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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사냥꾼 주제에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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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필
작품등록일 :
2024.03.04 19:32
최근연재일 :
2024.04.04 23:5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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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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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199,410

작성
24.03.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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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고아원 (2)

DUMMY

얼마간 고아원에 머무르겠다는 통보를 듣고 토니는 당혹스러워했다.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

그 모습을 보며 비욘테는 깨달았다.

토니는 악마의 흔적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에 반해 자신의 신체는 어떠한가?

의식하든 안 하든 희미한 악마의 냄새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반응한다.

처음 원장을 만나러 오게 된 연유도 그러했다.

평소라면 그냥 스치고 지나갔을 인연.


하지만 그 짧은 만남 동안 비욘테는 냄새를 맡았다.

아주 흐릿했으나 명확한 악마의 냄새였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미 고아원에 들르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고아원에 도착해 한 바퀴 둘러보면서 비욘테는 계획을 수정했다.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어차피 토니가 말하기로 도착까지 시간 여유가 있다 했다.

되도록 속전속결로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은 여전했으나 깔끔한 매듭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썩은 부분을 잘라내는 것만이 아닌 근본적인 원인을 끄집어 도려내는 것.

그것이 이번 방문의 목표였으니까.

그렇게 고아원에서 지낸 지 이틀째.


“어이잇, 이놈들 봐라!”

“푸하하핫!”

“여기, 여기거든요!”

“꺄악! 온다아! 바보 아조씨 오온다!”


언덕 위에 앉은 채 비욘테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들판에서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토니와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공간 제약이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날렵했다.

주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애먼 잔상을 휘어잡는 토니의 몰골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깔깔, 꺄르륵-


먹구름 가득 낀 흐릿한 하늘마저 밝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걸 보면 유소년기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엔 어떤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하늘에서 뚝 방울이 떨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더니 장대비가 되었다.


몰이 당하는 양처럼 건물 안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비욘테는 턱을 움직였다.

입에 물려 있는 긴 풀대가 따라 움직였다.

세찬 비가 후드를 때렸다.




* * *




그날 밤.

장대비가 그칠 줄 모를 폭우가 되어 야음을 적시고 있는 가운데, 건물 외곽에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문득문득 새어 나오는 말소리.


“이 새끼가···!”

“똑바로··· 안 해?”

“말로 할 때··· 제대로 하란 말이야!”

“병신 같은 새끼.”


각기 다른 목소리가 한마디씩 이어질 때마다 둔탁한 단음이 사이사이에 섞여 나온다.

그것은 무식하리만치 단순하고 일률적인 음색이었다.


퍽─

퍽─

퍽─

퍽─


소리에 맞춰 어둠에서 움직임이 인다.

서 있는 형체들의 거리낌 없는 손놀림과 발놀림.

누워 있는 형체의 반사적인 움찔거림.

이외의 움직임은 없다.

적어도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번에 말했었지? 빵 못 빼돌려오면 그땐 너 죽고 나 죽는 거라고.”


서 있는 아이 중 가장 덩치 큰 녀석이 말했다.


“야, 내 말이 좆으로 들리냐? 요 며칠 안 맞으니까 살만하디? 꼭 너같이 노예근성 있는 새끼들이 그래. 매를 때리면 빌빌 기다가도 안 맞으면 금세 자기가 잘난 줄 안다니까.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려 들지. 그럼 주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씨익, 어둠 속에서 입꼬리를 올린 놈이 발을 들었다.

퍼어억!


“짓밟아야지. 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흐흐.”


복부에 제대로 발이 꽂혔음에도 반응은 없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죽은 듯 고요한 몸뚱이에 무리 중 대장을 자처하는 녀석이 코웃음을 흘렸다.


“죽기라도 했냐?”

“움직임이 없는데···?”

“···진짜 죽은 거 아냐?”


옆에 있는 소년들이 수근거렸다.

조금 전까지 거들던 것도 잊어버렸는지 금세 두려움에 질린 기색이었다.


“닥쳐. 죽으면 죽은 거지. 바, 바퀴벌레 한 놈 사라진다고 뭔 일 일어나냐?”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장 소년이 발을 움직였다. 툭툭 누워 있는 형체를 건들자 미약하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이놈이 그리 쉽게 뒤질 리 없지. 다음번에 진짜 죽기 싫으면 앞으로 잘해라 응??”


그리 말하며 대장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어둠 속에 떠맡기려는 듯 재촉하는 발걸음이었다.


그렇게 소년들의 기척이 떠나간 자리.

쏟아지는 빗소리를 제외하고 현장에 감도는 건 침묵뿐이다.

목격자인 달빛과 별빛은 말이 없다.

그리고 그건 지붕 위에 나앉아 있는 인형人形도 마찬가지였다.




* * *




제론은 눈을 떴다.

주위에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자 짙은 어둠이 깔린 방 안이 보였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아니 현실과 다를 게 없는 광경이었지만 제론은 알았다.

이것이 꿈의 일각임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어느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고아원의 소년들은 공동 수면실에 모여 함께 잠든다.


벽을 따라 늘어선 침대 네 구.

그곳 앞에 멈춰 선 제론이 누워 있는 얼굴을 살폈다.

개중 가장 구석에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커튼 사이 창문을 통과해 쏟아지는 성망이 자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밝혔다.


쿠울-


제론은 손에 쥐여 있는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나 갑자기 손아귀에 들어와 있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꿈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하룻밤의 신기루.


그렇기에 소년은 손을 들어 올린다.

반짝.

빛을 받은 날붙이의 몸체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제론은 그것을 역수로 쥐었다.

손을 내리찍으면 그걸로 끝이다.


가슴팍을 뚫고 들어간 날붙이가 울컥울컥 피를 솟구치게 만들 거다.

그렇게 되면 매일 노려보는 시선이 사라지겠지.

온몸을 멍들게 만드는 손찌검과 발차기도 멎겠지.

저주를 퍼붓는 입이 닫히고 나이대에 비해 거대한 몸뚱이가 버려진 봉제 인형처럼 생기를 잃을 거다.


─죽인다.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오래도록 소년이 참고 외면해온 충동이었다.

살의. 살심. 살육.

팔이 움직였다.

붕!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 손.

그러다── 멈췄다.

목표물로 한 가슴팍 위에서 날붙이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희미한 정신. 기이한 일이지만 꿈속 세계에서 꿈속의 것처럼 느껴지는 어떤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지낸 나날이었다.

삶의 첫 기억부터 그는 고아원에 있었다.

형과 누나들이 있었고, 제법 두 발로 뛰어다닐 수 있게 될 때는 동생들도 생겼다.


그중 다섯 살을 앞두고 있는 막내가 떠올랐다.

아침 식사 당번으로 먼저 기상할 때면 언제나 따라 일어나는, 칭얼대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귀여운 동생···.


-동생들은 건들지 마.

-쟤 뭐라는 거냐? 우리 고아원 전통 모르냐? 너는 이제 끝났어.

-더 이상 그만둬, 때리는 거.

-하, 이 새끼 봐라. 네가 저놈들 몫까지 다 처맞으려고?

-그러던가.

-병신이.


전통은 지랄.

그저 힘세고 덩치 큰 놈들이 화풀이할 곳을 찾는 악습에 불과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라면서 본 게 있었기에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길어봤자 반년만 버티면 된다는 걸.

시간이 되면 아래 동생에게 차례는 넘어간다.

그렇게 이유 없는 폭력에서 해방된다.


지옥을 버텨낸 자들은 하나같이 방관자가 됐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긴 죽어도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론은 달랐다.

이 지옥 같은 기억을 동생들에게 이어줄 생각은 없었다.

홀로 저항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수를 상대로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력감을 맛봤다.

지옥이 이어졌다, 수년간.


······.


제론은 칼을 거뒀다.

그의 발걸음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몽롱한 세계. 흔들리는 주위 풍경과 익숙한 복도의 모습.

유독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나무문을 조심스럽게 연 후 안으로 들어간다.


쪽문이 열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침대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베개 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원장님···.


피로한 기색으로 잠들어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제론은 속삭인다.

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귀가 먹먹했기 때문이다.

그저 속마음을 되뇌듯 그는 읊조렸다.


고아원은 지옥이에요···.

당신은 천국을 소망하지만 아이들은 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당신은 악마를 미워하지만 아이들은 악마가 되고 있어요.

당신이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면 지상은 누가 살피죠?


제론은 속에서 격렬히 요동치는 감정을 느꼈다.

뜨거운 파도의 정체는 원망이었다.

제론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무리를 미워했다.

하지만 그보다 상황이 이리될 때까지 자신들을 방치한···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그럴 힘이 있음에도 우리들에게 관심을 저버린 당신이 더 미웠다.


한마디 말이라도 해줬으면··· 시선이라도 줬으면··· 몰랐을 텐데.

원장은 그러지 않았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눈에 천을 묶은 채 자신의 방에 갇혀 살았다.


속이 울렁였다.

역겹다. 소년이 느끼는 것은 역겨움이었다.

그리고 원망과 뒤섞인 역겨움은 기름에 던져진 불처럼 뜨거운 감정을 배출했다.


삽시간에 솟구친 화마가 온몸을 지배했다.

소년이 채 깨닫기도 전에 하늘 높이 들린 손이 떨어졌다.

날붙이가 공기를 가르며 하강한다.

맥없이 혹은 맹렬하게.

감겨가는 의식 속에서 소년은 원장의 몸에 거의 다다른 손을 바라보았다.


─죽인다. 죽인···.


···다?

손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당혹감에 물들어 들리지 않는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채앵!

어디선가 날아든 강한 충격이 날붙이를 벽으로 날려버렸다.

동시에 어둠 속 원장의 눈이 부릅 뜨였다.


“허, 허어어억! 샤문트여!! 살려주소서어억!!”


이불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와 바닥을 기어가는 모습.

소년은 당황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명백한 살해 시도.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

그것도 자신을 거둬준 고아원의 원장님을.


소년은 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함을 느꼈다.

하나 그리 생각하는 동안에도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날붙이를 향해서였다.


'왜···?'


의문은 통하지 않았다.

몸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날붙이를 손에 쥐었다.

원장을 향해 달려갔다.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흐, 흐아아악! 살려줘어억!!”


원장이 손을 휘저었다.

날붙이와 인접한 거리에서 움직이는 손가락 한마디 한마디가 위태롭게 비친다.

소년이 고함쳤다.


'그만··· 제발 멈춰!'


피를 토하듯 외쳤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누가 차라리 자신을 죽여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상황을 멈춰주면 좋겠다.

그리 강렬히 비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거친 손길이 어깨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봤다.

짙은 어둠, 하나 왜인지 뚜렷하게 보이는 시야로 그곳을 응시한 순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악마야.”


사내가 말했다.

자신을 악마라 불렀다.

하지만 소년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 더 뇌리를 장악하는 건, 술렁이는 감정이었다.


분명 인간의 형상이었음에도. 어제오늘 수차례 봤던 얼굴의 윤곽이었음에도.

이전에 봤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심장을 두드리고 뇌를 장악하고 있었다.

전신의 피부를 표표히 찌르는 압도적인 기세.

그로부터 느껴지는 건 숨 막히는 공포였다.


원초적인 본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아득한 두려움. 살고 싶은 욕망, 욕구. 그 모든 것이 결합해 한 가지 음성으로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아악─!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라곤 믿기지 않는 소름 돋는 소리.

하지만 사내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속이 뒤집히고 토악질이 쏠렸지만, 소년은 눈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짜내 응시했다.


─너, 는 누구냐.


소년의 입이 말을 뱉는다.

사내는 무심히 답했다.


“악마들의 악마다.”


거기까지가 소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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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6666666≫ (4) 24.03.31 11 1 13쪽
25 ≪6666666≫ (3) 24.03.30 13 0 15쪽
24 ≪6666666≫ (2) 24.03.29 13 1 14쪽
23 ≪6666666≫ 24.03.28 17 1 13쪽
22 행동 개시 (3) 24.03.27 14 1 18쪽
21 행동 개시 (2) 24.03.26 14 1 15쪽
20 행동 개시 24.03.25 18 1 13쪽
19 악마의 행방 (3) 24.03.24 15 0 13쪽
18 악마의 행방 (2) 24.03.23 18 0 14쪽
17 악마의 행방 24.03.22 15 0 13쪽
16 안개시리 마을 (4) 24.03.21 12 0 13쪽
15 안개시리 마을 (3) 24.03.20 13 0 13쪽
14 안개시리 마을 (2) 24.03.19 12 0 14쪽
13 안개시리 마을 24.03.18 17 0 14쪽
12 동행 (6) 24.03.16 21 0 15쪽
11 동행 (5) 24.03.15 14 0 17쪽
10 동행 (4) 24.03.14 13 0 12쪽
9 동행 (3) 24.03.13 17 1 15쪽
8 동행 (2) 24.03.12 17 1 14쪽
7 동행 24.03.11 23 1 13쪽
6 고아원 (3) 24.03.09 29 1 15쪽
» 고아원 (2) 24.03.08 29 1 12쪽
4 고아원 24.03.07 40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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