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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간오싱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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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간오싱
작품등록일 :
2020.09.26 09:09
최근연재일 :
2020.10.22 20:0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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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530

작성
20.10.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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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장 숲에 사는 사람들

DUMMY

“요약하자면 죽을까봐 도망 나왔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마녀는 아투의 짓궂은 말에 힘없이 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죽고 싶진 않은 걸.”



“이해해요. 누구든 그런 상황이면 도망쳤을 거예요.”



레베카는 마녀에게 자신의 육포 하나를 건네었다. 마녀는 레베카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육포를 받아들었다. 그는 모닥불에 장작을 넣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도움 아닌 도움을 청했다, 그런 거로군.”



“그렇지. 방법은 잘못됐을지 몰라도 나한텐 급한 일이었으니까. 그 일은 미안하게 됐어.”



“그럼 마녀의 숲에 산다는 마녀가 혹시 마녀 님이신가요?”



레베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마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녀가 입꼬리를 씨익 들어올렸다.



“그래. 마녀의 숲은 전설의 마녀 발푸르가 님의 직속 제자인 이 에르제베트 님이 사는 숲이란 말씀.”



“그럼 뭐합니까. 지나가는 행인 1, 2 한테 아무 것도 못하고 제압당한 주제에.”



에르제베트는 아투의 말에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아투는 덕분에 레베카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했지만 할 말은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는 논리로 응수했다. 그는 레베카와 아투가 투닥 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에르제베트가 나타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럼 그 때 느낀 것은 네가 아니라 마녀사냥꾼 쪽이었겠군.”



“무슨 소리야?”



그의 말에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우리와 만나기 전 잠깐이나마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었다. 처음에는 너 인줄 알았지만 네가 나와 밀착했을 때 바로 알겠더군. 네 몸에서 풍겨오는 마나의 기운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뭐야. 마나의 기운을 느낀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 분은 인간보다 인간 언저리에 놓여있다고 보는 편이 속 편합니다.”



“······?”



에르제베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니들을 만나고 나서부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뿐이야. 도대체 너흰 정체가 뭐야? 아야타 왕국의 베릴 남작도 너희보단 약하겠다.”



“베릴 남작이고 뭐고 간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아투는 반쯤 누워서 눈을 감았다.



“제가 지금 하루 종일 걷기만 해서 굉장히 피곤하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러니 이제부터 좀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전 다른 건 몰라도 잠자는 것만큼은 꼭 지켜야겠으니까.”



“뭐, 뭐?”



에르제베트는 당황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로 저 녀석은 갑자기 자는 건가? 이 맥락에서? 에르제베트는 설마 했지만 아투는 정말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에르제베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저, 정말 자는 거야? 이렇게?”



“그러게요. 저도 아투 씨가 자는 모습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서······.”



레베카도 어색하게 웃으며 아투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코만 골지 않았지 누가 봐도 숙면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빨리 잠드는 것도 신기하네요.”



“녀석은 욕구에 민감하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 군.”



“······이걸 이해하는 사람은 너 뿐일 거다.”



에르제베트는 질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멍하니 어둠이 깔린 허공을 바라보다가 품에서 약을 한 알 꺼내먹으며 레베카에게 말했다.



“너도 슬슬 자두는 게 좋겠군. 내일 다시 걸으려면 오늘 쌓인 피로를 푸는 게 중요할 테니까.”



“프리, 아니. 당신은요?”



레베카는 실수로 그의 이름을 말할 뻔 한 걸 적당히 얼버무리며 물었다.



“숲에서 잘 땐 누군가는 불침번을 서야 하거든. 그래도 경험이 없지는 않나보네.”



에르제베트는 품에서 완드를 꺼내며 대신 대답했다. 완드 끝에서 하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공간에서 내 부름에 답하라.”



에르제베트의 영창이 끝나자 허공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더니 곧 침낭 두 개가 떨어져 나왔다. 에르제베트는 대충 완드를 공중에 휘저어 균열을 없애고는 침낭 하나를 레베카에게 내밀었다.



“자. 아까 육포의 보답이야. 먹을 걸 줬으니 이 정도는 줄 수 있지.”



“고마워요! 이건 마법으로 만든 건가요?”



레베카의 밝은 미소에 에르제베트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니, 마법으로 만든 건 아니야. 그냥 내 아공간에 있던 수많은 물건들 중 하나일 뿐이지. 이것저것 많이 넣어놓을수록 유용하거든.”



에르제베트는 침낭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거기 너. 마법에 당하고도 멀쩡하던데 그 정도면 하룻밤 정도는 안 자도 되지? 아까 전의 일은 미안한데 부탁 좀 할게. 오늘 일이 많아서 조금 피곤해서.”



“미안해요. 저도······. 흐아암. 너무 피곤하네요. 새벽에 꼭 깨워주세요. 제가 대신 깨어있을게요······.”



레베카도 하품하며 에르제베트가 준 침낭 속으로 몸을 뉘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베카는 그의 대답을 들으려 억지로 눈을 뜨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레베카는 점점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곧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수면에 빠진 셋을 바라보다 불씨가 약해져가는 모닥불에 장작을 집어넣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르제베트가 몸을 일으켰다. 옆에 가지런히 누워 가는 숨을 내쉬는 레베카를 잠시 바라보다가 침낭에서 나온 에르제베트는 조용히 품속의 완드를 꺼냈다.


간만에 착한 아이였지만 아쉽게 됐네.


마치 활을 겨누듯 완드를 내밀었다. 에르제베트는 무심한 표정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곳의 모든 생명을 멸하노니 그 대가로 영혼을 취하······.”



에르제베트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영창을 그만두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별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전의 마녀사냥꾼이 다시 접근해왔나 싶은 마음에 조급해진 에르제베트는 완드를 칼처럼 휘두르며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상한 것은 없었다. 여귀족은 깊은 잠에 빠진 듯 했고 자신에게 가장 방해가 되는 마법사 역시 곯아떨어져 있었다. 모닥불은 장작을 태우며 밝은 빛을 주변에 비추고 있었다.


잠시만.


에르제베트는 순간 오싹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모닥불에 놓인 장작은 마치 금방 놓인 것처럼 보였다. 한 명, 한 명은 어디 있지?



“마녀의 숲에 대한 구전은 거짓이 아니었군.”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르제베트는 기겁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그는 마치 원래 거기에 있었다는 듯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가면의 두 구멍으로 쏘아져 나오는 눈빛은 전혀 편안하지 않았지만.



“어, 어떻게······.”



에르제베트는 절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이미 주저앉아버린 마당에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한 거지?”



“네가 둔감할 뿐이다.”



에르제베트는 웃기지도 않은 소리에 작게 신음했다. 스승에게 최고의 자질이 보인다고 칭찬받은 자신이 바로 곁에 있는 사람조차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에르제베트는 그가 마법에 당하고도 멀쩡하던 것을 떠올렸다.



“너, 인간이 아닌 거야?”



“······글쎄.”



그는 아투를 바라보며 답했다. 아투는 이제는 배까지 벅벅 긁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신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짓거리에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사람을 죽이는 거지?”



“무슨 소리야.”



에르제베트는 이를 악물며 완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는 그럼에도 별 다른 기색이 없었다. 그런 모습은 도리어 에르제베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에르제베트는 절규하듯, 혹은 호소하듯 소리쳤다.



“인간 놈들을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해?! 그냥 역겨워서 죽이는 거라고!”



완드의 끝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흔들렸다. 완드의 끝을 고정시키는 것. 그것이 원하는 대상에게 마법을 적중시키기 위한 첫 번째 원칙임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도무지 팔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을 뿐이었다.


에르제베트는 볼 안 쪽을 강하게 씹었다. 약간의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그러자 어느 정도는 떨림이 멎었다. 진정해. 이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어.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에르제베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별 것 아니야. 괜히 허풍 떠는 거에 겁먹을 거 없어. 분명 저 녀석도 다른 인간들처럼 마법 한 방에 사라질 먼지 같은 녀석이야.


에르제베트는 어떠한 꾸밈도 없는 흰 가면 속으로 보이는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눈은 마치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 하면서도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는 과할 정도로 반응하는 에르제베트를 바라보며 문득 옛 생각에 빠졌다. 인류의 적이 되는 존재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멸하던 시기를.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죄책감도 없이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인 도구에 불과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둥둥둥둥.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겠지.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살짝 가면을 벗고 약을 한 알 삼켰다. 그러자 시끄럽게 울리던 북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자리에 장작 타는 소리가 들어섰다.


뭐가 어찌됐건 나는 달라진 게 없다. 고민하지 않고, 죄책감도 없다.


그는 가면을 고쳐 썼다.



“너. 아니, 당신.”



별안간 에르제베트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에르제베트는 얼굴을 잔뜩 굳힌 채 완드를 내려놓았다. 그는 모종의 이상함을 느꼈다.



“잠적했다고 들었는데.”



에르제베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째서 에르제베트가 갑자기 굳어버렸는지 바로 이해했다.


너무 무심했군.


그는 자책했다. 지난 삼 년 동안 너무 녹슬었던 모양이군. 그는 쯧, 하고 혀를 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르제베트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다가 그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절멸시킨다는 악명 높은 괴물. 그렇다면······.



“뭐, 뭐하려는 거야!”



에르제베트의 외침에도 그는 답하지 않았다.


기껏 감시를 벗으려 수도를 벗어난 후 옷까지 갈아입었는데 여기서 목격자를 늘리면 귀찮아지겠지.


그의 뜻은 두 눈을 통해 살의라는 형태로 에르제베트에게 전해졌다. 그는 한 발자국 다가가면서 말했다.



“너도 불만은 없겠지. 너나 나나 윤리 같은 건 버린 지 오래일 테니까.”



“뭐, 뭐라는 거야. 내가 너 같은 괴물이랑 똑같은 줄 알아?!”



에르제베트의 말에 그는 벌벌 떨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우습군. 결국 사람을 죽이면 다 똑같은 괴물에 불과할 뿐이다.”



“······네가 뭘 알아.”



“신들도 그렇게 말하더군.”



에르제베트는 어떻게든 그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혼란에 빠진 사이 그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에르제베트는 기겁하며 완드를 집었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저 미간에 얼음 창을 박아줘야 하는데.


이제는 입도 떨어지질 않았다. 그의 손이 올라가는 게 보였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에르제베트는 간절히 빌었다.


신이 있다면 제발 도와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그 간절한 기도가 닿은 것인지, 신이 화답했다.



“거참.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습니다. 오밤중에 뭐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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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장 숲에 사는 사람들 20.10.13 23 1 12쪽
14 2장 숲에 사는 사람들 20.10.12 19 1 13쪽
13 2장 숲에 사는 사람들 20.10.10 21 1 12쪽
12 2장 숲에 사는 사람들 20.10.09 22 1 13쪽
» 2장 숲에 사는 사람들 20.10.08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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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화 사라질 일 +1 20.09.28 128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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