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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온주 님의 서재입니다.

풍혼무적 - 흑룡이 봉인된 검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대체역사

한온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48
최근연재일 :
2019.07.17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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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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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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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2화 - 설죽화의 깨달음

DUMMY

괴명성과 설죽화의 싸움 덕에 휴무일이 소란스러웠지만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별무반답게 휴무일에 대련을 하는 일은 뇌천대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사람들은 괴명성과 설죽화가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만 이번처럼 과격한 대련은 흔하지 않았기에 괴명성은 휴식을 방해받은 부대원들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설죽화 덕분인지 크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뇌천대의 대장인 강민첨은 둘의 대련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싸움 이후 서로의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낀 괴명성과 설죽화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거란에게 가족을 잃었다는 점 말고도 복수를 위해 뇌천대의 무공 이외에 자신만의 무공도 수련해야 한다는 공통점까지 있었다. 자연스레 둘은 틈날 때마다 같이 수련을 하며 서로의 성장을 도왔다. 당연히 이는 괴명성과 설죽화, 둘 모두의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광풍패 뿐만 아니라 새로 창안한 무공들도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언월도를 바닥에 꽂은 설죽화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씻어내며 말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괴명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명성은 뇌천대에 들어온 이후로 부쩍 자라 8척 장신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의 몸 또한 뇌천대에서의 훈련 덕분에 더욱 탄탄하게 변했다. 권각술과 무기술을 고루 익힌 덕에 너무 크거나 굵지 않게 커진 전신의 근육이 섬세하게 갈라졌고 눈빛은 복수만을 생각하면 불타던 전에 비해 한결 차분해졌다. 풍혼공의 경지는 맹풍을 벗어나 웅풍에 접어들어 맑은 기운이 자연스레 괴명성의 몸에 머무르고 있었다.


“설낭자 덕분에.”


괴명성이 너스레를 떨자 설죽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나저나 월정공이랑 월백창의 개선은 어때?”


“아직. 상승무공을 개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괴명성이 광풍패와 맹우퇴 등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듯이 설죽화도 월명회의 무공인 월정공과 월백창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달의 힘을 쓰는 월정공은 그 이름답게 달의 기운의 강하고 약함에 크게 영향을 받았기에 일정한 위력을 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월명회가 은나운을 노린 것 또한 그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월명회의 보물이 월정공의 약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공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월백창 또한 여인의 신체에 그리 적합한 무공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키기 작은 여인이 다루기에는 투겁창이라는 무기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투겁창이라는 무기 자체도 무기로서의 완성도나 실용성이 시대에 뒤처진 감이 있었다.


본디 창술은 베기보다는 찌르기가 기본이었다. 창으로 베기를 할 경우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리며 창대를 돌리고 쳐내는 회전의 힘이 중요한 법이다. 그러나 투겁창을 사용하는 월명회의 월백창은 큰 동작으로 힘을 실어 상대를 내리찍어 살상하는데 중점을 두는 패와 붕 계열의 무공이었다.


설죽화는 뇌천대에서 뇌혼창을 배우며 월백창의 한계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이를 극복한 새로운 창술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는 중이었다. 물론 새로운 무공을 만들고 있는 괴명성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괴명성은 며칠 새 반달로 변한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공에 대한 고민으로 안색이 어두워졌던 설죽화의 귀가 토끼의 귀처럼 쫑긋거렸다.


“월정공도 그렇고 월백창도 그렇고 유(柔)의 원리가 부족한 것 같아.”


“유? 부드러움 말이야?”


“응. 특히 월백창의 경우 강공 일변도의 무공이잖아. 무공이라는 게 하나의 성질, 추구점이 있지만 거기에 도달하려면 다양한 관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아. 예를 들어 쾌나 변 같은 거 말이야.”


설죽화가 뭔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괴명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상세히 풀어내었다.


“그러니까 강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움을 다를 줄 알아야 하는 거지. 월정공도 마찬가지야. 달도 보름달이 있는가 하면 반달도 있고 초승달, 그믐달도 있잖아.


달의 기운이 가장 강할 때가 보름이고 제일 약한 건 그믐이야. 여태껏 월명회에서는 달의 변화로 인한 월정공의 약화를 약점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데 월정공의 위력이 변하는 걸 약점이 아니라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뭔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괴명성의 말을 듣던 설죽화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월정공의 위력이 변하는 걸 약점이 아닌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보다 다채롭고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달빛과 더불어 밤의 기운까지 활용하면 그믐에도 월정공의 위력이 약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강만을 추구하던 데서 벗어나 부드러움을 가미하면 강과 유의 조화에서 변화가 생겨날 테니 유가 부족하다는 말은 결국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과 같았다.


“아!”


생각지도 못한 괴명성의 조언에 설죽화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부서져 나가는 걸 느꼈다.


월정공이 저절로 운용되며 설죽화의 전신에 달빛처럼 누런 기운이 차올랐다. 월정공의 기운은 설죽화의 전신을 감싸는 구의 형체를 이루었다. 달빛과 월정공의 기운이 동화되어 월정공의 누런빛은 점점 흰색에 가깝게 변해갔다. 밝은 노란색에서 연한 회색으로, 보일 듯 말 듯 한 광택이 어려 있는 차분하면서도 부연 흰색이 된 기운은 이전의 월정공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설죽화의 검은 머리카락과 흰 옷이 조용히 펄럭거렸다.


얼마 후 월정공의 기운을 갈무리 한 설죽화가 조용히 눈을 떴다. 그녀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황홀경에서 깨어났다. 전신에 부드럽고 선선한 기운이 가득했다.


“축하해, 설낭자. 드디어 월정공의 한계를 뛰어넘을 실마리를 얻은 것 같네.”


설죽화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숨 죽여 지켜보던 괴명성이 환하게 웃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단숨에 새로운 경지에 이르는 설죽화의 자질과 집중력에 감탄이 나왔다.


“고마워. 네 덕분이야, 괴명성. 이 은혜를 어떻게 가아야 할지.”


설죽화의 눈이 눈물로 글썽거렸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상대에게 이런 도움을 주는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비록 오해가 풀리고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괴명성이 보여준 대범함은 그녀를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더구나 이번의 깨달음을 월명회에 전해주면 월명회에 갖고 있는 부채의식을 망설임 없이 완전히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괴명성에게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절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오늘의 깨달음을 완전히 네 걸로 만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거야. 보름달의 경지에 가까워지겠지.”


“월정공 만월경(滿月境)...”


월정공은 달의 무공답게 그 경지 또한 달의 모양에 따라 구분을 지었다. 그믐달인 조월경(脁月境), 초승달인 초월경(初月境), 반달인 반월경(半月境), 마지막인 보름달인 만월경이다.


설죽화는 현재 반월경의 초입에 이르러 있는 상태인데 괴명성은 그녀가 머지않아 만월경에 이를 거라 단언했다. 그 정도면 괴명성이 싸웠던 월묘의 경지보다 높다. 설죽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내가 그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그리고 너의 월정공은 이미 이전의 월정공이랑은 다른 무공이 되었어. 기존에 없던 유와 변의 원리를 담았으니까. 공력을 운용할 때 발현되는 기운의 색도 변했잖아. 그건 이미 다른 무공이 되었다는 증거지.”


“새로운 무공...”


설죽화는 땅에 꽂아두었던 언월도를 뽑아들고 다시 한 번 내공을 끌어올려 보았다. 확실히 누런색이 아닌 흰색에 가까운 빛이 언월도의 날을 물들이고 있었다. 내친 김에 그녀는 언월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섬섬초월(纖纖初月).”


실처럼 가느다란 달빛이 설죽화의 언월도에서 새어나왔다. 호를 그리는 언월도의 궤적을 따라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올라 앞에 서있던 배나무를 베었다.


파르르르.

놀랍게도 설죽화의 언월도에서 뿜어진 기운에 베어진 배나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바른 수평으로 베어냈기 때문이다. 어떤 불필요한 흔들림도 없는 베기. 놀라운 솜씨였다.


괴명성이 설죽화가 베어낸 배나무를 가볍게 쳤다. 배나무가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하얀 배꽃 잎들이 밤하늘에 흩날렸다. 달빛 아래에서 산들바람을 타고 올랐다 떨어져 내리는 흰 꽃잎들은 봄비처럼 보였다. 꽃잎 하나하나마다 달빛이 스며들어 눈이 부셨다.


휘리리릭.


설죽화는 언월도를 번개처럼 휘둘렀다. 평소와는 달리 가볍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창대를 탄력 있게 놀리며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언월도의 칼날을 들이댔다. 한 점의 내공도 쓰지 않고 순수한 기교로만 보이는 신기였다.


언월도에 닿은 배꽃들이 모조리 반으로 갈라졌다.

달빛 아래 흰 배꽃의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설죽화는 그야말로 눈 속에 핀 꽃과 같았다. 그녀는 달빛을 등진 채 배꽃이 흩날리는 속에서 잔잔하게 웃는 설죽화의 자태는 그야말로 달에 사는 항아가 내려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공심법과 창술까지. 두 가지 새로운 무공의 창시자가 되었네. 너무한 거 아니야?”


설죽화가 꽃잎들을 베어내는 모습을 본 괴명성의 너스레에 설죽화가 눈을 흘겼다.


“누가 할 소릴?”


“하하. 어쨌든 그 정도면 천하십삼두의 어떤 무공에도 뒤지지 않을 거야. 완성된 모습이 기대되는군.”


“응. 이제야 거란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 것 같아. 물론 이걸 완성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고.”


“그래.”


괴명성과 설죽화는 수련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거처로 들어갔다.




‘흠... 설죽화도 새로운 경지에 접어든 것 같은데.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어.’


괴명성은 침상에 누워 자신의 앞날을 고민했다. 그는 군인이 되기 위해 뇌천대에 온 게 아니었다. 거란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생각이 우선인 것도 아니다. 괴명성의 가장 큰 목표는 아버지를 죽이고 풍혼문을 멸문시킨 야율부동검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뇌천대에 들어온 건 어디까지나 그를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강호를 떠돌다 허무하게 죽지 않고, 야율부동검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풍혼문의 무공을 확실히 익힐 시간을 벌라는 강감찬의 배려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여기에 박혀 있을 수는 없어. 이제는 뇌천대를 떠날 때가 된 거야.’


무엇보다 괴명성 역시 폭우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한층 강해졌다. 그 때 얻은 깨달음을 어느 정도 갈무리했으니 뇌천대에 더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괴명성은 결심을 굳혔다.


다음 날, 괴명성이 뇌천대의 대장인 강민첨에게 다시 도전한다는 소문이 부대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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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화 - 뇌천대를 떠나다. 19.07.17 116 0 12쪽
53 53화 - 재도전 19.07.04 142 0 12쪽
» 52화 - 설죽화의 깨달음 19.07.03 127 0 12쪽
51 51화 - 인연 19.07.02 104 1 11쪽
50 50화 - 살수2 19.06.27 120 0 11쪽
49 49화 - 살수 1 19.06.26 123 0 12쪽
48 48화 - 설죽화2 19.06.25 144 0 11쪽
47 47화 - 설죽화 19.06.20 132 1 11쪽
46 46화 - 강민첨 19.06.19 135 1 12쪽
45 45화 - 뇌천대 19.06.18 164 2 12쪽
44 44화 - 노인의 정체, 그리고... 19.06.13 159 3 13쪽
43 43화 - 탈영병 괴명성 19.06.12 150 2 13쪽
42 42화 - 개경에서 19.06.11 158 1 12쪽
41 41화 - 이별 (2) 19.06.06 181 0 12쪽
40 40화 - 이별 (1) 19.06.05 166 0 12쪽
39 39화 - 심의원 19.06.04 166 0 13쪽
38 38화 - 월명회와의 혈투 (2) 19.05.30 179 1 11쪽
37 37화 - 월명회와의 혈투 (1) 19.05.29 176 0 12쪽
36 36화 - 다시 만난 은나운 +1 19.05.28 185 0 12쪽
35 35화 - 전쟁이 끝난 후 19.05.23 203 0 12쪽
34 34화 - 은랑의 최후 19.05.22 200 1 11쪽
33 33화 - 구리가라검의 비밀 19.05.21 183 0 11쪽
32 32화 - 멸문 19.05.16 182 0 12쪽
31 31화 - 낭림산의 무병들 19.05.15 177 0 11쪽
30 30화 - 진광과의 첫 만남 19.05.10 178 2 12쪽
29 29화 - 애전전투, 고려군의 의혼 (2) 19.05.09 177 0 12쪽
28 28화 - 애전전투, 고려군의 의혼 (1) 19.05.08 194 0 12쪽
27 27화 - 양규장군 19.05.07 177 1 14쪽
26 26화 - 곽주성 탈환 19.05.06 20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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