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입니다.

사냥꾼 주제에 너무 강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뤼필
작품등록일 :
2024.03.04 19:32
최근연재일 :
2024.04.04 23: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866
추천수 :
19
글자수 :
199,410

작성
24.03.06 22:40
조회
55
추천
1
글자
16쪽

눈을 떠보니 (3)

DUMMY

후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어두운 방 안을 밝히는 건, 커튼 사이로 짓쳐들어오는 달빛이었다.

창턱에 놓여 있는 작은 화분에 핀 노란 꽃을 바라보길 잠시, 남자의 시선이 바깥을 향했다.

어둠 속 희끄무레 보이는 모든 풍경이 낯선 환경임에도 하늘만은 전에 살던 곳과 같았다.


“하룻밤의 꿈 같구나.”


그는 이전 삶을 반추하고 있었다.

어느새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듯 멀게만 느껴지는 그곳에서 31년을 살았다.

짧다면 짧은, 얼마든 미련이 남아 있을 법한 시간이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이유는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시간을 부여받아도 그 쓰임새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마련.

남자는 지난 자신의 생이 그 누구보다 불꽃같이 타올랐었음을 확신했다.


나이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청소년기.

아무리 좋게 봐도 남들과 비슷하다, 평탄하다 할 수 없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그에게 유일한 행복은 부모님 몰래 모니터 크기만 한 작은 화면 앞에 앉아 테레비를 보는 일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고민할 것도 없이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렇게 매일 관성처럼 애니를 틀고 앉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채널을 옮기다 우연히 보게 된 자극적인 장면.


홀딱 벗은 두 몸, 살덩이가 서로 부딪치는 격렬한 움직임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호기심에 채널을 돌리던 손을 멈췄고, 잠시 후 손에 든 리모콘의 존재마저 잊어버렸다.

일련의 과정을 끝까지 시청한 소년의 손은 비어 있었다.


손가락 마디를 온전히 펴고 있을 수 없었다.

막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소년이 느끼고 있는 것은 몸을 떨게 만드는 전율과 강한 충동이었다.


티비 속에선 글러브를 착용한 두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손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과정에 있었다.


한 선수가 보여준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한눈에 봐도 그것이 무엇을 오마주한 것인지 연상되는 행동들.

소년은 충격을 받았다.


그때껏 그의 삶은 특별할 게 없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연히 파생되는 미숙한 자아, 그로 인한 열등감 형성, 자기 혐오, 비관주의, 절망 등··· 삶과 자존감이 갉아 먹힌 채로 자신의 세계, 티비 속 세상에 틀어박혀 살아왔다.


그런 소년에게 우연히 보게 된 종합격투기의 내용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비춰줬다.

승리한 사람이 자신과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그 취미가 대개 타인에게 자랑할 게 못 됨에도 불구하고 저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당당히 퍼포먼스를 하는 선수의 꿋꿋한 모습에 매료됐다.


그때부터 권투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땀과 피가 섞인 액체가 맨발을 적셔 불어터졌다가 굳은살이 배기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17년 뒤 마침내 어른이 되어 링 위에 선 소년은···.


─한국인 최초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된다.

어찌 보면 진부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

다만, 한 가지 차별점이 있다면 으레 이런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남자의 종장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가장 밝게 빛났던 순간 이후 남은 반년은 희뿌연 수준으로밖에 기억이 남아 있지 않으니 말이다.


목표를 달성한다는 건 다시 말해 목표를 잃는다는 것과 같다.

상처의 근원을 제대로 봉합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 몸과 정신을 몰아붙였으니 언젠가 다시 고름이 터져 나오는 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열의를 잃었다.

비어버린 마음의 공백을 채울 대체재로 술을 택했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술독에 빠져 살던 중 어느 날 잠에서 깨 충동적으로 차를 몰고 나왔다.


희미하게나마 기억나는 건 깜빡 정신줄이 끊겼다는 것······ 그리고, 방향을 잃은 자동차가 가드레일을 뚫고 검푸른 바닷물의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풍경이었다.


“음.”


혼자 죽어서 다행이다.

그런 안도감이 들 따름이지,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미련 없는 삶이었다.

변변치 못하게 스러져 사라질 인생에 트로피 하나가 추가됐을 뿐.

그 이상, 이하의 어떤 의미도 없었다.


“한데 어찌하여 다시 살아난 것인가.”


말투도, 생김새도, 환경도.

전혀 다른 세상의 인간으로 눈을 뜨게 된 건 무슨 운명의 뜻이란 말인가?

삶을 열망했음에도 차마 눈을 감을 수밖에 없던 이는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 어째서 하필 자신인 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두 번째 삶이 주어진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마음 같아선 그냥 미련 없이 포기하고 싶다만.”


품 안에서 남자는 양피지를 꺼냈다.

지면에 빼곡히 적혀 있는 문자를 훑어내렸다.

생판 처음 보는 낯설기 짝이 없는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읽힌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고 발음으로 내뱉을 수도 있었다.


“악마···.”


흐릿한 기억이 조금씩 뚜렷해진다.

비욘테 시발.

자신의 말투부터 사고, 행동,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몸의 원주인.

그가 살아온 일생이, 과거 챔피언을 달성하기 위해 수련하던 것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도 더 고단한 단련의 과정을 거쳐온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가 밟아온 길은 악마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이 세계엔 현현하는 악마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육신은 셀 수 없이 많은 악마의 피를 뒤집어썼다.

양피지에 적힌 내용은 그 일의 연장선이었다.


≪6666666≫.


자신이 사냥해야 할 악마의 이름이었다.

여섯 번째 급수 그중에서 육십육만 육천육백육십육 번째로 대륙에 출몰한 악마.

관련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악마의 위명과 그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제국이라는 나라가 당면한 행사와 거기에 복잡하게 맞물려 발생하는 여러 정치적인 난경까지.


“재밌군.”


이전 삶에서라면 관심도 없었을 얘기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흥미로움을 느끼고 있다.

속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 어떤 의지.

그것은 임무의 완수보다도 악마 사냥에 대한 갈망··· 아니, 악마의 피 자체를 대상으로 한 갈증에 가까웠다.


이것이 그리 오래도록 사내를 고행의 길로 내몬 감정의 원천인 것일까.

나쁘지 않았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음에 들었다.


한가닥 마음에 떨어졌던 불씨, 그것이 화해 만들어진 목표 하나만으로 온몸을 쥐어짜며 고통의 도가니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던 그때가 떠오르는 것 같아서, 도리어 심장이 요동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두 인격 사이에 어떤 결합이 일어났다.

자기 자신보다 열망을 더 중요히 여기며 스스로를 불쏘시개로 삼아 타오르던 두 사람의 공통점이 마침내 타인이란 벽을 허물고 일체화된 순간이었다.




* * *




이른 아침 토니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문이 부서져라 덜컹이고 있었다.


“누, 누구십니까?”

“나다. 문 열어라.”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린 토니가 문을 열자 외투를 걸친 비욘테가 서 있었다.


“1분 주겠다.”

“옛···?”

“떠날 채비하고 튀어나오도록.”


그 말만 남기고 비욘테는 계단을 내려갔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십 초를 소비한 토니는 뒤늦게 몸을 놀려 짐을 쌌다.

오랜 여정 동안 비상 상황으로 단련된 그는 남은 시간 안에 옷을 걸쳐 입고 미리 준비해둔 짐보따리를 챙겨 튀어나오는 데 성공했다.


“제법 빠릿빠릿하군.”

“대, 대체 새벽부터 무슨 일입니까요?”


숨을 가다듬으며 토니는 제 주인의 안색을 살폈다.

말하는 거나 표정이나, 기억이 돌아온 것 같진 않았다.

애초에 긴급할 때를 제외하곤 이렇게 보채는 이가 아니었다.


“가자.”

“네? 이 이른 시간에 대체 어딜···.”

“어디긴.”


비욘테가 걸음을 옮겼다.

성큼 나아간 그가 나무문을 밀며 말했다.


“원피스가 있는 곳이지.”


새벽의 찬 공기와 함께 쏟아지는 여명.

그것을 받아내며 입김을 흘리는 비욘테를 멍하니 쳐다보다 말고 토니는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뭔··· 피스요?”




* * *




토니는 요새 깊은 갈등에 빠져 있었다.

평소 주제 파악을 잘 한다고 여기던 스스로였기에 더 촉발되는 고민.

그는 하인이었다.

하나의 주인을 섬기고 있는 단 한 명의 하인. 그렇기에 충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군말 없이 명을 따른다.


평소라면 고민할 거리도 없는 진리였다.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 하나를 지키기 위해 악마와 부대끼는 여정을 뚫고 버텨온 그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를테면 비상사태였다.


‘주인님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다면 명령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만이 부하의 도리라 할 수 있는가?’


나름 철학적인 주제였다.

만약 악마의 미혹에 빠진 주인님이 자신을 칼로 찌르라고 명한다면 따를까?

절대 그리하지 않을 거다.

비슷한 맥락이었다. 기억을 잃은 주인님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 명령을 내릴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따라야 할까?


평생 해본 적 없는 철학적인 의문에 토니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요새 머리카락을 쥐면 한 움큼씩 털이 빠졌다.


“후우.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뭐, 사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그렇다는 거지.

막상 일이 닥칠 가능성은 적긴 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토니가 창가로 다가갔다.

내려다보이는 뒤뜰의 풍경 속 쇠뇌를 든 비욘테의 모습이 보였다.


표적지는 백 보는 떨어져 보이는 그루터기 위에 놓인 사과.

볼트가 발사됨과 동시에 표적은 산산조각으로 터졌다.


“분명 감각은 기억하시는 것 같은데 말이지.”


이전에 그가 즐겨 사용하던 크고 작은 다양한 도구들.

처음 그것을 달라고 할 때 망설였던 토니였지만, 주인님이 저리 개인 훈련 시간을 보낸 지 어언 열흘이 넘었다.


첫날엔 좀 헤매는가 싶더니 삼 일째부터 본격적으로 감을 잡고 칠일째엔 기존의 실력을 발휘했다.

매일 이동을 거듭함에도 남는 시간에 수련을 멈추지 않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근성이긴 했다.

생각하는 순간 세 개의 수리검이 연달아 그루터기에 박혔다.

정확히 삼각형을 이루는 형태였다.


“애용하시던 전투 방식도 그대로 엿보이고.”


비욘테는 다른 사냥꾼들과 비교해도 사용하는 도구들이 유독 많은 편이었다.

특유의 사냥 방식 때문이었다.

비욘테는 근접전을 선호하지 않았다.

단순히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발생할 일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본인만의 확고한 지론이 있기 때문이었다.


-들개 수준이면 몰라도 곰과 칼을 들고 맞서 싸우는 사냥꾼은 없다. 다가오기 전에 활과 올가미, 갖은 수단으로 발을 묶어 제압하는 것. 그게 사냥꾼의 싸움법이지.


토니는 그런 주인님의 방식에 격렬히 동의했다.

거리를 좁히지 않는 전투 방식으로 인해 악마와의 혈투에서도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일이 현저히 적었다.

동행하는 입장에선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창가 밖을 보라.


부웅, 붕─


어느새 모든 도구를 한 번씩 다룬 비욘테가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손엔 검이 들려 있었다.

독 바른 단도 따위가 아닌 길쭉한 롱소드가 말이다.


“주인님이 기사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토니는 기사란 작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일반 기사가 됐든 성무를 이행한다는 성기사가 됐든.

콧대가 높거나 이상한 철칙에 얽매여 있거나 하는 등 여태 만난 놈들은 죄다 한 군데씩 맛 간 구석이 있었다.


그렇기에 장검을 들게 되면 사람이 저리되는구나 하고 여겨 왔는데 웬걸, 주인님이 그 몹쓸 것을 구해오더니 두 손에 쥐고 연신 땀을 흘리며 휘둘러대는 게 아닌가?


“세상사 아무리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라지만······.”


토니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가뜩이나 기억이 온전치 않은 주인님이다.

비록 무기 숙련도는 다시 깨우치셨다지만 그것이 새로운 무기를 숙련해도 되는 상태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수련을 하며 주인님이 흘리는, 이전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발언들이 토니의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지금 흘리는 땀 한 방울은 미래에 흘릴 피 한 방울과 같다.

-굽힐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포기란 없어. 정진하라.


분명 따지고 보면 뜻깊은 말이긴 하나 매일,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듣고 있자니 어딘가 속이 간질거리고 피부가 달싹이다 못해 오그라들어버릴 것 같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 건지, 아니면 갑자기 주인님의 머릿속에서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라도 발견된 건지 토니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한 올 한 올 빠지는 머리카락을 쥐며 끙끙 앓을 수밖에.


“응?”


애꿎은 손톱을 물어뜯다가 문득 창밖을 내려다보니 비요른이 검 휘두르기를 멈추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복장을 살피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의문이 든 토니는 곧장 여관 홀로 내려와 뒤뜰로 나갔다.


쌀쌀한 공기.

어느새 대화가 끝났는지 비욘테의 맞은편,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괜스레 기웃거린 토니가 비욘테에게 다가갔다.


“누구랑 만나신 겁니까···?”

“먼저 아는 체를 해오더군.”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아니, 내 수련을 지켜보다가 다가오더니 악마 사냥꾼이냐 물어왔다. 소문으로 전해 들은 모양이야.”


악마 사냥꾼은 대륙에 한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륙에서 악마 사냥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비욘테.

악마 사냥꾼들은 그래 봤자 여섯 급수 이하에서만 활동할 뿐. 신성력도 없고 단체에 속하지도 않는 일개 평범한 사냥꾼이 그 이상 간부급 악마를 상대할 순 없었다.


비욘테는 그 통념을 깨고 당당히 300인의 사도에 임명됐다.

역사상 손에 꼽는 신성력 없는 자의 사도 등극이었다.

악마 사냥꾼이란 직업 자체를 이명으로 가져갈 만큼 위대한 업적.


따라서 현재 머물러 있는 곳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작은 도시라 할지라도 비욘테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셨습니까.”


토니는 별생각 없이 수긍했다.

무수한 생채기가 새겨진 그루터기를 보며 대화 주제를 옮기려는데 비욘테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 된다면 들르라는구나.”

“예?”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습니까? 혹시 답은 어찌하셨는지···.”

“가겠다 했다.”


토니가 눈을 끔벅이자 비욘테의 시선이 어느새 작아진 형체를 향했다.


“고아원의 원장이라고 한다. 가서 밥 한 끼 얻어먹으며 대화하다 보면 뭐라도 얻는 게 있지 않겠냐. 기억을 되찾기 위해선 여러모로 외부의 자극이 필요한 법이니.”

“그렇···습니까?”

“그렇다.”


확신 어린 대답에 토니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외부인이라 해도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사도임을 알면서 일부러 건드릴 간 큰 이는 없다.

성무를 이행 중인 사도를 방해하는 건 그 자체로 신성 모독이자 국무 방해죄로 극형에 처해질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현재 발을 보채야 하는 상황인 것도 아니었다.

시기상 중요한 때임은 맞지만, 이번 성무는 빨리 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6666666≫은 특정한 시기, 일정 상황에서만 출몰하는 악마.

그 전에 도착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지금까지 부지런히 달려와 여유 시간이 있었다.

따라서 토니가 여기서 반기를 들 이유는 하등 없었다.

한 가지 찝찝한 것만 빼자면······.


‘저 표정.’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줄줄 이유를 읊어대던 비욘테의 표정.

하나 멀어지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십 년.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세월 동안 함께 동고동락해온 하인이었기에 알 수 있는, 주인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감지해내는 능력이 토니에겐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 촉이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


비욘테의 낮게 깔리며 가늘어지는 눈빛.

그의 눈동자에서 이토록 날카롭게 벼린 서릿발 같은 싸늘함이 흘러나오는 건 항상 두 가지 상황 중 하나일 때였다.

악마를 마주했거나 혹은 마주할 것 같을 때······.

어느새 좁쌀만큼 작아진 고아원장에게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 하고 있는 비욘테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토니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냥꾼 주제에 너무 강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제도 (4) 24.04.04 24 1 13쪽
29 제도 (3) 24.04.03 17 1 13쪽
28 제도 (2) 24.04.02 11 1 14쪽
27 제도 24.04.01 15 0 15쪽
26 ≪6666666≫ (4) 24.03.31 11 1 13쪽
25 ≪6666666≫ (3) 24.03.30 13 0 15쪽
24 ≪6666666≫ (2) 24.03.29 13 1 14쪽
23 ≪6666666≫ 24.03.28 17 1 13쪽
22 행동 개시 (3) 24.03.27 14 1 18쪽
21 행동 개시 (2) 24.03.26 14 1 15쪽
20 행동 개시 24.03.25 18 1 13쪽
19 악마의 행방 (3) 24.03.24 15 0 13쪽
18 악마의 행방 (2) 24.03.23 18 0 14쪽
17 악마의 행방 24.03.22 15 0 13쪽
16 안개시리 마을 (4) 24.03.21 12 0 13쪽
15 안개시리 마을 (3) 24.03.20 13 0 13쪽
14 안개시리 마을 (2) 24.03.19 12 0 14쪽
13 안개시리 마을 24.03.18 17 0 14쪽
12 동행 (6) 24.03.16 21 0 15쪽
11 동행 (5) 24.03.15 14 0 17쪽
10 동행 (4) 24.03.14 13 0 12쪽
9 동행 (3) 24.03.13 17 1 15쪽
8 동행 (2) 24.03.12 17 1 14쪽
7 동행 24.03.11 23 1 13쪽
6 고아원 (3) 24.03.09 29 1 15쪽
5 고아원 (2) 24.03.08 29 1 12쪽
4 고아원 24.03.07 40 1 15쪽
» 눈을 떠보니 (3) 24.03.06 56 1 16쪽
2 눈을 떠보니 (2) 24.03.05 89 2 19쪽
1 눈을 떠보니 +1 24.03.04 250 1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