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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글장이

세상을 파는 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2,299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5.10.26 12:43
조회
305
추천
5
글자
21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3)

DUMMY

시간은 뒤로 돌아가서 다시 그 날 오후.


루프를 급하게 허둥대게 만든 장본인 이리나드는 루프와 라키안과는 별개로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루프 때문에 싱숭생숭한 마음탓도 있었지만 어찌됐든간에 그녀는 이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원래 알콩달콩한 사람사는 모습 보는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는 여행중 들르는 마을마다 이렇게 꼭 시장거리 순회를 하곤 했다. 돌아다니는 중에 쏟아지는 뭇 남성들의 탄성어린 시선들은 덤이었다. 그 모든것을 그녀는 즐겼다.


또한 그녀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여튼 그런 그녀가 오늘도 어김없이 헨빌의 도심을 스스럼없이 걷고 있었다. 푸른눈이 맑게 반짝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수많은 남성들의 시선이 쏟아지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여성들의 독기어린 시선역시 몰려들었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술술 풀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란건 결국 이정도였던 것이다.


'아아~ 이 우월감.'


그녀의 생각 그대로 그녀가 느끼는 우월감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큰 여가거리였다.


기분이 매우 나아지자 그녀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눈을 질끈 감고 팔을 하늘로 쭉 뻗고 다리를 길게 늘인다. 도로 한복판에서 기지개피는 모습조차도 예술같은 그녀 때문에 주변에서 남성들의 '헉'소리가 심심찮게 터져나왔지만 역시 이리나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출출하네... 루프 때문에 아침도 못먹고 도망치듯이 나왔잖아. 뭐라도 좀 먹을까?'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났더니 문득 몰려오는 허기에 이리나드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배가 고플 때마다 그녀는 감사한다. 눈을 붉게 빛날지언정 보통 사람과 똑같이 배도 고프고 졸리기도 하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그녀에게는 인생을 받쳐주는 큰 힘이 되고는 했다.


때문에 그녀는 허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그냥 놔두는 것 또한 좋아하지 않았다. 배가 고플땐 먹어라! 아무리 먹어도 안찌는 그녀만의 특권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띈것은 다름아닌 사과장수였다. 작은 손수레 가득이 가지각색의 사과를 올려놓고 팔고 있는 그녀는 기껏해야 서른 조금 넘어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발언저리에는 열살 남짓 되어보이는 어떤 소녀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손가락을 쪽쪽 빨으면서 서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딸같아 보인다. 장사하는 곳에 딸을 데리고 나오는 상인은 흔치 않기 때문에 이리나드는 조금 흥미가 동하는 것이었다.


"어서오세요. 오늘 사과가 아주 좋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온화했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만큼이나 사과 손수레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향기도 굉장히 강했다. 이리나드는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도는것을 느끼고는 행여나 침이 흘러내릴까봐 조심하는 것이었다.


좌판은 낡은 손수레였지만 그 안은 주인의 성격을 반영이라도 해 놓은듯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각각 다른 종류의 사과로 보이는 빨강, 노랑, 초록 등등의 여러가지 색으로 예쁘게 반짝거리는 싱싱한 사과들이 색깔별로 맵시있게 정리되어 있었다. 보기만 좋을뿐 아니라 사과 특유의 단내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후각을 자랑하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고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리나드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다.


"우와아~ 향기가 너무 좋아요."


사과장수 여인은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주변에서 많이 못보던 얼굴이시네요. 여행자이신가봐요?"


이리나드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서도 차분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정갈했다. 이리나드는 묘한 호감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예."


"그럼 이 마을에 들어오시는 길에 성벽 밖으로 넓게 펼쳐진 과수원을 보지 못하셨나요? 저희는 아침마다 그곳에서 싱싱하고 갓 딴 사과를 가져온답니다. 아마 향기만큼이나 맛도 좋을 거에요."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이리나드는 작은 주먹으로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이 마을에 오기까지의 여정에서 루프와의 그 뭐랄까... 묘한 분위기 때문에 주변을 잘 관찰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이었다. 그 때는 대판 싸우기 전이었지만 여튼간에 랭스턴을 떠날 때의 스킨십 때문인지 루프를 평범하게 대하기가 영 어려웠다. 그 덕분에 형형색색의 사과가 열려있는 과수원을 구경하지 못하다니 손해가 막심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아아~ 그 때 제가 너무 정신이 없었어서 못봤나봐요. 너무 아쉽네..."


눈에 띄게 아쉬워하는 그녀를 위해 여인은 다시금 방긋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이 곳 헨빌은 굉장히 독특한 기후를 가지고 있대요. 그래서 원래라면 같은 땅에서는 자랄 수 없는 종류의 사과들이 다 같이 자랄 수 있는 천해의 사과 경작지라고들 하죠. 헨빌의 사과는 유명해요."


"우와아, 그랬구나! 어쩐지 신기했어요. 저렇게 많은 종류의 사과가 있다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한 번 맛봐도 괜찮을까요?"


이리나드의 넉살에 여인은 흔쾌히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럼요. 여기 이거 한 번 먹어 보아요, 예쁜 아가씨."


"에헤헷, 감사합니다~."


여인은 거리낌없이 그 자리에서 작은 과도를 꺼내 알이 빨알간 사과 한알을 슥슥 깎아내었다. 거의 껍질이 투명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의 사과깎기였다. 이리나드는 그것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껍질 근처의 살도 과즙이 풍부해서 맛있어요. 굵게 깎아서 버리면 아깝잖아요?"


이리나드가 입을 헤벌리고 자신을 쳐다보자 여인은 슬그머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사과 껍질을 다 벗긴 후 먹기좋게 잘라서 이리나드에게 한 조각을 건넸다. 그리고 그녀의 무릎마치에서 말똥거리는 눈으로 '나도 줘!'를 연발 외쳐대는 그녀의 딸에게도 한 조각을 주었다. 살짝 코에 가져다 대보니 달콤한 향기가 너무나 유혹적이다. 이리나드는 천천히 사과조각을 입에 넣었다.


아삭! 씹는 그순간 입안 가득 퍼져나가는 풋풋한 사과의 향기. 혀의 모든 미각기관을 자극하는 단맛과 풍부한 과즙의 향연이 그녀의 입안에서 벌어졌다. 지금까지 그녀가 먹어봤던 모든 사과들 중 단연 최고의 맛. 솔직히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한 맛의 사과였다.


"정말 맛있네요."


그녀는 딱히 마땅히 갖다 붙일만한 다른 미사여구를 찾지 못해서 그냥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사과장수 여인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다시금 방긋 웃을 뿐이었다.


"이거 얼마에요?"


"색별로 가격이 조금씩 달라요. 방금 아가씨가 먹은건 이 중에서도 특등품이라서 3개에 1셀링. 나머지는 10개에 1셀링 하는 것도 있고 5개에 1셀링 하는 것도 있고 그래요. 뭘로 살거에요?"


루프가 들었다면 기절초풍할 정도의 사과값이었지만 이리나드는 담담히 반문했다.


"셀링단위로만 파나요? 루셀링은?"


"셀링단위로 사시면 조금 더 싸고요. 루셀링으로 사면 방금전 빨간건 하나에 4루셀링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럼 이 빨간걸로... 에... 3개만 주세요."


"그래요."


이리나드는 갯수를 말하는 대목에서 잠시 주춤거렸다. 이걸 잔뜩 사다가 일행을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라키안이나 블래냐, 와이트랑에게 악의는 없지만 (아니 있기는 하지만 뭐 그건 그렇다치고) 어째선지 루프를 생각하자 별로 사다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사다주고 싶기는 한데 얼굴을 마주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루프가 잘못한게 뭐냐고. 불쌍한 루프.


어찌됐든간에 이리나드는 사과를 세개만 주문했고 여인은 작은 종이봉투에 그것 세개를 담아서 기다렸다. 이리나드가 그녀의 지갑에서 은전하나를 꺼내서 그것과 교환했고 그녀는 환히 웃었다.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요 아가씨."


"감사합니다~. 잘먹을게요."


이리나드는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면서 그 종이봉투를 꼭 안고는 룰루랄라 종종걸음으로 다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란게 참 신기하다. 사과 몇개와 친절한 장사꾼만 있어도 이렇게 금방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말이다. 이리나드는 배를 채울 요량으로 봉투 안을 뒤적거려 알이 빨갛게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끄집어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막 베어 물었다. 와삭! 하고 시원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져나온다.


'맛있어!'


맛있다, 맛있어! 사길 잘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한 입 베어물으려는 딱 그 순간에 누군가가 그녀의 등을 강하게 밀쳤다. 밀었다기 보다는 진짜 쳤다고 하는 편이 훨씬 어울리는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어어?"


그녀가 얼핏 중심을 잃고 손에 든 사과와 사과봉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는 신경도 안쓰는 듯 그녀를 밀어제낀 한 무리의 시커먼 남정네들은 무슨 벌레라도 씹은듯한 불량한 표정을 하고는 그녀를 스쳐지나가 버렸다. 그네들은 이리나드의 얼굴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는데, 사실 그것은 그들에게 다행인 셈이었다. 이리나드의 얼굴을 봤다가 기세좋게 추파라도 던졌단 봐라. 아마 그네들 오늘 성히 침대에 눕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는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은 그 상황을 기피하려고만 하고 있었다. 이리나드같이 예쁜 아가씨가 동네 무뢰배들에게 밀려 넘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도움을 주거나 그놈들을 혼쭐을 내주지 않는걸 보아하니 아마 그놈들, 이 마을에서 힘깨나 쓰는 한당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리나드의 관심은 온통 사과에 쏠려 있었다.


"내 사과..."


흙바닥에 뒹굴거리는 세개의 사과. 한 개는 한 입 베어물은 자국이 선명하다.


아깝다, 아까워. 저렇게 맛있는 사과를 땅에 떨어뜨리다니! 이건 인류적 손실이야! 화가 무럭무럭 솟아난다. 저놈들 대체 뭐야? 가서 따져야겠어! 그녀는 심보가 단단히 올라서는 자신이 한 입 베어물은 그 사과를 다시 주워가지고 성큼성큼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은 그 불량배들이 가서 멈춘곳을 확인하고 멈췄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그 사과장수 여인의 손수레였다.


이리나드는 눈을 지긋이 뜨고 그 놈들을 지켜봤다.


"어이! 누구 허락 받고 여기서 장사하는거야? 앙?"


아니나 다를까, 개중 하나가 매우 더럽게 인상을 쓰며 여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질세라 그 뒤에 있는 한량들도 하나둘씩 무서운 말을 찍찍 뱉으면서 인상을 구기기 시작했는데 보고 있는 이리나드에게는 고역이었다.


'엄청들 못생겼네.'


단순한 이유였다.


"이러지 마세요. 전에 자릿세도 잘 냈잖아요? 이제 와서 왜 이러시는 거에요?"


겁먹은듯 표정이 어두워진 그녀의 딸을 뒤로 숨기면서 여인은 담대하게 그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 건달들은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어보였다. 더불어 주위를 오고가는 사람들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할 뿐 누구 하나 그녀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자릿세고, 나는 지금 우리 군자금이 필요하다, 이말씀이야."


"군자금이라니..."


"많이 알 필요 없고, 그냥 돈 내놔. 아니면 장사 빼시던가. 이 구역이 우리 구역이라는 것 몰랐어, 앙? 아줌마?"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고 청조하게 생긴 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껏 불량한 표정으로 그렇게 그녀를 윽박질렀다. 여성인데다가 애까지 딸린 그녀에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드리고 싶어도 지금 돈이 없어요. 전에 상납금 드리고 그 후에 물건 공수해 와서 지금 정말 한푼도 없어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미 저들은 자릿세랍시고 그녀에게서 상당량의 돈을 뜯어간 상태였다. 그런 놈들이 다시 와서는 돈을 내라고 요구를 해대니 그녀로서는 더 이상 낼 돈이 없었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였던것이다.


"뭐야? 뒤져서 나오면 어쩔래?"


"방금 1셀링어치 사과 팔았는데, 그거라도 받아가시게요?"


여인의 표정이 원망과 서러움으로 물드는 것을 이리나드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여자가 우릴 완전히 물로 보는구만."


"어쩔까요, 형님?"


"어쩌긴 뭘 어째. 장사 빼도록 만들어줘야지. 얘들아, 부숴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거한의 한마디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하려는 거에요? 이러지 말아요! 꺄악!"


"엄마! 꺄아악~!"


이윽고 그곳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놈들은 가차가 없었다. 마치 썩은 생선이라도 내버리듯이 그녀의 향긋한 사과들을 손수레채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형형색색의 예쁜 사과알들이 바닥 이리저리에서 튀어올랐다. 여인은 머리를 감싸쥐고 놈들을 막아보려 몸을 던졌지만 우락부락한 어떤 장정에 의해서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딸은 엉엉 울면서 그런 엄마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횡포. 말도 안되는 횡포가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여인을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이리나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조용히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놈들의 만행을 꿋꿋이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총명한 빛을 띄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에이 씨부럴. 오늘은 술좀 퍼질러 마셔볼까 했더니 글렀네. 망할!"


"형님 다른데도 가보시죠. 뭐 돈 있는 놈이 한둘은 있겠죠."


"에잉 망할, 귀찮게스리. 어이 아줌마! 다음부터 이런꼴 나기 싫으면 항상 엑스트라로 돈을 좀 준비해 두시라고! 인간이 융통성이 없어."


그들은 그렇게 이죽거리면서 난장판이 된 그곳으로부터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과 그녀의 딸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처절하게 그 공간을 메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리나드, 그녀는 마침 그 한당들이 가려하는 길 한가운데에서 마치 날 좀 보라는 듯이 서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아직 멀쩡한 사과를 베어먹고 있었다. 바닥에 조금 구르기는 했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털털했다.


당연하게도, 그 도적들이 이리나드같은 미인을 못보고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다.


"헉! 형님, 저 여자...!?"


이미 그들은 입가에 침까지 질질 흘려가면서 이리나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도 안쓴다는듯이 조용히 사과만 베어물고 있었는데 사과먹는 모습만으로도 저렇게 예술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헤이, 아가씨. 혼자인가? 심심하면 우리가 같이 놀아줄까?"


그리고 이 대사가 빠질 수 없다. 이런 장면에 이 대사가 빠진다면 그것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이리나드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그들을 쳐다봤다.


"어머, 대낮에 거리 한복판에서 헌팅? 진짜 깬다."


그녀의 한마디는 강력했다.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자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뭐야? 이 여자가? 한 번 뜨거운 맛 좀 볼래?"


그렇게 한 번 큰소리를 지른 그는 지저분하게 자신의 하체를 앞뒤로 움직였다.


"이 강인한 육체로 말이야, 밤이 끝날 때까지. 크핫핫핫핫핫!"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핫!"


두목이 웃기 시작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놈들은 미친듯한 광소를 터뜨렸다. 저런 미인을 데려다가 보낼 밤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게 그들 뜻대로 된다면 말이지만...


퍽.


별로 특별한 움직임도 없었다. 이리나드는 그냥 자신이 들고 있던 사과를 집어던졌을 뿐이다. 그것도 들고 있는 그 손만 슬쩍 움직여서. 하지만 그 단단한 사과 알갱이는 정확하게 그 두목의 정중앙에 날아가서 박혔다. 맞은게 아니라 그야말로 박혔다.


그리고 느즈막이 찾아오는 지상 최대의 고통.


"억...!"


두목은 그대로 자신의 성기를 부여잡고 자빠졌다. 아, 입에서 게거품이 나오는걸 보니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다.


"어디서 지저분하게 그런걸 휘둘러. 한 번만 더 휘둘러봐라. 그 때에는 그냥 잘라버리겠어, 망할 놈아."


방금 전까지 예쁘게만 보이던 그녀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물론 일그러져도 예쁜 그녀였지만 그녀정도의 미인이 저런 불량배같은 표정을 짓는것은 흔한일이 아니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취향타는 그런 그림일수도 있겠다. 여하튼 그녀는 한껏 띠꺼운 표정으로 놈들을 깔아보았다.


"이, 이런 미친 여자를 봤나..."


"뭐? 미친 여자? 이 거지같은 동네 건달들이... 미친 여자한테 한 번 죽도록 맞아볼래?"


사과 하나를 잃은것에 더해 하나는 왠 건달 성기에 꼬라박고, 거기다가 어젯밤에 루프와 실랑이를 벌인 것까지 합하니까 이리나드는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마디로, 저 건달들, 사람 잘못 건드렸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년이! 얘들아, 가서 잡아라. 썅 죽여달라고 할 때까지 능욕해주지."


"난 그냥 너네들을 죽여버리겠어. 열받네 이거."


그리고 벌어진 일대 촌극. 거의 열명에 달하는 건달들이 덩치도 그렇게 크지 않은 예쁘장한 아가씨한테 복날 개패듯이 얻어터지는 그림은 그야말로 명화였다. 덩치도 산만한 남정네들 사이를 무슨 바람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가면서 주먹과 발차기를 날려대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한폭의 그림같았다. 그녀의 물결같은 움직임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개중에 어떤놈이 치사하게 이리나드의 머리채를 휘어잡은적이 있다. 여성이 싸울때 가장 취약한 부분중의 하나인 그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이리나드를 더 열받게 만들 뿐이었다.


"이 더럽고 치사한 놈이! 여자 머리채를 부여잡냐?"


그녀는 머리가 잡혀서 움직임이 봉쇄되자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놈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그녀의 긴 머리칼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면서 뱅글 돌았고 놈은 그녀의 발에 고환을 얻어맞고 바닥에 널부러져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치사한놈한테는 매가 약이란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잔인한 짓을 했다. 그냥 계속 밟은 것이다. 퍽퍽퍽퍽, 놈이 게거품을 물고 기절할 때까지 계속 퍽퍽퍽퍽. 표정과 행동을 보아하니 정말로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정말, 정말로.


"거허어어억..."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건달들은 모두 쫄을수밖에 없었다. 만일 저게 나였다면... 상상만 해도 무섭다. 그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가 결국은 하나도 남김없이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쓰러진 형님도, 친구들도 다 내버려두고 말이다.


한창 그놈을 쥐어밟고 여전히 격하게 씩씩거리던 이리나드는 돌연 소리쳤다.


"루으프으 이 바아보오오오!!!"


결국은 루프에게 받은 화풀이 상대가 되고 만 동네 건달들에게 묵념.


일단의 상황이 정리되고 이리나드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몇 놈 잘 골라서 신나게 두들겨 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싱숭생숭한 마음이 이상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좋아지려고 그랬는데 어느샌가 다시 루프의 어벙한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 한켠이 아리아리한 것이다. 그가 무척이나 수줍은 목소리로 '함께 여행하자'고 고백한 그 모습이 자꾸 머리속에 오버랩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 어벙한 얼굴 따위에 말이다!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신이!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서 잡념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좌우로 물결치는 검은 머릿결이 여행자의 그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윤기를 자랑하며 흩날렸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조용히 사과장수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여인은 자신의 딸을 꼭 끌어안고 작게 대답했다.


"예.... 고, 고마워요 아가씨."


딱히 고마워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녀는 고맙다고 했다. 이리나드는 그런 여인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아까전 분명 놈들이 여인의 손수레를 털어버리기 전에 충분히 그들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은 이번 단 한번 여인을 지켜주고 이곳을 떠나겠지만 저 놈들은 다음에 다시 와서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그것도 이전에 못한 분풀이까지 더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여인에게 민폐만 끼칠 뿐. 그럴 바에야 다른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놈들을 손봐주는게 더 나았다. 그녀의 손수레는 도와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리나드는 부숴져버린 손수레에서 굴러떨어진 사과들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아직 괜찮은게 있는것 같아요. 씻으면 아마 다시 팔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여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그런 이리나드에게 시선이 온통 고정되어 있었다. 예쁜 아가씨가 난폭하게 싸움도 잘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살만 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사과알을 줍던 이리나드의 귀에 불현듯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이리나드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서 여인의 딸을 쳐다보았다.


"뭐 좀 먹을래?"


작가의말

 ‘오호? 선작이 계속 올라가는군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 선작수는 53만입니다.’

 

 어젯밤에 프사장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저 말씀을 직접 하...시진 않으셨지만 여튼간에 선작이 쬐끔 늘었네요! 글 올리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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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5) +2 15.11.16 205 4 14쪽
6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4) 15.11.13 223 4 21쪽
6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3) 15.11.11 282 7 15쪽
6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2) 15.11.10 227 4 11쪽
6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1) +1 15.11.09 194 5 26쪽
6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0) 15.11.07 241 4 23쪽
6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9) 15.11.05 197 4 14쪽
6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8) 15.11.03 191 3 22쪽
6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7) 15.11.02 248 4 16쪽
5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6) +2 15.10.31 169 4 16쪽
5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5) 15.10.29 228 5 12쪽
5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4) 15.10.28 151 4 20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3) 15.10.26 306 5 21쪽
5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2) 15.10.25 378 2 15쪽
5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6: 귀로(歸路) (1) 15.10.24 237 2 15쪽
53 세상을 파는 자 Interude +2 15.10.23 237 2 11쪽
5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8) 15.10.23 208 4 42쪽
5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7) 15.10.22 156 2 31쪽
5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6) 15.10.21 166 3 21쪽
4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5) +2 15.10.20 188 3 21쪽
4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4) 15.10.16 180 2 19쪽
4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3) +1 15.10.14 183 6 26쪽
4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5: 가문의 연 (2) 15.10.13 26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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