에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종말의 탑 7층.


거인들의 마지막 안식처, 안헬게르니우 대륙.


아성체 급만 되어도 어지간한 고위급 귀족의 성채와도 맞먹는다는 거인들의 사체가 갈가리 찢겨져 드넓은 바다 위를 부유섬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하나의 종이 종말을 고했음을 알리는 풍경.


사이코패스 화가가 존재한다면 분명 화폭에 담고 싶어했을 풍경이다.


아마도 저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면, 그 그림에는 거인들의 종말, 혹은 거인들의 비극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물론 저들에게 종말을 집행한 내가 할 말은 아니다.


사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이야기지만 나도 가능만 했다면 거인종의 종말 같은 엔딩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이번 층계에서 선택한 <거인과 포화의 전쟁> 시나리오는 오직 속전속결로 끝내야만 했다.


그것이 앞서 나보다 먼저 이곳을 클리어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따라잡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


꼭 그래야만 했느냐고.


구태여 거인들에게 종말이란 엔딩을 집행해야만 했느냐고.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나도 내 방식이 상당히 껄끄러운 방식이란 것은 알고 있다.


불쾌하고, 잔인한 방식이라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


하늘 위로 시선을 던졌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묵색의 하늘이 조금씩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저 묵색과 핏빛의 색이 혼재한 하늘이 온전히 핏빛으로 뒤덮이면, 그때는 내게 죽은 거인들도 되살아날 것이다.


시나리오 리셋.


종말의 탑에는 우주의 모든 종말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모든 종말은 그 종말이 끝을 고함과 동시에 다시금 재시작된다.


무한에 가까운 종말의 반복.


강대한 자아를 지닌 초월적 존재들조차 언젠가는 미쳐버리는, 광기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비극의 연쇄.


그 비극적인 운명의 굴레 속에서, 저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전부 잊을 것이다.


내게 갈가리 찢겨 죽은 기억도, 자신들이 종말의 탑에 갇혀 무한에 가까운 종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잊을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말한다.


시나리오의 리셋과 함께 이루어지는 기억의 소거. 그것은 종말의 탑이 자신에게 귀속된 종말들에게 내리는 유일한 자비라고.


그래.


아마도 그렇기에 괜찮을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종말의 시나리오를 발걸음에 비유한다면, 오늘의 비극 또한 그 발걸음의 단 한 걸음일 뿐일 테니까.


처음 탑의 등반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다잡으며 종말의 탑을 등반했다.


한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는 구하는 것조차 힘든 구시대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음에도, 그 담배 연기가 갑자기 텁텁하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하.”


나는 헛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들었다. 묵색과 붉은색이 혼재해 있던 하늘이 어느새 온통 짙은 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뿌우우우-


멀리서 시나리오의 끝을 알리는 묵직한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기뻐함이 마땅했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불쾌함이 심장을 적셨다.


나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처음으로, 저 뿔피리 소리가 누군가의 비명처럼 느껴졌다.


작가의말

쓰고 싶은 글을 꼭 써야겠다는 마음에 다시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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