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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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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7.19 17:56
최근연재일 :
2022.08.04 14:15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2,058
추천수 :
23
글자수 :
246,751

작성
22.07.26 14:05
조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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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그리움이 되는 모든 순간

DUMMY

기연랑도 알 수 없는 존재인 건 마찬가지다. 언제 나타났는지, 언제부터 차원의 문지기였는지 알게 뭐람.


달숲에 돌아와 보니 마침 아무가 가게 안을 어슬렁거렸다.

오늘 외출은 짧게 끝났나 보네.

꽃술은 의자에 앉아있고, 아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진열대를 두리번거렸다.


“가게는 비워놓고 어디를 다니시나?”

역시나 비아냥거리는 말투. 아무는 날 놀리는 취미가 있다. 아침 먹고 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물어보는 심보라니.


아무는 외출용 옷차림이었고 꽃술은 일상복을 입었다. 어쩌면 그리도 할머니, 할아버지 흉내를 잘 내는지 사람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겠다.


가는귀먹은 척도 하고, 구부정한 허리도 자연스러웠다. 꽃술의 주황색 꽃무늬 몸빼를 보니 웃음이 났다. 배기팬츠라고 하던가.


꽃술은 자신이 들고 온 바구니에 손을 얹었다.

“술빵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입맛이 없겠네.”


얼른 달려가 꽃술 옆에 앉았다.

“그럴 리가요! 아주 조금 먹어서 여전히 배가 고픈걸요.”

“그렇죠? 가온님이 좋아할 거라고 했더니 저 이는 말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윽한 냄새가 나는 것이 술빵도 좋고, 막걸리도 좋잖아요?”


이럴 때 보면 두 사람이 하나의 기연랑인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는 뒷짐 지고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또 나가세요?“

”인간계가 어떤지 항상 관찰해야죠.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정보를 놓치면 곤란해요.“

그렇게 고민상담소의 손님을 찾아다니겠지.


아무가 모자를 썼다. 헌팅캡은 이번 콘셉트에서 빠질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나. 드디어 꽃술에게 복원술을 가르쳐달라고 조를 기회였다. 아무가 빨리 나가기를 기다렸다.


”오늘 날씨도 좋고 걷기에도 딱 좋은 날이네요. 얼른 다녀오세요.“

”엥? 날 내쫓고 둘이서만 놀려고?“

”절대 아니에요. 진심으로 아무 할아버지를 생각해서죠.“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느긋하게 말했다.

아무는 나가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를 배웅하고도 혹시 되돌아오나 살피며 잠시 자리를 지켰다.

꽃술은 자기가 가져온 술빵을 야금야금 뜯어 먹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나네.“


나는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꽃술 할머니, 복원술 가르쳐줘요.“

”복원술? 그건 아무만 할 수 있는데.“

”왜요? 같은 기연랑이잖아요?“

”분신술 쓰면서 능력도 나뉘어서, 복원술은 아무한테만 갔어요.“

그럼 이제 어쩐다.


그래도 꽃술은 바느질과 뜨개질 도구를 가져다주었다. 자수용 실과 바늘도 빌려주고, 다리미도 갖다 주었다.

”복원술 배우기 전에 손 풀기에 좋을 거예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하이고, 인터넷 있잖아요? 찾아봐요.“


꽃술은 빈 바구니를 들고 돌아갔다. 결국 술빵은 꽃술이 다 먹은 뒤였다.


*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지.

바느질을 하려니 천은 울고, 실은 끊어지고, 뜨개질을 하려니 코는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어느새 몽땅 풀려 실뭉치가 되었다.


손가락마다 바늘자국이 생겨났다. 그런데다 다리미를 잘못 만져 손가락 끝이 몽글몽글 부풀어 올랐다.

”어우, 이거 왜 이렇게 안 돼?“


우왁 우왁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난 뒤 씩씩거리며 카페 미루안으로 달려갔다. 거기서는 약이라도 얻을 수 있겠지.


카운터 안쪽에 서 있는 하륜에게 다가갔다.


”하륜님. 이거 약 바르면 되지요?“

손가락을 펼쳐 그에게 보여줬다.


그가 깜짝 놀라며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대체 무슨 일을 했어요?“


”아, 다리미를 얻었는데 그거 해보느라.“

”조심하지 그랬어요.“

약간 화가 섞인 목소리에 괜히 오그라들었다. 다치고 싶어서 다쳤나. 누구나 실수하며 배우는 거라고요.


”처음이라 그래요. 조금만 연습하면 익숙해질 거예요.“

”심하지 않아 다행이네요. 그대로 있어요. 잘못하면 흉이 남으니까.“

이번에는 착한 아이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흉터가 남는 건 반갑지 않아.


이 몸으로 언제까지 지낼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이라도 잘 지켜야지. 흉터는 목에 있는 것 하나로 충분하니까.


하륜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얼굴은 근엄하고 경건했다.

손을 잡는 순간에는 온기가 느껴졌지만 곧이어 시원한 느낌이 손가락 끝을 맴돌았다.

이 느낌. 아주 익숙한걸. 편안하면서도 아늑하고 상큼한 기분.


하륜이 손을 놓자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아쉬웠다. 좀 더 잡아줘도 좋은데···.

손가락의 물집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와!”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선위의 술법은 사람에게도 통하는구나.


내려놓았던 컵을 닦으며 하륜이 평소와 다름없이 웃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요?“

”헤헤. 여기 있는 동안은 재미있게 지내려고요. 매일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입을 삐죽거리자 하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 또 어린아이 대하는 웃음이라니.


복원술을 배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말하려는데 은서와 바우가 들어왔다. 오랜만에 바우를 보니 반가웠다.


“오늘은 연습 없어요?”

“예. 멤버들이 일이 있대요. 오랜만의 휴식이죠.”

“맞아요. 너무 열심히 하면 쉽게 지쳐요. 가끔 쉬어야 해요.”

은서가 바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토닥거렸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가온님은 어떠세요? 손님이 많아졌어요?”

“에효, 월세 내려면 아직도 까마득해요. 아무의 장부는 언제 비워질는지.”

바우에게 열심히 설명하는데 은서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관리비 아니고 월세라고요?”

은서도 살림이 어려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흐흥 코웃음을 내더니 잠시 후 빙그레 웃음 지었다.

“아무 할아버지가 가온님을 무척 아끼나 봐요.”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그거 갚기 힘들겠네요.”

은서는 계속 싱글싱글 웃었다.


역시 여간해서는 갚기 힘들겠지. 예전의 기연랑은 그렇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래서 저도 뭘 좀 만들까 하고요.”

“어떤 거요?”

“버려지는 재료로 소품을 만들려고요. 꽃술님이 도구도 갖다 줬어요.”


바우가 은서를 쳐다보았다.

“에코 프로젝트?”

“맞아. 거기.”

은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온님도 보러 갈래요? 그렇지 않아도 어디 갈까 고민했는데. 호수 근처 갤러리에서 재활용 예술작품을 전시하거든요.”

“에? 둘이 데이트하는 데 따라가라고요?”

양손을 번쩍 들어 휘저었다.


“데이트요? 하하하. 가온님, 진짜 사람처럼 말하네요. 와···, 정말 감쪽같아요.”

은서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깔깔거렸다.


“그럼 아닌가요?”

“그건 서로 맞는지 따져볼 때 하는 거고요. 영준씨랑 가온님 같이.”

영준의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하륜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그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휴우-.


그것하고 이것이 어떻게 다르다는 거야? 헷갈리네.

인간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대기 속에 녹아있는 지식과 텔레비전에서 나온 정보뿐인데.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은서가 요란스럽게 손뼉을 쳤다.

”자, 자. 시간이 아까우니 어서 가시죠.“

은서가 나를 잡아 일으켰다.


*


호반이음 갤러리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제법 먼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멀리 가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버스를 타니 새로운 것이 많이 보였다. 이런 풍경도 있었구나. 버스에 타고 내리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은서와 바우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둘이 함께 있을 때 말하는 쪽은 언제나 은서였다. 바우는 간단하게 대답하거나 고갯짓을 하는 정도지만, 즐거워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바우는 바른생활 사나이라는데 그 말 그대로였다. 언젠가 은서가 귀띔해주었다.

‘지구인보다 더 지구인 매뉴얼을 잘 지킨다니까요.’

‘지구인 매뉴얼? 그런 것도 있어요?’


‘처음 차원을 넘어온 존재들이 쓰기 시작한 것을 덧붙이고 고쳐서 내려온 게 있어요. 바우는 거기 있는 걸 꼭 지키려고 해요. 오히려 사람들이 엉뚱한 짓을 많이 하죠.’


바우의 세상은 농담도 없고 장난도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좋은 사람이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어요.’

그래도 두 사람은 보기 좋았다. 서로에게 꼭 맞는 존재란 저런 모습일 거야.


멀리 나오니 기분 좋았다.

좁은 가게를 지키지 않아도 되고, 바느질이니 복원술이니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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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천사 가온의 생활적응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가보지 않으면 끝을 알 수 없어 22.07.27 30 0 10쪽
24 또 하루가 펄럭이고 22.07.26 26 0 11쪽
» 그리움이 되는 모든 순간 22.07.26 29 0 9쪽
22 차원의 문은 환상을 보여줘요 22.07.26 45 0 10쪽
21 천사의 혼을 가지러 오겠다 22.07.25 26 0 9쪽
20 비밀은 들키려고 있는 것 22.07.25 25 0 10쪽
19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요 22.07.25 26 0 11쪽
18 빛으로 바람으로 스쳐 가는 세상 22.07.24 26 0 9쪽
17 그믐밤의 손님 22.07.24 27 1 11쪽
16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만나요 22.07.24 33 1 10쪽
15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나고 22.07.23 27 1 9쪽
14 시간을 기억하는 장벽 22.07.23 30 1 9쪽
13 보이지 않는 달도 밝을 수 있어 22.07.23 25 1 10쪽
12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도 따라와요 22.07.22 28 1 9쪽
11 내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22.07.22 24 1 9쪽
10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 22.07.22 34 1 10쪽
9 흐르는 물은 흘러가게 내버려 둬요 22.07.21 28 1 10쪽
8 길 잃은 물건은 새 주인을 기다리지 22.07.21 27 1 9쪽
7 서두를 건 없어요. 다 잘 될 거예요 22.07.21 38 1 11쪽
6 기회는 앞으로 많을 거예요 22.07.20 31 2 10쪽
5 일단 먹고 힘내는 거야. 22.07.20 33 2 10쪽
4 반드시 찾아내요. 시간이 걸릴 뿐이죠. 22.07.20 42 2 11쪽
3 천사도 때로 길을 잃어 22.07.19 49 2 9쪽
2 그냥 지나가는 길 아닌데요 22.07.19 73 2 10쪽
1 파라다이스 빌라는 파라다이스가 아니야 22.07.19 18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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