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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숙수(絕對熟手)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남규
작품등록일 :
2015.11.13 15:48
최근연재일 :
2015.12.11 23:2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86,041
추천수 :
16,056
글자수 :
13,358

작성
15.11.20 17:05
조회
14,344
추천
461
글자
7쪽

1. 배은망덕 태천비 (4)

DUMMY

스승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우선 첫 번째는 자신의 제자가 도망쳤다는 것.

여태껏 사랑으로 돌보아주지 않았던가?

재워줘, 먹여줘, 키워줘, 요리 가르쳐 줘, 무공 가르쳐 줘… 대체 자신이 못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도망을 친단 말인가?

더군다나 스승은 태천비가 말 한 마디 없이 불시에 도망쳐버릴 만큼 매정한 놈은 아닐 것이라고만 생각해왔었다.

비록 이따금씩 대들거나 기어오르긴 했지만, 그 때 마다 단장(*短杖:지팡이)으로 곳곳을 세차게 후려쳐주면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성실히 응하던 착한 제자가 아니던가?

자신의 단장 세례가 태천비의 도주결심에 일조를 했다는 사실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스승이었다.

스승이 놀란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제자가 보인 ‘용의주도함’에 있었다.

본래 자신의 제자 태천비는 그리 똑똑한 놈이 아니라고만 생각해왔거늘, 꾀병을 부려 자신이 자리를 비우게 하고, 그 틈에 도망치는 대단한(?) 계략을 세우지 않았던가?

어쩌면 몇날며칠 오늘만을 기다리며 칼을 갈아왔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리라.

“허!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자, 잠깐! 설마 그것도 가져간 건 아니겠지…?”

이내 스승이 급한 걸음으로 주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방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구석진 자리에 숨겨져 있던, 오동나무로 만든 목함(木函)을 하나 꺼내들었다.

외형만 보더라도 진귀한 물건이 담겨있을 법 해보이는,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목함이었다.

꿀꺽-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스승이 목함을 열어 그 안을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이 미, 미친놈이…….”

본래 묵 빛을 띤 식도 한 자루가 담겨있었어야 할 목함 안이 텅 비어있었다.

‘진미식도(眞味食刀).’

이는 진미문의 계승자들에게 대대로 전승되는 식도였다.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광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예기가 한없이 날카로워 어떤 식재료든 두부 썰 듯 썰어낼 수 있다는 전가의 보도(寶刀)였다.

언젠가는 태천비의 수중에 쥐어질 물건이었겠으나, 적어도 그 때가 지금은 절대 아니었다.

본래 진미식도는 제대로 전승을 마친 제자가 하산하는 날, 스승이 직접 하달해주는 보도라 할 수 있었다.

몰래 도주한 마당에, 그러한 보도까지 챙겨갔으니 기가 차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허허, 이 썩을 놈… 떠나도 이렇게 뒤통수를 치고 떠나?”

치밀어 오르는 노기 탓에 맥박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우선 이 분노를 잘 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리라 생각한 스승이 마당에 자리한 잘려나간 나무 밑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단 그 위에 걸터앉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어?”

스승이 나무 밑동 앞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그 위에 놓인 종이 한 장과 종이를 짓누르고 있는 돌멩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스승이 돌멩이는 집어서 마당 한 편으로 멀리 휙 던져버리고는, 네모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집어 들어 그 내용을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이 네모반듯하게 접혀있는 종이의 정체는, 자신의 배은망덕한 제자이자 머리검은 짐승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태천비가 마지막으로 남긴 서신(書信)이라 할 수 있었다.


.

.

*


< 스승님께. >


스승님, 못난 제자 천비입니다.

면목은 없지만 우선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산 속 생활에 심신이 지쳐버린 탓에, 이처럼 배은망덕한 행위를 저지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 이러한 사단이 일기 까지, 스승님의 영향 역시 적지 않았기에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주실 거죠?

이미 확인을 해보셨겠지만, 제 짐과 더불어 진미식도까지 챙겼습니다.

스승님 화가 풀리실 쯤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로요.


못난 제자 태천비 올림.



추신!

여비차원에서 스승님 방 안에 있던 전낭도 하나 챙겼습니다.

차마 염치가 없어 가장 가벼운 놈으로 골라들고 나왔으니 큰 염려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

.



“하하하하… 내 이런 미친놈을 봤나…….”

파라라락-!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인 스승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잔뜩 구겨서는 마당 한 편에 내던져버렸다. 용케 아직도 한 손에 쥐고있던 청신삼은 이미 그 형체를 잃고 즙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 도망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힘들었을 테니까…

진미식도를 가져간 것도 이해는 한다.

다만 용서를 할 수 없을 뿐이었다.

헌데 이 배은망덕한 제자 놈이 추신 란에 아무렇지 않게 남겨놓은 몇 마디 말은 좀처럼 이해해 줄 수도, 물론 용서를 해 줄 수도 없었다.


<여비차원에서 스승님 방 안에 있던 전낭도 하나 챙겼습니다.

차마 염치가 없어 가장 가벼운 놈으로 골라들고 나왔으니 큰 염려는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네놈이 여, 여비를 하기 위해… 감히 내 금품에 손을 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중에서 가장 작은 전낭을 가져갔다는 거지…?”

스승의 전낭(錢囊:돈주머니)은 총 세 개였다.

그 중 가장 큰 전낭은 철전이, 중간 크기의 전낭은 은전이,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전낭에는 금전이 들어있었다.

참고로 금 한 냥이 은 스무 냥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과, 금 한 냥만 있으면 네 식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안에 드러누워 배만 긁어도 일 년을 풍족히 먹고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본다면 절대 그 가치를 무게와 크기로 감안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멍청한 제자 놈이 말하는 가장 가벼운 전낭은 금자가 잔뜩 들어있는 전낭이었다.

이는 스승이 미리 마련해 둔 자신의 ‘노후자금’으로, 하나뿐인 제자가 언젠가 자신의 곁을 떠난 후에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마련해둔 방비책이라 할 수 있었다.

헌데, 화폐의 가치조차 모르는 무식한 제자 놈이 여비를 하겠답시고 민가 한두 채는 거뜬히 살 수 있을 정도의 거금과, 사문의 보도를 들고 도주했다.

서신 하나 달랑 남겨놓고 도망친 주제에, 진미문의 온 기반을 뿌리 채 뽑아들고 가버린 것이었다.

“크… 크흐흐흐… 크흑…….”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광기어린 웃음을 흘려대던 스승이 돌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에는 흉흉한 살의(殺意)가 서려있는 듯 했다.

“태… 태천비이…….”

다음 순간, 관백산 곳곳에 스승의 노기서린 사자후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태천비이-! 이-! 개-! 잡놈아-! 너는 잡히면 죽는다! 으아아아아-!”

그의 노기어린 외침에 땅이 울리고, 고목들이 흔들렸다.

새떼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으며, 산짐승들은 도망쳤다.

진미문의 마지막 계승자, 태천비가 하산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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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은망덕 태천비 (4) +11 15.11.20 14,345 461 7쪽
4 1. 배은망덕 태천비 (3) +9 15.11.19 14,686 456 7쪽
3 2. 배은망덕 태천비 (2) +8 15.11.18 15,547 473 8쪽
2 1. 배은망덕 태천비 (1) +9 15.11.17 18,663 495 8쪽
1 +17 15.11.16 18,977 4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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