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한온주 님의 서재입니다.

풍혼무적 - 흑룡이 봉인된 검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대체역사

한온주
작품등록일 :
2019.04.01 20:48
최근연재일 :
2019.07.17 18:00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11,961
추천수 :
57
글자수 :
293,471

작성
19.06.04 18:00
조회
166
추천
0
글자
13쪽

39화 - 심의원

DUMMY

“괴시주!”


진광이 빛살처럼 다가갔다. 괴명성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천만다행히 옥륜이 깊게 박히지는 않았지만 륜에서 흐르는 냉기가 주변의 피부를 시퍼렇게 만들고 있었다.


“다행히 륜의 냉기 덕분에 지혈은 되었군요. 하지만 이대로 두면 동상으로 죽고 말거예요.”


기척도 없이 가까이 다가온 은나운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괴명성은 기절한 상태에서도 몸을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쩔 수 없이 이 괴상한 무기를 빼내야겠구려.”

“우선 여기를 떠야겠어요. 이런 곳에서 상처를 치료하다가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칠지도 몰라요.”


괴명성의 상태를 살피던 은나운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광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염주를 돌리며 합장을 했다.


“은시주의 말이 옳소이다. 속히 움직입시다. 헌데 이 여인들은 어찌하면 좋겠소?”

“흥. 남의 물건을 탐내어 사람까지 죽이려하는 살수들 따위 알게 뭔가요? 죽지는 않았으니 곧 깨어나겠죠.”


진광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은나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괴명성의 상세가 가볍지 않은데다 월명회의 여인들은 치명상을 입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똑 부러지는 은나운의 말에 진광은 헛기침을 하더니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큼. 그럼 소승이 아는 의원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리로 갑시다.”


진광이 조심스레 괴명성을 들쳐 업었다. 은나운은 빛이 되어 나아가는 진광의 뒤를 따랐다. 하늘 가운데서 기웃거리던 해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충주목 외곽의 마을에 당도한 진광과 은나운은 즉시 의방을 찾았다.

심가의방(沈家醫方)이라는 나무 현판을 단 초가집은 마을의 입구 근처에 있었다. 노을이 개 짖는 소리를 타고 마을에 퍼지고 있었다.


“여긴 가요?”

“그렇소이다, 은시주. 허름해보이지만 실력은 확실한 곳이지요. 의혼구세회에 소속된 분이니 말이오.”

“의혼구세회라구요? 그렇다면 정말 믿을 수 있겠군요.”


은나우는 새삼스럽다는 눈길로 심가의방이라고 적힌 현판을 바라보았다. 보다 수준 높은 의술을 행하기 위해 무공을 익힌다는 괴짜 의원들. 그들이 만든 곳이 바로 의혼구세회였다. 의혼구세회의 모든 의원들이 무공을 익힌 건 아니지만 진광이 데리고 온 곳이라면 평범한 의원은 아닐 터였다.


“어서 들어갑시다.”


진광은 거침없이 의방의 사립문을 밀었다. 그 바람에 사립문을 받치고 있던 지게 작대기가 넘어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보시오, 심의원. 급한 환자가 있소이다. 어서 나와 보시오.”


진광이 나지막하게 부르자 한 중년인이 하품을 하며 방에서 기어 나왔다.


“빌어먹을 땡중 같으니. 오밤중에 자는 사람 깨우고 난리야. 아, 어지간하면 제 손으로 약초나 발라주고 치울 것이지. 절에서 배운 의술 뒀다 뭐해?”


아직 노을이 남아있건만 오밤중이라고 궁시렁 대는 의원을 보며 진광은 쓴 웃음을 지었다.


“아미타불. 제 배움이 어찌 심의원의 고절한 의술에 비하겠습니까?”


진광의 아부에 기분이 약간 풀린 심의원이 에헴 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 뭘 멀뚱히 서 있어? 어여 환자 들여놔.”


그의 재촉에 진광이 서둘러 약방에 괴명성을 눕협다. 등에 륜이 박혀 있는 탓에 배를 깔고 눕힐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괴명성의 상태를 본 심의원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등에 뭐 저런 걸 꽂고 있어? 보기만 해도 섬뜩 하구만.”


빙륜에 슬쩍 손을 가져다 대던 심의원은 침을 탁 뱉었다. 그는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손을 휘휘 저었다.


“피를 많이 먹은 마물이야. 에잉~. 이건 내가 못 건드려. 땡중이 힘을 좀 써야겠네. 저 희한한 걸 천천히 빼내. 그러면 내가 환자를 돌볼 테니.”

“고명하신 심의원께서 엄살이 심하시구려. 의혼구세회의 연명보신공(連命保身功)이면 이 정도는 문제없지 않습니까? 허허.”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어여 박힌 거나 빼. 난 다른 준비를 좀 할 테니.”


심의원의 역정에 진광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정좌해서 눈을 감았다. 진언을 외우며 정신을 집중하던 그는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불가의 무상신공인 무량광천공이 운용되면서 그의 전신에 서기가 어렸다. 부처의 후광 같은 흰빛이 진광의 전신을 뒤덮었다. 진광은 양손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자신의 손이 빛으로 하얗게 물들자 그는 천천히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그의 두 손바닥 사이에 빙륜이 잡혔다.


빙륜에 어려 있는 싸한 기운이 자신을 건드리는 진광의 공력에 격렬히 저항했다. 냉기는 진광의 내부까지 파고들려고 꿈틀거렸다. 진광은 속으로 조용히 법성게를 읊조리며 빙륜의 냉기를 다스렸다. 무량광천공의 상서로운 기운이 빙륜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빙륜의 냉기는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부처의 법광을 구현한 신공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서서히 빙륜의 냉기가 걷히면서 괴명성의 피부도 조금씩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진광이 합장한 손이 조심스레 끌어당겨졌다. 괴명성의 등에 고집스레 박혀 있던 빙륜이 그의 손을 따라 느릿느릿 빠져나왔다. 진광의 법성게가 끝이 나자 무량광천공의 백광이 더욱 짙어졌다. 결국 스윽 소리와 함께 빙륜이 완전히 빠져나왔다.


“아!”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던 은나운은 감탄과 안도의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탄성에는 오홍문과는 또 다른 빛을 다루는 불가의 무공에 대한 경탄과 괴명성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이제 심의원님의 차례입니다. 오랜만에 신침술을 볼 수 있겠군요. 아미타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심의원이 퉁을 주자 머쓱해진 진광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심의원은 연명보신공을 운용했다. 따뜻한 녹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괴명성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어 그가 옆에 놓여있던 침들을 잡았다. 심의원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의 손은 정확하고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팟팟. 파바박.

길고 짧은 침 수십 개가 괴명성의 전신에 꽂혔다. 의혼구세회의 절기인 철명신침(徹冥神鍼)이었다. 명계마저 뚫는 침이라는 광오한 이름에 걸맞게 어지간한 환자는 침 한 방이면 즉효를 본다는 신침술이었다. 의혼구세회에는 침술과 절개술, 약초술 등 다양한 의술에 맞는 무공을 발전시켜왔다. 그 중에서도 심의원은 철명신침의 대가였다.


“대단하군요.”


은나운이 속삭이자 진광이 주의를 주었다.


“소저, 치료 중에 그런 말을 하면 심의원께서는...”

“다 들리니까 더 크게 말해!”


싱글벙글한 얼굴이 된 심의원이 소리쳤다.


“저렇게 반응하신답니다.”

“그, 그렇군요.”


약초로 만든 향이 타면서 괴명성의 경직된 몸을 이완시켜주었다. 침을 다 꽂은 심의원은 지체 없이 약초를 이겨 상처에 바를 약을 만들고 약탕기에 물을 부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의 경망스러워 보이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진광 역시 그런 심의원의 모습이 익숙한 모양인지 아무 말 없이 그가 괴명성을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왠지 모를 위엄에 은나운도 숨을 죽인 채 심의원의 치료를 바라보았다. 일각 정도가 흐르고 약초향이 전부 타자 심의원이 침을 뽑았다. 그리고는 상처 부위에 미리 개어놓은 약을 치덕치덕 발랐다. 괴명성은 의식을 차리지 못했지만 상처의 붓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후. 이제 고비는 넘겼네. 내일쯤 깨어날 걸세.”

“아미타불. 역시 심의원이십니다.”


진광이 합장하며 감사를 표하자 가쁜 숨을 고르던 심의원이 손사래를 쳤다.


“뭘 이정도 가지고. 어차피 이놈은 등에 박힌 것만 빼내면 별 탈 없었을 상처였어. 보아하니 속을 다친 것 같지도 않고. 탈진한 정도일 뿐이니 며칠 잘 쉬면 괜찮아져. 물론 무리하면 등의 상처는 다시 터지겠지만 그거야 제 팔자고.”


심의원은 손을 천에 닦은 뒤 진광과 은나운을 몰아냈다.


“치료는 다 끝났으니 다들 나가. 괜히 곁에서 소란 떨지 말고.”

“고생하셨습니다, 심의원님.”


합장을 하고 방을 나서는 진광의 뒤에서 심의원의 타박이 들려왔다.


“씻고 잠이나 푹 자둬. 자네랑 저 아가씨도 별로 좋은 꼴은 아니니.”


그의 지적에 진광은 아차 싶었다. 자신이야 천생 떠돌고 노숙하는 팔자니 그러려니 해도 아직 젊은 낭자인 은나운은 빨리 쉬고 싶을 것이다.


“이런. 은시주, 제가 경황이 없어 살피지를 못했습니다. 고비는 넘겼다하니 이만 들어가 쉬시지요. 옆방이 비었으니 그리로 가시며 됩니다. 소승은 마당에서 명상을 할 것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은나운은 진광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격전 뒤의 피곤이 몰려와 쉬고 싶던 참이었다.


“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스님.”


은나운이 방으로 들어가자 진광은 마당에 놓여있는 평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늘의 별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지 거대한 구름이 통째로 움직이며 밤을 짙게 만들고 있었다.




월명회의 살수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새벽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스스슥. 괴명성 일행이 떠나고 난 벌판에 검은 복면을 쓴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거대한 검을 등에 매고 있었다.


수상쩍은 복면인들은 월명회의 살수들을 살피더니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얼마 지나지 않나 누군가 손짓으로 신호를 했다. 그의 손에는 쪼개진 광풍패가 주어져 있었다. 그걸 확인한 무리의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풍패 조각이 땅에 떨어지고 복면인들의 손이 움직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월명회의 살수들은 남김없이 머리가 깨져 죽었다. 동이 트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 복면인들은 나타났을 때보다 더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후 떠오른 태양이 머리가 깨지며 흐른 피를 더욱 붉게 물들였다.




심의원의 장담대로 다음 날 괴명성은 깨어났다. 상처가 쑤셨지만 움직이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깨어났구만.”


약을 만들고 있던 심의원이 괴명성을 보고 말을 붙였다.


“여기는...?”

“의방이지 어디긴 어디야. 엎드려 봐. 약 발라줄 테니.”

“의원님이십니까?”


괴명성의 물음에 심의원이 짧게 답했다. 그는 깨끗한 천을 물에 적셨다.


“그래.”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제 일행은...”

“아, 그놈 참 말 많네! 냉큼 엎드리지 못해!”


심의원이 큰소리를 내자 괴명성은 시키는 대로 등이 보이게 누웠다. 심의원은 천으로 괴명성의 상처를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심의원의 호통을 들었는지 진광과 은나운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 괴시주. 깨어났구려.”

“진광스님.”


괴명성이 뭄을 일읔키려 하자 심의원이 손바닥으로 등짝을 쫙 쳤다.


“가만히 있어. 약 발라야 되니까.”

“얘 등에 약 좀 발라주시구려. 나는 이 땡중과 할 말이 좀 있으니.”


심의원은 괴명성과 은나운의 의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가버렸다. 진광 또한 야릇한 미소를 한 번 짓고는 심의원을 따라 사라졌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은나운이 괴명성의 등에 약을 바르며 물었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는 게 등을 통해 느껴졌다. 괴명성은 등의 상처가 낫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은나운.”


괴명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은나운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곽주성에서 처음 괴명성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덩치 큰 거란 무병 둘을 상대로 홀로 분전하고 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네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의 말에 은나운은 자신의 손이 화끈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혹시라도 괴명성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얼른 손을 떼었다.


“우린 거란에 맞서 함께 싸운 동료 아닙니까. 하하.”


짝!


“악!”


은나운은 뜨거워진 손으로 괴명성의 상처를 세게 내리치고는 일어섰다.


“약은 다 발랐으니 푹 쉬세요, 동료님.”


빙륜의 냉기보다 차가운 음성으로 말한 은나운이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풍혼무적 - 흑룡이 봉인된 검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정적 연재 중단 19.07.17 86 0 -
54 54화 - 뇌천대를 떠나다. 19.07.17 117 0 12쪽
53 53화 - 재도전 19.07.04 144 0 12쪽
52 52화 - 설죽화의 깨달음 19.07.03 130 0 12쪽
51 51화 - 인연 19.07.02 104 1 11쪽
50 50화 - 살수2 19.06.27 122 0 11쪽
49 49화 - 살수 1 19.06.26 123 0 12쪽
48 48화 - 설죽화2 19.06.25 144 0 11쪽
47 47화 - 설죽화 19.06.20 134 1 11쪽
46 46화 - 강민첨 19.06.19 135 1 12쪽
45 45화 - 뇌천대 19.06.18 164 2 12쪽
44 44화 - 노인의 정체, 그리고... 19.06.13 160 3 13쪽
43 43화 - 탈영병 괴명성 19.06.12 151 2 13쪽
42 42화 - 개경에서 19.06.11 158 1 12쪽
41 41화 - 이별 (2) 19.06.06 183 0 12쪽
40 40화 - 이별 (1) 19.06.05 167 0 12쪽
» 39화 - 심의원 19.06.04 167 0 13쪽
38 38화 - 월명회와의 혈투 (2) 19.05.30 180 1 11쪽
37 37화 - 월명회와의 혈투 (1) 19.05.29 179 0 12쪽
36 36화 - 다시 만난 은나운 +1 19.05.28 185 0 12쪽
35 35화 - 전쟁이 끝난 후 19.05.23 204 0 12쪽
34 34화 - 은랑의 최후 19.05.22 200 1 11쪽
33 33화 - 구리가라검의 비밀 19.05.21 183 0 11쪽
32 32화 - 멸문 19.05.16 182 0 12쪽
31 31화 - 낭림산의 무병들 19.05.15 177 0 11쪽
30 30화 - 진광과의 첫 만남 19.05.10 181 2 12쪽
29 29화 - 애전전투, 고려군의 의혼 (2) 19.05.09 180 0 12쪽
28 28화 - 애전전투, 고려군의 의혼 (1) 19.05.08 194 0 12쪽
27 27화 - 양규장군 19.05.07 177 1 14쪽
26 26화 - 곽주성 탈환 19.05.06 20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