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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사냥꾼 주제에 너무 강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뤼필
작품등록일 :
2024.03.04 19:32
최근연재일 :
2024.04.04 23: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868
추천수 :
19
글자수 :
199,410

작성
24.03.31 19:40
조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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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6666666≫ (4)

DUMMY

"이, 이게 무슨 일인가···?"

"그걸 내가 어찌 알아?"

"아니, 뭔놈의 기사들이 이리 많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오?"


옆에서 오가는 멍청한 대화.

그것을 들으며 토니는 마찬가지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조금 전까지 뭐하고 있었더라···?


기억을 되짚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지만, 무시하고 사고를 더 깊게 가져갔다.

차츰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안개 속 교당에서 주인님이 사라졌었어.'


교당에 남아있으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비욘테.

말 그대로 눈앞에서 발생한 증발이었다.

홀로 남은 토니는 고뇌의 시간에 빠졌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악마가 주인님을 붙잡아 간 건 아닐까.

아니, 그런 것 치곤 너무 태연했는데.

누군가에게 말해야 하나.

사제한테 물어볼까.


수많은 고민이 오갔지만, 토니는 결과적으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비욘테가 말한 대로 그저 가만히 교당에 머물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명령이 없었으니까···!


아무 겨를 없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말을 남길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비욘테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비욘테의 성격상 반드시 언급했을 터였다.


그리 결론 내린 토니는 조금 전까지 불타오르던 투지는 갖다버리고 침착히 생각에 잠겼다.

한 달 전 비욘테가 그러했던 것처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생각을 집중하던 토니는 마침내 무언가를 깨닫···기는 커녕, 머리만 더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깜빡-


시야가 멸했다.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감각.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기는 느낌과 함께 사위가 어두워졌다.


눈을 뜨려 했는데 돌이라도 얹은 것처럼 뜨이지 않았다.

주위 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오고 몸도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죽은 걸까···?

이리도 갑자기? 교당이 무너졌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다시 감각이 돌아왔다.

손가락이 까딱이고 물에 빠진 듯 희미하던 소리가 또렷해졌다.


그쯤 눈이 뜨였다.

그렇게 보인 광경은··· 웬 판금 갑옷을 입은 자들이 교당을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교당의 모든 의자와 양탄자 위에 무분별하게 쓰러져 있는 사람들.


"나, 나는 분명 양날 도끼로 스켈레톤의 치골을 박살 내고 있었는데···."

"나도 분명 멍청한 드워프가 머리만 부수면 될 걸 치골을 쳐서 일 두 번 만드는 꼴을 보고 있었는데 말이지."


옆에서 뭐라 떠들건 말건, 토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분주히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저 멀리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주인님의 모습을!


토니의 다리가 우뚝 섰다.

···가 풀썩 주저앉았다.

찧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토니가 웅얼거렸다.


"빌어먹으을."


근육이 덜 풀렸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누워있자니 기사들이 다가왔다.

토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둘 깨어난 사람들이 기사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토니가 고개를 돌렸다.

비욘테는 부단장과 함께 교당의 앞에서 무언가를 살피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만 유독 묵직한 공기가 흐름을 느낀 토니는 끼어드는 대신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와."


외부에는 더 많은 기사가 있었다.

교당을 둥글게 감싼 진형이었는데 사람 한 명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만약 적들의 입장이었다면 암담했을 상황.

다행히 토니는 그들의 적이 아니었다.


토니는 부축받아 나온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섞여 들어갔다.

사람들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인 듯했으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거니 받거니 한들 뭐 알게 있을까?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 전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었다.

안개 속에 있다 돌연 끊기는 감각과 함께 일어난 자들.

정보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고 있자니 잠시 후, 교당에서 한 무리가 빠져나왔다.

유독 기사들이 많이 둘러싸고 있는 무리.


외지인들이 아니었다.

한 달간 마을에 머물며 스쳐 지나가듯 보아왔던 주민들.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눈동자였다.

그때 누군가 명령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포박하라!"


당황한 주민들이 들썩였으나 기사들이 검을 뽑자 즉각 굳어버렸다.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에게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반항하는 건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주민들은 무릎을 꿇고 팔을 들며 포승줄에 줄줄이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대개 참담한 표정이었고 눈물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흐으으음."


이번엔 노인도 드워프의 의문에 반박하지 않는 모습.

토니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주민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다.

모여 있던 육백이 넘는 외지인들이 당혹감에 잠긴 채 고개만 움직여대는데 한 기사가 다가왔다.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의 핵심은 기사단이었다.

의문을 해소해 줄 거란 기대감이 솟구쳤지만··· 기사의 입 밖으로 나온 건 예상 외의 발언이었다.


"모두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십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예,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는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2주가 넘게 이곳에서 기다렸는데요···?"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시오. 우리가 왜 갑자기 교당에 모여 있던 거요?"

"악마가 나타난 건가? 악마의 행방에 대해 알려줘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질문에 등을 돌려 이동하려던 기사가 돌아봤다.

짧게 숨을 내쉰 그는 한마디 덧붙일 뿐이었다.


"악마는 사냥당했습니다."


그리고 홱 돌아가는 모습.

수백 명의 사람이 일제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가운데 누군가가 의문을 흘렸다.


"사냥···당했다고?"


≪6666666≫의 토벌 소식이 처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 * *




유리인 폰 유스트리아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처음 비욘테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었다.

≪6666666≫이 단순히 악마가 아니라 주민들이 가담해 만들어 낸 어떠한 술책일 수 있다는 얘기.

그리고 단순히 추정에서 그치지 않고, 비욘테는 몇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비욘테는 함께 들어간 숲속에서 숨겨져 있던 수레와 목함을 보여줬다.

목함의 뚜껑을 직접 열어본 유리인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유리인도 기억하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분명 악마 사냥 전 교당에서 봤던 얼굴들···.


확인이 끝나자마자 유리인은 마을을 떠났고 며칠 후 기사단에 합류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사단이 성무 수행을 위해 북쪽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부단장인 그녀가 애초에 ≪6666666≫사냥을 위해 홀로 빠져나올 수 있던 것도 멀지 않은 곳에 주둔지가 있었기 때문.


주둔지에 합류한 그녀는 곧장 기사단장을 설득했고, 기존의 계획을 앞당겨 성무를 삼 주 안에 끝마친다면 병력을 떼어주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유리인은 최선두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활약했다.

그 덕분에 약속대로 병력을 받아내는 데 성공,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엔 계획대로 차질 없이 흘러갔고.


'그나마 일어났던 변수라면···.'


교당에서 상급기사 스토큰이 문제를 일으키긴 것 정도.

아마 공이 탐나서였겠지.

다른 무엇도 아닌 ≪6666666≫의 악마였으니까.


하지만 이해하고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유리인은 스토큰의 위치를 재배정시켰다.

현재 그의 역할은 최후열 짐마차의 호위.


상급기사라는 직위를 생각했을 때 모욕적인 위치였다.

그만하면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들에게 충분한 본보기가 될 터.


생각을 끝마친 유리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대열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백여 명.

수풀과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후방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따라오고 있다.

외지인, 주민 전원, 기사들까지 합쳐졌으니 천 명이 넘을 것이다.


"보고된 문제는 없나."


유리인의 물음에 뒤에 있던 기사들 중 하나가 답했다.


"예. 모두 통솔에 잘 따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특별히 도망갈 수 없도록 전원 손과 발을 결속시켜 놓았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증거물은?"

"마을에서 튼튼한 수레들로 징발한 덕에 숲길에도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유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주민들을 건물로 끌고 가 가졌던 면담 시간.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결코 성기사란 직책을 달고 당당히 자행할 만한 짓이 아니었지만.


대상은 수십 년에 걸쳐 살인을 일삼거나 방관한 악인들이었다.

샤문트께서도 이해하리라는 생각에 유리인은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 원하는 정보를 얻어냈다.

마을에서 지금껏 '실종시킨' 사람들이 묻혀 있는 위치.

그곳을 발굴하여 수만 개의 유골을 발견했다.


자그마치 백 년간 저지른 악행의 산물이었다.

전부 가져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것 위주로 수레에 실었다.


이후 인원 재편 및 정비를 하며 하루란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오른 제도로 향하는 길.


유리인은 가는 숨을 내뱉었다.

기사로 살아오며 수많은 경험을 해왔지만, 이토록 갑작스럽고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만 해도 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 거라 생각이나 해 봤는가?

그저 ≪6666666≫의 토벌을 기도하며 왔을 뿐인데.

일이 생각보다 커졌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그리고 그것은 비단 현 상황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제도에 입성하는 순간, 일어날 파장.

그것에 대해 유리인은 여러 생각이 스쳤다.

보상과 업적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악마를 쓰러뜨리고 그 수급만을 들고 가는 길이었다면 거리낄 것 없이 부푼 심정을 안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전혀 상황이 달랐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녀가 보기에 이건 악마가 일으킨 사변이 아니다.

악마와 엮여있긴 하지만, 그보다 너무 많은 인간의 탐욕과 손길이 얽혀 있었다.

유리인의 흰 얼굴에 근심이 드리웠다.


·

·

·


그리고 대열의 뒤편.


"이거 아무래도 그거인 거 맞지?"

"그거요···?"

"그래, 그거 말이야. 그거."


드워프가 토니에게 아는체했다.

하지만 토니는 되물을 뿐이었다.


"그거가 뭔데요?"

"아니 그러니까··· 하, 이걸 내 입으로 말하게 만드네."


드워프가 토니의 귀에 바짝 입을 대고 속삭였다.


"저 주민들 말이야. 쟤네들이 악마랑 한패였다는 거 아니야···?"


드워프가 흘긋 뒤를 쳐다보았다.

토니도 그 시선을 따라 뒤 풍경을 눈에 담았다.

외지인 무리의 최후방에 속하고 있는 그들의 위치 바로 뒤에는 손과 발이 묶인 채 뒤따라오고 있는 수백의 주민이 있었다.


하루 사이 수척해진 채 숲을 터덜터덜 걸어오는 기색들.

확실히 무고한 사람들의 꼴은 아니었으나.

토니는 휘휘 고개를 저었다.


"뭣? 그게 아니야?"


둥글게 뜨이는 드워프의 눈.

토니가 검지를 치켜들었다.


"하나···? 뭔 뜻이야?"


드워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니의 검지가 입에 찰싹 올라갔다.


"물어보지 말라고요."

"왜? 자네 알고 있지 않아?"

"몰라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네 주인이 있잖나···!"


토니는 앞을 보았다.

비욘테의 뒷모습이 보였다.

드워프는 나름대로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비욘테의 귀엔 다 들리고 있을 거다.


"쉬잇, 쉿."


몇 번이고 거절하는 의사에 드워프는 입을 다시더니 관심을 뗐다.

그리고, 옆에서 또 한 명 입을 다시는 이가 있었다.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

그의 귀가 쫑긋 세워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할까 진짜···?'


토니가 생각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하긴. 뭐 한다고 바뀔 이들이었으면 저 나이 먹을 때까지 저러고 있진 않겠지.

그리 결론 내리며 토니는 비욘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누군가를 실은 말이 보조를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실려있는 자는 온몸이 포박된 상태였다.

포승줄에 주박 사슬까지.

둘둘 둘러싸인 데다가 얼굴도 천에 가려져 있었다.


'저러고 제도까지 가는 건가? 고문이네, 거의.'


누구인지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지만, 비욘테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한번 대답하지 않는 걸 두 번 묻는 건 하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었다.

토니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이 행렬의 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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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도 24.04.01 15 0 15쪽
» ≪6666666≫ (4) 24.03.31 12 1 13쪽
25 ≪6666666≫ (3) 24.03.30 13 0 15쪽
24 ≪6666666≫ (2) 24.03.29 13 1 14쪽
23 ≪6666666≫ 24.03.28 17 1 13쪽
22 행동 개시 (3) 24.03.27 14 1 18쪽
21 행동 개시 (2) 24.03.26 14 1 15쪽
20 행동 개시 24.03.25 18 1 13쪽
19 악마의 행방 (3) 24.03.24 15 0 13쪽
18 악마의 행방 (2) 24.03.23 18 0 14쪽
17 악마의 행방 24.03.22 15 0 13쪽
16 안개시리 마을 (4) 24.03.21 12 0 13쪽
15 안개시리 마을 (3) 24.03.20 13 0 13쪽
14 안개시리 마을 (2) 24.03.19 12 0 14쪽
13 안개시리 마을 24.03.18 17 0 14쪽
12 동행 (6) 24.03.16 21 0 15쪽
11 동행 (5) 24.03.15 14 0 17쪽
10 동행 (4) 24.03.14 13 0 12쪽
9 동행 (3) 24.03.13 17 1 15쪽
8 동행 (2) 24.03.12 17 1 14쪽
7 동행 24.03.11 24 1 13쪽
6 고아원 (3) 24.03.09 29 1 15쪽
5 고아원 (2) 24.03.08 29 1 12쪽
4 고아원 24.03.07 40 1 15쪽
3 눈을 떠보니 (3) 24.03.06 56 1 16쪽
2 눈을 떠보니 (2) 24.03.05 89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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