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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2018

절대숙수(絕對熟手)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전남규
작품등록일 :
2015.11.13 15:48
최근연재일 :
2015.12.11 23:26
연재수 :
5 회
조회수 :
386,039
추천수 :
16,056
글자수 :
13,358

작성
15.11.19 17:05
조회
14,685
추천
456
글자
7쪽

1. 배은망덕 태천비 (3)

DUMMY

갑작스레 밥알 세례를 당한 스승의 미간에 팔(八)자가 선명히 드리워있었다.

지옥에 가 염왕(閻王)과 마주하게 된다면 이처럼 두려울까?

눈알만 끔뻑거리고 있어봐야 매만 더 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몹시 잘 알고 있는 태천비였다. 이내 태천비가 황급히 수저를 내려놓고는 곧장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연신 고개를 숙여대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몸이 안 좋아서…….”

“아하, 몸이 안 좋다…? 그래서 그거랑 하늘같은 스승님 얼굴에 씹던 밥을 뱉은 거랑 무슨 상관인데? 너 이 새끼, 틈틈이 내 얼굴에 침 뱉을 기회만 노리고 있던 거 아냐?”

스승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묻자, 태천비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나직이 답했다.

“제가 요즘들어 기가 허해진 것인지, 이상하게 사소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그러거든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오, 한순간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뱉어낸 궁여지책(窮餘之策)에 불과했다.

헌데 어찌 된 것이 상황 돌아가는 것을 보니 효과가 제법 쏠쏠한 듯 보였다. 싸늘하기만 하던 스승의 얼굴 위로 근심이 살짝 어린 것이다.

“그러니까… 어쨌든 아프다는 거지?”

“예? 예!”

우렁차게 답해 보인 태천비가 다음 순간 묽은 핏물을 잔뜩 토해내기 시작했다.

“쿠에엑-! 쿠에에엑!”

일부러 몸 안의 내력을 꼬아, 애먼 피를 뱉어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버린 것이다. 당장 저자의 연희패에 단원으로 합류해도 손색이 없을 법한 훌륭한 열연이라 할 수 있었다.

태천비는 일부러 자신의 입가를 따라 흐르는 선혈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배시시 웃음을 지어대고 있었다.

이 또한 설계요, 계략이었으니 동정심을 유발해내기 위한 작전의 일부였다.

그 직후 태천비는 사람이 가장 불쌍해 보인다는 사십오도 각도로 얼굴을 비스듬히 튼 다음, 어깨를 들썩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못 보일 꼴을 보여드렸네요… 요즘 이처럼 객혈을 하는 것이 부지기수라… 아아!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곧 털고 일어날 테니까요!”

이내 스승이 인상을 살짝 찡그린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기다려라.”

“예?”

“하나 뿐인 제자 놈이 아프다는데, 더군다나 네가 어디 그냥 제자냐? 아들이지. 비록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였다지만… 같이 살 부비며 산 세월이 얼만데… 쨌든 아비가 약 한 첩 해다 줄 테니 쉬고 있어라.”

이내 태천비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스승을 멀뚱멀뚱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렇게나 극진히 생각해주는 스승님을 산속에 내버려두고 도망칠 생각을 했다니…

죄송스러운 마음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고, 또 가슴은 미어질 듯 아팠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요… 정말 죄송해요…….’

태천비가 그렇게 속으로 반성을 거듭할 무렵, 스승이 다시금 입을 뗐다.

“천비야, 아픈데 말도 안하고 있다가 병 져 눕지 마라. 네가 드러누워 버리면 빨래는 누가 해? 청소는? 밥은? 설거지는…? 다 내가 해야 되잖아.”

자신의 속내를 면밀히 드러내 보인 스승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할 말을 잃은 태천비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스승이 옷가지를 챙겨들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다녀올 테니까, 오늘은 푹 쉬어라. 내일은 털고 일어서서… 오늘 못한 몫까지 다 해야 하지 않겠어?”

말을 마친 스승이 곧장 방은 나섰다.

열린 문틈 사이로 그런 스승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태천비가, 미간을 팍 좁히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 고약한 영감…….”

이내 태천비가 다시금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들었다.

억지로 피를 토해낸 탓에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렀으나, 비위가 강하기로는 고금제일이라 할 수 있는 태천비였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식사를 마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천비가 흐리멍덩하게 뜨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뜬 것은 숟가락을 다시 쥐었을 때였다.

‘어라?’

스승님께서 나가셨다.

약을 구하러 다녀온다고 했으니, 아마 최소 반 시진 이상은 걸릴 것이다. 헌데 자신은 지금 어떻게 도망칠지를 궁리하고 있던 와중이 아니던가?

“뭐야? 지금 도망치면 되잖아?”

쾅-!

이내 태천비가 숟가락을 세게 내려놓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찌나 세게 내려놓은 것인지, 밥상이 반파(半破)되어 남아있던 밥과 찬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렇게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선 태천비가 신속히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잽싼 것인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겨질 정도였다.


*


약 한 시진 쯤 후, 스승이 관백산 민가로 돌아왔다.

온화한 웃음을 머금은 채 귀가한 스승의 한 손에는 청신삼(淸晨蔘)이라는 이름의 풀뿌리가 하나 들려있었다.

청신삼.

이는 산 아래에서는 잡초취급이나 받는 흔한 풀뿌리에 불과했으나, 진미문의 독문 조리법을 거쳐 조리를 하게 되면 절세영약 급의 진귀한 요리로 거듭나는 귀중한 식재료라 할 수 있었다.

스승이 자신의 못난 제자 태천비의 몸보신을 위해 손수 나서 구해온 것이다.

사실 스승은 태천비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력을 꼬아서 애먼 피를 뱉어내는 대목에서는 당장 머리통을 후려쳐버리고 싶었으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 놈도 오랫동안 고생했지…….’

그간 꽤나 노고를 겪어온 녀석이 아니던가?

몸보신이나 시켜주고 하루쯤 휴가(?)를 준 후에 내일부터 다시금 알차게 부려먹을 요량이었던 것이다.

“천비야-!”

이내 민가 안에 들어선 스승이 태천비를 불러댔다.

허나, 어찌 된 영문인지 대답이 돌아오질 않았다.

제자놈 몸보신을 시켜주겠다고, 산 아래까지 직접 행차하여 청신삼을 구해오지 않았는가?

맨발로 반겨주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드러누워 있을 모습을 떠올리니 화가 잔뜩 치솟았다.

“이 자식이…….”

이내 스승의 미간에 내 천(川) 자가 선명히 드리웠다.

헌데 기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민가 전체는 물론이오, 인근 수 십장 거리에서 태천비 특유의 기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 것만 같았다.

“어라?”

이내 스승이 급한 걸음으로 식사를 하던 안방 문을 열어재껴보았다.

탁-!

방 안에는 반파(半破)된 밥상과 함께, 처참하게 널브러져있는 밥과 반찬들이 즐비해있을 뿐이었다.

‘이, 이 미친놈이! … 도전인가?!’

어쩐지 요즘 들어 얌전하다 했더니, 아무래도 다시금 몽둥이찜질을 해주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라 생각했다.

샘솟은 노기 탓에 어느새 얼굴이 붉어진 스승이 이내 태천비의 방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문 앞에 다다르기가 무섭게 방문이 부셔지도록 세게 열어 재꼈다.

탁-!

“천비, 이 놈아-!”

허나 방 안은 황량하기만 할뿐.

그저 제자가 매일 밤 사용하던 이부자리들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 어라…?”

옷가지들도, 애초에 얼마 되지도 않는 짐들도 없었다.

이로서 스승은 한 가지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이 배은망덕한 놈이 도망쳤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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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배은망덕 태천비 (4) +11 15.11.20 14,344 461 7쪽
» 1. 배은망덕 태천비 (3) +9 15.11.19 14,686 456 7쪽
3 2. 배은망덕 태천비 (2) +8 15.11.18 15,547 473 8쪽
2 1. 배은망덕 태천비 (1) +9 15.11.17 18,663 495 8쪽
1 +17 15.11.16 18,976 44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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