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86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10.08 15:00
조회
22
추천
1
글자
11쪽

새로운 시도

DUMMY

이상한 기운에 눈을 떴다. 누군가 나의 오두막과 호수를 바라보는 느낌.

문을 열고 그림 바깥의 세상을 살펴보았다.


헉! 숨이 멎었다.

유연한이 벽을 마주하고 서서 그림을 살펴보는 것이 아닌가. 그의 시선은 미늘호수에 머물렀다.


내가 사람의 눈에 보일 리 없지만 숨을 죽이고 가만히 기다렸다.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 뭔가 달라졌어.”

그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그림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귀신이 붙었나?”

그의 손이 아름드리나무 뒤에 가려진 오두막을 정확히 건드렸다.

“응? 여기 문이 있었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다란 그림 속, 엄지손톱보다 작은 오두막이라 잘 보이지 않을 텐데···. 몸이 움찔거렸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르고, 음악 하는 사람은 귀가 다르다더니 이런 거였나?


유연한이 뒤돌아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마우스도 움직였어. 누군가 있어.”


그가 잠들 때마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이렇게 들키다니.

이쪽 세계에 대해 배우느라 뉴스를 읽고, 사전을 찾다가 마우스에는 신경 쓰지 못했다.


유연한은 그림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사라진 물건도 없고, 누가 들어온 흔적도 없어. 자리가 바뀐 것은 마우스뿐. 그리고···.”


손을 멈추고 내가 숨어있는 그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분명 여기. 이상한 기운이 들어있어.”


그가 주먹으로 다른 손바닥을 탁 쳤다.

“그래! 그림의 정령이야. 내가 불쌍해서 도우러 왔나? 나 이제 대박 나는 거야?”

고개를 젖히고 큰소리로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그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정령님, 그림의 정령님. 부디 일이 잘 풀리게 도와주시고, 먹고 살 걱정 없게 지켜주십시오.”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하니 오히려 미안해졌다.

나는 그림의 정령도 아니고, 소원을 들어줄 수도 없는 데다, 내 일도 제대로 못해 헤매고 있으니까.


‘안되겠다. 여기 머물면 안 되겠어.’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니. 무조건 멀리 떨어져야겠어.

그렇지만, 이 새벽에 어디로 가지?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나주연의 집뿐이었다. 쉴만한 그림은 없어도 그녀에게는 보는 눈이 없으니까.


*


잠을 설친 탓에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났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은 편했다.


아침 일찍부터 나주연은 씻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나보다.

부스럭대는 발소리가 귀에 거슬려 더는 누워있을 수 없었다. 침대 아래 텁텁한 어둠도 불편했다.


뻑뻑한 눈으로 침대 밑을 둘러보다가 졸업앨범이 눈에 띄었다.

‘그래! 나주연과 원대함이 얼마나 친한지 확인할 기회야.’


나주연이 나갈 때 따라 나갔다. 그녀에게 암시를 거는 일은 쉬웠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보는 것도 좋잖아? 아직 시간도 있는데?’


그녀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이쪽 길로 가볼까? 매일 같은 길로 가니 지루하네.”


맞았어. 그렇게 원대함이 일하는 편의점까지 가는 거야.

편의점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초고리 편의점이 보이는 골목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암시를 걸었다.

‘목이 마르지 않아? 물이 마시고 싶어.’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이렇게 목이 마르지?”


때마침 편의점이 보이니 그녀는 입 꼬리를 올리며 성큼성큼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원대함은 한창 낙서에 빠져 문이 열려도 보지 않았다.

손님이 생수 한 병을 계산대에 올려놓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앞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는 순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광대뼈가 올라가며 눈이 가늘어지고 입술 끝도 따라서 올라갔다.


“여, 연아 여긴 웬일이야?”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나주연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 아세요?”

“나, 원대함이야. 마이크로함, 중소함.”

“글쎄요. 모르겠네요.”

나주연은 모니터의 가격을 확인하고는 카드를 내밀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반가워하는 원대함과 모른 척하는 나주연이라. 그녀도 분명 알아차린 눈빛인데.


“아, 맞다. 너 이 근처 살지? 왜 여태 못 봤을까?”

“계산이나 해주시죠. 저 바쁘거든요.”

원대함은 카드를 받은 채 망설였다. 보일 듯 말 듯 손을 떨며 숨을 몰아쉬었다.


“앞으로 자주 와. 난 두 시까지 일해.”

“이쪽 길로는 잘 안 다녀서요. 그럼.”

나주연은 카드와 물을 받아들고 종종거리며 나갔다.


원대함은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눈빛을 보니 새로운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나주연, 구하라.’


그의 눈썹이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많이 힘들었구나.”


아니, 작가님. 구하라를 생각하시라니까요. 지금은 구하라가 먼저예요.

나의 애타는 신호를 받았는지 그가 중얼거렸다.

“구하라.”


그렇죠, 그거죠. 그럼 다음은.

‘차오름, 차오름의 원대한 모험.’

나는 그의 귓가에 떠서 애끓는 마음으로 속삭였다.


그가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야기를 쓴 적도 있는데···.”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거리를 내다보았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났네. 너한테 주려고 쓰던 건데.”


아니, 그게 다인가요? 소설을 쓰는 건 어쩌고요?

그의 어깨에서 아무리 발을 굴러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시 암시를 걸었다.

‘이어서 쓰면 어떨까? 아직 미완성인데.’


그러나 그는 암시를 받지 않았다.

“허! 그것도 소설이라고. 완전 클리셰 범벅에, 유치하고 시시한 이야기. 아우, 창피해.”


그는 고개를 흔들며 진저리치더니 다시 펜을 잡았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가슴이 답답했다.

‘뭐요? 우리 세계를 그렇게 무시하다니! 당신이 만든 세계잖아? 그러고도 작가라고?’

작가를 찾았다고 기뻐했는데···. 기억을 떠올리면 반가워할 거라 기대했는데.


원대함은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펜을 내려놓았다.


*


놀이터에서는 이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괴한 기운을 찾으러 가기로 했으니 모두 기대에 부풀어 통통 날아다녔다.


“너희들도 같이 가려고?”

“그럼, 그럼. 이런 재미있는 일에 빠지면 안 돼. 구경이라도 할 거야.”

어린 이귀들이 합창하듯 재잘댔다.


“방해는 안 할 거다. 이런 경험은 희귀하니 놓칠 수 없지. 상상계에서 넘어온 주술사가 실증계에서 유령을 물리치다니.”

수니홀이 껄껄 웃었다.


“그것이 유령인지 뭔지도 모르고, 심지아가 물리칠 수 있는 상대인지도 모르잖아?”

야문이 그네에 앉아 흔들거렸다.


“전 심지아가 승리한다에 걸죠.”

가디록이 말하자 야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기가 안 돼. 나도 거기 걸 거거든.”


“그럼, 만장일치로 심지아가 승리하는 걸로.”

수니홀이 허공을 두드렸다.


“이보세요, 난 선택권 없어?”

나는 입맛을 다시며 이귀들을 바라보았다. 기대에 찬 천진난만한 얼굴이라니.


만풍산으로 날아오르려는 데, 놀이터 앞으로 은서가 지나갔다. 설마 그녀도 가는 걸까?

곧장 그녀에게 날아갔다.

“저희 지금 만풍산으로 가요.”

“만풍산은 왜?”


“우리 세계의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대요. 이쪽과 연결된 악귀 때문인가 해서요. 요즘 거기서 사고도 많고, 해괴한 기운이 뿜어 나온다고 해요.”


은서는 뒷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뭔가 이상한 기운은 느끼고 있었어.”

“에?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산책하러 나왔어. 쉬는 날이거든.”

“그러셨군요. 난 함께 가는 줄 알고···.”


수니홀이 다가가 은서에게 악귀에 대해 설명했다. 어젯밤 내게 해준 말 그대로였다.


“이귀들이 몰려가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은서가 만풍산을 향해 돌아섰다.

“그 정도라면 빨리 치워야 해. 상상계가 더 큰 혼란에 빠지기 전에.”


은서는 기분 좋게 웃었다.

“심지아가 간다면, 나도 가야지. 아이디어를 주울 지도 모르겠는 걸?”


그녀는 준비할 것이 있다며 빌라로 향했다. 사람의 몸이니 택시를 타야 할 테고, 적어도 카드는 가져가야겠지.

남쪽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와 이귀들은 만풍산으로 날아올랐다.


*


만풍산은 가을빛이 짙었다. 물감을 짜놓은 듯 산 전체가 울긋불긋했다.


은서가 산길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나와 이귀들이 서성일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바람도 상쾌하고 청량해졌다. 숲이 그녀를 반기는 것 같았다.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이 살랑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도 들렸다.

‘서야님, 오셨어요?’

은서도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달빛사원에서 대화술을 수련했지만, 이쪽 세계로 넘어온 다음부터는 동물과 식물의 말을 듣지 못했다. 여기서는 못 쓰나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있으면 내 몸도 사념체인 것처럼, 대화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제대로 능력을 쓸 수 없었다.


“나무들이 은서님을 환영하고 있어요! 서야님이라고 부르면서.”

“난 정령의 후손이거든. 서야는 정령들이 준 이름이야.”

은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예? 이쪽 세계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요?”

“실증계라고 해도 여러 개의 층과 결이 얽혀있으니까.”

“상상계와 실증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주 복잡해. 실증계, 상상계, 현상계, 천선계···. 몇 겹인지도 모르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섞이는지 몰라. 아직 찾지 못한 다른 세계도 있을 거야. 그 모든 것이 어울려 현실이 되는 거고.”


그녀는 산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우리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지.”


나도 그녀를 쫓아 나무 꼭대기에서 다른 나무로 옮겨갔다.

나뭇가지를 타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선발대로 떠났던 수니홀과 야문이 돌아왔다.


“북쪽으로 굿당이 여럿 있어요. 거기를 지나 소원바위 있는 곳까지 가야 해요. 그 뒤편 절벽에서 뭔가 꿈틀거려요.”

수니홀의 말을 듣고 은서가 팔을 뻗었다.


“서두르자.”

나무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은서를 높이 띄워주었다.


그녀는 나뭇가지에서 가지로 가볍게 뛰어넘었다. 마치 한 마리 나비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래서 현실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작전 변경 22.10.10 22 1 10쪽
18 푸르니와의 인연 22.10.09 22 1 11쪽
» 새로운 시도 22.10.08 23 1 11쪽
16 달빛사원의 소식 22.10.07 21 1 11쪽
15 소극장 마중 22.10.06 23 1 10쪽
14 기억 되살리기 22.10.05 22 1 9쪽
13 이중인의 정체 22.10.04 22 1 8쪽
12 아이디어 노트 22.10.03 25 1 10쪽
11 약도가 있는 방 22.10.02 23 1 11쪽
10 새로운 만남 22.10.01 25 1 10쪽
9 도우미들 22.09.30 28 1 10쪽
8 노하우 22.09.29 27 1 11쪽
7 다른 단서를 찾아 22.09.28 29 1 10쪽
6 특이한 인연 22.09.27 34 1 12쪽
5 정류장의 이귀들 22.09.26 41 1 9쪽
4 이상한 남매 22.09.25 47 1 11쪽
3 스프링 책의 주인 22.09.24 50 1 9쪽
2 작가를 찾아서 22.09.23 61 1 11쪽
1 프롤로그 – 파견의 주술 22.09.22 172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