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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우 님의 서재입니다.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모루우
작품등록일 :
2012.01.15 00:13
최근연재일 :
2012.01.14 20:2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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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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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6. 장우(長右) (6) + 07. 동요(動搖) (1)

DUMMY

이미 삿대를 몽둥이처럼 휘둘러서 장우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뇌리를 스친 것이 무엇이든, 이제 그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방통은 ‘단석을 빠짐없이 챙겨놓았다고 하더라’는 맹건의 말을 떠올리면서, 각인 속 영웅이 쥐고 있던 화살을 손가락을 꾹 누른 다음 앞쪽으로 쭉 밀었다. 삿대 끝을 감싸듯이 만들어져 있던 손잡이가 순식간에 툭, 하고 분해되었다. 가르릉거리며 주위를 맴도는 장우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방통은 분해된 손잡이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하얗고 반질반질 윤이 나며 작고 동그랗고 납작한, 꼭 하얀 바둑돌처럼 생긴 물체 여러 개가 방통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방법이 있다.'


방통은 이를 악물었다. 방통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이후, 장우들은 그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를 바라는 듯 함부로 달려들지는 않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방통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었다. 그는 삿대를 두 손으로 감싸듯이 움켜쥔 후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주위를 미친 듯이 맴돌고 있는 장우들의 존재 역시도 없는 것처럼 인식하고자 하였다. 자신과 몇 마리의 짐승을 둘러싼 이 공간이 어떤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느끼기 위함이었다.

무겁게 가라앉는 늦은 밤의 느낌과 서늘하게 피부를 감싸는 물의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호흡을 더욱 가라앉히면서 마음을 거대한 장우에게로 집중하자, 터질 듯이 박동하는 그의 심장이 느껴졌다.


- 전장의 기운은 태음(太陰)에 강수(强水)이고 적의 기운은 욱일(旭日)에 승열(乘熱)이라…….


눈을 가늘게 뜨고 주문을 외는 듯한 그의 얼굴에 약간의 주저함이 묻어났다.


- 역시 방법은…… 그것뿐인가…….


방통은 다시 한 번 몸을 날리는 작은 장우 두 마리의 공격을 막아내고서, 손에 쥐고 있던 하얀 물체들을 하나만 남기고 곁에 선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자신이 챙긴 하나는 왼손 검지 끝에 살짝 올려두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아이의 물음에 방통은 ‘단석(丹石)’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눅눅하게 젖어있는 진흙을 오른손으로 살짝 움켜서 단석 위에 뿌렸다. 흙을 뿌린 단석을 아이에게 건네주고, 그는 새 단석 하나를 넘겨받았다. 아이는 건네받은 단석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바둑돌처럼 생긴 단석이지만 바둑돌과는 달리 표면에 얕은 홈이 파여 있었고, 방통이 뿌린 흙은 바로 그 홈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형태였다. 방통은 또 다시 진흙을 뿌려서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그 와중에 날라드는 괴물 장우의 발톱을 조심해서 피해야 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총 여덟 개의 단석에 물가의 진흙과 자신의 피를 나누어 바르고, 몇 개는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채로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단석을 바닥에다 마치 장기를 놓듯이 늘어놓았다. 장우들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것 같았지만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단석을 늘어놓은 방통은 삿대를 천천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 선 아이의 눈에 그것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지만, 삿대의 움직임과 함께 피부에 닿는 느낌이 변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뺨에 닿아 있던 차갑고 눅눅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차츰 따뜻하고, 나아가서는 뺨이 데일 듯이 뜨거운 느낌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마치 환술과 같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눈을 들었을 때에는 분명 방통의 앞에 놓여 있던 단석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가 않았다. 이 아저씨는 정말 환술을 하는 사람인 걸까, 아이는 예장에 있을 적에 형과 함께 가서 보았던 환술사를 떠올렸다.


- 자,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라.


방통은 아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 준 다음, 정면에 버티고 선 그 거대한 장우를 향해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녀석은 꿈쩍도 않았지만, 작은 장우들은 당황해서 여기서 뛰어오르고 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한두 마리가 그를 공격하였으나 그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어느새 방통은 거대 장우에서 불과 열 걸음 남짓 떨어진 곳까지 달려왔고,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작은 장우들이 무리를 지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치 그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방통은 삿대를 공중으로 한 번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 진법, 척(斥)!


순간, 사라졌던 단석 중에서 진흙을 묻힌 것이 방통의 주위에 나타나 쇳덩이처럼 무겁고도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 이는 그들 모두를 둘러싼 전장(戰場)의 기운과 같은 것이었으니, 단석이 내뿜는 기운과 전장의 기운 사이에 강한 척력이 생겨나고 말았다. 그 강한 척력은 마침 단석의 기운과 전장의 기운 사이에 위치하고 있던 장우의 무리들을 덮쳤고,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되어 버린 그들은 방통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한 채 바닥을 뒹굴었다.


방통은 진법을 거두어들일 새도 없이 장우들의 우두머리를 향해 내달렸다. 놈의 몸뚱아리가 다섯 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방통은 삿대로 바닥을 힘껏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장우의 눈알이 희번덕 돌아갔다. 놈의 두 팔이 방통을 노렸으나,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삿대를 움켜쥐고 한껏 몸을 뒤로 젖혔다가 장우의 정수리를 향해서 힘껏 내리치면서 외치는 것이었다.


- 진법, 돌(突)!


이번에는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단석이 형태를 드러내는가 싶더니 삿대의 속도와 힘이 한층 배가되었다. 놈의 단단한 두개골이라도 빠개어 버릴 듯한 기세였으나, 들려오는 것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니라 나무가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거대 장우의 날카로운 발톱이 방통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방통은 계속해서 삿대를 쥐고 있었지만, 방어에 완전히 막혀서 아예 삿대가 멈추어 버린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유일한 무기마저도 두 동강이 나버릴 것만 같았다. 흉물스럽게 찢어진 네 개의 눈에서 섬짓한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금방이라도 방통의 살진 몸을 집어 삼켜 버릴 듯한 그의 커다란 입 안에는 뜨겁고 끈적한 침이 펑펑 솟구치고 있었다.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장우의 옆머리에 붙은 귀에서는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삿대를 움켜 쥔 방통의 귀에는 뜨겁게 달구어진 그의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굳이 발톱을 살갗을 찢어발길 필요도 없이 그대로 입 안에 넣고 씹어버리고자 마음먹은 놈의 입이 더욱 크게 벌려졌을 때였다.


- 연환(連環)진법, 파(破)!


방통의 일갈(一喝)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붉은 단석은 흥분으로 날뛰고 있던 놈의 심장을 더욱 미쳐 날뛰게 만들었다. 심장이 날뛰자 놈의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커다란 근육을 둘러싼 혈관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머지않아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안광마저 붉게 변했고, 놈의 몸을 둘러싼 터럭들이 불이라도 붙을 것처럼 바싹 말라갔다. 사람의 피를 머금은 단석은 장우의 심장을 더욱 더 광포하게 박동하도록 몰고 갔다. 드디어는 박동하는 심장이 자신을 덮고 있는 살과 가죽을 밀어 올리기에 이르렀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놈의 입에서는 소름끼치는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이때다!


연환진법은 진법 파가 효력을 발휘하는 중에도 진법 돌의 힘을 그대로 유지시킬 수가 있었고, 방통은 진법 돌의 힘을 이용하여 들고 있던 삿대를 반으로 쪼개어 버렸다. 반으로 쪼개진 삿대의 끝은 마치 죽창을 보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칼날처럼 쪼개진 삿대의 절반을 미쳐 날뛰는 심장의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나던 놈의 가슴 위로 찔러 넣었다. 삿대를 움켜쥔 그의 손바닥으로 터럭을 헤치고, 팽팽하고 질긴 가죽을 찢고, 근육의 섬유질을 하나하나 끊어나가는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사지(死地)의 바로 앞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에게, 그 감각은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주는 것이었다. 방통은 삿대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심장을 덮고 있던 얇은 막이 투둑, 마침내 찢어져 버렸다. 정지의 시각이 다가온 줄도 모른 채 날뛰고 있는 그 근육덩어리의 붉고 매끄러운 표면 위로 반으로 쪼개진 삿대의 끝이,



살짝,



닿았다.





07. 동요(動搖)


방통은 눈을 떴다. 눈앞이 안개가 낀 것 마냥 부옇게 흐려져 있었다. 뻑뻑한 눈꺼풀을 억지로 움직이자 그나마 시야가 트였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사위는 어둠에 잠기어 있었다. 구름은 한층 더 두꺼워졌다는 느낌이었다. 달은 아예 흔적도 없었다. 두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생각난 듯 품에 안고 있던 아이에게 귀를 가져갔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의 작은 몸은 따뜻했고, 이따금 중얼중얼 잠꼬대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숨도 고르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다행이구나, 방통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온몸에 퍼져있는 그의 신경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동시에 통증이 저릿저릿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증은 놈들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워주었다. 완전히 숨을 끊어 놓은 놈은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들이 언제 또 물속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그 다음엔 두통이 엄습하였다. 정말이지 누군가가 쇠망치로 두개골을 빠개고 있는 것 같았다. 놈들에게 머리를 맞은 적은 없었던 터라 의아해 하던 차에 맹건과 마셨던 한 통의 쇄두주가 떠올랐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한손으로는 잠든 아이를 추스르고 다른 한손으로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찌나 머리가 쑤시는지 거대 원숭이들에게 얻어맞은 곳이 별로 아프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괜스레 맹건의 이름을 씹어댔다. 그 녀석이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그 정도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던가- 하는데, 저편 모래언덕 너머에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방 선배님! 선배님,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들리시면 대답을 해 주세요! 선배님!


방통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숲으로 이어지는 쪽의 하늘이 벌겋게 밝아오면서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서도 맹건의 목소리는 쉬지 않고 방통을 부르고 있었다. 뱃속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서 ‘맹건!’을 외쳤다. 뚝, 하고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두 배로 빨라지고 커진 목소리가 모래언덕을 넘어왔다.


- 선배님? 선배님이십니까! 어디세요, 어디! 자자, 저 언덕 너머인 것 같습니다! 서둘러주세요! 선배님! 괜찮으신 거지요! 제가 지금 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목만 남아있고 그러지만 않으면 됩니다!


마지막에 꼭 이상한 소리를 붙이지, 방통은 뚱한 표정으로 모래언덕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돋우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한 떼의 횃불이 언덕 위로 나타났다. 수십 개는 족히 되어보였다. 귀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몰려든 것 같았다. 수십 개의 횃불이 우하고 몰려들었다. 그 중에서도 자그마한 횃불 하나가 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방통에게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맹건이 방통에게 횃불을 들이대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 불 치워라. 사람 태워죽일 일 있냐.


방통의 말에 멋쩍게 웃어 보인 맹건은 횃불을 멀찌감치 내려두고 다시 다가왔다.


-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시길래, 직접 찾으러 나섰다가 다행히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 시간에 마을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녔던 이유를 짐작할 만 하였다. 방통이 품에 안고 있던 마량을 맹건에게 넘겨주었다. 맹건의 얼굴이 더욱 밝아지더니 뒤이어 오던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들고 있던 수십 개의 횃불 중에서 또 서너 개가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 선두에 선 것은 마원이었다.


- 오오, 량을 찾았다구요!


마원은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혼비백산하여 뛰쳐나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 잠들어 있습니다.


마원은 맹건으로부터 아이를 안아들었다. 마원은 아이의 얼굴을 살피는 듯했다. 주위가 제법 시끌시끌한데도 아이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 흉한 짐승들에게 홀로 둘러싸여 있었으니, 온 몸의 기운을 다 써버리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었다. 마원은 뒤따라온 사람들에게 마량을 다시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방통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 방 형의 은혜가 하늘에 닿을 만합니다. 방 형이 아니었더라면 이 마원,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제 혈육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크나큰 죄를 저지를 뻔하였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통은 잔뜩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기울여서 인사에 답했다.


- 백상 형께서 이 방과 맹을 구해주신 일은 잊으시었소. 그 은혜를 갚은 것뿐이니, 크게 생각하시지 마시오.


마원은 미소를 지으면서 방통의 손을 토닥였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띈 것이 있는지 사람을 불러서 횃불을 가져오게 하였다. 불빛이 다가오자 방통의 몸에 남아있는 온갖 상처와 핏자국이 선연히 드러났다. 마원은 또다시 크게 놀랐다. 당장에 상처를 봉합할 약을 가져오라 소리를 치다가, 생각을 바꾸었는지 들 것을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일렀다. 방통은 손을 내저었다. 혼자서 걸어갈 수 있으니 괜한 일일랑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원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어서 움직이라고 소리쳤다. 마원의 뒤를 따르던 몇 명이 나는 듯이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안되겠다 싶어진 방통은 억지로나마 몸을 일으켰다. 맹건이 그를 부축하였다.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몸을 상하신 겁니까.


마원이 다른 방통의 나머지 한 쪽 팔을 부축해주면서 물었다. 방통은 어떻게든 설명을 해보려 하였으나 머리는 머리대로 아픈데다 그 못된 짐승에게 맞은 곳도 화끈화끈하게 부어오르는 통에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의 표정을 살핀 맹건이 일단은 사람을 눕힐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원은 이에 동의하였다.


- 가긴 어디를 간다고 하느냐!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방통의 앞을 막아선 사람은 마원의 동생 마안이었다. 형과는 달리 갑주까지 갖추어 입은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버티고 서있었다.


- 안아, 네 동생을 구해주신 분께 이 무슨 망령된 행동이냐! 썩 무릎을 꿇고 사죄드리지 못하겠느냐!


형의 추상같은 호령에도 동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 형님이야말로 상황을 잘 살피시지요. 지금 이 자를 부축할 때가 아니외다!


방통은 저 쪽에 모여 있는 화톳불이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명줄을 끊어버렸던 짐승의 몸뚱이가 남아있는 곳이었다. 화톳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마원도 곧 깨달았다. 그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냉정을 찾은 목소리였다.


- 무슨 일이냐.


마안은 대답대신에 방통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형이 재차 삼차 같은 질문을 하자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벌컥 벌컥 치솟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 저기 장우가 한 마리 죽어 있소.


- 뭐라고?


마원이 반문했다.


- 저 쪽에 장우가 죽어있단 말이오. 저 놈이 장우를 죽였단 말입니다!


무엇에 홀린 듯한 표정이 된 마원은 마안이 가리킨 쪽을 향해서 달려갔다. 모여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헤치고 나섰다. 방통은 맹건의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횃불 아래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원망어린 눈초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언제 그늘 아래를 박차고 나올지 모르는 살기어린 원망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방통은 마원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터진 탓에 온갖 구멍으로 피를 닷 말은 쏟아낸 짐승의 죽은 몸뚱이가 모래밭을 뒹굴고 있었다. 놈의 가슴에 찔러 넣은 삿대가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마원의 어깨가 떨렸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죽은 짐승에게로 다가가더니, 그의 가슴에 박힌 삿대를 뽑아내었다. 그의 심장에 남아있던 피가 또 한 번 사방으로 튀었다. 가까이 서 있던 마원은 그 피를 온몸으로 다 받아내었다. 그가 천천히 돌아섰다. 아우가 보는 앞에서 침착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피칠갑이 된 삿대를 들어보였다.


- 이것은 방 형이 쓰신 겁니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한 맹건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으나 방통이 가로막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중간 중간에서는 악에 받힌 욕설이 들리기도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방통은 어떻게든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 사이에 마원은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쉰 다음에 다시 물어왔다.


-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무슨 일은 무슨 일입니까! 이 미친놈이 장우를 죽인거지!


마안이 창을 들어 방통의 목덜미를 찌르려 하였다. 마원이 삿대를 움직이는가 싶더니 달려드는 마안의 턱 밑에 삿대 끝이 치솟았다. 흠칫 놀란 동생이 물러섰다.


- 망령되이 행동하지 말라고 이 형이 일렀을 것이다.


마원의 말에 마안은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마원의 시선은 다시 방통을 향하였다.


작가의말

연참대전의 집계로 수고하시는 푸른나래 님께 글을 한개만
올리겠노라 약속을 드렸는데, 오늘 쓴 분량이 묘하게 되어버렸네요...
두 장의 글을 동시에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독자님의 열독을 방해하게 되었습니다.

다, 다음부터는 어떻게 분량조절을 잘 해서,
독자님께서 보시기에도 좋고, 연참대전 집계에도 편리하게끔
만들어 보겠습니다..

항상, 열독에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의 열독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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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30 신귀.
    작성일
    12.01.13 01:51
    No. 1

    음.. 진법이 마법 같은 거로군요.
    장우는 사람을 해치는데 왜 그러는 거지..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카이사
    작성일
    12.01.13 05:18
    No. 2

    진법에 주술적 성격도 포함되어 있군요. 혹시 장우가 채모의 군사로부터 섬을 지키는 한 가지 방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연참중계자
    작성일
    12.01.13 23:17
    No. 3

    ㅎㅎ 괜찮아요. 하시던대로 해도 되요. 전 나래입니다. 잠시 아이디 만들어서 집계때만 사용하고 있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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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10. 숲 속의 진영 (1) +1 12.01.14 534 16 9쪽
28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9. 진담누설 (2) +1 12.01.14 623 10 15쪽
27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9. 진담누설 (1) +1 12.01.14 413 17 8쪽
26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8. 설(蔎) (6) +1 12.01.14 499 18 8쪽
25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8. 설(蔎) (5) +1 12.01.14 571 10 10쪽
24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8. 설(蔎) (4) +1 12.01.14 556 11 10쪽
23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8. 설(蔎) (3) +2 12.01.14 579 17 11쪽
22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8. 설(蔎) (2) +1 12.01.14 723 20 11쪽
21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8. 설(蔎) +2 12.01.14 591 7 11쪽
20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7. 동요(動搖) (2) +1 12.01.14 468 11 7쪽
»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6. 장우(長右) (6) + 07. 동요(動搖) (1) +3 12.01.13 471 6 18쪽
18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6. 장우(長右) (5) +2 12.01.12 709 11 9쪽
17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6. 장우(長右) (4) 12.01.12 751 15 9쪽
16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6. 장우(長右) (3) +4 12.01.11 770 14 11쪽
15 일엽편주는 나는듯이 남으로 간다 - 06. 장우(長右) (2) 12.01.11 669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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