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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몹
작품등록일 :
2020.09.11 20:51
최근연재일 :
2020.09.28 16:34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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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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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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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3)

DUMMY

“잘못들었습니다?”

“뒤로 나오세요!”


고운 여성의 목소리.

‘지옥의 멧돼지’란 놈의 포악한 모습과 정반대인 다급함에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했지만 정말이었다.


당연히 도망칠 줄 알았던 아까의 무리가 내 뒤로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단체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게 따로 맞춘 건가 싶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가야.”

“네?”

“이리온.”


내게 뭐라 외쳤던 여자가 갑자기 지옥의 멧돼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다정하게. 사랑이 넘치는 얼굴로.


미친 여자인가? 사실 이런 세상에서 미친 사람이 등장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만. 그럼에도 난 분홍색 너디 트레이닝복의 그녀를 만류했다.


“얼른 도망치세요! 지금 뭐하시는···”

“아니, 가만히 있으십쇼! 찬희야, 뭐하냐 얼른 안 잡고!”


반대로 그런 나를 막아서는 남자 둘.


“이 사람들이 미쳤나! 이거 놔요! 다들 죽고 싶어?”


그들의 손이 내 몸으로 향하는 걸 본 나는 본능적으로 가방과 검을 움켜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다가올 괴물의 공격에 잔뜩 움츠린 상태였다.

그런데 이어서 들려온 불쾌한 소리는 지옥의 멧돼지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나온 소리였다.


“아하하!”

“큭큭··· 이건 언제봐도 안 터질 수가 없어.”


천천히 고갤 돌려보니 남자 셋, 여자 둘로 이루어진 일행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와 눈이 마주친 다른 여자 하나는 웃음을 참다 고개를 돌려버리기까지 했다.

그들의 뒤로는 조금 전만 해도 길길이 날뛰던 멧돼지 하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춰 서 있었고.


잠시 벙쪘던 난 상당히 그들이 불쾌했다. 대놓고 면박 주는 것 아닌가.


“뭘 어떻게 한 건지 설명이라도 좀 해주시죠.”


그러자 일행 중 유일하게 무표정을 유지한 남자 하나가 입을 열었지만, 그의 말은 내가 아닌 자신의 일행들에게 향한 거였다.


“정신 차려. 쿨타임 몇 분 안 남았어.”

“경찬 형 말이 맞네. 지옥의 멧돼지한테 잘못 걸리면 진짜 죽음이라고.”

“아, 이번엔 너무 웃겨서··· 얼른 가자.”


아무래도 경찬이라 불린 남자가 이 무리의 리더인 듯 싶었다.

유일하게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던 데다, 그를 제외한 남녀 무리가 그의 말에 따라 서둘러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건 말건 난 정신이 없었다.

눈에 뭐라도 씌인 것처럼, 시선의 하단엔 아까 뜬 창과 같이 푸르고 투명한 아이콘들이 즐비해있었으니까.


“이건 또 다 뭐야···”


얼마 전 상용화된 스마트 렌즈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끼고 있을 리는 없고. 아무리 눈을 깜빡거려도 그것들은 사라질 기미조차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지옥의 멧돼지’인지 뭔지 하는 것에게 검을 휘두른 이후부터 나타났다는 거다.


“저기, 형도 따라오시라는데요.”


일행에게서 벗어나 내게 다가온 앳된 남자가 말했다.

초록색 너디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의 이름은 김찬희.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상당히 앳된 외모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고등학생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따라갔다간 희생양이 되는 게 흔한 클리셰다. 내 가방에 있는 식량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섣불리 말을 들었다간 큰코 다칠 게 뻔했다.

이런 내 생각을 간파한 듯 찬희가 덧붙였다.


“형 가방 속에 든 것 땜에 그러는 거 아니니까 안심해요. 우리도 먹을 건 많아요.”


만약 찬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야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집에 있어봤자 인터넷도 안 돼, 먹을 것도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지니까.

정보를 얻는 편이라면 이쪽을 따라가는 게 낫다.


하지만 아까 보았던 여자의 능력은 너무 위험하다. 새삼 ‘아가야, 이리 온’을 떠올리자 닭살이 돋으면서도 긴장이 됐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묻는 내 말에 찬희는 주머니 속에서 초콜릿 몇 개를 꺼내 보였다.


“위험한 세상이잖아요. 그냥 인력 하나 더 얻자고 데려가는 걸 거예요.”

“어디로 가는 건데?”

“우리 아지트요. 에이마트. 가기 싫음 말구요.”


찬희는 나를 재촉하며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리 멀지도 않고, ‘아지트’란 말에서 꽤 의미심장한 뉘앙스가 풍긴다. 오래 지낸 모양이다. 꼴랑 이틀이 지난 게 아니다.


그럼 내가 보낸 이틀은 뭔가?


그들에게서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라도 들어야겠다 싶어 어쩌면 당연한 결정을 내렸다. 앞서가는 찬희 옆으로 부서진 분수대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잘 하는 게 맞나 싶다.


“야, 같이 가.”


*****


찬희의 말대로 에이마트 가장 윗층은 이 자들의 아지트이자 베이스캠프, 집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최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 셋과 여자 둘로 이루어진 일행은 캠핑 도구를 파는 매장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내게 알 수 없는 이야길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아무 예고도 없이 산과 바다, 강과 들판에서 나타난 괴물들이 도시를 덮쳤고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은 그것들에 의해 죽거나 잡혀갔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힘을 합쳐 싸워보거나 탈출하려다가도 죽음을 맞기 일쑤였고, 집에서 칩거하던 자신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게임에서나 보던 반투명한 창들이 나타났다. 각자 다른 기회로 그걸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들이 고유한 직업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며칠 전 내가 본 날개 달린 괴물? 그건 와이번이다.


예진 씨가 ‘아가야, 이리 온’하고 지옥의 멧돼지를 몇 분 동안 마비 상태에 빠뜨린 것도 다 그녀의 직업이 ‘강령술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머지 인물들은 전사나 궁수 같이 평범한 직업이라 예진 씨가 보물 같은 존재라나 뭐라나.


그러나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도저히 웃을 요량이 생기지 않았다. 나 역시 와이번이나 지옥의 멧돼지가 진짜란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지옥의 멧돼지가 뿜던 불꽃이 아직도 생생했다.


문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일어난 지 벌써 두 달이나 흘렀다는 것이었다. 이틀이 아니라, 두 달이라니.

내 휴대폰 화면에도 두 달이 지난 날짜가 천연덕스럽게 표시되고 있었으니 이들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그럼 내가 미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이해가 안 돼요. 분명히 이틀 전만 해도 이 근처에서 친구들이랑 술을 마셨는데···. 땡벌포차에서요.”

“아아, 땡벌포차! 거기 안주가 진짜 맛있지.”


아쉬운 듯 끼어든 형주가 말을 이었다.

그는 나와 동갑으로, 일행의 리더인 경찬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인데, 그것도 요즘은 비일비재한 일이니까 그냥 적응하는 게 좋을 거야. 찬희도 한 달 째 자기 집이 어딘지 기억을 못하고 있어서.”

“집을 기억 못 한다고?”

“깨어나보니까 여기였다고.”


형주의 말에 방금 전까지 자신의 직업은 전사라고 자랑하던 찬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매장 안의 낚시대를 만지작거리는 게 영락없는 애의 손짓이었다.


“부모님도 기억 못 하고?”


끄덕.


“경찬 형이 데려왔어. 검은 독거미한테 물리려던 걸 구해왔다던데.”


어째서인지 미소 띤 형주의 모습에서 난 순간적으로 이질적인 기분을 느꼈다.


왜지?


곧바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일행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깨달았다. 뜬금없이 든 생각 때문이었다.


‘어떻게 찬희 빼고 하나같이 다 관상이 별로냐···’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스승님이 직접 옆에 두고 관상학을 가르친 경우였다.


괴로운 팔자였다.


처음엔 이런저런 용어와 책으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는 게 그다지 재미도 없었다가, 학교를 다니면서 마주치는 어른들이 기이하게도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것과 같은 언행을 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자꾸만 관상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는 스스로를 발견한 순간부터 스승님께 ‘관상학 거부 선언’을 했던 나였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을 떠올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구려.’


선한 눈으로 보이지만 어딘가 어색한 형주의 눈동자는 심한 삼백안(三白眼)이었다. 눈동자 양 옆 뿐만 아니라 아래 흰자위도 또렷이 보이는 삼백안. 자존심이 강하며 목표를 높게 두는 성향이 있지만 잘못될 경우 악인이 될 가능성도 큰 눈이다.


오랜만에 한 번 관상을 보기 시작하자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다.


형주의 입은 눈에 띌 정도로 작았으며 윗입술은 심하게 굴곡이 져 웃고 있는 인상을 주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미소 짓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입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줄곧 말이 없던 예진 씨는 자꾸만 자신을 향해 곁눈질을 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내려다보는 것 같은 모양새가 영 수상한 느낌을 주었다. 자세히보니 입술에 주름 하나 없는 것이 ‘이기적이며 계산적이기 그지 없다’는 책 속의 문장들을 절로 떠오르게 했다.


이어서 서희 씨의 분석하려던 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또 다시 사람을 풍채만으로 판단하려 한 내 모습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스치듯 관상을 본다는 것부터 위험한 일이었고.


그러나 이어서 말을 건네는 경찬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잃었다.


“이청준이라고 했나? 직업은?”

“직업이요?”

“우리 쪽에선 당장 내일부터 함께 있기로 한 만큼 알아야 하는데. 그쪽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 줄도 모르고.”

“···”


어떻게 사람 동공이 저렇게 작을 수 있을까. 너무나도 완벽한 사백안이었다. 어떻게 해도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눈. 실제로 마주치기 어렵기도 어려운 인상에 당황하던 찰나, 서희가 그를 거들었다.


“맞네, 그 중요한 걸 왜 지금까지 안 물어봤지? 너무 궁금한데···”

“형 직업 뭐예요?”

“직업은 백수예요.”

“장난하지 마시고요. 상태창에 나오는 거 말예요.”

“아.”


상태창을 연 나는 깜짝 놀랐다. 모니터 속에나 존재하던 것들이 내 눈앞에 떠올랐으니까.


[이청준]

힘: 2 민첩:4 운: 1 내구:1 마력 :3


[특성]

-바람을 즐기다 : 미풍을 부릴 수 있는 능력.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다


···뭐야 이게.

너무나도 무성의한 이름과 설명에 할 말을 잃은 나를 찬희가 보챘다.


“아, 혀엉.”

“어··· 전 직업이 안 나오는데.”

“뭐?”

“직업이 없는데요?”

“에이, 농담하지 마시고. 아까 검 들고 있었잖아.”


진짠지 긴가민가 한 듯한 형주에게 나는 답했다.


“진짜 직업이 없다고 나오는데?”


할 수만 있다면 내 상태창을 직접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당황하는 그들의 모습에 어딘지 모르게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그,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으신 거죠? 아까 분명 멧돼지를 공격하셨었잖아요.”

“이건 저희 스, 아니 아버지께서 집에 두셨던 걸 혹시 몰라서 들고 나온 건데요. 공격은··· 그냥 예전에 검도 학원 다녔던 것 가지고 해 본 거구요.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둘러댈 때 흔히 하는 변명이었다. 검도 학원이라니. 얼마나 좋은 변명인가?


“그럼 형, 기술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렇지.”

“특성은?”

“바람을 즐기다?”

“에이···”


잔뜩 실망한 찬희의 말에 동조하는 일행들이었다.


“직업도 없고 기술도 없다···. 이런 경우도 있군.”

“하긴 우리도 두 달 동안 우리끼리만 있었으니까 모든 걸 다 알 순 없죠? 아무래도.”

“그래도 특성이 하나 있긴 하네.”

“특성 하나로 이런 세상에 어떻게 살아남았지?”


안쓰럽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희 씨의 눈빛을 나는 외면해버렸다. 자기들도 두 달밖에 안 돼서 기술도 몇 개 없다더만.


“집은 어디지?”


줄곧 침묵을 지키던 리더 경찬의 물음. 그 말에 갑자기 조용해지는 일행들의 모습에 분명 뭔가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동시에 왠지 밝히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게···”


‘관상 나쁜 놈들한테 함부로 기대지 마라!’

스승님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한 느낌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 갑자기 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 정신 차려보니 건물 근처였어서.”

“···”


정적을 깬 건 막내 찬희였다. 갑자기 반가운 얼굴로 그 애가 말했다.


“이제부터 설거지는 형이 하는 걸로 해요.”


작가의말

요주의 인물 김원춘... 그의 최후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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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3) +1 20.09.25 66 3 12쪽
14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2) 20.09.24 35 1 11쪽
13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1) +2 20.09.23 32 1 11쪽
12 어딜 가나 파벌 싸움 (3) +2 20.09.23 39 2 11쪽
11 어딜 가나 파벌 싸움 (2) 20.09.22 46 1 11쪽
10 어딜 가나 파벌 싸움 (1) +2 20.09.21 45 2 13쪽
9 헌터로 살아가는 법 (5) +2 20.09.20 47 3 14쪽
8 헌터로 살아가는 법 (4) +4 20.09.19 52 3 12쪽
7 헌터로 살아가는 법 (3) +2 20.09.18 58 3 12쪽
6 헌터로 살아가는 법 (2) +4 20.09.17 90 4 11쪽
5 헌터로 살아가는 법 (1) +4 20.09.16 112 4 13쪽
4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4) +1 20.09.15 125 3 12쪽
»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3) 20.09.14 140 2 13쪽
2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2) +2 20.09.12 174 4 13쪽
1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1) +4 20.09.11 290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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