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ver. 2018

절대숙수(絕對熟手)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남규
작품등록일 :
2015.11.13 15:48
최근연재일 :
2015.12.11 23:2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86,042
추천수 :
16,056
글자수 :
13,358

작성
15.11.18 17:05
조회
15,547
추천
473
글자
8쪽

2. 배은망덕 태천비 (2)

DUMMY

태천비는 지금 관백산 자락에 숨겨진 어느 협곡의 앞에 서 있었다.

“하여튼 사람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차례 투덜거려 보인 태천비가 협곡의 풍광을 한 번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자연의 지기(地氣)를 만끽할 수 있는 곳처럼 보일 뿐이었으나, 사실 이곳은 세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성역(聖域)이었으며 또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금지(禁地)이기도 했다.

이름하야 ‘천영협곡’(天靈峽谷).

범인(凡人)들은 실존여부조차 모르고, 그저 설화나 민화 속에나 등장하는 것이라 여기는 ‘영물’들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허나 태천비와 스승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식재료 저장고와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전방에서 느껴지는 흉흉한 기척을 감지한 태천비가 허리춤에 달려있는 식도 한 자루를 빼들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찾았다.”

이내 흉흉한 기척의 주인이 태천비를 향해 짙은 반가움을 표해보였다.

“키에에에엑-!”

지금 그와 마주서있는 것은 스승이 먹고 싶다고 했던 ‘그것’이었다. 즉, 오늘 아침상에 올라갈 식재료였는데 세간은 이를 영물 혹은 ‘인면지주’(人面蜘蛛:사람의 얼굴을 한 거미)라 부르곤 했다.

한 마리만 자유로이 부릴 수 있어도 한 지역의 패권쯤은 거저 쥘 수 있다고 전해지는 인면지주였다.

절정고수 수십이 달려든다 해도 쓰러트릴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가 미지수이며,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면 혈겁을 피할 수 없을 천하의 ‘마물’이다.

허나 태천비는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듯,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식도(食刀) 한 자루를 빼들었다.

그 동작이 어찌나 잽쌌던 것인지 마치 양팔이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나니, 손에 식도가 들려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간다.”

스산하게끔 나직이 읊조려 보인 태천비가 다음 순간 땅을 세차게 박차고 나섰다.

탁-!

다음 순간, 태천비의 신형(身形)이 자취를 감추어버림과 동시에 다소 서늘한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사아아아악-!

그게 전부였다.

“키에에에엑-!”

비대한 몸집의 인면지주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녹색 선혈들이 사방에 난자했고, 진동의 여파로 땅이 흔들렸으며 인근에 주둔하던 새들은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가히 마물(魔物)이라 불릴만한 인면지주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도 간결하고 허망한 최후였다.

이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태천비는 무던한 표정으로 제 식도에 묻은 인면지주의 혈액을 바지춤에 몇 번 슥슥 닦아대기 시작했다.

“빨리 가야겠는데… 이러다간 또 늦었다고 잔소리를…….”


그 때였다.

주변에 포진해있는 기괴한 기척들을 감지해낸 태천비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려서는 주변을 살펴대기 시작했다.

곳곳에 자신들의 존재를 엄폐시킨 채, 붉은 안광을 뿜어대고 있는 영물들이 즐비해있었던 탓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태천비를 간만에 발견한 ‘특식’내지는 ‘영양식’ 정도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이내 한숨을 한 번 내쉬어 보인 태천비가 나직이 읊조렸다.

“하… 늦었다고 한 소리 듣는 건 어쩔 수 없겠군.”

말을 마친 태천비가 다시금 손에 쥐고 있던 식도를 더욱 꽉 쥐어보였다.



*



태천비의 사문인 진미문(眞味門).

설립되던 당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미문은 그저 순수한 숙수들의 문파라 할 수 있었다.

허나 한 가지 이점이 있다면, 바로 진미문의 계승자들이 하나같이 지고한 수준의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진미문에 대대로 전승되고 있는 ‘독문조리법’ 때문이었다.

세간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이들의 독문조리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식재료와 조리방식들을 필요로 했다.

이를테면 인면지주를 식재료로 활용하는 방법만 하더라도 족히 수십 가지가 되었는데, 그 갑각(甲殼)은 곱게 빻아서 가루를 내면 자극적인 조미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속살을 푹 익히게 되면 식감이 오묘한 별미(別味)로 재탄생된다.

어디 그뿐이랴?

인면지주는 수천 년을 묵은, 영성을 띤 흉맹한 영물이다.

복용 시 내공의 증진까지도 이룰 수 있는 절세 영약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약 급의 식단을 매일같이 섭취함과 더불어, 수련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이들이 강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 그러한 진미문의 계승자 태천비는 퀭한 얼굴로 앉아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었다.

좀처럼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자신이 조리한 인면지주의 속살을 맛본 스승이 건넨 말 때문이었다.

“이제야 좀 먹을 만하네. 아무리 봐도 넌 아직 멀었다.”

“이제야 좀 먹을 만하다고요?”


‘내가 아직도 멀었다고…?’


이내 태천비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곁눈질로, 맞은편에 앉아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는 스승을 바라보았다.

‘맛있게만 드시면서…….’

처음에는 밥 짓는 법조차 모르던 태천비였다.

이곳 관백산에서 십 오년을 보내며, 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조리법들을 익혔고 독문조리법들 역시 완벽히 익혔다.

무공과 체력 역시 마찬가지.

처음에는 고작(?) 호랑이 한 마리조차 맨손으로 때려잡지 못하던 태천비였으나, 이제는 산짐승들은 그저 기세만으로도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헌데 아직도 멀었다고?

‘대체 뭐가 부족하다고 그러시는 거지……. 혹시 그냥 붙잡아두고 싶으신 건가…? 그냥 내가 떠나는 게 싫으신 건가…?’

그러고 보면 하나뿐인 제자, 태천비 본인이 떠나고 나면 스승은 연고조차 없는 독거노인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가슴 아픈 일이라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언제까지고 관백산에서 스승과 지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던가?

‘그래, 역시 도망치는 것 말고는 수가 없겠다. 이러다간 정말 관백산에서 늙어죽을 지도 모른다고.’

헌데…….

도망치겠다고 결심을 했다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체 기감이 귀신같은 스승이었다.

아무런 수도 없이 도주를 시도했다간, 분명 도망치기도 전에 잡혀 되돌아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게 전부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태천비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태천비가 돌연 한숨을 내쉬어보이자, 스승이 미간에 내 천(川)자를 수놓으며 물었다.

“야, 너 대체 왜 그래?”

평소 밥을 먹을 때면 산짐승인지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급히 먹어대던 태천비가, 오늘따라 유독 퀭한 얼굴로 새가 모이 쪼아 먹듯 깨작깨작 먹어대고 있으니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 것이다.

“켁-! 켁-!”

갑작스런 물음에 사례라도 들린 것인지, 태천비가 공연히 헛기침을 연달아 해대다가 급기야는 입에 머금고 있던 밥알들을 뿜어내고 말았다.

“푸-!”

잘게 쪼개진 밥알들이 전방에 백설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같은 스승님의 용안 위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밥알들이 스승의 얼굴 위에도 잔뜩 안착해버린 것이다.

“하… 진짜 밥맛 떨어지게…….”

탁-!

스승이 쥐고 있던 숟갈을 상 위에 세차게 내려놓던 그 순간, 태천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조, 좆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절대숙수(絕對熟手)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 1. 배은망덕 태천비 (4) +11 15.11.20 14,345 461 7쪽
4 1. 배은망덕 태천비 (3) +9 15.11.19 14,686 456 7쪽
» 2. 배은망덕 태천비 (2) +8 15.11.18 15,548 473 8쪽
2 1. 배은망덕 태천비 (1) +9 15.11.17 18,663 495 8쪽
1 +17 15.11.16 18,977 44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