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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그래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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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8.05 09:03
최근연재일 :
2022.10.22 09:02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687
추천수 :
47
글자수 :
216,165

작성
22.09.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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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노하우

DUMMY

호숫가 오두막에서 눈을 떴다. 기지개를 켜며 그림 밖 집주인의 방을 내다보았다.


창문 너머에는 어렴풋이 햇살이 머물러도, 반지하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거리의 가로수는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었지만, 이곳까지 계절이 닿지 못하나 보다. 그림 속 미늘 호수는 언제나 화사한 봄이고 여기는 늘 초겨울인가.


집주인 유연한은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자더니.

‘절호의 기회!’


부리나케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가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기억재생술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였다.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진 기호와 글자를 하나씩 떠올렸다.


스프링 책이 왜 나주연의 방에 있는지 은서가 알아본다고 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해봐야지.


검색 사이트에 ‘이중인’이라 써넣었다.

‘이중인격, 이중인증, 이중인용···. 아, 이중인!’


화면에 나온 이름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이중인은 없었다. 괄호 안에 적힌 글자까지 같은 사람도 없었다.


‘전설의 근원’을 쓴 작가가 없는 것인지, 못 찾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죽었나? 그것도 가능한 일이다. 다른 세계로 넘어갔을 수도 있지.


‘어떻게 찾지?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왼손 검지 끝을 깨물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구인 광고를 내볼까. 잃어버린 가족을 찾거나, 그리운 사람을 찾거나, 누군가를 찾는 사람은 많을 테니까.


그러나 몇 군데 게시판을 찾아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곳이나 욕설과 비방이 가득했다. 댓글도 거의 악담이었다. 정확한 뜻은 몰라도, 악의가 가득한 것은 알 수 있었다.


경고 메시지도 많이 있었다.

‘메일 여는 순간 바이러스! 조심할 것.’

‘이거 사기꾼. 다른 게시판에서 봤음. 원조교제 주선임.’

‘인신매매 당하고 싶으면 클릭.’


유연한이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재빨리 컴퓨터를 껐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긁으며 화장실로 들어가기에 나도 그림 속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단서가 끊어지니 막막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자만이었을까.

작가를 못 찾으면 우리 세계는 어떻게 되지. 모두 사라질 텐데.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 해.”


파견의 주술은 단서가 있는 곳으로 보내준다. 그러니, 난 이미 단서를 찾은 건데···.

‘도와줄 사람을 보낸다고 했어. 그들이 무사히 나왔다면, 단서를 통해 나왔을 거야. 그들부터 찾아보자.’


유연한이 외출하려는지 현관문을 열었다.

나는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따라 훌훌 날아올랐다.


*


유연한이 가는 곳은 짐작한 그대로였다.

노닐 PC방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한 여인이 요란하게 유리문을 열고 나왔다.


“유화백! 오랜만이네.”

오십 대 후반의 화려한 여인이 나온 곳은 뽀글 미용실이었다. 앞치마에는 ‘실장 정나미’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나는 미용실 간판을 돌아보았다.

빌라 1층 한쪽은 뽀글 미용실, 한쪽은 이보 구제였다. 옷이 잔뜩 걸린 옷가게에서 아주머니가 이쪽을 보며 싱글거렸다.

“유화백이 뭐여? 연한 총각이 워때?”


“그림 그리니 당연히 화백으로 모셔야지.”

정나미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떡을 했더니, 너무 많아서 말이야. 어쩌나 싶었는데, 마침 유화백이 지나가네. 호호.”

정나미가 묵직한 떡 봉지를 내밀자 유연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얻어먹기만 해서···.”

“아휴, 아들 같아서 주는 거니까 맛나게 드셔.”

유연한은 연거푸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쉽게 떠나지 못했다. 미용실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 때문이었다.

스물을 갓 넘겼을까. 앳된 얼굴의 그녀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유연한을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달빛사원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아이가 차오름을 볼 때의 눈빛이었다. 아련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담긴 눈빛.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유리문을 지나쳐 들어갔다.

사념체로 다니면 이런 점이 좋구나. 막힐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으니.


앞치마에는 ‘아티스트 안가유’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그녀는 실장이 들어오자 눈웃음을 지으며 의자를 정리했다.


“에구, 내 아들이 저 정도면 얼마나 좋아. 애지중지 키워놨더니 홀랑 나가버리고, 돈 필요할 때만 문자 보내잖아? 못된 놈.”

정나미는 거울 앞에 앉아 립스틱을 덧발랐다. 가뜩이나 붉은 입술이 더 붉어졌다.


“유화백 좀 봐. 서글서글하고 예의 바른 것이. 그런데, 부쩍 말랐네.”

“일이 힘든가 보죠. 프리랜서들은 먹고살기 힘들대요.”


정나미가 손을 멈추고 안가유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너, 침 흘리지 마. 사람 좋은 것과 인생 편한 것은 달라.”

“아우, 실장님도. 제가 무슨.”

“얘! 눈만 봐도 알아. 그냥 설탕이 뚝뚝 떨어져.”

정나미는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눈 아래 갖다 대었다.


“정신 바짝 차려. 나 좀 봐라. 인생 망치는 거, 한순간이야. 사랑이 밥 먹여주냐?”

그녀는 일어나 계산대로 다가갔다.


여기서도 저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달둥지 기숙사에서도 아이들과 모여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 또래 아이들은 누구나 달콤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니까.


그중에도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낯빛이 핼쑥해서 몸이 안 좋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방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실뜨기로 인형도 만들었는데, 차원침입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야기가 완성되면 깨어나 다시 사는 것이 우리 세계의 질서지만, 그 아이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소설이 중단되면서 몇 사람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들은 이름이 없고, 이야기와 상관없는 주변 인물이었다.


이단주 원장이 파견의 주술을 주장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부작용이 많고 위험한 주술임에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경계가 무너지면서 우리 세계도 희미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사라질 거다. 뒤늦게 소설이 완성되어도 그들은 돌아오지 못해.’


수련 시간에도 가끔 쓰러지고, 숨을 몰아쉬던 그 아이를 생각하니 내 눈앞에서 쓰러진 지새늬가 떠올랐다.


‘지금쯤 깨어났겠지? 괜찮은지 모르겠네.’


*


지새늬가 있는 병원으로 가기 전에 버스정류장의 이귀들을 찾아갔다.


“상상계에서 온 다른 사람을 보면 기다리라고 해줘.”

“상상계? 놀이터에도 있어요. 옛날부터 있었는데?”

어린 이귀가 통통 튀어 올랐다.


“옛날부터? 그럼 아니야. 며칠 전에 나왔으니까.”

어린 이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심지아. 지금 보니까 혼령조종술을 하는구나!”

수니홀이 놀라며 몸을 부풀렸다. 그에게는 되살아난 주술과 마법력이 보이나 보다.


“그렇다면 깍듯이 모셔야죠!”

이귀들이 기분 좋게 떠들었다.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날 거야. 심심하지 않겠는데?”

“맞아. 너무 무료해. 매일매일이 너무 똑같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인가.


*


달둥지의 아이처럼 파리한 낯빛일까 걱정했는데, 지새늬는 멀쩡했다. 걱정한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워낙 마른 몸이라 환자복이 헐렁한 것을 빼면 흉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찾아보며 낄낄거렸다. 때로는 큰소리로 웃었다. 병실에 다른 환자가 없으니 크게 웃어도 괜찮겠지.


‘다 나았구나. 다행이야.’

웃음소리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에는 게임을 하는지 입술을 실룩이며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빨리! 빨리!“

“아니야! 노, 노!”

“오케이! 바로 이거지!”

혼잣말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복도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누군가 손잡이를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새늬는 번개보다 빠르게 드러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속에서 끙끙 신음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최소희였다. 한 손에는 보온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새늬야, 좀 괜찮니?”


지새늬는 빠끔 눈을 내밀고는 눈꼬리를 내렸다.

“조금요. 저 내일 오후에 오디션 있어서 퇴원해야 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픈데 어딜 간다고. 오디션이야 다음에 또 있잖아?”

“어떻게 그래요. 벌써 신청했는데.”


지새늬는 천천히 일어나 베개에 허리를 기대고 앉았다.

메마른 목소리에,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어리둥절했다. 조금 전의 기운찬 모습은 어디 갔어?


“아빠는 언제 온대요?”

“일이 바쁘시니까, 어제도 어렵게 시간 내셨어. 너 걱정된다고.”


지새늬는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른기침도 몇 번 쏟았다.


“대함이도 왔었어. 그 애가 무뚝뚝해도 동생 걱정을 얼마나 한다고.”

“알바에 극단 일까지 바쁠 텐데···.”

“그래도 동생이 아픈데 보러 와야지.”


최소희는 보온 도시락에서 죽 그릇과 물김치를 꺼내 식탁에 펼쳤다.

“네가 좋아하는 단팥죽이야.”


컵에 물을 따르려던 최소희가 물통이 빈 것을 알아보았다.

“천천히 먹고 있어. 물 떠올게.”


문이 닫히자 지새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흥! 유세 떨기는···.”


수저로 그릇을 탕탕 두드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성질도 개떡 같은 게 무슨 오빠?”


그녀는 수저로 죽을 휘저었다.

“그게 일이야? 티켓 팔고, 청소하고 포스터 붙이는 거? 응원부대나 하겠지. 댓글이나 달고. 쳇!”


죽을 한 수저를 떠먹고 다시 중얼거렸다.

“두고 봐.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어!”


그녀의 혼잣말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대체 저 작은 몸에 몇 개의 얼굴이 있을까.

‘이쪽 세계에는 별 희한한 사람이 다 있구나.’


또 다른 혼잣말을 기다렸지만, 최소희가 들어오자 표정이 바뀌었다.


지새늬는 얌전히 죽 그릇을 비웠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가 단팥죽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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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하우 22.09.29 28 1 11쪽
7 다른 단서를 찾아 22.09.28 29 1 10쪽
6 특이한 인연 22.09.27 34 1 12쪽
5 정류장의 이귀들 22.09.26 41 1 9쪽
4 이상한 남매 22.09.25 47 1 11쪽
3 스프링 책의 주인 22.09.24 50 1 9쪽
2 작가를 찾아서 22.09.23 61 1 11쪽
1 프롤로그 – 파견의 주술 22.09.22 17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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